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간만에 만화를 이것저것 본 김에 살면서 이제까지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들을 모아보고 싶어졌다.  오전의 상담 몇 개를 끝내고, 이번 주중에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을 일을 앞두고 있는데, 살짝 게을러 진 김에, 서재에 와서 놀면서, 그간 책 남기기에 게을렀음을 살짝 반성하고 있다.

 

합본으로 나온 것은 없는데, 아마도 예전에 '반항하지마'라는 한국 제목을 달고 이름을 모조리 한국식 음독으로 번역했던 작품을 '애장판'이라는 이름으로 원제로 풀어낸 듯.  원래 Great Teacher Onizuka라고 나왔던 작품이다.  같은 작가의 이전 작품인 '상남 이인조'의 주인공들 중 하나인 Onizuka Eikichi (이게 아마 영길로 읽히는 듯)가 5류급 대학인 유라시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가 되어 벌이는 학교 모험담.  그 당시 일본의 심각한 문제였던 학원 왕따, 학대, 선생님 습격, 선생님의 범죄나 타락을 주인공의 근기와 깡으로 하나씩 바로잡은 학원 판타지라고 보겠다.  brain빼고는 모든 것을 갖춘 주인공의 활약은, 물론 실제로 가능할 수는 없겠지만, 매우 cool~한 대리만족을 주었었다.  주인공이 실제로 나이를 먹었다면 이제 대략 30대 중반을 넘어섰을 듯.  이건 영문판으로 모두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세일로 한꺼번에 풀리면 구매를 고려할 것 같다.  드라마로도 나왔었는데,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약 40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안다. 

 

20세기 소년의 작가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초기작들 중 유명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나오는 작품들 중 하나.  지금은 대도숙 공도의 한국 지부장을 맡고 있는 류운 김기태님의 글에서 소개받아 구해본 책.  8-90년대 일본 여자유도의 간판스타인 다무라 료코를 모델로 해서 만든 유도 캐릭터 야와라의 일상을 유도와 함께 잘 녹여낸 작품.  유도만화라기 보다는 연애만화라는 류운님의 평도 있듯, 이 만화는 유도와 연애담을 두 개의 축으로 삼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스터 키튼' 역시 우라사와 나오키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인데, 내 개인적으로는 야와라가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 말이 필요없는, 그 당시의 기준으로는 살짝 야한 부분까지 더해서 성인만화로 분류되어 나왔던 작품.  주로 해적판으로 구해서 본 기억이 있는데, 예전에 한국에 머무를 때, 중고로 완전판을 구입했다.  폐점한 만화방에서 풀린 물건이었는지, 책의 staple자국과 진한 담배냄새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이 완전판을 그야말로 십 수년만에 다시 본 덕분에 스토리의 모든 전모를 알게 되었다.  후속작인 Angel Heart는 animation으로만 접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구해볼 생각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우수한'과 '사오리'로 만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매우 80년대 스타일의 그림과 발상이 특이하다.  책도 그렇지만, 만화 역시 역사연구의 일차사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말이 필요없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바람의 검심은 한때 세계의 많은 이들이 일본의 근대시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다소 미화된 관점까지 갖게 했을 만큼 영향력이 큰 만화였는데, 이 만화를 보면 일본인들의 숙명론이나 운명론에 입각한 인생관을 느낄때가 있다.  불교에서 차용된 이런 관점이 잘못 이용되면 2차대전의 만행이 당시의 시대에서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일본의 'role'이었다거나, 일본도 '피해자'라는 아스트랄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배가본드는 실로 오랫만에 34권이 나온 듯.  영본과 한국본을 오가면서 읽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업데이트가 된 것 같다.  사실 작가가 포기하고 안 그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무사시의 일반적인 결말은 간류지마에서 사사키 고지로오와의 한판승부가 되고, 더 길게 늘이면, 말년까지 갈 수 있으니, 과연 몇 권에서 끝이 날까 궁금.

 

주로 월간 보물섬을 통해 연재되었던 작품들인데, 어릴 때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시절 일본 만화는 다이나믹 콩콩인가 하는 출판사에서 가짜 작가를 내세워 대거표절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름 이때는 국산 만화의 중흥기라고 본다.  월간 보물섬 외에도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경향, 소년중앙 같은 잡지에서 만화를 다루었고, 나중에는 르네상스를 필두로하여 순정만화 잡지가 나오기도 했었다.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축구를 주제로 한 '그라운드의 표범'도 좋았고, 권투만화나 '이겨라 벤'같은 만화도 좋았다 (다만, 풍산견이 실제로 보니, 전혀 다르게 생겼더라는 것.  그리고 투견만화의 '투견'은 참 나쁘다는 것).  다시 구해보고 싶어졌다.  이들도 그렇고, 옛날 어릴적의 잡지도 그렇고.  이러다가 오타쿠가 될지도 모르겠다.  책더쿠...-_-:

 

더 많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 이만 줄여야 하겠다는 생각.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른 만화 이야기를 올릴 생각이다.

 

PS. 쓰고 나서 든 생각.  깜빡했다.  내 시대 최고의 만화는 뭐니뭐니해도!

 

 

 

 

 

 

 

 

 

 

 

 

 

 

해적판과 아이큐 점프, 그리고 단행본이 함께 군웅할거를 하게 만든.  인터넷이 나오기 직전, 그리고 태동기를 평정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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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4-2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해피도 진짜 좋았어요!! 바람의검심과 베가본드는 보통 둘다 좋아하거나, 둘다 취향이 아니거나, 그렇던데 전 베가본드만 좋더라구요. 베가본드 ㅠ
엄청 좋아해서 미야모토 무사시 열권짜리 책도 막 읽고 그랬었어요 ㅎㅎ

transient-guest 2013-04-23 14:07   좋아요 0 | URL
해피는 제가 모르는 것 같구요. 검심과 배가본드는 조금 다른 듯 합니다. 한창 유행때 검도장에서 일본 선배에게 물으니 아~~빠가본드...라고 하던게 기억나네요..ㅎㅎ

Forgettable. 2013-04-24 00:19   좋아요 0 | URL
해피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테니스 만화입니당 ㅎㅎㅎ
기회 되시면 한 번 보세요!

transient-guest 2013-04-24 01:15   좋아요 0 | URL
만화에 화두가 꽂히면 위험한데, 자꾸 만화도 더 모아들이고 싶어지네요.ㅎㅎ 보통 책보다 권당 가격은 낮지만, 권수가 무시무시하니까 이게 쉽지 않은데 말이죠..

saint236 2013-04-2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3개에 더해서 원피스도...

transient-guest 2013-04-23 14:08   좋아요 0 | URL
원피스는 좀 나중에 나왔죠...아직 안 봤습니다. 아무래도 어릴 때 보던 만화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연식이 좀 되었나봅니다, 제가...ㅎ

saint236 2013-04-27 11:24   좋아요 0 | URL
세인트 세이야도 좋죠...^^
 
20세기 소년 + 21세기 소년 세트 - 전24권 (묶음)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늘 책을 덜 사고, 지금 가지고 있는 녀석들을 더 보자고 다짐하건만, 그리고 자주 욕구를 억누르기는 하지만, 결국 어쩌다 한번씩은 집단구매를 저지르곤 한다.  지난 주에도 이런 충동의 결과로 추리소설 몇 권과 함께 이 합본을 사서 읽었다.  결과적으로 주머니가 조금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더 미루지 않고,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온지 꽤 지난, 그리고 세계멸망이라는, 책의 주제라기 보다는 하나의 장치로 쓰인 이 테마역시 유행이 지나가고 있지만, 시공간이 바뀌면서 진행되는 이 만화는 그야말로 하나의 드라마였다.

 

너무도 유명한 70-80년대의 어린이 만화 플롯 - 악당이 나타나서 지구정복 혹은 멸망을 획책하는데, 극적인 위기의 순간에 영웅이 나타나서 이를 물리치고 지구를 구한다는 - 을 이렇게 꽈배기처럼 꼬아놓고, 여기에 등장인물 하나마다 인간의 여러 모습을 하나씩 새겨놓은 이 작품은 단순히 만화가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꼭 작가의 메시지를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느끼는 몇 가지 포인트는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보였던 것 같다. 

 

일단, 나비효과.  1970년, 어린아이들이 저지르는 일상의 단순한 일들이 이어지고, 여기서 파생된 결과물이 '친구'의 '세계정복'.  1970년에 몇 가지 일만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어도 '친구'는 탄생되지 않았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약한 존재라는 점.  그러나 이런 약한 존재들이 모여 하나의 힘을 낼 때 사회를 바꾸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점. 

 

극단적인 조작과 세뇌를 통한 민중통제는 현 시대,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  민주/독재국가, 동서양, 빈부를 막론하고 이런 조작은 어디에서든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자 미스터리는 시공간의 연결 이상, virtual reality와 과거/현재/미래의 연결. 

 

백문이 불여일견.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았겠지만, 아직까지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구매를 고려하는 것도 좋겠다.  세일이니까.  난 이런 합본 세일을 좋아한다.  신간을 구매해서 읽을 때 느끼는 설레임도 좋지만, 모두 끝난 작품을 이렇게 한꺼번에 구해서 볼 때의 느긋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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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4-24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켄지....나오키는 참 대단한 작가. 그런데
이 만화의 영화판은 거의 '재앙'...이더군요.

transient-guest 2013-04-23 14:06   좋아요 0 | URL
일본애들이 보면, 만화의 드라마화는 좋은데, 영화화는 좀 약하더군요..ㅎ
 
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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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보면 어김없이 기획의 냄새가 난다.  즉 진중권과 정재승이란 두 학자들이 어떤 대담을 하거나, 이슈를 가지고 이야기한 것을 책으로 꾸몄거나, 아니면, 원래 흥미를 갖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의견을 책으로 써냈다기 보다는, 출판사 차원에서 이런걸 한번 만들어 보면 잘 팔리지 않을까 하는 마스터 플랜을 짜고, 거기에 진중권과 정재승이 각각의 주제마다 각자의 학술적인 풀이를 가지고 글을 썼다고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틀렸을 가능성도 매우 높지만, 어쨌든 내가 받은 impression은 그렇다.  일례로, 주제선정도 그렇지만, 각 주제에 대한 해석에 있어 이미 정해진 결론을 놓고 해석을 짜맞춰간 느낌이 많이 난다는 것.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를 구체화하면서 글을 써나가는 것 보다는, 특정 주제와 해석이 나온 상태에는 이를 각기 과학/미학적인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풀어나간 시도의 냄새가 폴폴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재미있다.  가끔씩 나오는 fact의 오류는 조금 거슬리지만, 그래도 일종의 오차범위내에서의 오류로 보이니까 그런대로 참을만 하다.  그리고 정재승은 몰라도 진중권이라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흔할 수 없는 캐릭터이기에 역시 참을 수 있다.  진중권 같은 사람은 하고 싶은 말, 아니 하여야 할 말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뱉어내는 사람이기에 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심형래도 황우석도 한창때에는 진중권 말고는 함부로 비판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 비판 덕분에 엄청난 인신공격까지 당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가 옳았다고 생각되기에, 진중권 특유의 다소 '재수없는', 무엇인가 늘 가르치려 하는 말투 역시 참을 수 있다.  혹자는 변희재를 진중권의 대착점에다 놓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볼 때 그건 어림도 없는 수작이다.  사람과 응가를 견주는 것은 바보같다는 생각.

 

그런대로 쉽게 읽히고 좀 유명한 주제들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 설사 그것이 결론에 맞춰진 냄새가 나더라도 - 볼 수 있는 책이다.  다만, 미디어에서 띄운만큼의 재미는 느끼지 못하였다.  So Caveat Empto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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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중동을 비롯한 유사언론사의 신문은 우연한 기회에라도 보지 않는다.  하다못해 포탈뉴스에서조차 이들을 거부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지만, 어쨌든, 조중동이 만들어내는 소설은 그리 재미가 없고 문학적인 가치도 없기에 그렇다.  그나마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한겨레 같이 그래도 덜 이상한 신문은 아이폰 앱으로 중간중간 보는 정도.  그런 내가 보는 뉴스매체는 이곳의 지역신문과 CNN 그리고 딴지일보 정도라로 하겠다.  딴지일보가 과연 뉴스매체인가 하는 부분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최근의 홍석동씨 납치사건, 또 필리핀에 억류중인 한국인 선장, 더 멀게는 외국 어디에선가 살인 용의자로 몰려 오랜 수감/재판 끝에 풀려난 유학생까지 굵직한, 그러나 정부와 조중동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사건들의 해결의 중추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딴지일보는 나에게는 뉴스매체이고 사회활동과 참여가 어우러진 참 언론사이다.  일단 여기까지.

 

한국의 전 국토가 시멘트로 덮혀가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한국에 살던 시절에는 아파트 외의 다른 주거형태를 생각하기 어려웠고, 잊을만 하면 터지던 단독주택에서의 범죄사건을 보면서, 아파트는 그래도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동굴처럼 앞문만 제대로 막고 수비하면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의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는 안전하기는 하다.  너무 안전해서 이웃과의 소통도 필요없고, 외부와도 철저하게 차단된 구조라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점점 진화해가는 아파트 건축기술, 특히 아파트가 집단거주시설임이 무색할 만큼, 구조적으로도 비교적 독립을 보장하는 요즘의 모습을 보면 이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기호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는 다른 입주자와 이웃하거나 마주보는 대문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미 실수요를 따져보면 3:1로 공급이 넘친다는 선대인 소장의 말도 있듯이 이 아파트 열풍은 너무 심한 정도는 넘어선지 오래인 듯 하다.  땅이 좁고, 수도권에 인구의 30%이상이 몰려있다는 것을 가정해도 재개발과 뉴타운으로 상징되는 아파트 건축붐은 심한데가 있다. 

 

그래서 그랬나?  작년에 이런 저런 일로 한국을 드나들면서 그전까지는 덜 다니던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인천공항을 오가던 나는 종종 가벼운 멀미에 시달렸었다.  내가 원래 그런 체질이라면 신기할 것도 없겠지만, 나는 멀미가 없는 사람이다.  8시간이든 16시간이든 차, 비행기, 배, 어떤 것을 타더라도 멀미는 하지 않는다.  하물며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멀미를 할 턱이 없다. 

 

내가 가볍게나마 멀미를, 어쩌면 더 정확하게는 일종의 조급증/답답증을 느낀 이유는 다름아닌 이것들...

 

 

사진으로 보고만 있어도 눈이 가물가물하고 토가 나올 것 같은 이 풍경들 때문이었다. 

 

내가 태어나 오래 살았던 인천은 바다에 면한, 산이 그리 많은 곳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약산, 문학산, 청계산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산과 언덕이 꽤 많이 있었던 도시로 기억한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개발과 rebate열풍, 그리고 가카의 치세로 이어진 분양 first 건축 second 입중 whatever whenever정책에 힘입어 지금 인천에는 산이란 산은 거의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산 중턱에 건축을 하는 것을 넘어, 아예 얕은 산은 다 깎아내버리는 공법을 통해 평지로 만들어진 곳에 20층이 넘는 아파트들을 지어댔기 때문이다.  아마도 거기서 나오는 막대한 자재이익은 땅주인에게 환원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고.  사진의 저런 풍경은 수도권 어디에든지 눈을 돌리면 보이는 지금의 한국 거주자에게는 매우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물의 온도를 조금씩 높혀가면 자기가 삶아지고 있는것을 모르고 cook되는 솥단지안의 개구리처럼 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이런 것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펄펄 끓는 물속으로 던져진 개구리 같았던 모양이다. 

 

수도권 곳곳에 이제는 일년 내내 볕이 들지 않는 구간이 많이 있다.  기존에 5층 단지가 들어서 있던 곳을 20층 이상의 단지, 그것도 훨씬 더 빽빽한 구조로 조성된 고층 빌딩단지 덕분이다.  무리하게 건설사를 먹여살리는 중앙정부의 정책과 지방정치를 장악한 건설토호들의 분탕질에 국토의 시멘트화는 적어도 당분간은 더 가속화 될 것이다.  4대강을 시멘트로 덮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가예산을 사이좋게 나눠먹은 가카새끼 일당도 모자라서, 이제는 지류를 시멘트로 덮겠다고 나서는 3050을 보면서 내가 알던 한국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까 착잡하다. 

 

지방도시, 아니면 현지인들이 외면하는, 개발을 빙자한 파괴의 손길을 피해서 살아남은 곳들만이 내가 추억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개발 그 자체의 호불호를 떠나서 국민 대다수와는 관련이 없는 미친 파괴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개발만이 경기부양의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다.  construction이 아닌 restoration, 친환경, 친사람, software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더 많은 고용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효과는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애써 무시하는 21세기 한국의, 변기모양을 로고로 삼는 신빨갱이들이 참 밉다. 

 

*사진은 딴지일보에서 퍼온 것으로써, copyright에 문제가 된다면, 당장 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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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4-18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천에는 '산'이 999개 있었다는 이야기 있어요. 높지는 않아도 골고루 오르내리는 조그마한 마을이었겠지요. 그 모든 마을 다 판판하게 깎아 저렇게 '서울 곁 잠집(베드타운)' 만들었지요...

transient-guest 2013-04-18 08:25   좋아요 0 | URL
부평에서 인천공항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어디가 어딘지 이제는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더군요. 예전에는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었는데 말이죠. 먼지도 많고, 칼바람도 많고, 고층으로 꽉 찬 다 거기서 거기인 풍경들 뿐이죠.

야클 2013-04-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신경 써야하는게 아파트 보나는 많지만 저도 단독주택이 좋아요. 마음대로 뛰어다녀도 층간소음 신경 안써도 되는... ^^

transient-guest 2013-04-19 00:4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한국에 산다면 아파트보다는 차라리 다세대 주택을 사서 주거공간, 서재공간 나눠서 쓰고 싶네요. 물론 현실은 쉽지 않겠지만요..ㅎㅎ

댈러웨이 2013-04-1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행기로 인천공항 진입할 때 아파트밖에 안 보이잖아요. 기내에서 외국인들은 진풍경이라고 감탄하고. 하긴 저에게도 늘 진풍경이긴 해요. --; 사진 보니까 눈이 팽글팽글 도네요. 요즘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서로 현관이 마주보게 안 짓나봐요? 미드 간혹 보면 자기 집 앞에서 열리는 것처럼 그런건가요?

transient-guest 2013-04-19 00:49   좋아요 0 | URL
요즘 구조는 그렇더라구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문을 통과하면 양쪽으로 한 unit씩 있는 구조를 봤습니다. 대문이 양 끝으로 복도를 바라보면서 한 구간에 두 unit이 있는거에요.

댈러웨이 2013-04-19 06:02   좋아요 0 | URL
어떤 구조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이거 인천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인가봐요. 그렇게 다녔으면서도 인천이 어땠는지 생각이 안 나네요. 괜히 아는척했다. --; 오늘도 날씨 쌀쌀해요? 코끝 매운 아침공기 좋으네요. :)

transient-guest 2013-04-19 06:23   좋아요 0 | URL
김포공항은 인천공항 생기고나서는 안 가봤네요. 아마 심할듯. 아침 저녁으로는 춥구요, 낮에는 해가 뜨거워서 더운 편이네요. 인천공항 위치가 영종도라서 착륙할 때 진입방향때문에 좀 덜해보여요. 하지만, 내려서 고속도로에 올라오면 장난 아니죠...
 

박한철 헌재소장 후보를 보면서:

이건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  공안검사 출신에 이런 저런 부정축재 의혹도 모자란 그의 '개념'있는 발언을 보니 윤진숙이라는 듣보잡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를 능가하는 인선신공을 보여주는 듯.  미네르바 사건이 정당한 검찰의 수사였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그의 전관예우추정대우가 전혀 놀랍지 않다.  이런 사람이 헌재소장, 아니 그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박근혜를 둘러싼 가신단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고방식과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윤진숙 후보:

무슨 말이 필요할까?

 

류현진 MLB 데뷔승:

잘 했다.  하지만, SF Giants와 붙을때는 지난 번 첫 게임처럼 좀 져주기를.  민족과 국가에게 부끄럽지만 내 지역 연고팀이 잘 하는게 더 좋다.

 

부정선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낸 금번 선거는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수사를 해서 배후를 밝히는 것, 재판, 이딴걸 넘어서 말이다.  박근혜씨는 하야해야 한다는게 내 기본적인 생각.  옛날 옛적.  Star Wars의 표현을 빌리자면 more civilized time이었다면 만백성이 들고 일어났을 만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관권선거 및 조작으로 간신히 2%를 넘긴 것.  멘붕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단순히 data상으로 이길 선거를 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  문재인이 당선되면 망할 조직과 인간들이 똥과 버무린 구더기처럼 뭉쳐서 치뤄낸 부.정.선.거.

 

로맹 가리:

그의 자서전을 보고 있는데, 참으로 이룬 것이 많은 인생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인생이 과연 자기의 인생이었는지 의문스럽다.  다 읽어야 결론이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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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3-04-1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ransient님을 다저스 커뮤니티와 우리나라 엠엘비파크 게시판에다 고발해야겠어요 ㅋ

transient-guest 2013-04-11 01:20   좋아요 0 | URL
핫!! 제가 야구를 잘 안보던 시절에는 박찬호만 응원했었습니다...최근 2-3년간 Giants가 World Series를 두 번이나 석권하면서 팬이 됐지요. 보니까, 야구는 덜 집중하면서 TV틀어놓고 딴짓하기 딱 좋은 스포츠더군요. ㅎㅎㅎ

saint236 2013-04-1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현진이 국대로 뛰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KBL에서도 우리 선수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팀 외국인 선수를 응원하잖아요. 같은 이치가 아닌가요? 미안해 하지 마시길...

transient-guest 2013-04-11 01:21   좋아요 0 | URL
그래도 류현진이라는 한 선수이상, 풀뿌리 스포츠가 거의 없고, 엘리트 체육으로 겨우 유지되는 다소 척박한 환경에서 MLB까지 왔으니까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사실 데뷔전을 보는데, 잘 던져도 좋고, 못 던지면 Giants때문에 좋더라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