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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을 위한 고문진보』를 출간했다. 책을 냈다니, 대단하다고(?) 칭찬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먼저 설레발을 쳐야겠다. "무슨 출판사를 빌어 거금을 내(혹은 거금을 받고) 한꺼번에 다량을 찍어내는 책이 아니올습니다. 거의 무일푼으로 주문할 때마다 책을 찍어내는 피오디(POD) 방식으로 책을 냈고, 편집 교정도 혼자 한 엉성한 책이올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내는 책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내는 책이올습니다. 결코 대단하지 않습니다." 굳이 이런 설레발을 치는 건 많은 분들이 책을 내는 걸 대단한 것으로 오해들 하고 계셔서 그런 것이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겪고 배운 것들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것을 갈무리하여 책으로 내면 되는데, 책 내는 것이 뭐 어렵겠는가? '갈무리하여'가 어렵다고 여기는데, 그건 '잘 쓰려는 욕심'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내려놓으면 갈무리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 산 증인이 바로 나이다. 하하.


 이 번 책은 내용보다 표지가 마음에 든다(아들한테 보여줬더니, 올드하다며 타박을 했다. 뭔 상관? 나만 좋으면 되지! 하하).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은데, 앞선 말한 대로, 책을 찍을(살) 때마다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백수로선 부담이 되어 그러지 못하는 게 좀 아쉽다. 그러나 이것도 뭐 거의 읽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책이기에 아무려나 상관없다. 이래저래 내가 내는 책은 순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다. 오오, 철저한 이기주의자여! 그대 이름은 김동돈이로다.


 서문을 소개한다. 참고로 좀 길다. 부담되시면 아니 읽으셔도...


 책을 내면서


『고문진보(古文眞寶)』란 책명의 뜻은 요즈음 말로 하면 ‘찐 고문(古文)’이랄 수 있다. 수많은 고문(古文) 작품 중 정수(精髓)만을 모았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런데 여기 ‘고문(古文)’은 단순히 옛글이란 의미가 아니고, 당·송대에 유행한, 선진(先秦) 시대와 양한(兩漢)의 산문을 본뜬, 질박한 산문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고문(古文)하면 얼핏 생각하기에 복고적 성향을 띤 글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고문(古文)은 기존의 화려한 수식과 전고를 중시한 사륙변려체의 문풍에 반기를 든 문체로, 이는 곧 기득권에 대한 반기를 든 것으로 볼 수 있기에 복고적인 문풍이 아니라 개혁적인 문풍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체를 주도한 이들이 신흥 사대부였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고문진보』는 위에서 말한 대로 당·송대에 유행한 고문을 모아놓은 것이긴 하지만 특이하게 당송 이전까지의 글도 싣고 있다. 당·송 이전의 글은 당·송대의 고문과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굳이 이러한 글들을 삽입한 것은 고문의 사적(史的) 전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문진보』의 저자에 대해선 아직도 정견이 없다. 황견(黃堅), 진력(陳櫟) 등이 언급되고 있으나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고문진보』의 판본도 동일하지 않아,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판본에는 문체별로 글이 모여 있고, 우리나라 판본에는 작가별로 글이 모여 있다. 우리가 접하는 『고문진보』는 최초의 판본이 나온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편집된 책 중의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고문진보』는 앞서 말한 대로 고문의 정수가 모여 있기에 많은 고문 작가들의 전집을 읽지 않고도 고문의 정수를 간취할 수 있다는 편의성 때문에 과거 우리 선현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읽었던 책이다. 이런 점에서 퇴계 선생의 다음 말은 단순히 퇴계 선생의 말일뿐만이 아니라 일반 선비들의 『고문진보』 독서 행태를 대변한 것이라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고문진보 후집(우리가 말하는 『고문진보』는 이 후집을 일컫는다. 전집은 고시들을 묶은 것이다)은 기가 있는 글이니, 모름지기 5, 6백 번을 읽은 뒤에야 비로소 공효를 보게 된다. 나는 장년에 2, 3백 번 남짓 읽었을 뿐이지만….”


 한문 수험생이 『고문진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시험을 위한 독해력 향상이 주목적이겠지만 이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선현들의 문장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앞서 일본과 중국에서 나온『고문진보』는 글이 문체별로 모여 있고,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판본에는 작가별로 글이 모여 있다고 했는데, 본 『수험생을 위한 고문진보』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판본 예를 따라 문체별로 분류를 했다. 굳이 문체별로 재분류한 것은 고문의 다양한 양식과 특징을 익히는 것이 특정 작가의 글을 중시해 읽는 것보다 수험생에게 더 의미 있는 공부가 될 것 같아서였다. 문체별 분류는 일본과 중국에서 나온 판본을 구해 볼 수 없어 부득이 요내(姚鼐)의 『고문사류찬(古文辭類纂)』 분류 기준에 따라 분류했다(요내의 『고문사류찬』은 중국의 산문을 가장 요령 있게 분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책이 두껍고 활자가 작아 읽는데 답답함을 느끼시리라 생각한다(다만 번역문은 문단별로 띄워 놓아 약간 청량감(?)을 주었다). 요즘 출판되는 책들의 편집과 상이하다고 볼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 한 것은 활자를 크게 하면 쪽수가 늘어나고 그것은 곧 주문형 책자(POD)에서는 가격 상승 요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수험생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것이니 다소 답답한 편집을 좋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고문진보』에 수록된 작품은 127편이기에 대략 하루 4편씩 읽으면 한 달 안에 독파할 수 있다. 산술적으로는 그렇지만 꼭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소경(離騷經)’ 같은 경우는 글의 내용도 어렵거니와 양도 많기에 하루에 소화하기도 벅차지만 ‘추풍사(秋風辭)’ 같은 경우는 짧은 글이기에 금방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위의 계산을 고려하여 양을 적절히 조절하면 한 달 안에 『고문진보』를 독파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학습 방법에 대해 한 말씀드리고자 한다. 본문 원문을 최소한 편당 10번 정도는 읽으시길 권한다. 시청각 학습이 묵학보다 효과적인 것은 수험생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특별히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원문의 내용을 글자, 어구, 문장 순으로 변형시켜 보길 권한다. 한작(漢作)을 해 보라는 말인데, 한작은 현실적 쓸모 여부를 떠나 독해력 향상에 도움을 주니, 한 번 실행해 보시기를 권한다. 


 책을 쓰면서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성백효 씨의 『고문진보』와 이상하 외 4인의 『고문진보』 그리고 신용호 씨의 『고문진보 후집』 세 책을 참고했다. 해제와 본문 번역에 있어 세 책에 힘입은 바 크며, 간혹 세 책의 번역을 전재(轉載)한 경우도 있다. 세 책은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겠다. 다만 세 책 덕분에 어쭙잖은 본인이 본 책을 낼 수 있었기에 역자(譯者)들께 깊이 감사드릴 뿐이다. 그리고 본문의 각 문체별 특징과 종류 소개는 http://bolg.nave.com./osj1902/100006786692를 참고했다. 블로그 주인께 깊이 감사드린다.


 『수험생을 위한 고문진보』는 한문 수험생들에게 드리는 보약 같은 학습서이다. 잘 드시고 기운 내서 좋은 성과 있으시길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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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산에 올랐다. 신록에 감흥이 일어 7언고시 한 수를 지었다.


陽春召我以煙景 양춘소아이연경    따뜻한 봄 날씨 아슴한 경치로 날 불러

不知不覺登八峯 부지불각등팔봉    나도 모르게 팔봉산에 올랐네

遍山草綠括視野 편산초록괄시야    온 산에 가득한 신록 시야를 사로 잡나니

看益驚歎造化翁 간익경탄조화옹    볼수록 조화옹의 솜씨에 감탄이 절로


첫 구절은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에서 표절한 것이다. 오래된 대목이지만 봄 날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옮겨 봤다. 이 구절에서 특히나 절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른다는 뜻의 '소(召)'라는 글자이다. 부른다는 것은 곧 유혹. 봄 날 문을 나선 것은 결코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봄 날의 유혹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문을 나선 것이다. 접할수록 따스한 봄 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이의 마음을 잘 포착한 단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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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은 고독하고 가난했으나 학문을 좋아하고 여러 경전에 통달했으며 많은 서적을 두루 보았다. 여러 선비들이 그를 일컬어 '관서 공자는 양백기(백기는 양진의 자(字)이다'라고 했다. 등즐이 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등용했다. 여러 번 승진하여 형주자사와 동래태수가 되었다. 일찍이 군으로 부임할 때에 창읍을 경유하게 됐는데, 과거 자신이 천거했던 형주의 무재 왕밀이 창읍령으로 있었다. 왕밀이 한 밤에 금 10근을 가지고 찾아와 양진에게 선사했다. 


양진이 말했다. "친한 사람인 나는 그대를 알아줬는데 그대는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이 어인 일인가!" 왕밀이 말했다. "깊은 밤이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양진이 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이 아는 이가 없다 하오." 왕밀이 부끄러워하며 방을 나갔다.


<통감절요>에 나온 양진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여. '천지지지아지자지'란 고사성어의 배경 이야기지. 어뗘? 읽어 보니께 어떤 양반 떠오르지 않는 감? 너무 대조되잖여? 그런디 말여, 싸우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그 말 사실인 거 같어. 아 글씨 요즘엔 그 양반 잘못을 호도하는 자들이 더 비기 싫더라니께. 아이, 욕이나 한 번 해야 속이 시원하겄네. SSIBURALNOMD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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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해 쌓아 올린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계단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바위 위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이 땅에 세울 줄 안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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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제 횡재했다우 ^ ^ 축하해 주구랴. 무슨 횡재? 아, 글쎄 온전히 24시간을 공으로 얻었단 말이시.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기 원했던 날'이란 말이 있는디, 그런 소중한 날을 공으로 얻었으니 횡재 아니냔 말이시. 아... 알겄다! 어제가 3월 1일이 아니고 2월 29일이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구먼! 보통 2월은 28일까지 있는디. 맞어, 난 어제가 29일이 아니고 3월 1일인 줄 알었지라. 백수가 된 데다 집에 큰 달력도 없고 해서 날짜 감각이 무뎌졌구먼. 해서 식탁에 황현필 역사 일력을 놓고 매일 넘기면서 날짜 확인을 하는디 여기엔 29일이 읎서. 그랴서 당연히 어제는 3월 1일인 줄 알었지 뭐여. 부랴부랴 애덜 생활비 보내고 그랬는디.. 아, 글씨 어제가 3월이 1일이 아니라 2월 29일이었던 겨. ㅇㅇ이 형 페이스북을 보고 어제 밤늦게 알었지라. 4년 만에 찾아온 날이라는 겨. 거 참... 그건 그렇구, 횡재한 날은 워떻게 보냈는가? 횡재한 건 막 써야 한다는디. 어이구, 횡재한 것을 뒤늦게 알었는디 쓰긴 워따 써? 그냥 평범하게 하루 보냈제. 아, 다행이었다 싶은 게 하나 있긴 허네. '시경 1권 편집'을 원래 계획대로라면 어제 마무리했어야 하는디 다른 거 하느라 못해서 쪼까 아쉬웠는디, 횡재한 날 덕분에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게 됐구먼. 허허. 그나저나 어제가 꽁으로 얻은 날이란 것을 진즉에 알었더면 워떻게 하루를 보냈을껴? 막 달리려고 했남? 글씨? 그건 시크릿!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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