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룡유회(亢龍有悔)”란 말이 있다. ‘꼭대기에 오른 용은 후회할 일이 있다라는 의미로, 주역건괘() 상구(건괘의 맨 위에 있는 선을 일컫는 말)의 효사(괘의 각 선에 대한 설명)이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최고를 좋아한다. 수석, MVP, 스타, 베스트 셀러 등에 환호하는 것은 이런 성향 때문일 것이다. 누구 말대로 사람들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역은 그런 최고를 경계한다. 최고는 곧 기움의 시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괘에서 가장 좋게 여기는 자리는 어디일까? 짐작했겠지만, 상구 전의 구오(건괘의 위에서 두 번째 선을 일컫는 말)이다. 최고 직전이 가장 좋다고 보는 것. 쉽게 말하면 2등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조금만 되짚어보면 수긍할 것이다. 1등은 추격자에 대한 압박과 1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반면 2등은 1등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뒀지만 1등만큼의 압박과 강박은 없다. 1등보다 2등이 낫다는 말, 수긍할만하지 않은가.

 

사진의 한자는 ()’이라고 읽는다. ‘가득 채워져 있다란 뜻이다. 내부가 풀 세트로 채워져 있다는 의미일 것도 같고, 이곳에 들어오면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가득 채워질 거라는 의미일 것도 같다. 여하간에 이 빌딩 이름에는 알게 모르게 최고 지상주의, 1등주의 가치관이 배어있다.

 

그래서 그럴까, 왠지 이 집에 입주하면 압박과 강박감을 많이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지상주의가 주는 스트레스를 온전히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 빌딩 이름을 살짝 고치면 이런 스트레스를 덜 받거나 받지 않을 것 같다는 황당한 생각을 해봤다. 영측(盈昃) 빌딩. 채워지기도 비워지기도 하는 건물. 1등도 될 수 있고 꼴찌도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지만, 여유를 가진 빌딩으로 2등이란 의미를 강조하여 작명한 것이다. 어떻게 느끼시는지?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릇 명)(더할 고)의 합자이다. 물건이 담긴 그릇에 추가로 물건을 더하여 그릇을 가득 채운다는 의미이다. 찰 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盈昃(영측, 차고 기움), 盈尺(영척, 한 자 남짓. 협소함) 등을 들 수 있겠다.

 

2등이 좋다고 했지만, 사실 2등도 1등 못지않은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1등이 되지 못한데서 오는 결핍과 아쉬움이 그것. 가장 좋은 것은 1등도 2등도 아닌 무등(無等)이다(그래서 나는 무등산을 좋아한다). 1등 혹은 2등에게 보내는 찬사는 광대에게 보내는 박수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은 결국 타인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이다. 자신의 리듬에 맞춰 무등을 추구하는 것이 삶을 삶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한가한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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