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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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있는 악마를 대하는 몇 가지의 선택지들. 악마를 불러내 놀거나, 악마에게 다른 이름을 덧씌우거나, 악마보다 먼저 다른 것에 자신을 넘기거나, 그 악마에게 맞서 대항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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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0-23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종교적 메시지는 없이 훨씬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영화인데, 괜히 특정의 종교적 도그마가 있는 척한다. 그 이유가 뭘까.
 
컨테이젼 - Contagi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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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러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다보면, 이 영화는 미래의 묵시록일까, 아니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현재의 진실일까,라는 물음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진다. 구제역 파동, 밀림들의 파괴, 대형 제약사들의 농간, WHO와 CDC의 음모, 사스와 신종플루의 창궐 등에 관한 몇 개의 뉴스릴을 재주껏 조합하면 아마도 이런 영화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김혜리 씨던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가가 농담삼아 말했던, 이 영화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의 뉴스들로만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실험이라는 말이 어쩌면 아주 농담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만큼 이 영화는 드라마를 거의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아마도 드라마를 만들고자 작정하고 마음먹었다면, 몇 개의 눈물나는 드라마를 여기서 쭉쭉 뽑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 '양상'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그러므로 작정하고 '시사매거진 2580'이나, '추적60분'에 나올 법듯한 배경음악들을 삽입하고, 수천만달러 짜리 배우를 극 초반에 죽여 기꺼이 머리가죽을 벗겨낸다. 그는 자칫 드라마에 빠져 관객이 다른 것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묘하게 드라마가 살아있다. 그것은 물론 이것이 결국 뉴스가 아니라 영화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소더버그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처럼도 보인다. 어떤 리뷰들의 농담들처럼, 단순히 그 메시지란 '손을 철저하게 잘 씻자'와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 첫 희생자인 베스(기네스 펠트로)의 별 의미없어 보이는 동작들을 카메라는 세밀하게 좇는다. 그녀가 물잔을 들고, 카드를 집어들고, 어딘가를 스치듯이 만지고 하는 등의 동작들. 물론 이것의 주 목적은 그녀의 동작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동작들 사이로 유유히 유영하는 바이러스를 잡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여러 사람들의 별 의미없어 보이는 동작들도 영화는 비슷하게 잡아낸다. 그런데 조금은 이상한 것이 있는데, 이 시작은 접촉(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contagion)들을 잡아내기는 하되, 그 접촉은 대체로 사람과 사물의 접촉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일반 상식이 가르쳐주는대로, 당연하게도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물이 접촉했을 때만 전염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직접 접촉, 예를 들어 악수나 포옹 등에서 바이러스는 더욱 신나게 자리를 옮길 것이다. 그러나 소더버그는 그 장면들을 왠지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해답처럼 보이는 장면이 영화 후반부에 제시된다.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자신이 일하는 센터 직원의 아들에게 개발된 백신을 놓아주며, 악수를 하고, 악수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준다. 악수라는 것의 의미는 내 오른손에 무기가 없음을, 즉 내가 당신에게 적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 이 장면이 약간 특이하게 보이는 점은 소더버그는 이 영화에서만큼은 잉여를 조금도 용납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필요하게도 악수의 참의미까지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결국 어떤 잉여를 감수하고라도 이 위치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이고, 그 의미란 결국 소더버그가 담고 싶던 메시지일 것이다. (물론 베스의 딸이 남자친구와 춤을 추며 유투의 노래가 깔리는 장면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메시지란 결국 영화를 뒤집어보는 데에서 생겨난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바이러스의 창궐에 의한 파국을 막는 방법은 결국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접촉이 제로가 된다면, 결국 바이러스에 인간은 패배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고립된 채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는다면 누가 당신을 구하러 올 것인가. 그러므로 결국 최종적인 극복은 인간들간의 연대로 가능한 것이라는 소더버그 식의 믿음이 여기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소더버그 식의 연대는 한편으로 조금은 특이해보이는 점도 있는데, 그 연대는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소셜미디어적인 연대, 혹은 다른 어떤 것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연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버스에서 쓰러진 남자를 구해줄 생각없이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들도 그렇고, 블로거 저널리스트(주드 로)를 영화에서 처리하는 뉘앙스에서도 느껴지지만, 소더버그는 이러한 방식의 연대, 혹은 관계에 별로 신뢰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런 소셜미디어나 인터넷은 전혀 긍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공포의 전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도,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공포심 그 자체'이며, 그것은 도리어 이런 바이러스의 확대보다도 인간 자신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 심각한 문제란 앞에서도 말했지만, 바이러스의 근본적 퇴치 방법인 '긍정적인 연대'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연대는 결국 이성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데, 그 이성이란 공포에 잠식되지 않았을 때만이 그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맷 데이먼이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며, 인간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마지막 블로거 저널리스트가 살아남는 것을 보았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실제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은 왠지 영화 <링>을 연상하게끔 하기도 한다. 영화 <링>에서 가장 무서운 씬은 아마도 사다코가 TV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씬이 아니라, 마지막에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고속도로를 타고 있는 여자의 굳은 얼굴일 것이다. 사다코 바이러스는 자신을 복제하여 전파시키는 자에게 남은 삶이라는 상(혹은 벌)을 내려주었다. 어쩌면 이 <컨테이젼>에서의 바이러스도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 블로거 저널리스트는 바이러스의 생존에 필수적인 '공포의 확산'의 매개체로서 그것의 전파에 큰 공헌을 했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영화 속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었던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의 죽음이 그런 식으로 그려져야만 했던 것과도 맥을 같이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링>의 사다코 바이러스는 이 <컨테이젼>의 바이러스보다는 조금은 나은 점이 있다. 그것은 이 사다코 바이러스는 누구나에게 찾아간다는 점. 돈이 있거나, 없거나, 지위를 가졌거나, 가지지 못했거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축구로 치자면 전술과 전략에 능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적재적소의 배치와 교체에 능한 감독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효율적인 장면 구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즉 그는 숏의 낭비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배우들의 이미지의 낭비 또한 원하지 않는다. 그의 이번 영화가 한편으로 뉴스릴들의 조합처럼 보이는 것은 그 까닭이다. 왜냐하면 뉴스란 무엇보다도 제한된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으로, 가장 필수적인 숏들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것이 뉴스가 아니라, 영화라는 점 또한 잘 인식하고 있다. 아마도 한편으로는 누구나 척 하면 알 수 있는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등장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은 이 영화를 거의 정말 뉴스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거니와, 이 영화의 캐스팅된 배우들은 표정만으로도 짧은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드라마를 거의 배제한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도 단 한 두 장면으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면서 자잘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확실히 자신의 능력을 잘 갈고닦은 장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솜씨이다. 흥행에 개의치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한 그의 결단력과 능력에 경탄을.  

 

 

 

 

덧.  

아..이 영화에서 케이트 윈슬렛은 너무 멋있다. 그녀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주위 사람이나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닌, 자신으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아참... 나도 이제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여 얼굴은 그만 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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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10-1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두 편이나 봤어요. 일본영화,터키영화
일본영화는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근데 왜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요?,,
단지 기억하는 건 영화내용이 아주 강렬했다는 것과 친구 덕에 소수만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거의 침대 수준의 쇼파에서 편안하게 봤다는 사실이지요...^^
내년 쯤에 영화비평이나 공부해볼까 하는데...^^
영화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맥거핀 님처럼 비평을 쓰지요. 저도 해보고 싶네요.

맥거핀 2011-10-20 00:58   좋아요 0 | URL
하기는 사실 저도 공부 좀 하고 뭔가 쓰더라도 써야하는데, 야매로 아무 이야기나 쓰니 아직 잡설에 가깝구요. 비평을 쓰고 싶기는 한데, '비'는 없고, 어설픈 '평'만 있으니..

그건 그렇고 아주 좋은 친구분을 두셨네요.^^ 영화제 후기 글들만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몇 편이나 국내 극장들에 걸릴지 모르겠네요. 인상적인 일본영화라..어떤 영화를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이번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영화가 꽤 괜찮았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혹시 그 영화는 아닌지..아무튼 부러워요~!!
 
비우티풀 - Biutifu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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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utiful [형.] beautiful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든 그에 가깝게 다가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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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0-1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결코 뷰티풀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안다. 이 다르덴적 세계에서 그렇게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그 뷰티풀에 조금이라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가깝게 다가가려고 한다. 그 종착역이 결국 '뷰티풀'이 아닌 '비우티풀'이라도 말이다. 그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 비참한 자신과 마주쳐 후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는 적어도 그 참혹함을 맞서서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에 결코 고개를 돌려서는 안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글쎄.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누군가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영화내내 얼굴을 찌푸릴지도 모르고,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고, 어쩌면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고, 영화관을 벗어나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뒤돌아설 것인가, 참혹함에 고개를 돌릴 것인가.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야 결국 약간의 희망을 보여준다. 영화가 가르쳐준 것은 그것이다. 마지막 희망을 보기 위해서는 절망을 어떻게든 마주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 십분의 희망을 보기 위해서는 백이십분의 절망을 버텨내야 하는 것. 인생이란 그런 것, 마지막 바람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뷰티풀'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 그럼에도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비우티풀'인 것.

맥거핀 2011-10-20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 21> 이후경 기자는 단평에서 '그런데 죄지은 자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민권과 부권을 둘 다 지닌 욱스발에게만 면죄부가 주어질 때, 영화는 거짓 휴머니즘에 빠진다. 그의 가족이 가부장주의적 환영의 비호를 받는 동안 중국인이나 세네갈인의 고통은 끝끝내 외면당한다.'라고 썼다.

글쎄..몇 가지 진술에 대해서 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시민권은 모르겠지만, 부권은 욱스발에게만 주어진것도 아니다. 또 무엇보다도 욱스발에게 과연 면죄부가 주어진걸까. 그는 그의 책임을 부인할 생각이 없으며, 관객 역시도 그 책임을 알고 있다. 가부장주의적 비호라고 했는데, 그것은 영화상으로 볼 때 어떤 비호나 죄사함보다는 일종의 심판에 가까웠다. 한편으로 영화가 중국인이나 세네갈인의 고통을 다른 식으로 다루었다면, 어쩌면 그것이 거짓 휴머니즘이 되지 않을까.

맥거핀 2011-10-20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 수정. 4개->5개.
이 영화의 몇 씬이 며칠이 지난 지금에도 머리 속을 떠돌고 있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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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각과 자각의 쾌락적 독서'라는 말로 짐짓 내뱉는 그 나름의 사회적 독서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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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 Count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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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막상 정리하려고 하니 꽤 힘들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떤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이 영화가 별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조금 생각을 해보면, 과연 무엇을 담고 있는지 조금 의심스러워진다. 요즘의 많은 한국영화가 그러하듯이 이 영화도 상당한 '기획물'의 냄새가 난다. 물론 기획하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 명작으로 추앙받는 많은 영화들도 상당수는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고, 감독의 힘이라기 보다는 제작자의 힘으로 탄생한 명작들도 많다. 그러나 최근 몇몇 한국영화들을 보면, 조금 이상한 기획들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영화들은 일단 그럴듯해 보이는 한줄의 문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들을 잃은 냉혹한 채권추심원이 암선고를 받고 장기이식을 받기 위해 사기꾼 여자를 만난다..아마 이 영화도 이런 그럴듯하고, 뭔가 물씬물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한 줄의 문장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자 이거 돈이 될 거 같으니,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명확한 캐릭터들은 이런 기획에 필수적이다. 주조연할 것 없이 캐릭터들의 성격은 과장에 가까울정도로 선명해지고, 그들은 인상적인 장면들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여기에 조금씩 살이 붙으면서 영화는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맥락을 알 수 없게 덕지덕지 붙기 시작하고, 붙은 이야기들은 처음의 플롯과 조금씩 겉돌기 시작한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깔끔하고 차근차근히 뼈대를 만들지 않고, 일단 큰 줄기만 세운 다음에 가지를 붙여나가는 식이니까. 동시에 뭔가 새로운 입김이 여기에 계속적으로 붙는다. 액션도 붙어야 하고, 감동도 붙어야 하고, 유머도 붙어야 하고, 잔재미도 붙어야 한다. 그러므로 난데없이 신파의 코드가 등장하고, 카체이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처음에 필요하지 않았던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들에게도 뭔가를 만들어주려다 보니, 이상한 잔개그들이 붙는다. 영화는 점점 뭔가 어리둥절해진다.

이 영화 <카운트다운>이 딱 그런 식이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이 조금 안타까운 것은 이 다음이다. 어차피 이런 기획류의 영화에서는 이야기가 덕지덕지 붙게 마련이고, 그 어지럽게 붙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매끄럽게 연결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감독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이 이런 지점이 아닐까.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매끄러운 봉합에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인상적으로 보이는 씬들도 많다. 그런데 그 씬과 씬들이 이상하게도 잘 붙지 않는다. 이 영화는 마치 인상적인 영화들의 모자이크인 것도 같다. 각 씬들은 때로는 날카로운 유머를 발휘하고, 다른 영화에서 잘 볼 수 없는 시원한 액션을 보여주고,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순간을 만들면서 어떤 인상들을 심지만, 그 인상들이 뚝뚝 분절되다 보니, 그 인상의 힘마저도 조금은 의심하게 만든다. 즉 각각의 씬들은 영화에서 툭 튀어나와 다른 어떤 좋은 영화들을 연상시키게 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어떤 인상적인 장면들에 대해서, 혹은 그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준 배우의 훌륭한 연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전체 이야기를 놓고서는 당연히 영화에서 진작 해결되어야 할 필요없는 질문들을 하게 만든다. 그 중 하나만 예로 들자면, 영화의 주인공 태건호(정재영)는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일종의 생존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그의 외면적인 차가운 냉혹함은 겉과는 다르게 속에서의 부글부글 끓는듯한 살고자 하는 욕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살고자 하는 욕구로 차하연(전도연)과 또다른 의미에서 목숨을 건 동행을 하게 된다. 그는 왜 그렇게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의 화신이 되었을까. 단지 젊은 나이에 죽는 게 억울해서? 아니면, 아들의 죽음에 어떤 책임을 느끼기 때문에? 아들이 이 냉혹한 세계에서 죽었기 때문에, 자신만이라도 강해지려고? 냉혹해지는 것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 때문에? 살아남아서 자신의 방식으로 이 사회에 어떤 복수를 행하려고? 이 중 어떤 것도 답일 수 있고, 몇 가지를 조합한 것이 답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사실 태건호가 영화의 거의 마지막까지 아들이 죽은 진정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이 답변만으로는 뭔가 군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어떤 답에도 모호한 입장을 내비친다. 아니, 어떻게 보면 뭔가 입장이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그것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두 번이나 반복되므로, 어떤 중요한 메시지처럼 보이는 '아이러니(irony)'라는 것에 그 답변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 뜻풀이까지 보여지듯이, 아이러니는 '예상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다. 즉 다른 말로 하면 '황당하다'는 말이다. 이 '황당하다'는 말은 결국 그 이유나 의미는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황당한 것은 황당한 것이지, 그 황당한 것에 무슨 이유가 있고,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저 우연이 빚은 결과일 뿐이며,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의 이야기로 가져와본다면 태건호가 그렇게 된 것은 그저 그렇게 된 것일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다른 수많은 것에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차하연의 딸이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은 그저 설명될 필요 없이 아이러니에 가까워질 뿐이다. (마지막 감동 코드를 넣으려면 필요해!) 영화 속 여러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나, 뭔가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을 보면, 개연성이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그것 역시 아이러니할 뿐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마지막 태건호는 조명석(이경영)과의 만남에서 차하연을 스와이(오만석)에게 인질로 맡기고, 뭔가 승부수를 띄우는 듯 하지만, 스와이가 차하연을 데리고 그 장소에 나타남으로써, 멋진 대결은 김상진씩 떼싸움이 되어버리고, 사건은 결국 태건호가 부른 경찰에 의해 일단락된다. 그렇다면 그 전에 무슨 이유로 스와이에게 나타나 담판을 짓는 듯한 액션을 취하는지? 참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그 '아이러니'라는 것으로 가려진 의미를 관객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건다. 그것은 몇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끔 숏의 빠른 분절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차하연의 사기행각을 표현하는 장면들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는 숏의 빠른 분절과 타이트한 리듬과 인상적인 대사들로 나타내어져 있다. 그러나 이 장면들이 굳이 이런 방식으로 표현될 필요가 있을까. 차하연의 사기행각은 사실 훨씬 간단한 방식이니까. 차하연의 말대로 그런 남자들이란 이쁘고, 돈 좀 가지고 그럴듯하게 말해주면 넘어오는 단순한 존재들일 뿐이니까. 차하연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 굳이 그런 다른 몇몇 영화들에서 보이는 그런 식의 설명들이 필요했을까 의문이다. 숏의 잦은 분절로 빠른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은 복잡한 이야기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방법이지, 단순한 이야기를 복잡한 것처럼 보이게 현혹시킬 때 쓰는 방법이 아니다.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이 영화가 캐릭터를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는 여러 인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나름 중요한 장면들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인상적인 장면을 소화해 영화에 활력을 부여하고는 다시 바로 사라질 것을 요청받는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아동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와 비슷하게 등장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어떤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 캐릭터를 영화에 불러들일 때는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화는 이들이 단지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들이 단지 이미지로만 스크린에서 소비될 때는 어떤가.) 이들은 단지 관객에게 눈물샘을 자극할 요량으로 이 스크린에 불려나와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 기획물의 맥락에서 이들은 단지 다른 어떤 목적에 의해서 이 앞으로 소환된 듯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태건호에게 추궁당한 장애를 가진 늙은 부모는 그렇게 소환된 후 곧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질문도 하고 싶다. 태건호의 부모가 그렇게 장애를 가진 인물로 표현될 이유가 있을까. 태건호의 아들이 또 장애를 가진 인물일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캐릭터들은 결국 무엇을 위함인가. (비슷한 것을 차하연의 딸에게도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10억을 그렇게 쉽게 뿌리치는, 친부모에게 버려진 채 어렵게 살아온 10대 소녀가 단지 '쿨한 것'으로만 느껴질 수 없는 이유. 웃으면서도 어리둥절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 <카운트다운>을 보고 나오니 결국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강한 캐릭터도 있고, 재치있는 대사도 있고, 인상적인 씬들도 있다. 그 인상적인 씬들은 액션 장면에서는 충분히 쾌감을 느끼게도 하고, 감동을 자아내는 씬에서는 충분히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것이 대중영화로서의 전부일까, 혹은 대중영화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극대치일까. 요즘의 어떤 한국영화들을 보면, 영화의 전체적인 매끄러움이 유달리 눈에 띈다. 예전의 한국영화들에서 잘 찾아볼 수 없던, 할리우드적인 매끄러움이 점점 대세가 되어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영화들은 어떤 할리우드 영화들의 일부 특징들도 같이 흡수하는 것 같다. 그것은 질문을 하기는 하되, 그 답을 극도로 빠른 시간에 관객들에게 되돌려줘 일종의 쾌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생각 따위는 하지마라, 생각은 내가 대신해준다는 식이다. 당신은 재치있는 대사 나올 때 적당히 웃어주고, 액션씬 나올 때 적당히 쾌감을 느껴주고, 감동씬 나올 때 적당히 따뜻해지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 영화 <카운트다운>은 조금 다른 방식을 취한다. 뭔가 질문을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그 답변은 이거다. 그건 그냥 아이러니한 일이라는 것, 즉 황당한 일일 뿐이니 생각하지 말라는 것. 그게 무슨 의미일까...생각해본다.




덧.
요즘에 개봉 전주 주말에 유료시사회를 하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말이 유료시사회지, 그저 미리 땡겨서 하는 주말개봉일 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빠른 입소문으로 동시에 개봉하는 영화 사이에서 대세를 선점하려는 배급사들의 고육지책일 것이다. 대체로 입소문으로 선전할 것 같은 영화들 - 다른 말로 하면, 조금 '자신이 있는' 영화들 - 이 이런 전략을 쓰는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글쎄. 개인적으로는 이 <카운트다운>은 조금 호불호가 팽팽하게 갈릴 것 같은 영화다. 이런 '불호'에 가까운 나같은 관객의 이런 리뷰가 먼저라서 죄송합니다.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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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6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6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1-09-2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고편 보면서 아 전도연 썩소(?)가 매력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묘한 미소에 이끌려 영화를 보면 안되겠군요....^^
얼마전 도가니와 활을 연이어 봤어요. 전 도가니가 더 좋았는데...맥거핀 님도 물론 봤겠죠?.. 정말 영화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좀 있음 부산국제영화제 하는데..한 몫하시는 건가요? 아님 구경만?,,,,ㅎㅎ
아 10기 활동하게 되었어요. 이 기쁜 소식을...ㅋㅋ

맥거핀 2011-09-29 13:56   좋아요 0 | URL
전 아직 도가니는 못봤구요. 활만 봤습니다. 도가니 보러가고 싶기도 한데, 보게 되면 혈압오를 거 같아서 주저하게 되네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무래도 혈압관리를..쿨럭쿨럭.;;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을 하는군요. 저는 아무래도 먹고 살려다 보니(?) 이번에는 가보지 못할 거 같아요. 예전에는 주말에 살짝 보러갔다오기도 했었는데, 그러려면 가는 것도 가는 거지만, 그 전에 주말표 구입이니, 기차표 구입이니, 숙소 컨택이니 가기도 전에 피곤해지고 마니까요(지금으로서는 남는 표가 있을지도 의심스럽고..;;). 감성적으로는 부산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이성적으로는 너무 머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