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 파리에서 살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면 그 후에 당신이 어느 곳에서 살든 파리는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니까" 20대 젊은 시절 6년 동안 파리에서 살았던 헤밍웨이가 만년이 돼서 젊은 작가에게 한 말이다. 그의 말 그대로 "움직이는 축제"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회고록에는 그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파리 시절 생활에 보탬을 준 은인으로 '실비아 비치가 경영하는 서점이자 도서관'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등장한다. 그 밖에도 이곳에는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에즈라 파운드,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같은 작가나 시인들이 모였다.

- 책 160쪽에서 -

 

 

 

 

1.

봄! 봄! 봄! 봄이 왔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때의 향기 그대로.... 이 봄이 가기 전에~

하루 종일 봄,봄,봄을 흥얼거리며 이 노래를 100번 쯤 들었다.

이른 아침...며칠째 계속되는 꽃샘 추위에도 목련 나무에 여린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보송보송한 솜털에 쌓인 봉오리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하던지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바람이 제법 차게 느껴졌지만 단연코 3월은 봄봄봄...봄인게 틀림없다.

낮이되면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어린 잎사귀들이 봄바람에 나폴거리고, 아스팔트 좁은 틈새로 작은 풀꽃들이 앞 다투어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은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에서 봄은 다가온다. 나는 이 봄의 발랄함과 경쾌함을 긴 겨울동안 그리워했다. 막연히 봄이되면 즐거운 일, 기쁜 일이 나에게 다가올 것만 같은 기대에 가슴이 설레인다. 행여 우울한 일이 생기더라도 금방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계절이 봄이다. 짧은 봄은 우울해하거나 슬퍼할 겨를 조차 없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시인 김영랑처럼 봄이 지나면 그 뿐 나의 한해는 다 가고 말아 나는 하냥 섭섭할테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찬란한 봄을...너무 찬란해서 슬퍼지는 봄을 말이다.

봄이 되니 우선 마음에 이유없는 기쁨이 강처럼 넘치고, 다양한 나물들로 식탁이 풍성해지고, 새학년이 시작되어 아들이 학교에 다니니 다시 자유가 찾아왔다. 아파트 상가 앞에 나물을 내어 놓고 파는 노점상 좌판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달래와 냉이, 취나물, 돌나물, 참나물, 방아나물... 그리고 향기 좋은 딸기는 보기만 해도 상큼하다. 그저 봄에는 땅에서 자란 나물을 막 삶아서 무쳐내거나 바로 물에 씻어 송글송글 물기가 맺힌 상태로 쌈을 싸 먹는것이 제일 좋다. 마트에서 랩에 포장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재래시장이나 노점에서 소쿠리에 푸짐하게 담긴 것을 사는게 좋다. 무엇보다 한 줌 더 집어 넣어주는 덤이 있어 좋고 봄의 기운까지 더불어 오니 흥겹다. 식구가 적다며 극구 사양하지만 할머니는 꼭 한 주먹을 더 넣어 주신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한 잎도 헛으로 버리지 못하겠다. 어제도 속이 노랗게 꽉찬 배추를 한 포기 사서 된장국을 끓이고 듬성 썰어 겉절이를 해서 먹었다. 깨소금과 매실청, 고추가루를 넣어 버무린 겉절이를 보니 식탁에도 봄이 한가득이다.

나는 풍성한 이 봄이 너무 좋다.

 

 

 

 

2.

재활용 수거일에 버리려고 모아 두었던 쥬스병을 이용해서 색연필 꽂이를 만들었다. 씻어서 색연필만 담아 두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여서 면 레이스로 장식을 해 보니 제법 그럴 듯 해 보였다.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어 사진까지 찍어두고 가족들에게 자랑을 했다. 다이소에서 천원 주고 산 레이스 끈을 크기에 맞춰 자르고 글루건을 이용해서 고정시켰다. 12개 음료수 병 중 4개는 색연필꽂이로 사용하고 나머지 4개는 원두를 넣어 방향제로 쓸 예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4개 병은 지끈으로 묶어서 화병으로 사용할까 ?

바쁘게 지낼 때는 필요한 것은 대부분 돈으로 해결했는데 요즘은 느긋한 오전 시간에 청소를 하거나 빈 화분에 꽃을 심거나 아니면 이렇게 손으로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 주에는 원단 시장에 가서 연두색 체크 무늬 천과 광목 천을 떠서 커텐을 만들어 왔다. 큰 돈이 아니어도 좋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 작고 소박함이 좋아졌다. 천원짜리 작은 화분에 오백원짜리 다육 식물을 옮겨 심으며 느꼈던 흙의 감촉과 정겨움이 좋아서... 그저 봄이 되면서 새롭게 시작된 모든 일들이 고맙고 기쁘다.

내가 손수 심고 보니 다 예쁘고 귀하다. 빈병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다 쓸모있어 보인다.

손을 움직여 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알아가는 봄이다.

 

 

 

 

3.

우리 가족은 봄이 되면 꼬옥 전주 나들이를 간다. 차분한 마음으로 전동 성당을 둘러보고, 고즈넉한 한옥마을 골목들을 느릿느릿 걸으며 예쁜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도 기웃거려보고, 길거리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들로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몇 해전부터는 도이름도 알 수 없는 간식들과 줄을 길게 선 식당들로 인해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외할머니 솜씨와 풍년제과 그리고 수제만두 가게는 줄이 너무 길어서 뭔가를 먹거나 사겠다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이런 번잡함 자체가 싫다. 시끄러움을 피하고 싶어서 찾았던 곳이 점점 상업화되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팡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며 먹고 있었고, 꼬치를 한입 가득 물고 있거나 사람 머리보다 큰 솜사탕을 손에 든 사람들도 많았다.

요즘 전주는 사람 구경하러 간다고 하는게 더 맞다. 남편과 함께 예쁜 소품 파는 가게에 들렀는데 노숙자인 듯 한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로 가게 바닥을 치며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낮부터 술을 드신 듯... 알아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가게 입구를 막고 계시니 다시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워 참 난감했다.

젊은 가게 주인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는데... 남편이 할아버지 옆에 앉아 조근조근 말을 붙이고 있는게 아닌가 ? 좁은 마음에 손을 뻗어 남편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눈짓을 마구했다. 괜시리 끼여들었다가 술 취한 할아버지가 휘두르는 지팡이에 맞기라도 하면 어쩔까 ? 그리고 가게 주인이 해결해야 할 일을 왜 나서고 그럴까 ? 하지만 남편은 아랑곳없이 할아버지 옆에 찰싹 붙어 앉아 뭘 도와드리면 되겠냐고 친철하게 묻는다.

112를 불러달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갑자기 낡은 신발을 벗기 시작하신다.

겨우내 꽁꽁 얼어 동상에 걸린 발은 검붉은 색으로 변하여 퉁퉁 부어 있었다. 발이 아프다며 112를 불러 달라고 하신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차분하게 다 들어주니 할아버지의 화도 조금은 누그러지신듯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우지셨다. 우리는 112를 불러 상황을 이야기 한 후 가게를 나왔다.

누군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좀 더 빨리 귀 기울였다면 그리 화를 내지 않으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할아버지가 겪은 겨울이 얼마나 혹독하고 힘들었을지를 그 발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 아픈 발로 온 거리를 헤매고 다니셨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니 아프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녁값이라도 드리고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 착한 일을 할 기회였는데 또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그 할아버지에게도 이 봄이 희망이 되길 기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한 남편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4.

 

 

 

 

 

 

 

 

 

 

 

 

 

 

 

 

 

 

 

 

 

 

 

 

 

 

 

 

 

최근에 장영희 수필집을 읽고 있는 중이다. 이 봄에 읽기 좋은 편안한 문장들과 소개된 시와 책들이 참 좋다. 그리고 박완서의 노란집은 하루종일 세 군데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커피를 네 잔 마시며 다 읽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그런데 봄 햇볕이 좋은 날은 책을 읽기보다는 꽃구경을 갈 예정이다. 나는 지금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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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11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씨가 할아버지 마음을 읽으셨나 봐요.
아저씨한테서는 맑은 빛이 흘러나오는가 봐요.
그 맑은 빛이 온 집안에 감돌기에
착한시경 님도 예쁜 손을 놀려
멋진 연필꽂이를! 책꽂이에 살포시 얹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