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첫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두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 어둠을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 자끄 프레베르 <밤의 파리>

(p.29)

 

 

"그러니 너는 너를 지켜! 너를 지키라구!"

(p.58)

 

 

"젠장, 젠장, 듣지 못한다는 게,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게, 젠장!"

(p.59)

 

 

혐오, 신이 기괴하거나 비뚤어진 것으로부터 연약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준 제일 감각.

(p.141) 

 

 

언제나처럼 폭행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버림받고 고립되었다는 느낌,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을 거라는 절망,

그런데 이제 그들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

들은 그 순간 그것을 확인했고 존재의 밑바닥부터 기쁨과 감격으로 흔들렸다.

 

정의는,

깊은 땅속에 둗혀 있던 부드러운 흙이 깊은 쟁이질에 얼굴을 내밀듯 솟아나서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고 오래된 전설을 확신시켜주는 듯했다.

(p.148)

 

 

오랜 경험을 가진 그로서는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쁜 놈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놈들이 수갑을 찬다.

맹수는 다리를 다친 사슴 한 마리를 잡을 때도 결코 방심하지 않는 법이다.

(p.149)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인간들보다 우월할 기회는 거의 없다.

아니 동등할 기회조차 거의 없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p.153)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p.165)

 

 

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나?

그럼 이 세상은 벌써 지옥이 아닐까?

대체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해줄 것인가?

.....

아니면 그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가,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도 그 말을 믿었지.

그런데 얼마 전, 자애학우너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p.227)

 

 

어린시절 어머니는 말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지, 하고.

그런데 이제 강인호는 생각했다.

그 무서운 하늘이 없을까봐 무섭다고.

(p.231)

 

 

가난이 남루한 이유는

그것이 언제든 인간의 존엄을 몇장의 돈과 몇 조각의 빵덩어리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일까.

(p.233)

 

 

서유진은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지? 하고 누군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p.246)

 

 

"안개도 오래 겪다보면 앞이 보입니다.

이 세상은 늘 투명하고 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안개는 장벽이겠지만,

원래 세상이 안개 꼈다고 생각하면 다른 날들이 횡재인 거죠.

그리고 가만히 보면 안개 안 낀 날이 더 많잖아요?"

(p.253)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