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페어 - 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을 범죄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해부하다
애덤 벤포라도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언페어

-생각하고 행동할 의무.

 

묵직한 책이다. 법을 이야기는 책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까닭은 균형을 잃은 천칭 때문일까.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이 천칭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한쪽은 올라가고 다른 한쪽은 손가락의 힘에 의해 아래로 내려가 있는 이 그림은 매우 상징적이다. 책 언페어 (UNFAIR)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이 그림으로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저자 애덤 밴포라도는 법과대학 교수이며,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며 사법제도의 합리화를 위해 저술과 강연을 하고 있다는 출판사의 소개를 잠시 적어보자. 그는 단순히 책상 앞에서 이론만을 뒤적이는 사람이 아니다. 법과 너무나 친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그가 의외의 책들을 쓰고 있는 듯했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저자는 ‘건강한 내부고발자’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는 자신의 책에서 현재 미국의 사법체계가 갖는 다양한 문제들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오픈시키고 있다고 봐야한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현재 미국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체계는 ‘불행하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더욱이 그가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주장은 그만큼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책은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사건을 인지하는 보통의 일반 사람들이 갖는 사고(생각)의 순서에 맞게 저자 스스로의 시선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그가 이끄는 대로 독자들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틈새 없이 직조된 조직망 안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저자의 시선은 매우 분석적이고, 세부적이며 집요하리만큼 문제의식에 접근한다. 무엇보다도 수사 과정에서의 오류와 실수, 판결을 내리는 데 기인하게 되는 많은 외압과 개인의 편향적 사고를 담은 판사의 이야기,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응징과 복수의 개념, 그리고 개혁을 통해 저자는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저자는 독자와 함께 진지한 담론을 이어가기를 원한다.

자. 이제 하나씩 섬세하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먼저 주목할 만한 것은 시간상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진 이후다. 즉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한 이후에 저자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각각의 법이 구분하고 있는 신분상의 상황과 위치를 살펴보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 하나의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어느 시점에서 관찰하고 들여다볼 것인가. 누구의 관점으로 살펴보는가는 사건 해결에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건 발생 이후 수사에 처음 등장하는 신분은 피해자와 형사, 그리고 피의자다. 저자는 처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책은 다양한 실재 사건들이 소개하고 있는데, 이 사건들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지위의 사람들의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이면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은 뒤이어 나오게 되는 판사와 배심원, 목격자와 과학과 의학을 전공한 이들의 판단이 재판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이야기하며 전문가의 이야기를 함께 싣고 있는 것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종합해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이야기도 포함한다. 결국 그 어떤 것도 거대 사법체계의 오류와 비판을 담은 이번 담론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책에서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은 책을 쓴 저자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 범죄와 인간의 심리관계(범죄심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된바, 뇌 과학 분야와 범죄와의 연계성일 것이다. 책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범죄자의 뇌 일부분이 일반인보다 조금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한편으로는 인간의 범죄를 질병의 차원으로 새롭게 생각하는 시도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기억력과 판단, 그리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목적성을 띈 외압이 인간의 뇌와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기도 한다.

 

2부 판결에서 배심원과 목격자 그리고 전문가 판사의 이야기는 현재 법체계가 상당히 많은 불안요소를 기반으로 한 채 위태롭게 서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법이라는 정의가 절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반위에 세워진 철옹성과 같은 이미지였다고 한다면, 저자는 불가피하게도 이 모든 것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간에 사건을 만들고, 해결하며, 죄인을 찾아 벌을 주는 모든 주요대상이, 바로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바로 수정을 요구하는 저자의 직접적이면서도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기억의 가변성-‘기억은 쉽게 수정되고, 변화되며, 틀이 바뀐다’ P180)시간이 흐르면 기억의 흐름도 끊긴다. 피해자가 확실하게 지목했던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고,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된 일반인은 감옥에서 그의 생의 절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거짓기억) 인종, 성별, 언어, 계급 혹은 외모에 대한 외부의 크고 작은 압력과, 집단의 선입견과, 개인의 닫힌 생각과, 잘못 구성된 심리상태들은 모두 거대한 장벽이다. 하나의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라는 조건은 너무나 많아 보인다. 중립적인 배심원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로 바라봐야 하는 의무는,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개인가 사회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쯤에서 사견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줄곧 톨스토이의 ‘부활’을 생각했었다는 말을 하려한다. 여 주인공의 외모를 바라보는 배심원들의 시선과 느낌들은, 각각의 배심원들의 배경지식과 살아가는 환경 그리고 교육수준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피의자의 성별에 따라 각각의 다른 반응과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톨스토이의 부활에서도 배심원단의 실수가 그려지고, 그 실수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와 검사를 포함한 법관계자들은 의이를 제기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리게 된다. 왜 굳이 톨스토이인가. 또 왜 구태여 부활인가. 어쩌면 시간상의 역행으로 보았을 때, 이 책을 쓴 저자 벤포라도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이 부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만큼 책 ‘언페어’에서 거론되고 있는 많은 실수와, 오류, 자기 부정과 기만, 집단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의한 부패와, 본능과 지각 그리고 이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톨스토이의 이야기와 무척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언페어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보통의 시선으로 보자며 판결에서 사건을 일단락 지을 것이라고 보이지만, 저자 밴포라도의 의도는 조금 달랐다. 그는 처벌이라는 타이들에 대중과 죄수라는 이야기를 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혁에서 앞으로의 변화된 사법계의 긍정적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책은 사건이 존재했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류를 지적하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인지하든, 혹은 인지하지 못하든 간에 인간의 선택(선과 악을 구별하는)과 행동의 영향을 주는 많은 변수의 수를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을 이야기할 때 저자는 단순히 잘못되었다, 라고 하지 않는다. 저자는 왜 그러한 문제가 생겨났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저자는 과거시대에 중죄를 판단하고 피해자와 피의자(동물이나 가축 포함)를 각각 구별해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내리는 이른바 종교재판의 성격을 보였던 구재판의 개념이, 단순히 개인 혹은 집단무의식과 이성보다는 직관과 감정에 의지하는 보여 주기식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벤포라도는 말한다. 현재의 사법체계와 법제도가 실상은 과거의 법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이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사실 앞서 이야기한바 있듯이, ‘건강한 내부고발자’의 시선에서 나올만한 정당한 지적이라고 본다. 물론 저자의 표현대로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면, 법조계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예의주시할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거짓말 탐지기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저자의 지적과 함께, 이미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거짓말 탐지기의 기능적 신뢰도가 크기 않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법체계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또한 각국마다 소년법의 기준을 정하는 연령이 다른 것을 들여다보며, 그에 따른 장단점을 생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죄인을 사회와 단절시키는 것으로 교화의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미국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죄인을 다시 순화하려는 외국의 다양한 사례(노르웨이의 할렌 교도소)를 소개하고 있는 대목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고 순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들을 안겨주는 듯했다고 해야할까.

 

-할렌 교도소 소장에 따르면 모든 수감자가 결국에는 석방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의미가 있다. 괴물 같은 교도소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며 무슨 소용이 있는가?P329-

 

그러나 중범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나, 혹은 어떤 중대한 과정을 거치든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사유는,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변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차치하고서라도 중요한 것은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사법체계의 문제들을 인지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개선책들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인데, 조금씩 긍정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맞는 답일 듯싶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휘어주지 않는 한 역사의 활궁은 정의를 향해[저절로]휘지 않는다-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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