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 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D에게 보낸 편지 88~89쪽 중에서)

 

 

 

 내가 만일 플라타너스라면 그 그늘에 들어가 쉴테요

 내가 만일 책이라면 잠 없는 밤, 지침 없이 읽을 테요

 내가 만일 연필이라면

 손가락 사이에서 나른히 있지만은 않을 테요

 내가 만일 문이라면

 선인에겐 열어 주고 악인에겐 닫아걸 테요

 내가 만일 창이라면, 커튼이 달려 있지 않은 드넓은 창이라면

 온 도시 전체를 내 방으로 불러들일 테요

 내가 만일 하나의 단어라면

 아름다움을 공정함을 진실함을 요청할 테요

 내가 만일 말이라면

 나는 내 사랑을 나직이 말할 테요.

 ( 존 버거의 모든 것을 소중히하라 44~45쪽 중에서)

 

 

1.

칼로 오려낸 것인가 ?  붓으로 그려 낸 것인가 ?

조화신공(造化神功)이 사물마다 야단스럽다.

정극인의 상춘곡의 한 구절로 봄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내 마음을 대신해 본다.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옛 사람들의 풍류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수풀에 우는 새는 봄 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마다 교태로다...

엊그제 겨울을 지나고 봄이 찾아오니, 연두빛 싹들이 소리없이 땅 위로 올라오고, 온갖 꽃나무들은  봉우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의 생명력을 조물주의 신기한 재주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주인없는 자연은 누구나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참 공평하고 감사한 일이다. 따사로운 봄 기운은 세상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을 가릴 것 없이 희망을 안고 다가 온다.  부귀도 날 꺼리고. 공명도 날 꺼리니 바람과 달 이외에 어떤 벗이 있겠냐고 말한 정극인의 마음에 100배 공감하는 이 봄이 그냥 좋다. 마냥 좋다. 

물론 나에게 특별히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내고 있지만 계절이 주는 특별한 힘이 나를 즐겁게 한다. 봄 기운을 이기지 못한 새처럼... 봄이 되면 자꾸만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사로 잡힌다. 지난 주부터 시작한 북바인딩 수업은 또 다른 도전이다. 난 유난히 손재주가 없는 편인데, 예를 들어 바늘을 잡으면 손이 떨리고 자꾸만 땀이 난다. 그리고 뜨개질이나 십자수을 하다보면 두통까지 와서 끝까지 완성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으로 제도를 하고 하드 보드지로 표지를 재단한 후 꼼꼼하게 풀칠을 해서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재미있게 했다. 아직은 표지를 만드는 작업만 완성된 상태인데, 속지를 실로 엮는 바인딩 작업이 너무 기대된다. 지금은 가장 기초가 되는 다이어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데 최종적으로는 아끼는 책들을 새롭게 바인딩해서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올 겨울 쯤이면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을 가죽으로 새롭게 바인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뭔가 배우는 일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고 즐거움이다.

그리고 아주 아주 멋 훗날, 알라딘 서재에 쓴 내 글들을 모아서 바인딩해두고 싶다. 세상에서 유일한 핸드 메이드 책으로... 늘 이렇듯 생각만 야무지다.

 

 

 

 2.

욕망과 욕심의 차이는 무엇일까 ?

욕심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며, 욕망은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또는 그러한 마음을 의미한다.

이번 달에도 나는 욕심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마음에 사로잡혀 여러 책들을 구입했다. 나름대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선별해서 구입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서재에 올라온 리뷰를 읽거나, 책을 읽다가 작가가 인용한 책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든다. 신간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과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 그리고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를 구입했다. 최근에 가장 관심있게 읽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은 존 버거이다.  거짓과 불의, 새로운 형태의 독재에 대해 저항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다.  몇해 전부터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를 꾸준히 모으고 있는 중인데 존 버거의 대다수의 책들이 열화당에서 출간되어 더 반가웠다.

 

모든 욕망이 다 자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유란 하나의 욕망이 인정받고 선택되고 추구되는 과정과 경험에 다름 아니다. 욕망의 목표는 대상에 대한 소유가 결코 아니다. 욕망의 목표는 대상의 변화다. 욕망은 바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바라는 것이다. 그 바람에의 성취가 모두 자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는 그 바람이 지고(至高)함을 확인해 준다.

하느님은 지금 가난한 자의 곁에 계신다.

(존 버거의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13쪽에서)

 

 

 

 

 

 

 

 

 

 

 

 

 

 

 

 

 

 

 

 

 

 

 

 

 

 

 

제목과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그리고 목차와 머릿말이나 옮긴이의 말, 뒷표지만 읽어도 책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킨 것이니 책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자.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다. 느긋한 마음으로 마음가는대로 읽어보자... 이번 주에 읽은 책 중 단연코 최고의 책은 D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편 앙드레가 거리막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에게 쓴 가슴 저린 편지글이다. 서로 만난지 60년 만에, 결혼한 지  58년 만에 오랫동안 살아온 정든 집에서 함께 삶을 마감한 부부의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국내 작가의 소설을 참 오랫만에 구입했는데, 김중혁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날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3.

크기는 작았지만 탱글탱글한 딸기가 향이 너무 좋아 한 바구니를 구입했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그냥 먹기는 좀 그렇고, 우유와 꿀을 넣어서 갈아 먹으니 한결 맛이 좋다. 이른 저녁을 먹고 출출한 마음이 들어 오랫만에 야식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번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 주부놀이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열심히 만들었다.하지만 먹고 나니 느는 것은 몸무게요, 쌓이는 것은 설거지 뿐... 식구들의 반응은 뭐 그닥 그랬다. 도대체 감사를 모르는 족속들이다. 편하게 앉아 개콘을 보며 일요일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열심히 닦고 썰고, 사리면까지 삶아서 만들었는데... 맛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아니 그냥 침묵하며 먹는다. 아들을 키우는 일은 참 드라이 한 일이다. 도통 재미가 없다. 결국 내가 만들어서 내가 제일 많이 먹어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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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4-03-2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마지막에서 그만......빠 ㅇ! 지송~~

착한시경 2014-03-27 19:58   좋아요 0 | URL
ㅎㅎ 누가 가을이 식욕의 계절이라고 했을까요~ 전 봄이 되니 세상 모든 음식이 너무 맛나서 고민이예요,,, 제가 만들고 제가 다 먹고~^^

서니데이 2014-03-2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엄마가 많이 먹어, 하고 말하면, 이 글 생각날 거 같아요. ^^;;
(그렇지만 사진 속의 간식은 좋아 보이는데요??)

착한시경 2014-03-27 20:00   좋아요 0 | URL
그쵸,,,사진은 그럴 듯 하죠~ 전 먹을만 하던데~ 그들은 너무 MSG에 익숙한지 앞으로는 사다 먹자고 하네요 ㅠ.ㅠ 흑~

잘잘라 2014-03-26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도대체 감사를 모르는 족속들이다. 에서 한 번,
내가 만들어서 내가 제일 많이 먹어서 슬프다. 에서 또 한 번.
빵 터집니다. 아이고. 이를 우째.. 저 눈물 맺혔어요. ㅎㅎㅎㅎㅎㅎㅎ

착한시경 2014-03-27 20:02   좋아요 0 | URL
샤방샤방한 원피스 입으려면 몸무게 감량에 돌입해야 하는데,,, 어쩜 좋죠~ 하여튼 그날 혼자 배터지게 먹고,,, 서러운 맘에 잠들었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