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나는 실제 벌어진 당시의 모든 상황과 정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실상 열흘이라는 기간이 산술상으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5.18의 경우는 단순한 시간 개념의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특수성을 가진다. 한 도시 전역에 걸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이 동시에, 끊임없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상황 안에는 그야말로 서로 다른 수백 수천 가지의 사건과 무대와 장면, 그리고 수만 수십만 가지의 서로 다른 체험과 반응과 해석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가히 거대한 폭포처럼 급격하고 복잡 다양하게 분출되는 그 같은 흐름들을 불과 몇 권의 소설로 충분히 담아낸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나는 그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되, 세부적인 구성에 있어서는 보다 핵심을 이루는 몇몇 중요한 사건과 사실들을 중심 기둥으로 삼아 소설을 전개시키고자 했다. 역사적인 실재 사건을 소설로 다루는 데는 작가의 상상력이란 필수적이면서 또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사실과 상상력ㅡ 그 둘 사이에서, 적어도 이번 소설에 관한 한, 나는 최대한 사실성에 의지하려 했다.

그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체험담이나 증언, 이미 발표된 자료들을 충분히 참고했다. 물론 내 자신의 체험 역시 유용했다. 특히 이 분야에선 기념비적이라고 할 2만 5천여 매의 방대한 자료집인 "광주민주항쟁사료전집"(한국현대사사료연구회 편)에 수록된 5백 명의 증언록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 같은 자료들 간에는 필연적으로 각기 어느 정도의 편차가 드러나게 마련인데, 나로서는 신중한 검토 과정을 거쳐 나름대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그것들을 작품 속에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또 실제 사건 발생 시각에서부터 당시의 시가지 풍경, 건물의 위치, 도로와 골목, 시민들의 분위기 등등에 이르기까지 가급적 사실 그대로 재현하고자 애썼다. 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어떤 공간이나 상황에 대해 더러 지나치리만큼 세세하고 지루하게 묘사한 부분이 적지 않을 터인데, 그것은 당시의 시간적, 공간적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심 때문이다. 물론 그 욕심이 때로는 소설적인 긴장감을 다소 이완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로서는 이것이 단지 소설로서만이 아니라 비교적 사실에 충실한 하나의 기록물로서도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작품을 써왔던 것이다."

ㅡ 임철우의 "봄날 1" 13~14쪽


소설가 임철우는 서문에서 지난 십 년 동안의 집필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올해는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지 40년이 되는 해이고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작가는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이 작가가 지난 세기에 썼던 글을 내 서재에 옮겨 적으면서 글쓰는 이의 집념과 정신과 윤리성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학살의 주동자들(전두환과 신군부)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들의 나팔수와 수족 노릇을 해온 무리(미통당과 지만원 부류)들, 이따위 인간들과 여전히 내가 한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언제나 말하는 바이지만 사람이기를 완전히 포기한 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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