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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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기업은 '인재경영'에 힘쓴다. 경영과 마케팅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조선이라는 나라는 과연 인재경영에 탁월했는가? 묻는다면 최하위 점수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초대 수장인 이성계에게 속삭이면 그는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앉지 않을까.

 

조선은 여러모로 틀이 강하고 닫힌 국가였다. 그 울타리는 백성을 보호하기에는 너무 물렀으며 재능을 방출하기에는 너무 억압해대는 잣대의 울타리였다. 물론 노비출신도 그 재능이 하늘을 찌르면 면천되기도 하고 때론 녹봉을 먹게 되기도 했는데 15c세종대왕 시대 과학자였던 장영실은 '대호군'이라는 벼슬에 올랐고 목효지는 풍수학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며 화공 이상좌는 <송화보월도>를 후세에 남겼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의 신분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더 많은 것들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중 장영실은 열 여섯의 나이에 가뭄이 든 마을에 물을 퍼올리기 위해 "무자위 설계도"를 그려냈고 왕의 후광을 입고 여러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p125  하늘은 결코 성심을 다해 간절히 노력하는 인간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다큐멘터리 pd인 진석은 루벤스의 그림 속 한복 입은 남자에 대한 특집 방송을 구상 중이었는데 우연히 마주친 엘레나라는 외국인 여성으로 인해 그림 속 남자에 대한 큰 실마리를 얻게 된다. 엘레나 꼬레아. 정감가는 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엘레나는 조상이 먼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오랫동안 보관되어져 온 비망록의 내용이 궁금해 진석에게 접근했는데 건네 받은 진석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비망록은 여러 글자로 적혀져 있었다.

 

5개국어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글을 집필한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창작노트를 펼쳐보게 된다면 이런 느낌을 받게 될까. 아주 지적인 주인의 손때를 탔을 낡은 노트 속 글과 그림속에서 주인을 짐작케할 실마리들을 풀어가던 진석은 그가 혹시 역사속에서 의문스럽게 사라졌던 '장영실'이 아니었을까 의문을 품게 되고 그 의문은 진실의 조각들과 맞물려 현실이 되어 나간다.

 

현재의 진석과 역사 속 장영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이어지는 [한복 입은 남자]는 잘 짜여진 퀼트보처럼 서로 이야기를 보완하며 재미를 증폭시켜 나갔는데 특히 노비에서 왕의 신임받는 장인이 되어 함께 고뇌하고 필요품들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는 어느 회장님들의 성공서보다 더 가슴 벅차게 심장을 울렸으며 비천한 신분으로 아름다운 공주를 마음에 품은 대목에서는 그 결말이 뻔해 가슴시리게 만들었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대대로 노비로 살아가야할 팔자. 하지만 사람이 재산이라...인재를 알아보는 상급자들에 의해 발탁되어 측우기도 만들고 해시계도 만들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재능을 시기하는 자가 너무 많아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야했던 한 사내. 중국의 '장보고'로 불릴 정화대장과 함께 머나먼 바닷길을 건너 서양에 도착했을 때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들은 과연 어느 만큼 놀라움을 던져주었을까. 그에게.

 

p416 좋아, 나를 인정해 주는 곳으로 가겠어.

 

장영실이라는 한 인간의 재능을 품기에 조선이라는 그릇은 너무 작은 그릇이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곳에서 그 뜻을 펼친 그는 갑인자를 전수해 구텐베르크로 하여금 인쇄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비차도를 본 다빈치가 후대에 라이트 형제로 하여금 비행기를 만들게 도왔으며 자격루는 서양에서 시계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게 만들고 있다.

 

천재 발명가 장영실. 우리는 신분이라는 족쇄로 인해 그를 잃었고 그는 사대부가 즐겨 입던 옷과 망건을 쓴 채 500년 만에 그림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연어가 그 고향으로 되돌아오듯. 역사적인 사실들을 추적하며 밤새 신나게 다빈치 코드를 읽어댔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한복 입은 남자를 숨이 멈춘 것도 모를만큼 정신없이 읽어댔고 정말 재미난 이야기를 발견했노라고 그 새벽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았다.

 

좋은 것을 소문내고 싶은 마음처럼 이 이야기는 신나게 누군가에게 소문내고 싶어지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 속에서 그의 표정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나를 찾아줘" ??  "나는 잘 있어"!!!

 

그는 분명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조국을, 자신을 아꼈던 사람들을.

그 마음이 충분히 담겨 읽는 내내 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앞에 인간이 만든 법과 틀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깨닫게 되어버렸다. 제도는 사람의 행동을 제지할 수는 있어도 그 마음을, 그 재능을 묶어두기에 턱없이 약하고 약한 것.

 

이 이야기가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된다면 나는 장영실이 정말 멋진 사람으로 캐스팅 되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날개를 달고 달아 이 재미난 이야기가 실제처럼 글로벌하게 퍼져나갈 수 있기를....! 내가 밤새 재미나게 읽은 그 시간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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