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인간, 사림인 사이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 속에 있을 때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영웅이라도 예외가 없다.


강감찬(姜邯贊, 947~1031), 동북아의 강자로 떠오른 거란의 2, 3차 침입을 막아내 누란의 위기에 있던 고려를 구한 영웅이다. 다양한 민간 설화가 만들어질만큼 민중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외로움에 시달렸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사진(서울 관악구 강감찬 장군의 생가터인 낙성대에 전시된 영인본)은 강감찬 장군의 시이다. 활달한 필체가 돋보여 장군의 기상이 어떠했을지를 가늠케 한다. 필체만 보면 도무지 외로움이라곤 모를 사람같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활달함과 달리 내용은 너무도 쓸쓸하다.


孤鶴寵衛軒 고학총위헌   외로운 학은 위의공의 총애를 받았고

雙鴦入毛論 쌍앙입모론   원앙 한쌍은 모공의 지우를 입었지

秋風無限恨 추풍무한한   스산한 가을 바람 한없는 아쉬움은

不能共一尊 불능공일준   술 한잔 함께 할 이 아무도 없는 것


혼자 있든 둘이 있든 새[鳥]조차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데, 정작 사람인 자신은 아껴주는 이가 하나도 없어 외롭다고 말했다. "술 한잔 함께 할 이"란 그를 아껴줄 사람을 말한다.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얼마나 외롭겠는가. 화려한 찬사가 넘칠수록 외로움은 더 깊어갔을 터이다. 영웅은 人間이고 싶었던 것이다.


장군의 추모(醜貌)는 익히 알려져있다. 체구도 작았다고 한다. 민간 설화에 의하면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고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형상이었다고 한다. 과장은 있겠지만 추모였던 건 확실해 보인다. 혹 이런 추모가 그를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게 한 요인은 아니었을까?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외양과 내면은 대개 일치한다. 물론 불일치하여 실망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놀라움을 안겨주는 경우 또한 있다. 장군은 후자쪽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추모는 사람들 사이에선 비호감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추모 탓에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장군은 외로움에 시달렸던 것 아닐까 싶다.


성형 수술에 대해 오랫동안 거부감을 가져왔다. 타고난 천품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본 것. 그런데 장군의 시를 읽고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오죽 사람 속에 있고 싶으면 성형 수술을 할까 싶은 것. 외로움을 떨치고 人間이고 싶어 몸부림치는 그 행동을 굳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장군도 기꺼이 동의하실 것 같다.


시 한편을 가지고 장군에 대해 무리한 해석을 했다. 관련 자료를 읽어본 바 없기에 필시 오류가 있을 터이다. 읽는 분들의 양찰(諒察)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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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떠나가는 배 / 거친 바다 외로이 / 겨울비에 젖은 돛에 /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 언제 다시 오마는 / 허튼 맹세도 없이 / 봄날 꿈 같이 / 따사로운 / 저 평화의 땅을 찾아 / 가는 배여 / 가는 배~여 / 그곳이 어드메뇨 / 강남길로 해남길~로 / 바람에 돛을 맡겨 /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 저기 멀리 / 떠나가~는 배


정태춘의 노래 '떠나가는 배' 1절이다. 저 '떠나가는 배'가 닿고자 하는 따사로운 평화의 땅은 어디일까? 인적없는 무인도가 아닐까? 현실에서의 고통은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 인적없는 무인도야 말로 따사로운 평화의 땅이 아니겠는가. 무인도는 황폐함의 한 상징이지만 정 반대의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사진은 「파수도(波水島)」라고 읽는다. '파도치는 섬'이란 뜻이다. 파수도는 안면도에 산재하는 무인도 중의 하나로, '내파수도(內波水島)'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동백나무 군락과 천연 뭉돌(둥근 자갈) 방파제로 유명하다. 과거 중국의 상선이나 어선들이 우리나라를 오갈 때 폭풍을 피하거나 식수를 공급받기 위해 정박하던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안면도 가는 길에 찍었는데, 얼핏보면 횟집 간판처럼 보이지만 물류업체 간판이다. 


안면 사람들은 이 섬을 무척 아낀다고 한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 이곳까지 기름띠가 번졌는데, 무인도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배를 타고 가서 기름띠를 제거했다고 한다. 아끼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혹 안면 사람들은 이 무인도를 저 '따사로운 평화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波와 島가 약간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波는 氵(물 수)와 皮(가죽 피)의 합자이다. 몸의 바깥 부분인 가죽처럼 외부로 용솟음쳐 흘러가는 물결이란 의미이다. 물결 파. 波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波濤(파도), 波高(파고) 등을 들 수 있겠다.


島는 山(뫼 산)과 鳥(새 조) 약자의 합자이다.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고지대[섬]란 뜻이다. 山으로 뜻을 표현했다. 鳥는 음(조→도)을 담당한다. 섬 도. 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島嶼(도서), 孤島(고도) 등을 들 수 있겠다.


'떠나가는 배'를 타고 '따사로운 평화의 땅'을 찾던 정태춘은 파수도같은 무인도에 안착하지 않고 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현실에 도로 안착한다. 가요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비롯 이른바 사회 변혁을 위한 문화운동에 헌신한 것. 이상은 바로 현실의 이면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인도가 황폐함의 상징이자 정 반대의 상징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안면 사람들이 파수도를 그저 마음의 귀향처로 삼을 뿐 가서 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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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 한 분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서울 시장 박원순. 대의(大醫)는 세상을 치료하는 이라 했다. 평생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애써 온 분이니 그를 의사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듯 자신의 아픔도 치유하면 될 터인데, 성급히 생명을 버린 것이 너무 안타깝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대의도 자신의 아픔은 치유할 줄 몰랐던가 보다.


그의 죽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맹자가 말했듯, 죽음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죽는 것보다 더 싫은 것도 있기에 때로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기도 한다. 박원순 시장에게 그것은 신뢰와 명예의 상실이었을 것이다. 그 무엇인가가 그것을 송두리째 잃게 했기에 기꺼이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래도 안타깝다. 정작 죽어야 할 자들은 끝까지 살아, 그것도 떵떵거리며 사는 것과 대조하면 더더욱 그렇다.


사진은 제생의세(濟生醫世)’라고 읽는다. 문구 밑에 나온 것처럼 일체의 생령을 도탄으로부터 건지고 병든 세상을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원불교의 종지(宗旨), 불교의 자비나 유교의 인 기독교의 사랑과 같은 유의 말이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함유한 특징이 있다. 상기(上記) 종지들은 주로 정신적 구원에 치중되어 있지만, 제생의세는 물질과 정신의 구원 양면을 지향하고 있는 것. ()는 물질적 구원, ()는 정신적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교조(敎祖)들의 모습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상기 종지를 내건 교조들은 포교를 우선했지만, 원불교의 교조 박중빈은 포교보다 간척지 개간을 우선했다. 정신적 구원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는 물질적 구원이 더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질적 구원을 정신적 구원에 비겨 결코 낮게 보지 않은 특별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재생의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한 세상일 터이다. 그것은 확실히 대의의 일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소의(小醫)도 대의와 다를 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세상을 이루는 것이니, 한 사람을 치유한다는 것은 곧 세상을 치유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바로 이런 취지에서일 터이다(사진은 원불교 계통 제약회사에서 만든 약 포장지에서 찍은 것이다).


아주대 외상치료센터 소장이었던 이국종 교수는 의대생들이 외과를 기피한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힘들고 보수도 적기 때문이라는 것. 많은 의대생이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보수도 많은 성형외과 쪽을 선호한다고 한다. 의사도 사람이니 덜 힘들고 더 많이 얻는 것을 싫어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의사마저 일반인과 똑같이 덜 힘들고 더 많이 얻는 것을 선호한다면 우리 사회는 행복한 세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치료하기 쉬운 병보다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치료할 때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이 자신이 하는 일은 결코 한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치유하는 것이라는 점을 크게 깨달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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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장교님, 아무리 하찮은 기생이라도 그렇게 흩어진 마음과 몸으로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들은 진주기생을 잘못 보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고 그렇게 천하게 굴지도 않습니다." (이영희,『역정』(창작과 비평사: 1988), 183쪽)


기생의 이미지는 몸파는 여인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기생은 예인(藝人)에 가까운 이들이었고, 이들은 예기(藝技)를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더불어 시문(詩文)까지 학습했기에, 대부분의 가정 여인네들이 반문맹이었던 시절, 이들은 최고의 여성 엘리트였다. 사대부들이 기생을 찾았던 것은 그네들의 몸을 탐해서라기보다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반문맹의 부인에게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한 점이 더 컸다. 


인용문은 이영희 선생이 한국전쟁 당시 진주에서 만났던 한 기생과의 일화를 적은 글에서 인용한 것인데, 전통적인 기생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특정한 한 기생의 말이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기생들이 가졌던 면모를 대변했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생의 이미지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된 것이다.


사진은 부안(扶安)의 시기(詩妓)로 이름이 높았던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규원(閨怨)」이란 시이다.


相思都在不言裏 상사도재불언리   애끓는 정 말로는 할 길이 없어

一夜心懷半絲 일야심회빈반사   밤새워 머리칼이 반 남아 세였고나

欲知是妾相思苦 욕지시첩상사고   생각는 정 그대도 알고프거든

須試金環減舊圓 수시금환가구원   가락지도 안맞는 여윈 손 보소


밤새 하얗게 쇠어버린 머리와 야윈 손마디로 애끓는 상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 애절한 상사의 마음을 전해받은 이는 누구일까? 그녀와 시문으로 교류했다고 전해지는 유희경이나 이귀 혹은 허균이나 서우관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그 누구이든 이 애절한 상사의 시를 전해받은 이는 평생 그녀의 포로가 되었을 것 같다. 애절한 상사의 마음을 이렇듯 아름다운 시문으로 표현할 줄 아는 여인에게 어느 사내가 매혹되지 않으랴. 외면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감쇄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증강된다. 만일 매창이 외면의 아름다움만 간직한 기생이었다면 이런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실제로, 허균의 기록에 의하면, 매창은 미모가 아니었다하니 이 말은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매창이 노래하는 애끓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그들의 정신적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몸의 사랑도 있었겠지만 그건 부차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이영희 선생이 만났던 진주 기생의 말이 이를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선생은 진주 기생이 자신과의 사적 만남을 어긴데 대해 분함을 토하며 차고있던 권총으로 공포탄을 쏘면서 그녀의 굴종을 압박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젊은 장교님, 잘 들어두세요. 아무리 미천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도 총으로 굴복시키려 들지 마세요. 여자란 마음이 감동하면 총소리 내지 않아도 따라갑니다. 당신도 차차 사람과 세상을 알게 될 겁니다. 돌아가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위와 같은 책 같은 곳)


당대 천시받던 직종에 있었지만 기꺼이 그네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우했던 그들에게 매창 역시도 기꺼운 마음으로 사모의 정을 표했을 것이다.


鬢과 環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鬢은 髟(머리털 드리워질 표)와 賓(손님 빈)의 합자이다. 살쩍(귀 앞에 난 머리털)이란 뜻이다. 髟로 뜻을, 賓으로 음을 표현했다. 살쩍 빈. 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鬢雪(빈설, 살쩍이 흼), 鬢絲茶煙(빈사다연, 노후의 조용한 생활) 등을 들 수 있겠다.


環은 고리라는 뜻이다. 王(玉의 변형, 구슬 옥)으로 뜻을 나타냈다.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고리 환. 環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環境(환경), 環繞(환요) 등을 들 수 있겠다.


인정이나 이해는 씨앗을 품은 흙과 같다. 매창이 남긴 아름다운 시편을 읽을 때 그네만의 공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네를 보듬어준 당대 문인들의 넉넉함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매창의 절창 하나를 더 읽어보자.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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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질적인 변화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누드화와 춘화를 구별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는 것 같다. 똑같이 벌것벗은 몸을 그린 것이지만 예술로 승화됐으면 누드화요, 그렇지 못했으면 춘화라 할 것이다. 승화에는 화룡점정과 같은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


사진은 익히 알려진 혜원 신윤복의「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이다. 으스름 달밤 두 남녀의 밀회를 그린 이 그림은 관음증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이 질펀한 냄새를 유지하면서도 그림 전체를 유쾌하게 만드는 신의 한 수가 그림 속에 들어있다. 춘화에 가까운 그림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신의 한수는 무엇일까? 바로 화제(畵題)이다.


월침침 야삼경 양인심사 양인지(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 兩人知). 달빛 침침한 한밤중 (몰래 만난) 두 사람의 심사는 두 사람만이 알리라.


이 화제가 빠지면 이 그림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기 어려웠다. 고수의 절묘한 화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절묘한 솜씨의 다른 버전이, 역시 익히 알려진,「단오풍정도(端午風情圖)」이다.





이 그림에서는 화제 대신 직접 그림을 그려 넣었다. 「단오풍정도」의 신의 한수는 남몰래 숨어서 엿보는 동자승이다. 이 동자승이 없었다면 이 그림은 그저 농밀한 그림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엿보는 동자승으로 하여 이 그림은 농밀하면서도 유쾌한, 예술작품이 되었다.


沈과 事가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沈은 물에 잠겼다는 의미이다. 氵(물 수)로 의미를 표현했고,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잠길 침. 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浮沈(부침), 擊沈(격침) 등을 들 수 있겠다.


事는 자원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 旂(깃발 기)의 약자와 冊(책 책)의 약자와 又(手의 원형, 손 수)의 합자로, 손으로 깃발을 잡거나 간책(簡冊)을 들고 기록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둘. 史(역사 사)와 之(갈 지)의 약자가 결합된 글자로, 순리와 정도에 따라[之] 치우치지 않게 기록하는[史]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일 사. 事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事態(사태), 事跡(사적) 등을 들 수 있겠다.


예술 작품은 시대와 관계를 맺는다. 혜원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질펀하면서도 유쾌한 혜원의 작품은 그가 활약한 정조 연간(年間)의 활발발(活發發)한 시대 분위기와 맞닿아있다. 정조 사후 폐색된 정치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 혜원의 그림에서 정조 연간의 시대 분위기를 읽는 것도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중요 포인트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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