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의 순간에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 한 남자, 바로 곤의 이야기다.
세상에서 실패하고, 인생서 좌절한 한 남자가 네다섯살쯤 된 남자아이를 안고 한밤 중 이내촌의 호수에 투신한다.
이내촌에서 쭉 인생을 살아 온 한 할아버지가 한밤 중 그 소리를 듣고 나오게 된다.
그러다 물속에서 솟아 나온 아이를 건져 내게 되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외손자(강하)에게 업혀 그 남자아이를 데려오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양귀 뒤로 상처가 나 있다.
바로 아가미인 것이다.
그날 이후 아이의 이름은 곤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시체로 발견되고, 차츰 그 사건이 기억 속에서 묻혀 시간이 흐를수록 곤의 몸은 물고기화되어 간다.
아가미는 물론, 지느러미, 몸위에는 비늘까지 생기는 것이다.
단조롭지만 나름 자신들만의 평화를 유지하던 세사람에게 할아버지의 딸이자, 강하의 어머니 이녕이 오면서 셋은 돌이킬 수 없는 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 이야기는 사고로 강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준 곤의 이야기를 여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게 되고, 이 이야기를 본 강하가 그녀와 만나서 곤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그녀가 다시 곤에게 강하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처음 글을 읽기 전에는 공상과학 소설이나 스릴러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세상으로 부터 소외된, 낙오자라든가 실패자라고 불리만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의 순간 아가미라는 퇴행기관으로 인해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남자를 중심으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실패한 인생들이 겪는 이야기이다.
보통의 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에도 강하와 할아버지가 곤을 자연스레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들은 곤이 가진 아가미를 자신들 역시 가지고 있는 어떤 인생살이의 상처의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강하는 할아버지와 곤에게 모질게 대하는 듯하지만, 이는 그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가 끝까지 할아버지를 지키고, 곤을 지키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기 때문이다.
곤이라는 이름 역시도 그런 강하가 지어 준 이름이다.
[장자]의 첫 장에 나온다는,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p.180)
가장 먼저 곤에게서 아가미를 발견하고 그 당시 읽고 있던 장자의 첫장을 기억해서 가장 잘 어울리겠다고 지어 주고선 정작 자신은 한번도 부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언젠간 떠날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곤을 잃는다는 것이 두려웠을까.
많은 것을 잃어 보았기에 그 경험을 해 보았기에, 말하진 못했지만 다시 두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곤을 떠나보내며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한 말 속에는 그의 모든 마음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곤이 소중한 사람을 찾아서 다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