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Ghost Lab, 2021

  감독 - 파윈 푸리킷판야

  출연 - 타나폽 리라타나카조른, 파리 인타라코말리야수트, 누타니차 둥와타나와니치

 

 

 

 

  ‘글라’와 ‘위’는 오랜 친구이고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이다. 어느 날, 야간 근무를 하던 중 둘은 귀신을 목격한다. 둘은 그때부터 사후 세계와 유령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귀신이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닌 법. 연구는 더디고 둘은 지쳐간다. 그러다가 귀신이 살아생전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둘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마는데…….

 

  사후 세계에 관해 연구하는 의학도들이 겪는 이상한 일들이라는 이 작품의 설정을 읽으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미국 영화 ‘유혹의 선 Flatliners, 1990’이다. 하지만 극의 흐름이나 분위기는 완전 다르다. ‘유혹의 선’이 사후 세계를 다녀온 이후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다루고 있다면, 이 영화는 귀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노력하는 두 젊은 의사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초반에 둘이 나누는 대화, 그러니까 요즘은 왜 귀신이 찍힌 사진이 거의 없냐면 카메라에 귀신이 찍히지 않기 때문이라거나 망막에 비치지 않는 귀신의 존재 등등을 보면, 과연 이 작품이 어떤 결말을 보여줄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과학적 증거를 통해 귀신이 있다는 걸 말할 것인지, 아니면 과학적 증거는 없지만 기이한 경험을 통해 귀신의 존재는 둘의 마음속에 두는 거로 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귀신은 없다고 결론짓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뒷맛이 찝찝한 결말을 맞이할지 기대도 되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유혹의 선’을 한 번 더 보는 게 낫다. 음? 리메이크작으로 봐도 되냐고? ‘유혹의 선’이 리메이크도 있었던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한국 영화 ‘여곡성 女哭聲, 1986’과 더불어 리메이크작이 없는 몇 안 되는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유혹의 선’이 아니었던가! (혹시 오해할까 덧붙이지만, 두 작품 다 리메이크작이 있다. 다만 내가 그걸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너무 형편없고 원작의 명성을 깎아먹으니까 말이다.)

 

  이 작품에서 제작진은 극 중 인물의 입을 빌려 당당하게 말한다. “‘셔터 Shutter, 2004’는 엉터리야”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라운 걸 보여주려고 저런 건방진 말을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뭐 이런 시X아! 싸우자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셔터’는 적어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중간에 눈을 떼도 별 무리가 없는 흐름이었다. 어찌나 극의 전개가 억지스러운지,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무엇보다 중간에 ‘이 X끼들 뭐하자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귀신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나온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코마 상태에 빠진 환자를……. 이하 생략. 또 하나는 역시 귀신에게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이라고 그를 화나게 하려고……. 역시 이하 생략.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건, 얘들이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연구를 한 건 아니다. 처음부터 나쁜 애들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냥 연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린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바뀌는 모습에 중점을 두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두 주인공은 여전히 착한 애들로 나온다. 음, 그래 부모에 대한 사랑만 없었던 거겠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그래서 그런 거겠지……. 라고 이해해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이 씨X X끼들아, 죽여놓고 보고 싶다고 질질 짜는 건 도대체 어떤 정신병인 거냐?

 

차라리 연구에 집착하다가 파멸로 이르는 흐름이었다면, 보는 내내 마음이 좀 아프겠지만 더 나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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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Chalet, 2017

  감독 - Camille Bordes-Resnais

  각본 - Camille Bordes-Resnais, Alexis Lecaye

  출연 – 클로에 랑베르, 필리프 뒤소, 에밀리 드프레샤크

 

 

 

 

 

  ‘아델’과의 결혼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마누’. 그는 고향 친구들과 함께 산장에서 즐겁게 지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산길이 무너지고, 뒤이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살해당하는데…….

 

  프랑스 드라마로, 6편으로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금방 후다닥 보고 끝낼 수는 없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 상당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 세 가지 시간대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20년 전, 산장에 갇혔을 때, 그리고 사건이 종결된 후. 우선 20년 전에 어른이었던 사람들은 20년 후에도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쉽게 구별할 수 있는데, 20년 전 어린아이였던 인물들은 그 시간 동안 훌쩍 커버려서 누가 누군지 헷갈렸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드라마는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인물 구별에서 편하다는 거였다. 사건의 진상에 다다를수록, 너무 화가 나서 절로 입에 욕이 나올 정도였다.

 

  20년 전, 마을에 한 가족이 이사 온다. 작가인 아버지와 마을 출신인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남매. 아버지는 마을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새로운 창작의욕이 불타오른다. 아들은 동네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알리스’라는 소녀를 만나 우정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데……. 20년 후, 마을과 산장에 갇힌 사람들은 불안에 떤다. 외부로 나가려고 했던 사람들도 의문의 공격을 받아 죽고, 사람들은 서로 불신한다. 그러던 중, 20년 전 사라진 일가족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마지막 세 번째 시점은 적지 않겠다. 그건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드라마는 중반 이후부터 그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동기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걸 알고 그냥 한숨이 나왔다. 하긴 첫 번째 드러난 동기로는 그런 일을 저지르기는 부족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동기라니……. 가능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막상 진짜 그런 거였다고 생각하니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인간의 증오와 욕심은 얼마나 사소한 것 하나에도 발화가 되는지 알 수 있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증오와 욕심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확실히 보여줬다. 물론 그렇다고 부인을 놔두고 바람을 피운 건 용서할 수 없지만.

 

  초반 진입장벽이 좀 있었지만, 스릴러로는 좋았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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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ark, 2019

  제작 - 바란 보 오다르, 얀티에 프리제

  출연 - 루이스 호프만, 올리버 마수치, 외르디스 트리벨

 

 

 

 

  ‘요나스’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어떻게든 모든 일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처음부터 아버지가 자살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요나스를 만난 ‘미하일’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한편 ‘울리히’는 1986년이 되어서야 아들인 ‘미켈’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네 가족의 구성원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여행에 관해 알게 되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아담’과 ‘노아’는 모든 일을 예견하며 자기들이 조종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시간은 서서히 흘러가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데…….

 

  지난 1시즌 감상문에서, 세 개의 시간대에 네 집안의 삼 대 이야기가 나오면서 복잡했다고 적었었다. 그리고 2시즌에선 새로운 인물이 나와서 더 헷갈리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하아,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이 이리도 와 닿는지……. 이번에는 시간대가 두 개 더 추가되었다. 1921년도와 2053년이다. 다섯 개의 시간대에서 네 집안의 삼 대도 모자라 또 다른 인물이 추가되었다. 물론 기존 인물의 과거 또는 미래의 모습인 경우도 있고, 신규 캐릭터가 영입되기도 했다. 또한, 1시즌에서는 비중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1시즌을 두 번 봐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앞선 리뷰에서 적은 것처럼, 막장 주말 드라마 뺨치는 불륜과 출생의 비밀 역시 빠지지 않았다. 경찰인 ‘샤를로테’의 친부모가 누군지 드러나는 순간, 와, 진짜……. 와, 이건 진짜 소름이었다. 아담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보다 더 충격과 공포였다. 1시즌을 보고, 왜 이 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사는 걸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가 혹시라도 아이가 돌아올까 이사 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던 게 아닐까 하고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2시즌을 보고 나서는 또 다른 이유가 떠올랐다. 옆 동네 사람들까지 추가했으면, 각본을 맡은 사람이 파업하지 않았을까? 아니, 각본가도 그렇고 다른 스태프들도 머리가 아파서 난리가 났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을 하나에 네 집안의 이야기로만 제한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건 제작진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번 시즌에서 제일 소름 끼치는 사람을 꼽자면, ‘한나’가 아닐까 싶다. 시간 여행 장치를 손에 넣은 그녀가 한 일은…….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자세히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불륜이 영원할 거로 생각했다는 거 자체가 좀 황당했다. ‘클라우디아’도 오싹한 사람이긴 했지만, 한나가 더 무서웠다.

 

  몇몇 사람들은 시간여행에 관해 알게 되는데, 그걸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어서 좀 답답했다. 가족끼리도 비밀로 하고 서로 얘기를 안 하다가, 나중에 일이 닥쳐서야 허둥지둥하는 게 보기 안쓰러웠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자기가 알고 있는 걸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야기는 달리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1시즌에서 던진 떡밥을 2시즌에서 회수하는 제작진의 의도에 놀라웠다. 그러면 설마 2시즌에서 이상하다 여겼던 점들이 3시즌에서 풀리는 걸까? 하지만 3시즌은, 2시즌 마지막 장면을 보면 평행 우주도 존재하는 것 같았는데? 그러니까 다중 우주, 그러니까 멀티버스에 시간여행에, 5개의 시간대에, 네 집안의 삼 대……. 과연 이 모든 것을 3시즌에서 잘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1시즌이 문 닫은 지 30년은 된 낡은 유원지를 보는 기분이었다면, 2시즌은 10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밑에서는 용암이 솟구치고 바람은 거의 태풍급으로 불고, 뒤에는 며칠 굶은 호랑이가 으르렁대는 상황이라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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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ark, 2017

  제작 - 바란 보 오다어, 얀톄 프리제

  주연 - 루이스 호프만, 올리버 마수치, 외르디스 트리벨

 

 

 

 

 

  2019년 6월, '미카엘'이 자살한다. 부인 ‘한나’와 아들 ‘요나스’만 남겨두고. 요나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심리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한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울리히’와 불륜관계가 된다. 2019년 11월, 울리히의 막내아들인 ‘미켈’이 사라진다. 울리히는 33년 전에도 어린 동생 ‘미츠’를 잃었었다. 한편 숲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던 미켈은 겨우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니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당황한 소년의 눈에 들어온 신문. 놀랍게도 그 날짜가 1986년으로 되어 있었는데…….

 

  언젠가도 말했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이제는 집에서 편안히 앉아서 저 멀리 있는 나라의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외국 드라마, 예전에는 외화라 불리었던 것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거의 미국 드라마 위주였고, 요즘처럼 일본이나 중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나 유럽의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음, 전에 본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인터넷의 발달로 집에서 앉아 온 세상의 사이코들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의 대사가 나왔었다. 그건 사건 관련자들에게 해당하는 일이고, 일반인들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이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이 드라마는 독일 작품으로,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소년의 실종 사건과 그에 얽힌 사람들 간의 불신과 갈등을 그리고 있다. 거기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 마을에서 나고 자라 또 자식을 낳고 살고 있어서, 거의 다 아는 사이였다. 그러니까 소꿉친구나 동창들이 각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들이 친구가 되고 그런 식이다. 문제는 친구의 부인이라든지 동창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의 비리라든지 신분 사칭 같은 문제까지 이어지면서, 사건은 복잡해졌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막장 주말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여기에 한가지 설정을 더 집어넣었다. 바로 ‘시간 여행’이다. 2019년을 기준으로, 33년 전인 1986년, 또 거기서 33년 전인 1953년인 세 개의 시간대가 연결된다. 그런데 시간 여행이 아무 때나 되는 건 아니다. 특정 시간대에 특정 상황이 맞춰져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간 미켈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누군가는 인위적으로 시간대를 여닫으려 했으며, 또 누군가는 그걸 막으려고 했다.

 

  드라마의 중심인물은 울리히와 요나스라고 할 수 있다. 울리히는 동생을 잃은 데 이어 아들까지 잃는다. 동굴을 통해 시간 여행을 한 그는 미래를 바꾸고자 과거를 바꾸려고 한다. 요나스는 아버지의 편지로 사건의 경위를 알아차리고, 어찌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울리히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가 역습을 당했고, 요나스는 우물쭈물하다가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어쩔 수 없는 게, 그들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행동을 하다 보니, 거의 모든 걸 알 수 있는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하는 건 자연스러운 진행이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 무척이나 헷갈렸다. 세 개의 시간대에 주요 등장하는 집안은 네 개나 되고, 각 집안의 삼대나 되는 구성원들이 과거 현재의 모습으로 등장하니, 누가 누군지 파악하는 게 힘들었다. 그러니까 한 인물이 1953년엔 어린이, 1986년엔 성인 그리고 2019년엔 노인으로 등장한다는 말이다. 거기다 네 집안 말고도 그런 식으로 등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인가? 이 드라마를 두 번이나 보았는데도 아직도 누군지 잘 모르겠는 인물이 있다. 2시즌을 보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설마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해서 더 헷갈리게 만드는 건 아니겠지?

 

  음, 똑같이 과거로 돌아가 엄마와 아빠의 풋풋한 연애 초기를 본다는 설정은 비슷한데, 영화 ‘백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 1985’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백 투 더 퓨처’가 말랑말랑 밝은 유원지 느낌이라면, 이 드라마는 ‘다크’라는 제목 그대로 암울하고 한 삼십 년 전에 문 닫고 폐허가 된 놀이동산을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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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เด็กใหม่ Girl from Nowhere, 2021

  출연 - 치차 아마따야꾼, 찬야 매클로리, 타나웻 시리와타나꾼

   

 

 

 

 

  2시즌은 1시즌에 비해 편수가 짧다. 제작진이 짧고 굵게 가기로 했는지, 편수가 줄어든 대신 폭력성과 선정성의 수위가 높아졌다. 그건 소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신’이라든지 ‘민니와 4구의 시신’이라니…….

 

  이번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은 아닌 것 같은 존재인 ‘난노’는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와 학생, 그리고 선생들에게 멘탈이 부서진다는 게 뭔지 경험시켜준다. 지난 1시즌은 난노가 가서 문제를 키운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2시즌은 난노가 아닌 새로운 인물 ‘유리’가 등장하면서 사건을 더 복잡하고 배배 꼬아놓는다.

 

  난노의 도움으로 그녀와 비슷한 능력을 갖게 된 유리. 처음에는 난노의 조력자일까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조력자라고 보기에는 난노와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고, 조력자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문제 해결에 열의를 보인다. 경쟁자라고 여겨야 할까? 누가 먼저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내는지 대결하는, 선의의 라이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난노는 유리에 관해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마지막 편에 가서는 유리가 난노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는 분위기였다.

 

  음, 그러니까 판타지 소설을 보면,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있다. 절망의 늪에 빠져서 꿈도 희망도 없는 나날을 보내는데, 예상치 못한 누군가 나타난다. 그 사람의 도움으로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후 자신에게 그 사람은 한 줄기 빛과 같은 구원자였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나는 별다른 의미 없는 존재였고, 아무리 애써도 옆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결국, 나를 봐주지 않는 그 사람에게 분노하고 흑화하고 만다. 내게 옆을 내주지도 않고 인정도 하지 않으면, 널 망가뜨려서라도 네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서라도 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겠어! 난노에 대한 유리의 마음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유리는 저기서 더 나아가, 난노의 자리를 빼앗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려는 것 같다.

 

  왜 제작진이 유리라는 캐릭터를 집어넣었는지 잘 모르겠다. 난노와 유리가 문제 해결을 두고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 위에서도 말했지만, 유리가 그냥 무작정 들이대고 있어서 – 이런 관점도 있다고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잘 보여주려면, 한 편에 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지난 1시즌처럼 두 편에 한 에피소드 형식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시즌에서 이야기하는 8개의 사건은 꽤나 충격적이다. 여학생마다 건드리고 다니는 바람둥이 이야기나, 자식이 저지른 범죄를 돈으로 무마하려는 부모, 신입생들에게 가학적으로 행동하는 선배들 그리고 SNS 스타인 딸과 부모의 갈등 등등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건들이다. 어떻게 보면 통쾌하게 해결하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뒷맛이 씁쓸한 결말도 있다. 또한, 어떤 사건은 너무 과장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예도 있다. 아마 극적 효과를 최대치로 올리기 위해 그렇게 설정한 거 같다. 진짜로 교칙을 어겼다고 학생을 교실에 가둬놓고 온갖 고문을 하는 학교가 있을 리가…….

 

  1시즌은 그래도 처음 접하는 신선한 설정 때문에 보았는데, 2시즌은 그냥 그랬다. 3시즌은 음……. 아마 찾아서 볼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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