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3호 열차』는 2015년에 제5회 정채봉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심사위원 모두를
매료시키고 감탄을 자아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현실의 문제의식을 집요하게 대결하면서 끝내는 인간성의 승리를 드러내는 작가
정신 과 직설적이지 않고 시적인 문장으로 감성에 호소(p.89)하는 것이 특징인 정채봉의 문학
정신이 잘 투영된 것이 선정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중편동화였으나 단행본을 위해 내용이 추가되었으며 이 동화의 주된 내용은 1937년
구소련에 의해서 강행되었던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나라를 잃고 먼 타국에서
그 설움을 겪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라는 점에서 어른들도 꼭 읽어보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찻길이 어디로 뻗어 있고 종착역이 어디이며,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한 마을의 조선 사람들 마흔 명이 소련군의 명령에 따라 열차를 타게 된다. 저마다 일상을 나날을 보내다 갑작스레 이 열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집에 두고 온 추수를 걱정하지만 이내
끊임없이 달리기만 하는, 좌석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고 단단한 선반만 놓여져 있는 열차 안에서 두려움에 떨게 되고 곧 잠잠해진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기에.
오랜 시간 달리는 열차 안에는 먹을 것도 변변찮고 점점 더
추워지는 날씨와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 둘 병을 얻게 되고 열차가 길에 정차할 때마다 하나 둘 열차 밖으로 실려나가 땅에 묻히게
된다. 그나마도 묻을수가 없으면 땅 위에 뉘어놓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열차를 타고 떠난다.
그속에는 얼마 전 아버지가 소련군에 의해 잡혀간 사샤가 있다.
올해 열두 살인 소년으로 할머니와 삼촌, 삼촌의 약혼자인 레나 누나, 이웃인 해님이네 가족과 함께 있는데 이들 가족에게도 고통의 시간이
다가온다.
시름시름 앓던 해님이의 남동생 안톤이가 이제 갓 태어난 율이를 본 이후 여러 사람들처럼 그렇게
죽어간 것이다. 그런 안톤이를 소련군은 전염병이 돌 수도 있으니 데려가 버리고 이후 할머니는 삼촌과 레나 누나의 결혼식을 열차 안에서 올려주고
이때 사샤는 할머니의 죽음을 직감하게 되며 할머니는 다음날 돌아가신다.
결국 삼촌을 할머니를 안고 열차에서 내리고 그때서야 참았던
눈물이 흐르고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열차에 몸을 맡긴다. 그런 사샤에게 힘이 되어주는 이가 있었으니 열악한 환경에서도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율이였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언제 멈출지 모르는 열차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틸 때 사샤는 율을 통해 힘을 얻게 된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르는 시간이 흘러 드디어 열차가 멈추고 소련군은 사람들을 모두
내리게 한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마주한 풍경은 끝없는 벌판과 사샤보다 키가 큰 갈대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그저 그 뿐인 땅이였다. 모두가
절망한 가운데 열차는 야멸차게 떠나버린다.
바로 그때 해님이가 계속해서 부르던 노동요 같았던 생명의 희망을 다룬 노래를 삼촌이 서툰
솜씨로 부르게 되고 이윽고 나머지 사람들도 마치 앞으로 펼쳐질 역경들을 이겨내 보자며 힘을 내듯 함께 따라부르게 된다.
이처럼 『503호 열차』는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가슴 아픈 역사를 사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503호 열차'는 우리 조선인들에게 있어서는 분명 미래가 불투명한, 어쩌면 조금 과한 면도 없진 않지만 나치가 유대인들을 태워 수용소로 향했던
열차와 같은 분위기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끝내 도착해서도 암담한 현실과 마주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율이라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할머니가 남긴 씨앗을 뿌려 곡식을 키우고 삶을 꾸려나가려고 하는 강인한 의지를 동시를 느낄 수 있어서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그런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