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용산에 있는 헌 책방「뿌리」에 간 적이 있다. 헌 책방이 으레 그렇듯 미어지게 채우는 바람에 끝내 터져버려 추스리기 어려워진 자루마냥 책방 안과 밖은 어떻게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로 책들이 쌓여 있었다. 책방이라기 보다는 책 숲 혹은 책 무덤같은 공간이었다.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가 입구 초입에 있으면서 오는 손님들에게 봉지 커피를 타서 대접했다. 잡지에 소개된 헌 책방 순례에 나온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렸다. 


그날 이곳을 찾은 것은 모처럼만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볼 일만 보고 그냥 내려 가기엔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드는데다 잡지에서 소개된 이곳의 흥미로운 기사 내용 때문이었다. 고가의 희귀본을 저렴한 가격에 구한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 '혹시 내게도 그런 행운이…' 하는 흑심이 떠올랐던 것이다. 헌 책방이 아니래도 이상하게 오래된 가게에 가면 항상 이런 흑심이 피어 오른다. 주인이 알지 못하는 뭔가 값진 것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 미로같은 책방 안을 기웃거리는데 관심가는 고서들이 눈에 띄었지만 가격을 물으니 만만치 않았다. 하긴, 주인의 눈을 속일 저렴한 희귀본이 어디 그리 손쉽게 얻어지겠는가. 눈호강만 실컷 하다가 마지막에 그냥 나오기 미안하여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에버그린 문고판 플라톤의『국가』를 샀다. 500원을 줬던 것 같다. 


사진의 한자는 '노포(老鋪)'라고 읽는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오래 된 가게'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한 일본에서 유래된 말이다. '고(古)'보다 '노(老)'라는 말을 쓴 것에서 오래된 가게 그 자체보다 그 가게를 운영하는 장인을 우선시하는 느낌이 강해 가업 계승의 전통이 강한 일본의 문화를 잘 나타낸 용어란 생각이 든다. 우리 말로 대체할 만한 용어를 찾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뚜렷한 대체어를 찾지 못한 듯하다. 사진에 나온 방송 매체가 '노포'라는 말을 사용하는 자체가 이를 말해준다. 


사진의 노포는 중국집인데 건물도 그렇고 실내 장식도 그렇고 모든 것이 오래 된 티가 난다. 무엇보다 주방장 되는 분이 그렇다. 외관으로 보면 거의 칠십 가까이 돼보인다. 새것이라곤 손님 좌석을 관리하는 전자 계산대 뿐이다. 이곳은 늘 손님이 북적인다. 점심 시간 때는 밖에서 줄을 서 대기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현란한 먹거리와 산뜻한 장식의 가게들도 많으련만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방송을 탄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방송을 타기 이전에도 소문이 났던 곳이니. 6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 한 이유일수도 있겠다 싶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싼 맛에 먹는 비지떡은 한 두끼에 그치지 자주 오래도록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은 바닷가의 둥근 조약돌과 같다. 예리하고 기괴한 맛은 없지만 완숙(完熟)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헌 책방에 들러 '혹시 내게도…'하는 흑심이 생기는 것은 이런 편안함에 기댄데서 나온 엉뚱한 바램이다. 경직된 상태라면 그런 바램은 추호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교보문고 같은데서 주인의 눈을 속인 희귀본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노포 중국집을 찾는 이들의 심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고목같은 주방장의 손에서 빚어 나오는 한그릇 짬뽕을 대하면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배부르게 해줄 것 같은 기대가 들기에 찾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현란한 먹거리와 산뜻한 장식의 가게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기대이다. 바쁜 점심 시간에 굳이 줄을 서가면서까지 이 노포 중국집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몸의 곡기보다 마음의 곡기가 더 간절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老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구부린 채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과, 人(사람 인)과 毛(털 모)와 匕(化의 약자, 화할 화)의 합자로 머리털이 흑색에서 백색으로 변화한 사람 즉 노인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이다. 늙을 로. 老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老齡(노령), 老化(노화) 등을 들 수 있겠다.


鋪는 金(쇠 금)과 甫(남자의 미칭 보)의 합자이다. 화려한 문고리라는 뜻이다. 金으로 뜻을 표현했다. 甫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남자의 미칭처럼 보기 좋은 장식의 문고리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문고리 포. 가게라는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가게 포. 鋪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金鋪(금포, 황금 문고리), 店鋪(점포) 등을 들 수 있겠다.


일본과 달리 가업 계승의 장인 문화가 희박한 우리나라에서는 노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오래된 것= 무소용'의 가치관까지 더해져 그나마 있던 노포조차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 찾던 헌책방은 한군데도 남아 있는 곳이 없다. 음식점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아가 다른 가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오래된 가게들의 퇴조는 당연히 아쉬움을 남긴다. 그런데 정작 더 큰 아쉬움은 가게의 퇴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시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무소용'의 가치관이 그것. 이런 가치관은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포를 중시하는 장인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왠지 노인이 홀대받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거 물질적 궁핍 속에서도 노인을 공대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건 일본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노인 공대 문화이다. 이것을 되살릴 수는 없는 걸까? 조약돌도 기암괴석 못지 않은 가치와 의미가 분명히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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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공룡 여당 탄생.

 

과반수를 넘는(더불어 시민당 포함) 180석으로 더불어 민주당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선거를 치른 더불어 민주당이나 투표를 한 국민들도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에 놀랐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 유시민의 발언― 범진보 180석 전망―을 왜곡하여 읍소 전략을 편 미통당의 흑색 선전만 없었다면 대구 · 경북도 이 놀라운 투표 결과에 동참했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놀라운 투표 결과에 대한 여러 분석들이 나오는데 대세를 이루는 평은 세가지이다. 하나. 전쟁(현 시국) 중에는 장수(집권당)를 바꾸지 않는다. 둘. 세계가 감탄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셋. 미통당으로 대변되는 구태 정치의 청산 열망. 

 

공룡은 빙하기를 맞으면서 전멸했다. 거대 몸집을 유지할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 더불어 민주당이 커진 몸집에만 만족한다면 자칫 공룡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정청래 당선자는 이런 우려를 한 방송 매체에서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180석이라는 큰 기대를 안겨준 만큼, 그 기대를 저버리면 국민은 180도로 돌아설 것입니다." 한 정치학자는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여야에 각기 '겸손'과 '쇄신'을 주문했는데 시의적절한 충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더불어 민주당이 '겸손' 이전에 가져야 할 더 중한 덕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중한 덕목을 갖지 못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여러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은 '입지용왕능도만리(立志勇往能到萬里)'라고 읽는다. 뜻을 세워 용감하게 나아가면 능히 만리에 이를 수 있다, 란 뜻이다. 여기 '만리'는 원대한 목표를 상징하는 말일 터이다. 이 문구에서 핵심은 '용'이다. '용'이란 추진력이 뒷받침되어야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 뜻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


그렇다면 용기있게 나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말한다. "스스로 반성하여 거리낄 것이 없다면 비록 내 앞에 수천 수만의 사람이 있어 나를 위협한다 해도 그곳을 하등의 두려움없이 지나갈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맹자의 말로 사용하고 나도 그렇게 사용했지만, 사실 이 말은 맹자가 인용한 증자의 말이다.『맹자』에 등장하다보니 맹자가 한 말로 굳어진 듯 싶다.) 여기 "하등의 두려움 없이"란 바로 용기(있는 자세)를 가리킨다. 맹자는 용기(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선 이른바 자신을 이기는 극기(克己)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내면에 들끓는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을 이기는 극기가 없는데 어떻게 용기가 생기겠는가! 자신을 이겨야 자기 확신이 생기고, 자기 확신이 생겨야 용기가 샘솟지 않겠는가! 이런 극기와 자기 확신이 없는 용기도 있겠지만 그건 만용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조용하면서도 이성적인 것이다.

 

더불어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겸손'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갖춰야 할 것은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한 '용기'이고, 그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맹자가 말한 철저한 자기 성찰의 극기 노력을 해야 한다. 그들 앞에는 수천 수만의 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민주당이 자기 성찰의 극기 노력을 멈춰  '용기'를  잃는 순간 그들은 가뭇없이 빙하기의 공룡처럼 전멸할 것이다. 부디, 용기를 갖고 겸손한 자세로 개혁 과제들을 완수하기를!


사진은 사전 투표 장소에서 찍었는데, 우연하게도 더불어 민주당에 바라는 마음이 실린 듯한 문구라 생각되어 견강부회해 사용해 보았다.

 

낯선 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勇은 力(힘 력)과 甬(솟을 용)의 합자이다. 甬은 초목이 무성하다란 의미이다. 무성한 초목처럼 기세가 높고 세다란 의미이다. 날랠(용감할) 용. 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勇士(용사), 勇猛(용맹) 등을 들 수 있겠다.

 

能은 곰을 그린 것이다. 厶는 머리, 月을 배, 匕 두 개는 다리를 그린 것이다. 지금은 본뜻에서 연역된 '능하다'란 의미로만 사용하고, 본래 뜻이었던 곰은 熊(곰 웅)으로 표기한다. 능할 능. 能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能力(능력), 有能(유능) 등을 들 수 있겠다.

 

到는 至(이를 지)와 刂(刀의 변형, 칼 도)의 합자이다. 칼같이 정확하고 빠르게 도착했다는 의미이다. 이를 도. 到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도착(도착), 도달(도달)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이번 선거에서 우리 누님들은 전부 미통당 후보들을 찍으셨다. 코로나19 대응 초기 정부가 중국 입국자들을 막지 않아 코로나19가 창궐했고, 이인영(더불어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우리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누님들은 이와 관련된 동영상도 내게 보내 주셨다. 가짜 뉴스들인데, 누님들이 마음 상할까 봐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웠다.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짐작컨대, 이상한 쪽으로 투표 결과를 왜곡하여 생각하실 것 같다. 틀림없이 또 가짜 뉴스를 접하실테니 말이다. 접하는 매체를 좀 바꾸셨으면 좋겠는데, 이 또한 마음 상하실까봐 섣불리 말씀드리기 어렵다. 인식을 왜곡시켜 현상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짜 뉴스, 코로나19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악성 바이러스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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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사람 마음 알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속담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표현한 시나 소설은 어떨까? 역시 그 진의를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이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것은 작품의 진의 파악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달 지고 까마귀 우는데 천지에 무서리 가득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강풍(江楓)의 어화(漁火)만이 가물가물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한 밤의 종소리 객선(客船)에 내리다

 

천고의 절창으로 평가받는 장계(張繼, 미상-779)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고단한 객수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홍운탁월(烘雲托月, 주변의 구름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달을 표현하는 기법)의 풍경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렸다. 달마저 자취를 감춘 칠흑같은 밤, 까마귀 소리가 스산함을 더하는데 여기에 무서리까지 내렸다. 객수(客愁)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능히 그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둘째 구의 강풍어화(江楓漁火)도 마찬가지. 환한 불빛이 아니고 칠흑같은 밤에 어슴푸레 비추는 빛이니, 이 또한 객수의 고단함을 말없이 절절히 드러낸다. 셋째구의 한산사(寒山寺)는 명칭 그 자체로 객수의 서늘함을 전한다. 마지막 구, 객선(客船)에 들리는 한 밤중의 종소리 또한 매한가지이다. 신새벽을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아닌 한 밤중의 둔탁한 종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켜켜이 쌓아온 객수의 고단함을 더할바 없는 무게로 또다시 짓누르는 무거운 소리인 것. 객수의 고단함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십분 공감하게 된다. 서경을 통해 서정을 표현한 절창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이렇게 보면 어떨까?

 

첫구는 시인의 암울한 현실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모든 것이 폐색(閉塞)된 시련의 연속 상황인 것. 달 진 깜깜한 밤, 까마귀 울음 소리, 천지에 편만한 무서리는 그 상징체이다. 둘째구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발견하는 미미한 희망을 그린 것이다. 칠흑같은 밤을 밝히는 어화(漁火)는 비록 미미할지언정 암울한 상황을 뚫고자 하는 희망의 상징이다. 셋째구는 한산사 이름 그 자체가 시인이 처한 서늘한 상황을 상징한다. 넷째구는, 둘째구와 마찬가지로, 엄혹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는 시인의 희망을 그린 것이다. 고요한 공간에 파열을 내는 종소리로 현실 타개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이 시는 엄혹한 현실과 그 현실을 뚫고자 분투하는 시인의 마음을 그린 시이다.

 

앞 해석과 정 반대의 해석이다. 앞 해석이 절망에 방점을 찍은 해석이라면, 뒤 해석은 희망에 방점을 찍은 해석이기 때문. 당연하지만, 정답은 없다. 사람 마음 알기 어려워 힘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이듯, 문학 작품의 해석도 매한가지란 생각이 든다.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된 문학작품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사진은 인터넷에서 취재했는데, 출처를 잊었다. 사진을 올린 분께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시(詩)의 옆에 있는 내용은 시비를 건립하게 된 사연을 적은 것이다.

 

寒山寺舊有文 待詔所書 唐 張繼 楓橋夜泊詩 歲久漫漶 光緖丙午 筱石中丞 於寺中新葺數楹 屬余補書刻石 兪樾(​한산사구유문 대조소서 당 장계 풍교야박시 세구만환 광서병오 소석중승 어사중신즙수영 촉여보서각석 유월) : 한산사에 전부터 비문이 있었는데, 임금의 조서를 받아 쓴 것으로, 당 나라 장계의 「풍교야박」 시이다. 세월이 오래되어 닳거나 희미해져 광서 병오년(1906)에 소석중승(篠石中丞)이 절 가운데에 새로이 몇개의 기둥을 수선하고  나에게 보서(補書)하여 돌에 새기라 부탁하였다. 유월(1821 ~ 1906, 청대의 문학가).

 

낯선 자를 서너 자 살펴보자.

 

啼는 口(입 구)와 帝(임금 제)의 합자이다. 울다라는 뜻이다. 口로 뜻을 표현했다. 帝는 음을 담당한다. 울 제. 啼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啼聲(제성, 울음 소리), 啼血(제혈, 피를 토하며 욺) 등을 들 수 있겠다.

 

對는 丵(떨기풀 착)과 寸(마디 촌)과 土(흙 토)의 합자이다. 여러 질문에 대하여, 여러 내용[丵]을 일정한 근거[土]를 가지고 통일시켜 원칙[寸]에 맞게 그 질문들에 답한다는 의미이다. 대답할(대할) 대. 對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對答(대답), 相對(상대) 등을 들 수 있겠다.

 

蘇는 艹(풀 초)와 穌(깨어날 소)의 합자이다. 기운을 유통시키고 피를 정화시켜 사람 몸을 일깨우는 풀이란 의미이다. 소엽이란 한약재를 가리킨다. 소엽 소. 깨어나다란 의미로도 사용한다. 깨어날 소. 蘇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蘇生(소생), 蘇葉(소엽) 등을 들 수 있겠다.

 

船은 舟(배 주)와 㕣(沿의 약자, 물 따라 내려갈 연)의 합자이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배가 아닌, 목재를 사용하여 인공으로 만든 배라는 뜻이다.  舟로 뜻을 표현했다. 㕣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물을 따라 띄우는 것이 배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배 선. 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船舶(선박), 船長(선장)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위 시에서, 전통적으로, 이치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서리는 땅에 내리는데 왜 하늘[天]에 내린 것으로 썼냐는 것이 그 하나이고, 절에서는 한밤 중에 종을 치지 않는데 왜 야밤에 종을 친 것으로 썼냐는 것이 그 하나이다. 시인을 위한 변명은 이렇다.  하늘 속에 이미 땅이 포함된 것이니 서리가 하늘에 내렸다해도 무리가 없고, 한산사에서는 다른 절과 달리 한밤 중에 종을 친다!  그런데, 이치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나 시인을 위한 변명이나 모두 부질없는 문답이다. 문학은 과학과 다르다. 사실을 넘어선 것이, 아니 사실을 넘어서야 문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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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융의 시.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air3308/3865352>

 


글쎄? 거기가

 

관광지에 가서 자신이 알고 있는 맛집을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면 의외의 답을 듣는 경우가 있다. 거기가 맛집 맞나 하는 표정을 짓거나 심지어 장소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 관광객들에게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 현지 주민에게는 그다지 맛집이 아닌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고장의 맛집은 어디가 진정한 맛집일까? 관광객에게 알려진 맛집일까? 현지 주민이 잘 아는 맛집일까?

 

진주 촉석루. 논개의 장렬한 최후 장소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관광객에게 이곳은 의기(義妓)의 애국 향취가 묻어나는 곳이다. 촉석루에 오르기 전 이곳의 논개 사당을 먼저 찾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하지만 촉석루는 본래 전망 좋은 연회 장소였다. 이것이 촉석루의 본모습이다. 논개도 왜장(倭將)들과의 연회에서 그 장렬한 섬광을 발하지 않았던가. 촉석루를 의기의 장렬한 최후 장소로 생각하는 것은 관광객이 찾는 맛집과 같은 경우이고, 연회 혹은 경관 좋은 전망소로 생각하는 것은 현지 주민이 찾는 맛집과 같은 경우라 할 만한다.

 

사진은 촉석루에 걸린 편액들 중의 하나로 조선 세종 때 사람인 우당(憂堂) 박융(朴融, ?~1428)의 시이다.

 


晋山形勝冠南區 진산형승관남구 진주의 경치는 남녘 제일

況復臨江有此樓 황부임강유차루 여기에 있는 촉석루라니

列峀層巖成活畵 열수층암성활화 즐비한 산봉우리 층층의 기암괴석 살아 숨 쉬는 그림 같고

茂林修竹傍淸流 무림수죽방청류 맑은 물 흐르는 곳엔 무성한 숲과 청청한 대나무

靑嵐髣髴屛間起 청람방불병간기 아스라한 푸른 기운 병풍에서 흘러나와 숨을 쉬는 듯

白鳥依稀鏡裏浮 백조의희경리부 백조 또한 거울 위에 떠있는 듯

已識地靈生俊傑 이식지령생준걸 인걸은 지령이라 내 이미 알거니

盛朝相繼薛居州 성조상계설거주 아름다운 선비들 이 땅에서 나올 수밖에

 


촉석루의 아름다운 풍치를 그렸다. 흔히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그림 같다'라고 말하는데 이 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 숨 쉬는 그림'같다고 말했다. 최상의 감탄사를 사용한 것이다. 시 마지막에 아름다운 선비의 연이은 출현이란 말로 또 한 번 이곳의 승경(勝景)을 찬미했다. 예로부터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고 좋은 땅에서여기서는 촉석루가 있는 진주일 것이다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고 믿었다. '인걸 지령'으로 승경을 한 번 더 강화해 찬미한 것이다.

 

이 시는 촉석루가 뛰어난 경관을 가진 연회에 좋은 장소임을 여실히 그린 작품이다. 사실 이 시의 내용이 촉석루의 진면목일 것이다. 여기서 논개를 기억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본래의 모습, 즉 승경만 감상하는 것도 그만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편액들을 조사해본 적은 없지만 논개의 의사(義死) 이후로 이곳의 편액 내용은 양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논개의 의사 이전 시는 승경에만 중점을, 논개의 의사 이후 시는 논개의 향취에 중점을 두었을 것 같다. 이 시는 논개의 의사 이전 시이다. 순수한 승경 감상에만 치중한 것. 현지인이 즐겨 찾는 맛집 같은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진주 촉석루. 사진 출처: http://www.jinju.go.kr/main.web>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뫼 산)(단지 유)의 합자이다. 주변이 높고 가운데가 움푹한 단지처럼 산의 중앙에 생긴 동굴이란 의미이다. 산굴 수. 산봉우리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산굴 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峀居(수거, 산 동굴에서 삶), 峀雲(수운, 산의 암굴에서 일어나는 구름) 등을 들 수 있겠다.

 

(사람 인)(두루 방)의 합자이다. 이 사람과 저 사람 간의 간격이 멀지 않다란 의미이다. 곁 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傍觀(방관), 傍點(방점) 등을 들 수 있겠다.

 

(뫼 산)(바람 풍)의 합자이다. 산바람이란 뜻이다. 남기(저녁나절에 멀리 보이는 산 같은데 떠오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남기 람.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嵐影湖光(남영호광, 산의 그림자와 호수의 빛깔이란 뜻으로, 산수의 풍광을 이름), 嵐光(남광, 남기가 떠올라 해에 비치는 경치) 등을 들 수 있겠다.

 

(벼 화)(드물 희)의 합자이다. 모를 뜨문뜨문 심었다는 의미이다. 의미를 압축하여 '드물다란' 의미로 사용한다. 드물 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稀少(희소), 稀微(희미) 등을 들 수 있겠다.

 

은 쑥이란 뜻이다. (풀 초)로 뜻을 표현했고, 나머지는 음을 담당한다. 주로 사람의 성씨로 많이 사용한다. 쑥 설.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薛濤(설도, 당나라 중기의 유명 여류 시인), 薛誓幢(설서당, 원효 대사의 출가 전 성명)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위에서 이 시를 촉석루의 풍치 잘 그린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이 시가 사용하고 있는 수사(修辭)는 좀 진부하다. 이런 풍경 묘사는 어느 승경에도 어울릴법한 진부한 표현인 것. 촉석루만이 가지는 좀 더 산뜻한 풍경 묘사가 없는 점이 아쉽다. 여기에 설거주라는 인명― 『맹자에 나오는 인물로, () 나라의 훌륭한 선비로 명망이 높았다 을 직접 사용한 것도 그리 좋은 표현법은 아니다. 불만 많은 시를 굳이 글감으로 사용한 것은 순전히 이 편액의 글씨 때문이었다. 내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촉석루에 어울리는 글씨라는 느낌이 든 것(박융이 직접 쓴 것인지, 후인이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더없이 답답하다. 코로나19에서 해금되면 이곳을 찾아 울울했던 마음을 풀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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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여러 부장님들과 함께 하는 첫 날이니, 오늘만 잔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하지 않을게요."


새로 부임한 장(長)은 전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장이 되기 전 한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사람은 나쁘지 않았지만 부하 직원과의 소통이 전혀 없는 것이 큰 흠이었다. 일이란 사람이 하는 것인데, 부하 직원과 소통이 없으니 일 추진이 빡빡하기 그지 없었다. 그를 대하면 벽을 대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는데(건강 검진에서 모 부위의 암이 발견되었다), 아무도 그에게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그가 퇴원하여 출근하던 날, 사무실에 들어서며 고성을 내질렀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입원을 했는데 아무도 병문안을 안오는거야!" 듣는 직원들은 침묵 속에 서로 눈짓 대화만 할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에게 대꾸했다. '이보세요. 다 당신이 한대로 받은 거에요.' 재미있는 건 이런 그가 늘 강조하던 것은 '소통'이었다.


이제 장이 된 그가 한 첫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반신반의했다. '아니, 큰 병을 앓고 나더니 사람이 변했나?' 하지만 사람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던가.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전 버릇은 다시 도졌다. 자신이 한 일성(一聲)을 잊어 버렸는지 시일이 좀 지나자 업무 관계로 부장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제 버릇 개 줄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 마디 더했다. '어휴, 차라리 말이나 말지.'


소통은 어렵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가 나를 이해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데 어떻게 상대와 소통이 쉽사리 되겠는가. 많은 경우 우리가 소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소통의 모양새를 갖춘 것이지 실제는 소통이라고 하기 어렵다. 소통은 나와 남의 이해를 바탕으로 열리는 제 3의 세계이다.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사진의 한자는 한글로 써있는 것과 같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읽는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백제 온조왕이 한수 이남으로 천도하고 궁을 세웠는데, 그 궁을 두고 일컬은 말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조에 나온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건물은 어떤 건물일까? 실물을 볼 길 없으니 더없이 아쉽다. 백제 문화 단지에 세트장처럼 지어놓은 건물을 보고 그것을 상상한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그저 그 건축 미학을 생각해볼 뿐이다. 검소와 누추 그리고 화려와 사치의 중간 지점이란 단순히 그 중간을 의미하지 않고 양 극단을 넘어서는 제 3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소통'과 같은 경지라고나 할까? 양 극단을 넘어서는 제 3의 형태의 미는 가장 균형잡힌 미가 아닐까 싶다.


삼국 중 미적으로 가장 세련된 나라는 백제였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미의 아름다움은 바로 저 제 3의 형태인 '소통의 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 삼존불을 봐도 이를 확인하게 된다(아래 사진). 소통이 이뤄질 때는 앙금이 없기에 밝고 환한 미소를 짓게 된다. 마애 삼존불의 미소는 바로 그 미소이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儉은 亻(사람 인)과 僉(다 첨)의 합자이다. 검소하다란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僉은 음(첨→검)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어느 한 부분만 절제하는 것이 검소한 것이 아니고 전반적으로 절제하는 것이 검소한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검소할 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儉素(검소), 儉約(검약) 등을 들 수 있겠다.


陋는 阝(언덕 부)와 㔷 (더러울 루) 변형자의 합자이다. 좁다란 의미이다.  阝로 뜻을 표현했다. 㔷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좁은 곳은 대개 더러운 곳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좁을 루. 누추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누추할 루.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固陋(고루), 陋醜(누추) 등을 들 수 있겠다.


華는 꽃이 피었다는 뜻이다. 윗부분의 艹(풀 초)로 뜻을 표현했고, 아랫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꽃 화. 화려하다 혹은 빛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화려할(빛날) 화.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華麗(화려), 榮華(영화) 등을 들 수 있겠다.


侈는 亻(사람 인)과 多(많을 다)의 합자이다. 사치스럽다란 의미이다. 亻으로 뜻을 표현했다. 多는 음(다→치)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과도할 정도로 많은 것을 과시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사치할 치.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奢侈(사치), 侈傲(치오, 우쭐하고 거만함)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위 문장에서 ‘而는 변증법적 기능을 담당하는 독특한 허사이다. 시공간의 극단을 넘어 이들을 상호 중재하는 기능을 한다. 단순히 '그러나'의 의미만으로 풀이되기에는 뭔가 허전한 그런 의미를 담은 허사이다. 저 문장에서 '而'를 빼고, 즉 '儉不陋 華不'라고 쓸 수도 있으나, '而'를 넣은 '儉而不陋 華而不侈'와는 그 어감이랄까 문장의 맛이 현격히 떨어진다. 이러한 맛을 번역으로는 도저히 전달하기 어렵다. 사진은 https://cafe.naver.com/sk1964/819 에서 얻었다. 부여의 백제 문화 단지에서 찍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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