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엄마가 좋아하는 시집이었다. 서른은 이미 끝난지 오랜 시간이었을텐데, 엄마에게 서른은 어떤 나이였길래...혹은 서른의 의미를 나이 그대로의 30살이 아닌 서른 이후의 삶까지 포괄적인 의미로 다가온 것인지....모르겠지만 중년의 여성에게 그녀의 시집은 자작자작 젖어드는 가을비마냥 구슬프면서도 가슴에 박히는 그 무엇이되었나보다.

 

이렇게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최영미 시인이 [청동정원]이라는 소설을 낸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내용이 사뭇 가볍지 않아 두번 놀라고 말았다. 많은 작법서에서 '첫문장에서부터 사로잡아라'라고 하고 있지만 실상 그 첫문장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지만 [청동정원]의 그 시작은 시어도 아니면서 시각적 공감각화를 완성해내면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p7   4월에 이미 우리는 5월의 냄새를 맡았다

 

라니. 계절의 변화는 눈으로 제일 먼저 확인된다. 그런데 냄새를 맡았다니...5월의 냄새는 대체 어떤 향이라는 것일까. 카페보다 다방, 찻집의 간판이 더 흔했다는 1980년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군사정권과 자본가들 그리고 체제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이 살았던 시대를 함께 하지 않아 100%공감하긴 어렵다. 하지만 518  1주기를 맞이해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도서관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페이지를 눈으로 읽는 순간 그 모습들이 영화필름처럼 눈 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현실이었을 그 시절이 내겐 책 속의 한 장면이 되어 펼쳐졌다.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른 것 같지 않은데, 시대는 이처럼 많이 변해 버렸다.

 

시대가 암울해서였을까. 동혁의 학대를 참아내며 청첩장 돌렸으니까 결혼해야한다는 아버지의 대답에 반기를 들지 못해 애린은 결혼해야만했고 이혼했다. 지금 시대의 여성들이 들으면 코웃음치겠지만 소설 속 애린은 '집안의 치욕'으로 불리며 '데모했고 감방 갔다왔고 거지같은 놈과 결혼했다가 실컷 두드려맞고 이혼당한 여자'가 되어야했다. 가족 속에서조차.

 

p258 무엇이 지금 끝난 것인가?

 

정말 무엇이 끝난 것일까. 시대가? 사상이? 결혼이? 여성의 핍박받는 삶이? 타인의 시선이? 정말 무엇이 끝나기는 한 것일까. [청동정원]은 그냥 읽고마는 소설이 아니었다. 시인이 던진 화두는 가슴에 깊이 패여 생채기를 냈고 그 생채기 속에 삶이라는 빗물을 채워넣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왠인일지 그랬다. 그래서 나는 [청동정원]을 쉽게 손에서 놓질 못했다. 마지막 장에서 또 첫장으로 되돌아가는 되돌이표가 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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