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가 길을 가고 있었다. 중간에 내를 건너지 못해 발을 구르는 여인네를 만났다. 스승은 덥석 그 여인네를 안아 내를 건네 주었다. 제자는 뜨악한 눈으로 스승을 바라 보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제자가 스승에게 항의조로 말했다. "어떻게 낯모르는 여인네를 그렇게 덥석 안아 건네주실 수 있습니까?" 제자의 힐문에 스승이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아니, 자네는 아직도 그 여인을 안고 있나?"

 

최치원은 우리 한문학의 비조(鼻祖)로 꼽히지만 최고봉이기도 하다. 자의(字義)와 표현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표음문자 표기의 문학과 달리, 자의와 표현이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성을 유지하는 표의문자 표기의 문학은 과거의 문학 작품과 현금의 문학 작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평가가 가능하다. 나말(羅末)에 지어진 최치원의 한시는 고려나 조선조에서 지어진 한시 작품과 동일선상에서 비교가 가능하며 이에따라 그 우열을 가릴 수 있다. 이런 동일선상 우열 비교를 해볼 때 최치원의 작품은 단연 수위(首位)를 차지한다.

 

탁월한 문학 창작 능력이 출세의 보증수표였던 시대, 최치원은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자격을 갖췄건만 시대가 그를 수용하지 않아(못해), 슬프게도 세상을 등졌다. 보증수표가 공수표로 취급되는 세상을 바라보며 최치원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진은 최치원의「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으로, 은둔 군자의 재치 넘치는 시로 널리 회자(膾炙)된다.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첩첩이 쌓인 돌 위로 미친듯 내달으며 굽이굽이 장쾌한 소리 내지르니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사람들 말소리 지척서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옳으네 그르네 찌그럭대는 소리 듣기 싫어

故敎流水盡籠山 고교유수진롱산   내닫는 폭포로 온 산을 감쌌다오

 

이 시의 표면적 주체는 사람이 아닌 '가야산 독서당'이라는 사물이다. 그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면의 주체는 시인 자신이다. 가야산 독서당이 시비소리를 싫어하여 폭포 소리로 가야산을 둘러싸게 했다는 것은 곧 시인이 시정(市井)의 시비논란이 싫어 산중에 은거했노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세상을 완전히 잊은걸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한참전의 여인을 계속 생각하는 스승의 제자처럼, 여전히 세상을 잊지 못하고 있다. 시인이 진정으로 세상을 잊었다면 시정의 시비소리를 애써 피할 이유가 없다. 시정의 시비를 의식한다는 것은 여전히 세상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건네준 여인의 존재 자체를 잊었던 제자의 스승처럼 될 때, 시인은 진정으로 세상을 잊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인은 보증수표가 공수표로 취급되는 세상에 등을 돌렸지만 공수표가 다시 보증수표로 환원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은둔군자의 재치 넘치는 작품만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당대(當代) 버림받은 인재의 인간적 나약함을 드러낸 작품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疊은 도마 위에 식재료가 겹쳐있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겹칠 첩. 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疊疊(첩첩), 重疊(중첩) 등을 들 수 있겠다.

 

吼는 口(입 구)와 孔(구멍 공)의 합자이다. 큰[孔, 孔에는 크고 넓다란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소리로 운다[口]는 뜻이다. 울 후. 吼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獅子吼(사자후), 吼怒(후노, 성내어 으르렁거림) 등을 들 수 있겠다.

 

巒은 작은 봉오리가 연이어 있는 산이란 뜻이다. 山(뫼 산)으로 뜻을 표현했다.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뫼 만. 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巒峰(만봉, 산봉오리), 巒岡(만강, 작은 산) 등을 들 수 있겠다.

 

籠은 竹(대 죽)과 龍(용 룡)의 합자이다. 삼태기란 의미이다. 竹으로 뜻을 표현했다. 龍은 음(룡→롱)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용은 본시 변화무쌍한 존재인데, 그같이 흙을 퍼나르기에 손쉽게 활용하기 편한 도구가 삼태기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삼태기 롱. 싸다, 싸이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쌀(싸일) 롱. 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籠球(농구), 籠城(농성) 등을 들 수 있겠다.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가야산은 일반적으로 경남 합천의 가야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동명(同名)의 산이 내포 지역에도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최치원이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석각들도 있다. 그래서 이곳이 바로 최치원이 은거한 가야산이라는 주장을 한다. 게다가 최치원은 내포 지역에서 군수를 지낸 적도 있기에 더더욱 신빙성이 높다고 말한다. 어느 것이 맞을까? 「제가야산독서당」의 내용으로 보면 경남 합천의 가야산이 맞을 것 같다. 내포 지역 가야산에는 '광분첩석후중만'할만한 폭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각 등의 흔적을 보면 내포 지역의 가야산이 맞을 것도 같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느 지역의 가야산이 최치원이 은거한 가야산이냐가 아닐 것이다. 은거란 인재가 사장됐다는 의미이고, 인재가 사장된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일 터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시대가 없기를 희구하는 것이 정작 더 중요한 사안일 터이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취득했는데, 출처를 잊었다, 사진을 올린 분께 고마움과 함께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 글씨가 내용과 잘 어울려 매우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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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작은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신다. 술이 들어가면 웃음과 말수가 많아진다. 그런데 술을 드시지 않을 때는 꼭 화난 사람같다. 웃음기도 없고 말수도 적다.

 

『명심보감』에 '취중불언 진군자(醉中不言 眞君子)'란 말이 있다. '취중에 말 없는 이가 진짜 군자'란 뜻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취중엔 으레 말수가 많아지고 그 말도 대개는 허풍기가 있어 실수가 잦다는 말이 된다. 술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을 대범하게 만든다.

 

한시중에 이백의 시만큼 호방한 시가 없다. 그런데 그의 시는 두주불사 음주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만일 두주불사의 음주 습관이 없었다면 그의 호방한 시는 세상에 선을 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백은 소심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두주불사의 음주 습관으로 호방한 시를 지었다는 것은 두주불사의 음주습관이 없었다면 호방한 시를 짓기 어려웠을 거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술이 있어야 호방한 시작(詩作)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가 본래 호방한 사람이 아니고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왠지 이백은 평소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우리 처 작은 아버지처럼 화난 사람같이 말수도 적고 웃음기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처 작은 아버지를 본의아니게 흉본 격이 됐는데 이백과 동급으로 대했으니 화내시진 않을 것 같다).


사진은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이라고 읽는다. ‘하늘이 나를 냈으니, 반드시 쓸데가 있을 것이다란 뜻이다. 이태백의 유명한 권주가「장진주(將進酒)의 한 구절이다. 하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고 일상의 쇄사(瑣事)에 골몰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런 활달한 기상의 시는 술기운을 빌었을 때 가능하다. 맨 정신에 이런 기상을 갖기란 쉽지 않다. 다시 한번, 이백은 술기운을 빌지 않으면 더없이 조용한 소심한 사람이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장진주는 언제 읽어도 유쾌하다. 일상의 자잘한 근심을 보물처럼 껴안고 사는 우리네 소시민도 이 시를 읽다보면 이백 못지않은 호방한 기분을 맛본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고도 호방한 기운을 맛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숨죽여 읽지 않고 큰소리로 읽을 때 한결 더 호방한 기운을 맛볼 수 있다. , 우리 시 한 잔~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물이 천상에서 오는 것을

奔流到海不復回 분류도해불부회   바다로 쏟아져 내려 다시 돌아오지 않는도다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좋은 집 명경 속에 백발을 슬퍼하는 것을

朝如靑絲暮成雪 조여청사모성설   아침에는 푸른 실, 저녁때는 눈이어라

人生得意須盡歡 인생득의수진환   인생을 마음껏 즐길지니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금 술동이 비우지 않고 거저 달을 대하지 말라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나를 낳았으니 반드시 쓰일 데가 있으리라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천금을 다 뿌리면 다시 또 오리로다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양을 삶고 소를 잡아 아직은 즐겨보자꾸나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모름지기 단번에 삼백 잔을 마실지라

岑夫子丹丘生 잠부자단구생   잠부자 단구생

將進酒君莫停 장진주군막정   술을 드리니 그대들 막지 말라

與君歌一曲 여군가일곡   그대와 함께 한 곡조 읊어보리라

請君爲我側耳聽 청군위아측이청   그댄 날 위하여 귀 기울여 들어주오

鐘鼓饌玉不足貴 종고찬옥부족귀   멋진 음악과 맛있는 음식도 귀할 게 못되는도다

但愿長醉不愿醒 단원장취불원성   장 취하기만 하고 깨는 건 원치 않는도다

古來聖賢皆寂寞 고내성현개적막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다 적막하였으나

惟有飮者留其名 유유음자류기명   술 마시는 사람만이 이름을 남기게 되리로다

陳王昔時宴平樂 진왕석시연평락   진왕은 그 옛날 평락관에서 잔치를 벌여

斗酒十千恣歡謔 두주십천자환학   말술 십천으로 마음껏 즐겼더니라

主人何爲言少錢 주인하위언소전   주인이여 어찌 돈이 적다고 말하는가

徑須沽取對君酌 경수고취대군작   모름지기 술을 사서 그대와 마시리로다

五花馬千金裘 오화마천금구   오화마와 천금구로

呼兒將出換美酒 호아장출환미주   아이야 나가 맛있는 술을 바꿔 오너라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   그대와 함께 만고의 수심을 녹여 보리로다 


(번역: 신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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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s://m.cafe.daum.net/yonggo20/j7sS/185>



21대 국회 원 구성을 놓고 여야간 대치가 심각하다. 여당(민주당)에 힘을 몰아준 국민의 열망을 생각하면 야당(미통당)이 여당의 협상에 순순히 응해 원만한 원 구성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금의 상황을 보면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본래 모습이고, 뜻대로 되는 것은 의외의 덤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조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받는 다산 정약용 선생은 10년 넘는 세월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자신의 경륜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도 세상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본래 모습이고, 뜻대로 되는 것은 의외의 덤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진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가 있는 용문산을 바라보면 지은 시이다. 시제는「망용문산(望龍門山)」이다.


龍門色 표묘용문색   아득한 저 용문산 산색이

終朝在客船 종조재객선   아침 내내 나그네의 배를 비추고 있네

洞深惟見樹 동심유견수   골 깊어 오직 나무만 보이고

雲盡復生煙 운진부생연   구름 그치자 이어서 안개가 일어난다

早識桃源有 조식도원유   무릉도원이 있는 줄 진작에 알고서도

難辭紫陌緣 난사자맥연   서울 거리와 인연을 끊기 어려워라

鹿園棲隱處 녹원서은처   절이 숨어있는 곳

望好林泉 창망호림천   아름다운 숲과 물을 슬프게 바라보네


이 시를 표면적으로 보면 은둔을 원하지만 세사에 얽매여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이 시를 위에서 언급한 세상의 본래 모습을 그린 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시제「망용문산(望龍門山)」은 '용문산을 바라보며'란 단순 풀이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로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용문산의 용문을 등용문(登龍門)의 용문으로 보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시제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이지만 이 시의 주된 뜻은 그런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이 뜻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드러낸데 있다(시제와 내용의 불일치를 통해 자신의 소회를 역설적으로 더 강조한 것이다). 무릉도원같은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지만 그런 세상은, 바램과 달리, 이루기 어렵다. 마지막 구의 '슬프게 바라보네'는 바로 그런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슬픔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견강부회한 해석처럼 보일 것 같다. 그렇지만 왠지 이런 무리한 해석으로 이 시를 보고 싶다. 선생의 펼치지 못한 경륜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후인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당사자야 오죽했겠는가. 선생을 위무(慰撫)하는 차원에서 벌인 엉뚱한 발상으로 이해들 해주시길!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縹는 糸(실 사)와 票(漂의 약자, 뜰 표)의 합자이다. 옥색(의 비단)이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票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떠있는 물체처럼 청색과 백색이 섞인 짙지 않은 청백색이 옥색(의 비단)이란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지금은 비단이란 의미는 떨구고 주로 옥색이란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옥색 표. 휘날리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휘날릴 표. 縹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縹靑(표청, 옥색), 緲(표표, 휘날리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다.


는 糸(실 사)와 眇(아득할 묘)의 합자이다. 아득하다란 의미이다. 본래 眇로만 표기했는데 후에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가늘어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미가 함유된 糸로 뜻을 보충했다.아득할 묘. 緲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縹緲(표묘, 높고 먼 모양), 緲漫(묘만, 끝없이 멀고 아득함) 등을 들 수 있겠다.


紫는 糸(실 사)와 此(이 차)의 합자이다. 자줏빛(의 옷감)이란 의미이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此는 음(차→자)을 담당한다. 자줏빛 자. 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紫錦(자금, 자줏빛의 비단), 紫蕨(자궐, 고사리) 등을 들 수 있겠다.


陌은 阝(阜의 변형, 언덕 부)와 百(일백 백)의 합자이다. 도로란 의미이다. 도로는 중심부가 양쪽 가장자리보다 약간 높기에 阝로 의미를 표현했다. 百은 음(백→맥)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길은 대개 여러갈래[百]로 갈려져 있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길 맥. 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陌頭(맥두, 길가), 陌上塵(맥상진, 거리의 먼지. 정착하지 아니하고 떠돌아 다님의 비유) 등을 들 수 있겠다.


悵은 忄(心의 변형, 마음 심)과 長(긴 장)의 합자이다. 원망하고 슬퍼한다란 의미이다. 忄으로 뜻을 표현했다. 長은 음(장→창)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원망하고 슬픈 감정은 길고 복잡하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원망할 창. 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悵望(창망, 슬퍼하며 바라봄), 悵悔(창회, 원망하고 후회함) 등을 들 수 있겠다.


견강부회한 해석을 한 김에 이 시의 작시 연대에 대한 무리한 짐작도 해본다. 이 시는 다산의 생애 어느 시점에 지어진 것일까? 대개 생애 초반은 수학기이고, 중반은 성취기이며, 말년은 정리기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것과 그것의 좌절은 대개 생의 중반에 맛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다산의 생애 중반에 지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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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이형기 시인의 낙화일부이다. 새로운 결실을 위한 아름다운 떠남(죽음)을 노래한 시이다. 봄철 흔하게 보는 꽃이 영산홍과 벚꽃이다. 둘 다 화사함으로 겨우내 쌓였던 칙칙함을 덜어내는 고마운 꽃이다. 그런데 질 때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영산홍이 끝까지 살고자 애쓰는 식물인간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벚꽃은 과감히 생명을 던지는 투사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당사자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는 무심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면 질 때의 모습은 확실히 벚꽃이 아름답다. 이형기 시인이 구체적으로 어느 꽃을 보고 시를 구상했는지 모르지만, 봄날의 흔한 꽃을 대상으로 시를 구상했다면 벚꽃을 보고 시를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봄날의 낙화는 결실이라는 미래의 기약이 있기에 지는 것이 그다지 슬프지 않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실이라는 미래의 기약이 없이 지는 것은 어떨까? 참으로 서글프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낙화보다 낙엽에 더 서글픔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싶다. 문득 이형기 시인의 작품에 낙엽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사진의 내용은 가을날 낙엽 지는 모습을 묘파(描破)한 시구이다.

 

 

湛露灑林庭 담로쇄림정    맑은 이슬 숲속 정원에 내리니

密葉謝榮條 밀엽사영조    화사한 가지의 조밀한 잎들 소리 없이 지네

 

 

동진(東晉)의 현언시인(玄言詩人) 손작(孫綽, 314~371)추일(秋日)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여름날 짙푸른 녹음을 뽐냈던 잎들이 가벼울법한 이슬방울에 덧없이 지는 모습을 그렸다. 봄 한 철 화사함을 발했던 벚꽃이 가벼울법한 봄바람에 덧없이 지는 모습과 짝을 이룰만한 구절이다. 그러나 둘 다 지는 모습은 같지만, 벚꽃은 뒤이을 미래가 있기에 서글프지 않으나 저 잎은 뒤이을 미래가 없기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러나 저 구절 어디에서도 그런 서글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더없이 명징(明澄)한 가을 아침의 모습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이는 시인이 생사의 갈림길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세상사의 이치를 담는 현언시를 지었던 손작이기에 가능했던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아는 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물 수)(심할 심)의 합자이다. 깊은[] []에 빠지다란 의미이다. 빠질 담. 맑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맑은 담.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湛樂(담락, 평화롭고 화락하게 즐김), 湛露(담로) 등을 들 수 있겠다.

 

(물 수)(고울 려)의 합자이다. 에는 사슴이 떼 지어 간다는 의미가 있다. 사슴이 떼 지어 가듯 연속적으로 물[]을 뿌린다는 의미이다. 뿌릴 쇄.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灑落(쇄락, 기분이나 몸이 개운함), 灑掃(쇄소, 물을 뿌리고 비로 씀) 등을 들 수 있겠다.

 

(뫼 산)(편안할 밀)의 합자이다. 산속의 분지란 의미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고, 분지는 거주하기에 편안하기에 로 뜻을 보충했다. 은 음도 담당한다. 분지 밀. 빽빽하다, 숨기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빽빽할 밀. 숨길 밀.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秘密(비밀), 密輸(밀수) 등을 들 수 있겠다.

 

(말씀 언)(쏠 사)의 합자이다.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다란 의미이다. 으로 뜻을 표현했다. 는 음을 담당하면서도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활을 쏘면 화살이 시위를 떠나듯 그같이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사례할 사.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謝絶(사절), 感謝(감사) 등을 들 수 있겠다.

 

사진은 한 음식점에서 찍었는데, 음식점과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 모르겠다. 주인의 가치관을 나타낸 내용일지도. 아니면, 손님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일지도. “손님, 음식을 드시고 가실 때는 앉으셨던 자리 깔끔하게 마무리하시고 가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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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밖에 안남았네."


"반이나 남았어?"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물컵에 물이 절반 남았을 때 누구는 아쉬움을 표하는 반면 누구는 여유를 표한다.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관점에 따라 동일 사물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뿐.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작품이 있다. 북송시대 말기 장택단이란 화가가 당시 수도 변경의 청명날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대단한 장폭(長幅)의 그림으로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중국 풍속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그림은 송대의 인물풍정과 사회적 번영을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렸다(인용문 출처: NAVER 지식백과). 당시 황제였던 휘종은 이 그림을 혹호(酷好)해 직접 「청명상하도」란 이름을 붙였다. 휘종은 글씨와 그림에 일가견이 있던 황제였다. 그런 황제의 지우(知遇)를 입었으니 뛰어난 작품이었음에 틀림없다.「청명상하도」는 후일 하나의 그림 소재가 되어 원본을 모사한 그림들이 원 · 명 · 청을 거쳐 많이 제작되었다.


사진은 이 모본들 중 하나인 「원본청명상하도(院本淸明上河圖)」에 쓴 화제(畵題)이다. 글은 건륭제가 지었고, 글씨는 양시정이 썼다.



蜀錦裝全璧 촉금장전벽   질 좋은 비단에 티없는 옥으로 장식 더하고

吳工聚碎金 오공취쇄금   뛰어난 화공들이 훌륭한 솜씨로 장려하게 그렸네

謳歌萬井富 구가만정부   집집마다 부유함을 구가하고

城闕九重深 성궐구중심   황궁은 구중심처에 있어라

盛事誠觀止 성사성관지   풍요의 성세 예서 다 볼 수 있고

遺踪借探尋 유종차탐심   그윽한 자취 예서 다 찾을 수 있어라

當時誇豫大 당시과예대   당시엔 지극히 기쁘고 자랑할만 했겠지만

此日歎徽欽 차일탄휘흠   이날엔 휘종과 흠종을 안타까이 여기노라


乾隆壬戌春三月御題 건륭임술춘삼월어제   건륭 임술(1742) 춘삼월에 황제께서 지으시고

臣梁詩正敬書 신양시정경서   신 양시정 삼가 쓰다


繪院璚瑤 회원경요  화원의 아름다운 작품



「원본청명상하도」는 청 황실 화원 소속 작가였던 진매, 손호, 금곤, 대홍, 정지도 등이 건륭제의 요청을 받아 합작으로 그린 것이다. 이 화제는 납품받은 작품을 대하고 쓴 감상문이다. 1 · 2구는 수고한 화가들에 대해 상찬의 말을 한 것이고, 3 · 4구는 그림의 내용을 언급한 것이며, 5 · 6구는 이 그림이 갖는 가치를 언급한 것이다. 7 · 8구는 이 그림을 대하는 건륭제의 소회를 언급한 것이다. 이 화제의 핵심은 마지막 7 · 8구에 있다.


「청명상하도」가 널리 유행한 것은 훌륭한 그림에 더해 이 그림이 보여주는 성세의 풍요로움 때문이다. 가난한 날의 불행을 그린 것보다 풍요로운 날의 행복을 그린 것이 감상하기에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건륭제가 이 그림의 모본을 요청한것도 이런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보태어 이런 성세를 이루고 싶다는 열망 또한 있었을 것이다(실제 그는 이 열망을 달성했다). 이런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성세의 그림을 혹호한 휘종과 흠종(휘종의 아들)의 최후는 더없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성세를 유지하지 못했음은 물론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여기 안타까움에는 그들에 대한 책망과 더불어 자신은 그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함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을 대할 때 저마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동일한 사물에 대해 다른 판단을 한다. 건륭제는 황제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화제를 썼다고 할 수있다.「청명상하도」의 화제를 건륭제의 신하가 썼다면 어땠을까? 필경 다른 내용으로 썼을 것이다. 상전벽해한 오늘 날 저 그림을 보는 이들 또한 다른 내용의 화제를 쓸 것이 틀림없다.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裝은 衣(옷 의)와 壯(씩씩할 장)의 합자이다. 옷에 장식을 달아 꾸민다는 의미이다. 衣로 뜻을 표현했다. 壯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옷에 장식을 달아 꾸미면 씩씩한 모습처럼 한층 더 성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꾸밀 장. 裝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裝飾(장식), 治裝(치장) 등을 들 수 있겠다.


聚는 衆(무리 중)의 약자와 取(취할 취)의 합자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이란 의미이다. 衆의 약자로 의미를 표현했다. 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 촌락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마을 취. 모으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 일부를 사용한 것이다. 모을 취. 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聚落(취락), 聚斂(취렴) 등을 들 수 있겠다.


碎는 石(돌 석)과 卒(졸개 졸)의 합자이다. 부수다, 부서지다란 의미이다. 石으로 뜻을 표현했다. 卒은 음(졸→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卒은 본래 비루한 사람이란 의미인데 깨지면 그같이 비루하게 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부술 쇄. 碎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粉碎(분쇄), 碎石(쇄석) 등을 들 수 있겠다.


謳는 言(말씀 언)과 區(지경 구)의 합자이다. 한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의미이다. 言으로 뜻을 표현했다. 區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區는 본래 일정한 곳에 여러 물건을 모아놓는다는 의미인데 그같이 여러사람이 한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노래할 구. 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謳歌(구가), 謳詠(구영) 등을 들 수 있겠다.


尋은 工(장인 공)과 口(입 구)와 又(手의 변형, 손 수)와 寸(마디 촌)의 합자이다. 손으로 거리를 측정하듯 정교한 근거와 말솜씨로 문제 해결책을 찾는다란 의미이다. 찾을 심. 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尋訪(심방), 尋常(심상) 등을 들 수 있겠다.


豫는 象(코끼리 상)과 予(나 여)의 합자이다. 몸집이 큰 코끼리라는 뜻이다. 象으로 뜻을 표현했다. 予는 음(여→예)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予는 자기 중심적이란 의미인데 豫는 자기 중심적이고 의심이 많은 동물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코끼리 예. 기뻐하다, 미리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글자를 차용해 쓴 것이다. 기뻐할 예. 미리 예. 豫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猶豫(유예, 1차 의미는 원숭이와 코끼리란 뜻이다. 2차 의미는 머뭇거린다, 망설인다란 뜻인데 두 동물이 의심이 많아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특징이 있는데서 비롯된 의미이다), 豫感(예감) 등을 들 수 있겠다.


사진은 즐겨가는 추어탕 집에서 찍은 것이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에 들렸다 사온 기념품인 듯 했다. 미니 두루마리 형식으로 만든 것을 펼쳐 벽면에 붙여 놓았는데 상당히 길었다. 미니 기념품도 이런데 원본은…. 실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대륙인들 크게 만드는 것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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