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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
사토 세이난 지음, 이하윤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잊혀진 듯한 십년 전 발생한 아동 학대사건을 되짚어가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굴까?
이 책은 십년 전, 아키라는 소녀에게 일어났던 아동학대사건을 그 사건의 당사자, 주변인물, 관계자들의 고백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동상담소 소장 쿠마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그 사건의 당사자인 아키의 이야기로 끝이나는 묘한 구성을 보인다.
쿠마베는 대학동기인 사가라의 부름으로 아동학대를 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아키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조심스럽게 소녀의 마음을 움직인 끝에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아키네 가족들은 이사를 하고, 어머니인 키미에는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기모토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부모의 이혼후 스기모토는 아키네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그날부터 시작된 스기모토의 기묘한 집착과 폭력은 키미에와 아키를 공포에 떨게 한다.
아키를 지키려는 아동상담소 직원들은 아키를 도쿄에 있다는 키미에의 어머니집으로 아키와 키미에를 스기모토 몰래 보내려 한다. 그런 계획들이 차례대로 진행되는데 쿠마베 소장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낀다. 그리고 계획 당일 아동상담소 직원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느끼지만 그 모든것이 키미에와 스기모토의 또다른 계획이였음을 알게 된다.
결국 다시 잡혀 온 아키는 그집에 갇히게 되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소장이 출입조사를 통해서 아키를 구해냄과 동시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사건의 진행은 키미에, 아키의 담임 선생님, 아키의 친구 이리에, 키미에와 함께 일했던 동료, 아동상담소 소장과 직원들, 스기모토의 어머니, 그의 전 여자친구, 출입조사이후 아키를 만난 사람들의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들이 고백하는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다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밝혀지지 않는다.
이사람은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날의 일들을 묻고 다니는가 말이다. 그 정체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마치 책 소개나 이야기의 전개에서는 아키가 죽음에 이른 것처럼 묘사되지만 기묘하게도 아키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키의 남편이자 자신의 진료했던 정신과 의사가 바로 이야기를 묻고 다닌 사람이였던 것이다.
부인과 사별하고 남자아이 하나가 있는 자신과 결혼한 아키의 현재 모습에 대한 아키의 고백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고백에서 그 옛날 키미에의 모습과 어린 아키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많은 폭력의 피해자가 그때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정신적 이유로 폭력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라고만 여겼던 아키가 무수한 폭력에 노출되면서 자신도 오히려 가해자가 된 점에서는 그 사람을 지배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모습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동정심과 연민을 느끼게 했던 아키에게서 섬뜩한 가해자적 모습이 보이는 마지막 반전에서 왠지 그녀에게 속은 것 같은 배신감과 함께 그녀를 변하게 만든 그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