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정치의 필수 요소는 무엇인지요?"

"국방, 경제, 신뢰라고 생각한다."

"부득이 하나를 덜어야 한다면..."

"국방을 빼야겠지."

"나머지 둘에서 하나를 더 뺀다면..."

"경제를 빼야하지 않을까? 신뢰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본다. 그것이 빠지면 정치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이다. 자공은 장사 수완이 좋은 제자였다. 정치의 필수 요소 세가지를 들었으면 그것으로 족할 법도 한데 굳이 그 세가지 요소의 서열을 매기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장사 수완이 좋은 그의 면모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장사 수완이란 적기에 물건의 우열과 가격의 고하를 잘 매겨 처리하는 능력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 가치 서열에 보태어 자신의 장기인 장사의 필수 요소도 함게 생각해봤을지 모른다. 장사 수완이 좋다는 것은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니, 한 대답을 통해 또 다른 상황의 답을 구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지나친 추측은 아닐 것이다. 

 

스승의 답변을 들으며 자공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사 수완이 좋은 명민한 제자였으니, 직감적으로 '역시 스승님이다!'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덜 명민한 제자였다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수긍을 했을 것이다. 

 

국방이나 경제는 가시적인 것이고 믿음은 비가시적인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가시적인 것에 우위를 둔다. 그러나 비범한 이들은 비가시적인 것에 우위를 둔다.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그럴까? 먼 옛날에서 사례를 찾지 말고 현대사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남베트남은 전쟁 물자에 있어 분명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패했다. 가장 큰 요인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때문이었다. 신뢰하지 않는 정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울 군인은 없다. 북베트남군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견고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들은 부족한 전쟁 물자를 신뢰라는 무형의 힘으로 극복했다. (베트남 전쟁의 승패를 단순히 정부에 대한 신뢰와 불신으로 가름짓는 것이 무리한 발언이란 것 잘 안다. 단지 신뢰의 힘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발언한 것이라 이해하고 넘어가 주시길!) 장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얕은 수로야 당장의 이익을 꾀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이고 큰 이익을 위해선 고객과의 신뢰가 우선돼야 하지 않겠는가. 자공은 필시 즉각적으로 스승의 말에 수긍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은 '교우지도 막여신의(交友之道 莫如信義)'라고 읽는다. '벗을 사귀는 도리론 신의만한 것이 없다'란 뜻이다. 여기 벗은 평범한 의미의 친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를 제외한 타인 일체를 말하는 것일수도 있다. 나는 후자로 보고 싶다. 신의는 정확하게는 '믿음과 의리'이겠지만 더 주안점을 둔 것은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고래로 벗을 사귀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오륜의 붕우유신(朋友有信)이나 화랑 세속오계의 교우이신(交友以信)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유교의 덕목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이 다섯가지 덕목을 오행[金木水火土]에 견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을 중심에 놓고 인의예지를 사방에 배치한다(오행도에서는 토(土)를 중심에 놓고 금목수화(金木水火)를 사방에 배치한다). 인의예지라는 덕목의 중심에 신을 놓았다는 것은 인의예지라는 덕목의 핵심이 신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를 제외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심지어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의예지가 아닌 신이라고 말할수 있다. 신의 바탕이 있을 때 인의예지가 의미있는 덕목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신뢰를 잃으면 사랑의 마음이 줄어들지 않던가. (일반적으론 인의예지신의 핵심 덕목으로 인을 든다. 여기서는 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오행 배치도의 그림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았다.)

 

목하 우리는 믿음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정부의 피눈물나는 코로나19 방역 노력을 무산시키려는 집단 행동을 보라. 그들의 그릇된 믿음이 만들어 낸 가공할 위력에 전 국민이 놀라고 있지 않은가. 그릇된 믿음이 바른 믿음으로 전환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릇된 믿음이든 바른 믿음이든 무형의 믿음이 만들어내는 그 힘은 유형의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별히 어려운 한자가 없어 한자 설명은 생략한다. 사진은 한 중국집에서 찍은 것이다. 숟가락집에 써있는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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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갖고 다닌다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입에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 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나의 피리 소릴 들으려므나 삘릴리 삘릴리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송창식의피리 부는 사나이가사이다. 저 사나이는 어쩌다 떠돌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됐을까? 그리고 말년은 어땠을까? 저간의 사정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 가사에 없어 추측이 어렵다. 다행인 건 그의 떠돌이 생활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 외려 타인까지 위로하고 있다. 삘릴리 삘릴리.

 

널리 알려진 떠돌이 피리 부는, 아니 시 짓는 사나이가 있었다. 김삿갓. 저 피리 부는 사나이와 비슷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떠돌 수밖에 없는 내력이 있었고 미미하나마 말년의 흔적도 남아있다. 과장(科場)에서 김익순(홍경래 난때 홍경래에게 항복하고 부역했던 관리)을 성토하는 시를 지어 장원했는데, 김익순이 바로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아 방랑길에 나섰고, 방랑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 피리 부는 사나이와 다른 점은 그의 방랑길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은 김삿갓의 자서전 격에 해당하는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이다(난고는 김삿갓의 호). 말 그대로, 그의 평생을 술회하고 있다.

 


鳥巢獸穴皆有居 조소수혈개유거  새도 둥우리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어 살 곳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 고아평생독자상  내 평생을 돌아보니 홀로 외롭구나.

芒鞋竹杖路千里 망혜죽장로천리  짚신과 대지팡이로 천리를 떠도나니

水性雲心家四方 수성운심가사방  흐르는 물이요 떠도는 구름이라, 사방이 내 집일세.

尤人不可怨天難 우인불가원천난  사람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기 어려우니

歲暮悲懷餘寸腸 세모비회여촌장  해 저물어 슬픈 회포만 가슴에 가득하도다.

初年自謂得樂地 초년자위득락지  나이 어릴 때는 행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漢北知吾生長鄕 한북지오생장향  도성은 내가 자란 고향이었노라.

簪纓先世富貴人 잠영선세부귀인  벼슬 높았던 선조들은 부귀한 사람들이었고

花柳長安名勝庄 화류장안명승장  아름다운 장안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다네.

隣人也賀弄璋慶 인인야하농장경  이웃 사람들은 옥동자 얻었다 축하했었고

早晩前期冠蓋場 조만전기관개장  일찍 공명을 얻으리라 미리 기대했더라.

髮毛稍長命漸奇 발모초장명점기  수염 자라 성장함에 따라 운명이 기박해져

灰劫殘門飜海桑 회겁잔문번해상  가문이 멸족되어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도다.

依無親戚世情薄 의무친척세정박  의지할 친척 없고 세상 인심 야박한데

哭盡爺孃家事荒 곡진야양가사황  부모까지 돌아가니 집안이 몹시 황폐했네.

終南曉鍾一納履 종남효종일납리  종남산 새벽 종소리에 짚신 한 켤레 둘러메고

風土東邦心細量 풍토동방심세양  동쪽 풍토 향해 길 떠날 것 결심했다네.

心猶異域首丘狐 심유이역수구호  마음은 타향에서 고향 쪽으로 머리 둔 여우 같고

勢亦窮途觸藩羊 세역궁도촉번양  형세 또한 궁하니 울타리에 뿔 걸린 수양 같더라.

南州從古過客多 남주종고과객다  남쪽 고을에는 예로부터 지나는 길손 많았으니

轉蓬浮萍經幾霜 전봉부평경기상  쑥대 구르듯, 부평초 떠다니듯 몇 해를 보냈던고.

搖頭行勢豈本習 요두행세기본습  고개 숙이는 신세가 어찌 타고난 습성이랴!

楔口圖生惟所長 설구도생유소장  입 놀려서 삶을 꾀함만이 나아갈 바로세.

光陰漸向此中失 광음점향차중실  세월은 점차 이러는 동안 사라져 버리니

三角靑山何渺茫 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 푸른 빛이 어찌 그리도 아득한가!

江山乞號慣千門 강산걸호관천문  팔도강산에 걸식하는 소리 허다한 문전에 익숙했고

風月行裝空一囊 풍월행장공일낭  풍월을 벗삼으니 행장의 주머니 텅 비었구나.

千金之子萬石君 천금지자만석군  천금을 가진 자와 만석꾼 두루 있어

厚薄家風均試嘗 후박가풍균시상  가풍의 후박함을 골고루 맛보았노라.

身窮每遇俗眼白 신궁매우속안백  몸이 궁하니 매번 뭇 사람이 냉대하고

歲去偏傷鬂髮蒼 세거편상빈발창  해가 갈수록 머리털 하얗게 됨을 슬퍼하노라.

歸兮亦難佇亦難 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무르기 또한 어려우니

幾日彷徨中路傍 기일방황중로방  얼마나 긴 세월 길가에서 방황해야 하는가!

 

(번역: 황병국)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 문득 자신의 처지와 인생 유전을 회고하는 것으로 말머리를 잡았다. 이어 과거 영화롭던 집안과 자신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뜻밖에 닥친 가문의 비극과 그로 인한 방랑 및 거기서 맛본 삶의 신산함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계속될 운명으로서의 방랑을 생각하며 우수에 젖고 있다. 이 시의 시안(詩眼)()’이다. 방랑길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막연히기왕에 나선 방랑길이라면 유쾌하게 지낼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환골탈태하는 출가자의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워준 무게가 그런 마음을 갖게 하기엔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비록 멸문(滅門)된 폐족(廢族)이지만 사대부라는 신분 의식이 살아 있었고 포기할 수 없는 재기(再起)의 꿈이 꿈틀댔기 때문이다.“삼각산 푸른 빛이 어찌 그리도 아득한가!”는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한 꿈에 대한 엘레지이다. 그는 시대가 지워진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낯선 한자가 너무 많다. 시안에 해당하는 하나만 자세히 살펴보자.

 

(사람 인)(볕 양)의 합자이다. 남에게 받거나 남에게 입힌 상처란 의미이다. 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양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상처는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상처 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傷痕(상흔), 外傷(외상) 등을 들 수 있겠다.

 

한때 장안의 화제가 됐던 이문열 씨의 소설 시인은 김삿갓을 야담의 주인공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시인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이문열 씨는 이곳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상식앞에서 언급했던, 뒤늦게 조부의 정체를 알게 됐다는 에 의문을 표한다. 과장에 들어설 나이가 될 때까지 과연 조부의 정체를 몰랐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멸문을 당하는 과정을 봤는데도 말이다. 일리 있는 시각이다. 이런 질문을 할 것 같다.“그럼, 조부의 정체를 알고서도 과장에서 조부를 공격하는 시를 지었다는 말인가!”이문열 씨는 그렇다고 보고, 그렇게 한 것은 바로 재기의 욕망 때문이었다고 해석한다. 이 역시 일리 있는 시각이다. 앞서 말한대로, 위 시에서도 그런 욕망이 비치기 때문이다. 김삿갓은 시대의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가수 송창식 자신을 가리킨다고 봐도 대과없을 것이다. 듣기론 그도 성장기에 몹시 힘들게 지냈다고 한다. 서울예고에 수석 입학했으나 학비를 조달할 수 없어 끝내 졸업을 하지 못했다 하니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그가 떠돌이가 된 건 가난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김삿갓과 달리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시대를 만났기에 떠돌이 생활이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말년은 어떠한가? 그가 받는 연간 저작권료는 거의 억대에 가깝다고 한다. 행복한 말년이다.

 

우리 모두는 시대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한 생을 산다. 때로는 시대라는 숙명을 뛰어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은 시대라는 숙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불행하게 사는 것도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 또한 시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지나친 역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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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 여쭈었다.)

내일 사냥을 나갈까요? 말까요?

(상제께서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보리를 수확하여 먹었다.

 

인간처럼 미약한 존재가 없다. 토끼의 털도 없고 사자의 발톱도 없으며 곰의 힘도 없다. 그럼에도 자연계의 지배자가 된 건 생각이라는 특별한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배하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앞 일(날)'이라는 불가시(不可視)의 영역. 하지만 이도 생각을 통해 해결했다. 점이라는 방법을 고안하여 앞 일을 헤아리게 된 것. 점으로 앞 일을 헤아릴 수 있게 됨에 따라 인간은 명실공히 자연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사진은 아이스크림 '거북이' 포장지이다. 한글 '거북이' 밑에 있는 것은 '거북 귀'자이고 왼쪽의 글자들은 갑골문으로 지금 사용하는 서체인 해서로 바꾸면 '射(쏠 사) 明(밝을 명) 卽(곧 즉) 成(이룰 성) 來(올 래)' 자이다. (갑골문을 해서로 바꾼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갑골문에 관한 상식이 박약하기 때문. 來는 원래 보리라는 뜻이었다. 보리는 춘궁기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는 식물이라 '신이 보내 온 선물'이라 여겨 후일 '오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하게 됐다. 이 글에서는 '보리'라는 뜻으로 보았다.)

 

갑골문은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새긴 문자이기에 갑골문이라 부른다. 한자의 초기 형태로 알려져 있으며 상나라(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경)에서 사용하던 문자이다. 한자의 초기 형태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완정(完整)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이 이전 원형에 해당하는 고문자가 진화되어 만들어진 문자로 본다. 갑골문의 주 내용은 특정 사안에 대해 점친 것과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서두의 문구는 '거북이' 포장지에 나온 갑골문을 가지고 재미삼아 점사 형태로 해석해 본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갑골문 파편은 16만 편이다(위키 백과 참조). 갑골문이 본격 발굴되기 이전 망실된 것 까지 합하면 그 양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갑골문 파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갑골점이 그만큼 신빙성이 높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갑골점은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구멍을 파놓고 이곳에 뜨거운 쇠꼬챙이를 꽂아 생기는 균열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점 복[卜] 자와 점 점[占] 자의 'ㅏ' 모양은 이 균열을 그린 것이다.) 균열을 가지고 길흉을 점쳤다니 오늘 날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앞서 말한대로, 신빙성이 높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날도 여전히 인간은 앞 일(날)을 지배하기 위해 점을 친다.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견갑골에 생긴 균열 대신 컴퓨터라는 기기가 내놓는 데이터를 가지고 말이다. 갑골점이 신빙성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빗나가는 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날의 점도 그러하지 아니한가. 인간은 앞 일(날)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명실공히 자연계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앞 일(날)을 지배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러한 날을 위해 인간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왠지 이런 인간의 생각이 두렵다. 완벽한 지배를 위한 생각은 자만(自滿)이다. 자만은 패착(敗着)을 초래한다. 갑골점을 통해 앞 일(날)을 지배할 수 있었던 상나라는 주나라에 멸망당했다. 앞 일(날)을 완벽히 지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인간의 미래에 낙관보다 비관적인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여담. 세상을 놀라게 한 고고학적 발견은 우연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갑골문의 발견도 그렇다. 갑골문의 발견자는 왕의영(王懿榮, 1845-1900)인데, 그는 정치인이자 금석학자였다. 어느 날 학질에 걸려 그 당시 학질에 좋다는 용골(龍骨, 발굴된 오래 된 뼈)을 사와 달여 먹으려다 용골에 새겨진 범상치 않은 문자를 눈여겨 보게 된다. 20세기 세상을 놀라게 한 고고학 발굴의 하나로 평가되는 갑골문 발견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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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만든 병풍이었다. 아버지는 남들에게 액자나 족자 병풍 글씨 등을 많이 써주셨는데 정작 집에는 번듯한 액자나 족자 병풍이 하나도 없었다. 집 치장에 돈 들이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특별한 취향 때문이었다. 끈질긴 어머니의 간청으로 병풍을 하나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병풍의 글씨가 희한하기 그지 없었다. 메마르고 비틀린 것이 꼭 시들어가는 나뭇가지를 연상케했다.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뭐래요?"


어머니가 물으셨다. 무슨 내용이냐는 질문에 힘들게 만든 병풍에 왜 이렇게 이상한 글씨를 썼냐는 힐문도 섞인 것 같았다.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여. 이 병풍이 집에 있으면 재액이 없어!"


어머니는 흡족한 대답을 듣지 못하신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재액을 막는 병풍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병풍이 어디 있으랴. 괴벽한 글씨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이 병풍이 우리 집안의 재액을 물리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겨울을 조금 따뜻하게 보내는데 일조를 한 건 확실하다. 잘적에 방문 앞에 이 병풍을 둘러 웃풍을 막았기 때문. 


사진은 아버지께서 임모하셨던「척주동해비」이다. 무슨 내용이길래 재앙을 막아준다는 것일까?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취했는데 출처를 잊었다.)



瀛海漭瀁 百川朝宗 其大無窮 東北沙海 無潮無汐 號爲大澤

영해망양 백천조종 기대무궁 동북사해 무조무석 호위대택


큰 바다 끝없이 넓어 온갖 냇물 모여드니 그 큼이 끝이 없도다. 동북쪽은 사해(沙海)여서 밀물 썰물 없으므로 대택(大澤)이라 이름하였네.


積水稽天 渤遹汪濊 海動有曀 明明暘谷 太陽之門 羲伯司賓

적수계천 발휼왕예 해동유애 명명양곡 태양지문 희백사빈


바닷물 하늘에 닿아 출렁댐 넓고도 아득하니 바닷물 일렁일 때마다 구름이 자욱하네. 밝고 밝은 양곡(暘谷)으로 태양의 문이라서 희백(羲伯)이 공손히 해를 맞이하네.


析木之次 牝牛之宮 日本無東 鮫人之珍 涵海百産 汗汗漫漫

석목지차 빈우지궁 일본무동 교인지진 함해백산 한한만만


석목(析木)의 위차(位次)요 빈우(牝牛)의 궁()으로 해가 본시 돋는 동쪽의 끝이라네. 교인(鮫人)의 보배와 바다에 잠긴 온갖 산물(産物)은 많기도 많아라.


奇物譎詭 宛宛之祥 興德而章 蚌之胎珠 與月盛衰 旁氣昇霏

기물휼궤 완완지상 흥덕이장 방지태주 여월성쇠 방기승비


기이한 만물이 변화하여 너울거리는 상서로움이 덕()을 일으켜 보여준다네. 조개 속에 든 진주는 달과 더불어 성하고 쇠하며 기운을 토하고 김을 올리네.


天吳九首 怪夔一股 回且雨 出日朝暾 轇軋炫慌 紫赤滄滄

천오구수 괴기일고 표회차우 출일조돈 교알현황 자적창창


머리 아홉인 괴물 천오(天吳)와 외발 달린 짐승 기()는 태풍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네. 아침에 돋는 햇살 찬란하고 눈부시니 자주 빛 붉은 빛이 가득 넘치네.


三五月盈 水竟圓靈 列宿韜光 扶桑砂華 黑齒摩羅 撮髻莆家

삼오월영 수경원령 열수도광 부상사화  흑치마라 촬계보가


보름날 둥실 뜬 달 하늘의 수경이 되니 뭇별이 광채를 감추네. 부상(扶桑)과 사화(砂華) 흑치(黑齒)와 마라(麻羅) 머리 맨 보가족(家族)


蜑蠻之蠔 爪蛙之猴 佛齊之牛 海外雜種 絶黨殊俗 同囿咸育

연만지호 조와지후 불제지우 해외잡종 절당수속 동유함육


연만(蜑蠻)의 굴과 조개 조와(爪蛙)의 원숭이 불제(佛齊)의 소들 바다 밖 잡종으로 무리도 다르고 풍속도 다른데 한곳에서 함께 자라네.


古聖遠德 百蠻衆譯 無遠不服 煌哉凞哉 大治廣博 遺楓邈哉

고성원덕 백만중역 무원불복 황제희재 대치광박 유풍막재


옛 성왕의 덕화가 멀리 미치어 온갖 오랑캐들이 중역(重譯)으로 왔으나 멀다고 복종하지 않은 곳 없었네. 아아, 크고도 빛나도다. 그 다스림 넓고 크나니 그 치적(治績) 영원히 빛나리.


(번역 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



「척주동해비」내용은 글씨만큼이나 낯선 말과 고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문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동해, 그대 위대한 바다여!" 동해에 대한 찬가이자 진혼문(鎭魂文)이라 할 수 있다.


척주동해비의 저자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 삼척(척주)부사로 부임했을 때 조수의 피해가 막심했다. 심한 때는 부사가 머무는 처소 가까이까지 밀려왔다고 한다. 이때 허목이 처한 조처중의 하나가 이척주동해비를 세운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진혼의 효과가 있었는지 이후 조수 피해가 사라지고 간척지까지 일구었다고 한다. 이후 이 비는 일명 '퇴조비(退潮碑)'로도 불리게 되었다. 이런 신비한 일화를 갖고 있다보니 이 비문을 병풍으로 만들어 집에 두면 재액을 막는다는 소문이 나게 됐고 재액 예방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재액을 막는 부적이나 글을, 대개 미신으로 치부하지만, 나는 일정 정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심리적 위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를 말한다. "이 사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라고 말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대안의학자이자 작가인 에모토 마사루(1943-2014)는 좋은 말과 나쁜 말에 반응하는 물의 결정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물은 답을 알고 있다』란 책을 냈다. 좋은 말에는 물의 결정체가 선명하고 온전한 육각형의 모습을 띄었고, 나쁜 말에는 불투명하고 일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세상에 물없는 곳(것)이 없으니(우리 몸도 70%가 물이다), 좋은 말은 그 대상을 선명하고 온전하게 만들 것이고, 나쁜 말은 그 대상을 불투명하고 일그러지게 만들 것이다. 좋은 말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실증적 증거를 말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은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책을 읽고 실험을 해봤다. 교실에 동일한 물을 담은 두 비이커에 양파를 놓고 한 쪽에는 '좋아' 한 쪽에는 '나빠'라는 라벨을 붙였다. 학생들에게 '좋아' 쪽에는 좋은 말을, '나빠' 쪽에는 나쁜 말을 하게 했다. 근 한 달 가까이 진행했는데,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좋아' 쪽 양파는 싱싱한 반면, '나빠' 쪽 양파는 썩은 것.『물은 답을 알고 있다』출간 당시 의사과학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실험을 통해, 나는 에모토 마사루의 주장을 믿게 되었다. 재액을 막는 부적이나 글이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 소이이다.


「척주동해비」는 동해를 위로하는 좋은 말이다.「척주동해비」가 세워진 후 조수 피해가 없어졌다는 것을 완전히 미신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난 일정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믿는다. 좋은 글은 그것에 반응하는 대상을 순화시킨다.「척주동해비」의 저 찬송 진혼문이 동해의 조수를 순화시켰을 거라고 굳이 믿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낯설고 어려운 한자가 많다. 핵심적인 두 자만 자세히 살펴보자.


瀛은 氵(물 수)와 嬴(가득할 영)의 합자이다. 육지를 가득 둘러싼 끝 모를 물이란 뜻이다. 바다 영. 신선이 사는 섬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이 섬은 동해에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 신선이 사는 섬 영. 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瀛表(영표, 해외), 瀛海(영해, 큰 바다) 등을 들 수 있겠다.


邈은 辶(걸을 착)과 貌(모양 모)의 합자이다. 왕래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멀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貌는 음(모→막)을 담당한다. 멀 막. 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邈然(막연, 근심하는 모양 혹은 아득한 모양), 邈志(막지, 원대한 뜻) 등을 들 수 있겠다.


척주동해비」는 한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다. 파괴에 대해서는 설이 구구하다. 탁본을 구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그 소임을 해야 했던 이들이 귀찮아 파괴했다는 설도 있고, 조수로 파괴됐다고 설도 있고, 정적(政敵)이 파괴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간에 척주동해비」가 파괴된후 조수 피해가 다시 생겼고, 복원되자 다시 멎었다고 한다. 파괴가 이 비의 신비성을 더하게 해준 셈이다. 


미수 허목의 글씨는 미전체(眉篆體)라고 하는데, 그의 전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이계(耳溪) 홍양호(洪養浩, 1724-1802)는「척주동해비」의 전서 글씨에 대해 “지금 동해비를 보니 그 문사(文辭)의 크기가 큰 바다와 같고, 그 소리가 노도와 같아 만약 바다에 신령이 있다면 그 글씨에 황홀해질 것이니, 허목이 아니면 누가 다시 이 글과 글씨를 썼겠는가”라고 평했고, 현대의 서예 평론가들도 조선적인 전서체를 선보였다고 평한다. 그러나 역시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수용되기 어려운 기벽한 필체이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고 했다. 허목의 성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어쩌면 그런 성정이었기에 저런 주술성을 지닌 비문을 지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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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 - 2018) 선생의 논어 백가락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자신이 대학을 다닐 적에는 교수들이 학생을 성인으로 깍듯하게 대했는데, 자신이 교수가 되어 대학에 들어와 보니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다른 교수들처럼 학생들을 애 취급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선생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1950년대이고, 교수를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나는 1980년에 대학을 다녔다. 선생의 경험을 빌면,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학과에는 학생 이름에 꼭 를 붙여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이 계셨다. 황병기 선생의 경험담에 의거하면 교수들이 학생을 애 취급하던 시절이지만 황병기 선생의 대학 시절 여풍(餘風)이 잔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부분적인 경험이라 전체로 확대하긴 무리한 언급이지만 그냥 수용해 주시길!).

 

나는 90년대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90년대 대학에서 교수들이 학생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지 못한다. 추정만 할 뿐이다. 황병기 선생이 대학에서 정년한 것이 2001년이니, 선생의 언급을 빈다면, 여전히 교수들은 학생을 애 취급했을 것이고 내가 경험했던 여풍도 완전히 사라졌을 것 같다.

 

그러면 2000년대 교수들은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사진은 어느 대학의 홍보 문구이다. 이 대학에서 강조하는 교육 5계명이란다.

 

● 수업 중 학생의 질문이 엉뚱해도 무안주지 않기

● 학생과 상담할 때는 마칠 때까지 웃으며 공감하기

● 교수가 가는 길은 사제동행의 길임을 잊지 않기

● 좋은 교육은 훌륭한 연구와 함께 함을 잊지 않기

● 교육은 항상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수행하기

 

이 교육 5계명은, 가혹하게 말하면, 두어 글자만 바꾸면 초등학교에 어울릴만한 문구이다. 2000년대 교수들이(대학들이)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든다(이 역시 부분적인 사례라 전체로 확대하긴 무리한 언급이지만 그냥 수용해 주시길!).

 

대학생이면 법적으로 엄연한 성인이다. 성인이라도 학생의 신분이니, 따뜻하게 이끌어줘야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대학을 나오면 곧바로 사회생활이란 전쟁터로 들어간다. 강인하게 단련시켜도 전쟁터에서 살아남을지 말지인데 따뜻한 보호로 일관한다면 그가 과연 전쟁터에서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따뜻한 이끔이 외려 그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릇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누구든지 대접받은 대로 행동하게 된다. 어른 대접하면 어른답게 행동하고, 아이 대접하면 아이처럼 행동한다. 성인이 된 대학생을 애 대접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대학 교육이 소수 정예에 한정되던 시대와 다중 보편화된 시대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일까, 이 학교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듯한 구호學生第一(학생제일) 創業最强(창업최강)’은 공허하게 들린다. 초등학생처럼 보살핌을 받은 학생이 과연 험난한 창업을, 그것도 최강의 창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낯선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의 변형, 칼 도)(곳집 창)의 합자이다. 칼에 맞아 난 상처란 뜻이다. 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곡식 창고에서 곡식이 새 나오듯 피가 흘러나오는 곳이 상처란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상처 창. ‘비롯(처음)’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상처에서 피가 나온 시점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 비로솔 창.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創傷(창상), 創設(창설) 등을 들 수 있겠다.

 

은 종이나 북을 거는 거치대를 그린 것이다. 윗부분은 톱니 모양의 거치 부분을 표현한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받침대를 표현한 것이다. ‘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종이나 북을 거는 일을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일 업.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業務(업무), 事業(사업) 등을 들 수 있겠다.

 

(의 약자, 무릅쓸 모)(취할 취)의 합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취한다란 의미이다. ‘가장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위험을 무릅쓸 수 있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가장 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最高(최고), 最低(최저) 등을 들 수 있겠다.

 

본의 아니게 한 대학을 폄훼하는 말을 했다. 혹 이 대학에 관계된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적잖이 언짢을 것 같다. 이 대학을 폄훼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으며 단지 현 대학 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는 한 사례로 든 것 뿐이니,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다소 구태의연하지만 위 교육 5계명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교수는 교수답게 학생은 학생답게[師師弟弟]

 

구체적인 요목을 제시하지 않아도 이 속에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여담. 황병기 선생의 논어 백가락은 내가 꼽는 최고의 논어 해설서이다. 공자는 정치가이자 철학자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최고의 실력을 보지한 분야는음악이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타국을 떠돌다 실패한 뒤 고국 노나라로 귀국하여 한 말이 내가 돌아온 뒤 노나라 음악이 바로 잡혔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이런 점에서 논어를 제대로 풀이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학자나 정치가보다 음악에 정통한 사람이라야 가능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다. 이런 점에서 황병기 선생은 논어를 해설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인데, 이분이 논어해설을 했으니 최고로 꼽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책은 선생의 생애 후반부에 쓴 것이기에 더더욱 믿음직스럽다. 논어가 심심하여 해설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감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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