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 채소, 인류 최대의 스캔들
리베카 룹 지음, 박유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원제 - How Carrots Won The Trojan War: Curious (But True) Stories Of Vegetables

  저자 - 리베카 룹

 

 

  이 책을 읽으려고 한 계기는 순전히 나와 조카의 채소를 별로 안 먹는 식성 때문이었다. 나야 어른이고 다 컸으니 이제 와서 채식을 먹건 안 먹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창 자라는 조카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고모 닮아서 채소를 안 먹는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 음, 이건 어쩌면 겉으로는 조카의 건강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책임을 면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저런 이유로 혹시나 이 책에 실려 있는 일화나 얘기를 통해서 조카에게 채소의 장점을 적극 알려주고, 더 나아가 먹을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다. 작가가 아동용 책을 썼다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삽화라든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책이었다. 내 예상처럼 조카에게 간단하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당근이 그리스 병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줘서 목마 안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가 다였다.

 

  그 어린애에게 샐러리가 예전에는 최음제로 사용되었다든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간통에 대한 형벌로 래디시를 항문에 밀어 넣었다는 얘기를 해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아마 어머니에게 등짝을 두드려 맞고 쫓겨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평생 조카를 못 보거나.

 

  조카에게 채소를 먹는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이 책은 나에게 채소를 안 먹을 수도 있는 힌트를 주었다.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콩장을 만드시는 어머님에게 ‘엄마, 콩에는 L도파라는 물질이 있는데, 그게 정신 불안정을 초래한대. 그래서 내가 콩을 안 먹는 거야.’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그럼 매일 콩장 먹는 엄마는?’라는 한 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이 책은 20가지의 채소를 다루고 있다. 책의 저자가 동양인이 아니기에, 서양에서 주로 많이 요리하는 채소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채소의 영어식 이름이라든지 학명이 길게 적혀있다. 각 장마다 채소에 관한 인상적인 문구로 된 제목과 그림이 있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그리고 이후, 그 채소의 역사적인 기록을 더듬어가면서 어떻게 처음 나타나서 어떤 형식으로 재배되고,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이어진다. 중간에 역사적인 사실이나 기록 내지는 일화가 짧게 들어있다.

 

 

 

  그런데 사실 읽으면서 ‘아! 이거구나!’하면서 와 닿지는 않는다. 내가 채소를 별로 안 좋아해서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서양에서 자라는 품종을 보질 못해서 일수도 있다. 후자라고 우겨본다. ‘락투카 비로사’나 ‘락투카 세리올라’나 ‘락투카 사티바’나 ‘로메인 상추’나 이름이 무슨 상관인가? 쌈장에 싸먹었을 때 맛있으면 되는 거지.

 

  하지만 채소들의 모든 품종에 대해 연구하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찾고, 역사서를 조사한 저자의 노력에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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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1disc)
타셈 싱 감독, 줄리아 로버츠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원제 - Mirror Mirror

  감독 - 타셈 싱

  출연 - 릴리 콜린스, 줄리아 로버츠, 아미 해머

 

 

  이 묘한 조합은 뭐란 말인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이건 뭐랄까, 한 소녀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보이지만 결론은 왕자와 결혼하는 얘기 같기도 하고, 남자 잘 만나서 그 돈으로 편하게 살려는 한 여인의 신랑감 고르는 고군분투기 같기도 하고, 주인 복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까칠한 거울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오늘의 발명왕 난쟁이들의 훌륭한 교육법에 대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고, 똘똘한 시녀의 왕 바꾸기 프로젝트 내지는 멍청하지만 가슴에 털이 많아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한 왕자의 신붓감 찾기일 수도 있다.

 

  영화는 상당히 유쾌하다.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한두 개는 빠진 게 확실한 왕실 사람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똘똘한 시녀와 난쟁이들. 이 둘의 대조가 적절하게 까칠한 대사와 조화를 이루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다. 어이없어서일 수도 있고, 황당할 수도 있고, 재미있어서일 수도 있다.

 

  거기다 왕비가 왕자를 유혹하기 위한 파티 준비를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으악!’하는 비명과 어이없는 웃음의 연속이었다. 새똥을 얼굴에 펴 바르고, 우유로 추정되는 흰 액체를 온 몸에 뒤집어쓰고, 벌레들을 이용해 손톱을 다듬고……. 결혼식을 위해 코르셋을 조이는 부분은, 배경음악만 조금 음산하게 바꾸면 고문 장면으로 보일 정도였다.

 

  영화의 배경은 동화라는 느낌이 강했다. 화려한 궁전과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실내장식들, 왕실 인물들의 화려한 색상으로 범벅이 된 풍성한 의상에 우스꽝스러운 장식들, 그리고 인공적으로 느껴지는 숲의 전경과 거울이 사는 세계까지. 현실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아! 왕비의 의상은 정말로 화려했다. 그녀 의상 보는 재미도 쏠쏠했으니까.

 

  도둑질을 하는 난쟁이들의 기묘한 발명품들은 ‘멋지다!’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키가 작은 단점을 그렇게 보충할 수가 있구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한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주요 인물들의 성격이었다.

 

  이 영화의 백설 공주 역시 칼을 들고 싸우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 전에 리뷰를 올린 ‘스노우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공주처럼 왕비에게 빼앗긴 아버지의 나라를 되찾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갈 곳이 없어서 난쟁이들에게 빌붙어 살기 위함도 있고 왕비에게 빼앗긴 왕자를 되찾기 위함도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어떻게 공주로 자란 애가 요리를 그렇게 잘하는지. 시녀들한테 배웠을까?

 

  인간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고 한다. 하지만, 왕비를 내쫓기 위해 왕자의 군대를 끌어들이려던 초반과 비교하면, 후반부는 왕비와 결혼하려는 그를 빼내기 위한 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영화는, 애석하게도 왕비와 공주가 남자 하나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구도로 되어버렸다.

 

  왕비의 성격은 뭐랄까, 우연히 마법의 거울하나 주워서 그걸 이용해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놀고먹으면서 살고 싶어 하는, 얼굴은 무척 예쁘지만 그것이외에는 아무 생각 없는 여자로 보인다. 그녀가 원하는 건 남자가 아니라, 남자의 돈과 그것으로 누릴 풍족한 생활이었다. 그래서 그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사악한 여자라기보다는, 너무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멍청한 여자였다.

 

  물론 원하는 것이 확실한, 집착이 강한 사람은 그만큼 무자비해질 수 있다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사악하고 나쁘게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백설 공주’ 만화영화의 왕비보다 덜 무서웠다.

 

  거기다 왕자.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있을지, 어느 나라의 왕자인지 몰라도 그 왕국에 행운이 있기를 빌어본다. 그 왕자가 왕이 된다면 재상이 아주 똑똑하지 않는 이상, 나라 말아먹기 십상이다. 아니, 재상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왜 공주가 그와 결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얘야, 너 정도의 외모와 용기, 마음씨면 다른 괜찮은 남자를 골라잡을 수 있지 않겠니? 그 세계에 왕자가 걔 하나인 것도 아니잖니. 좀 시야를 넓게 보렴. 내가 옆에 있었다면, 그런 충고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왕자는 바보였다.

 

  하지만 왕비가 십년 동안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갔기에, 그걸 메우기 위해 그와 결혼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긴 애초에 왕비가 왕자와 결혼을 하려고 한 것도, 그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돈이 많아서였으니까.

 

  불쌍한 공주. 왕비를 물리치고 아버지까지 되찾아왔지만, 결국은 나라를 위해 정략결혼의 희생자가 되다니. 그래도 좋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마지막에 노래까지 부르는 착한 마음씨에 감동했단다. 역시 넌 동화처럼 단순한 아이였어.

 

  어른들이 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아이들이 보기에는 등장인물들이 덜 매력적이다. 하다못해 왕자라도 멋져야 여자애들이 좋아할 게 아닌가? 거울의 마법에 걸려, 개처럼 왕왕 짖어대는 왕자가 뭐가 멋진가! 내가 그리던 왕자님은 그러지 않아!

 

  아, 빼먹을 뻔 했는데 영화 도입부에 인형극으로 꾸민 부분은 독특하고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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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에서 나온 소인들 웅진책마을 42
정 위엔지에 지음, 심봉희 옮김, 윤정주 그림 / 웅진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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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 정 위엔지에

  그림 - 윤정주

 

 

  중국 작가가 지은 동화책이다. 이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루시시와 피피루를 주인공으로 하는 동화책을 여러 권 썼다고 한다.

 

  손님이 오신 일요일 저녁, 고기 통조림을 따던 루시시는 놀라고 만다. 통 안에 성냥개비만큼 작은 사람이 다섯 명이나 들어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말했다가는 오빠 피피루가 가져왔던 다른 애완동물처럼 버려질까 겁이 난 루시시는 그들을 몰래 자기 방에 숨긴다. 고기가 없다는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부모는 자신들의 모범생인 딸을 의심한다.

 

  말썽꾸러기 피피루는 여동생이 혼나는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둘은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한편, 루시시는 학교에서 졸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나면서, 졸지에 우등생에서 열등생이 되어버리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른들이 왜 이 모양이냐고 혀를 찼다.

 

  피피루와 루시시의 부모는 자신들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기르고 싶다고 가져온 동물들을 더럽다고 매정하게 버릴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피피루처럼 몰래 숨기면서 기르거나 반항하는 것. 아니면 루시시처럼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부모의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뿐인가. 그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주입식 교육에 맞지 않거나 이해가 조금 느릴 수도 있는데, 자신들의 속도에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열등생이라 낙인찍어 관심도 주지 않는다. 열등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에서 손님이 오자, 열등생들은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까지 한다. 도대체 이런 교육자들이 어디 있을까?

 

  문득 나도 다른 사람들을 이런 잣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장점이 있어도 찾아보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게 아닐까? 이미 마음속에 어떻다고 결정을 내려버리면 다시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대상을 트집 잡을 구실만 눈에 불을 켜고 보는 것은 아닐까?

 

  한번 아니라고 인식을 하면, 그 감정을 떨쳐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편견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편견을 가지고 다른 이를 보는 사람은 의식을 못하겠지만, 그런 시선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 지 책은 보여주고 있다. 위축되고 자신감이 사라지고 모든 것에 부정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 부정적이고 자신감없는 어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결국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라느냐는, 주위 어른들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각자 갖고 있는 개성을 파악한 소인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된다. 소인들에게서 공부법을 배운 열등생들이 우등생들을 넘어서는 과정은 재미있고 눈물겨웠다. 피피루가 우수한 성적을 받자, 선생님들이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주위에 둘러서서 감시를 하는 재시험 장면은 화가 날 정도였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 것보다는 그 상대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마다 자라오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말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알수록, 사람을 대하는 것이 편견과 선입견 사로잡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순수하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영악하다고, 아이답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누가 만든걸까? 아이들 탓만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태어나는 건 아닐테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다 결과가 한정지어졌거나 똑같은 시뮬레이션 육성 게임의 아바타는 아니다. 그렇기에 연구하고 관찰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상대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이다. 부모 자식사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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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 아웃케이스 없음
루퍼트 샌더스 감독, 샤를리즈 테론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원제 - Snow White and the Huntsman

  감독 - 루퍼트 샌더스

  출연 -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틴 스튜어트, 크리스 헴스워스, 이안 맥셰인

 

  “쟤는 여기서도 양다리네.”

 

  영화를 보는 도중 불쑥 튀어나온 애인님의 감상평이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책과 영화로 다 본 애인님은 피식 웃으면서, 위의 저 말을 내뱉었다. 난 ‘현실에서도 양다리였어. 감독이랑…….’이라고 대답해줬다.

 

  우리 커플은 극장에서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보면서 ‘이건 무슨 영화 어느 장면이 생각난다.’고 하거나 뜬금없는 감상평을 소곤거리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러길 잘했다고 서로 얘기했다. 왜냐하면 중간에 튀어나온 얘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왕비가 목욕하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이다!’하고 외치기도 하고, 공주가 숲에서 정령들을 만날 때는 ‘어쩐지 사자가 나올 거 같아.’라고 킥킥대기도 했다. 어쩐지 그 때 분위기가 꼭 ‘나니아 연대기’ 같았다. 그리고 왕비가 여자들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장면은 ‘동방불패!’라는 말이 나왔고 말이다.

 

  영화는 백설 공주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멍청하지만 얼굴이 예뻐서 왕자 만나 잘 먹고 잘사는 공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 넘어서려는 공주를 다루고 있다.

 

  물론 후반에 갑옷입고 말 타고 싸우러가기 전까지는 사냥꾼이나 난쟁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동화에서는 자기 소리 하나도 못 내던 캐릭터였는데, 여기서는 소리도 지르고 몸싸움도 한다.

 

  보면서 ‘와-’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장면이 많았다. 초반에 공주의 아버지가 악의 군대와 싸우는 장면도 멋졌고, 거울이 왕비의 부름에 응답하는 장면도 좋았다. 터미네이터의 ‘T-1000'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특히 왕비가 나오는 모든 장면은 그야말로 대박 멋졌다. 세상에 둘도 없을 사악한 나쁜 년으로 보이기도 하고, 슬픔과 애통함이 절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진짜 미쳤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 그 구역의 미친년은 그녀였다.

 

  배경도 환상적인 분위기로, 예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령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을 연상시켰지만 말이다. 하지만 눈이 더 컸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머리카락은 좀 더 많았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영화는 공주가 감옥에서 탈출하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느슨해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 아니, 느슨하다기보다는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 오랜 시간동안 감옥에서 갇혀있던 공주가 운동신경이 그렇게 좋을 리가? 게다가 갑자기 빛에 나왔는데, 그렇게 쉽게 익숙해질 수가 있는 걸까? 아마도 간수들 눈을 피해서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나보다.

 

  그리고 공주가 사과를 받아먹는 장면은 너무 억지스러웠다. 한겨울에 사과라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저 나라는 눈밭에서 사과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걸까? 그리고 그녀가 갑옷을 입고 군대를 지휘하는 마지막 장면도 좀 뜬금없었다. 애가 감옥에서 뭘 배웠다고 지휘를 맡기는 걸까? 단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아! 제일 황당한 부분은 사과를 먹고 죽었던 공주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었다. 그 부분은 그야말로 이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어이없음의 결정체였다. 이건 뭐람? 애인님과 나, 둘 다 동시에 '이건 아니지!'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가장 안쓰러운 것은 공주를 사랑한 왕자였다. 비중도 대사도 모두 사냥꾼에게 밀렸다. 공주가 모든 면에서 왕비에게 밀린 것처럼.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공주가 아니라 왕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공주가 나오는 장면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감독이 자기 애인한테 잘 보이려고 비중을 높였나봐.’ 애인님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수긍했다.

 

  전반적으로 화면은 예쁜 영화였다. 하지만 주인공인 공주가 왕비에게 밀려서 제대로 살아나질 못했다. 거기다 이야기의 흐름이 초반을 넘어서면서 느슨해지기도 했고.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왜 일곱 난쟁이가 되었는지 나오는 장면은, 이미 처음 나왔을 때 그 수가 일곱을 넘는 순간 예상했던 일이라서 '역시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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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과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인문학자 버트먼 교수의 과학사 산책
스티븐 버트먼 지음, 박지훈 옮김 / 예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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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인문학자 버트먼 교수의 과학사 산책

  원제 - The Genesis Of Science

  저자 - 스티븐 버트먼

 

 

  제목이 무척이나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인문학과 과학은 분야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향도 다르고,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르고. 그런데 인문학자가 과학을 말한다? 호기심이 생겼다. 어떻게 접근을 해서, 어떤 방식으로 서술을 할까?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인류 최초의 과학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었다!’고 적혀있다. 책을 펼쳐보면, 목차도 그러하다. 신석기 시대나 고대 이집트는 ‘과학의 탄생, 그 이전의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왜 그럴까? 의아했다. 그리스 이전의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도구를 만들어서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어서 사용했고, 그것이 그리스 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왜 그건 과학 이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걸까? 이집트인들의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 기계장치나 고대 장의사들이 썼던 천연 탄산소다의 효능이라든지 10진법을 이용한 수학이 왜 그렇게 분류되었을까? 거기다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과 60진법 수학까지!

 

  저자는 그들은 신화에 너무 얽매였기에, 진정한 과학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과학은 과학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그리스 로마 사람들도 신화를 갖고 있긴 했는데 말이다. 물론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신들보다는 좀 더 자유분방하고 인간보다 더 난잡하긴 하지만. 그리고 가끔 그들도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은 신들의 영역이라고 여기지 않았던가?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 책은 그리스 시대에 발전한 다양한 분야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과학책들처럼 어려운 이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시대의 문헌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예로 들면서, 이런 식으로 이런 분야의 과학이 이렇게 발전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 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일리아드 오디세이 같은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음향학’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고 치면,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나오는 소리에 관련된 일화가 먼저 나온다. 그리고 음계를 인식한 피타고라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우연히 대장간을 지나가다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금속판의 길이에 따라 톤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고대 그리스의 극장 건축에까지 이야기는 확장된다. 반원형의 극장과 좌석의 배열이 어떻게 배우의 음성을 멀리까지 보낼 수 있는지, 그들이 연구한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의 음성학에 관련된 여러 가지 분야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마무리한다.

 

  거의 이런 식의 구조로, 광학, 음향학, 기계학, 화학, 지리학과 지질학, 기상학, 천문학, 생물학, 의학 그리고 심리학을 얘기한다. 현대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그 시대에도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가들은 천재인 모양이다. 철학가이자 음악가이자 수학자이고 과학자이고 건축학자까지 겸업을 하고 있으니. 어느 책에선가 나와 이 세상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 철학에서 거의 모든 학문이 뻗어 나왔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마도 생각을 하는 인간만이 발전을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가 멸망한 다음, 로마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과학적인 업적을 기록하고 응용하고 보존했는지 언급한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까지 약간 다루고.

 

  과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아, 그리스 사람들 이름이 좀 길어서 ‘이게 누구지, 앞에서 나왔던 사람하고 비슷하네, 아 다르구나.’ 이런 생각이 자주 들기는 한다. 하지만 어려운 이론이나 용어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편하게 읽었다.

 

  거기다 신화의 이런 부분이 이렇게 연결된다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사람들의 일화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에필로그 부분에서 그리스 시대와 현대의 과학자들의 차이에 대해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철학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 돼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그리스 이외의 시대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 시간에 배우기는 중국 문명이 더 일찍 발달했다고 알고 있는데, 모든 과학이 그리스 시대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꼬집어 말할 수 있을까?

 

  거기다 중국에 대해 다루고 있는 항목의 부제는 ‘고대 중국, 질주를 멈춘 과학의 기차’였다. 그리고 달랑 9장 한쪽의 분량. 글쎄, 질주를 멈추었다고 봐야하나? 진짜로? 서양이 이후 더 발전을 했기 때문에, 그리스 시대의 과학을 더 높이 산 것일까? 하지만 서로 영향을 받았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국이나 고대 마야 등은 아예 다루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고 본다. 그 부분에서는 뭐라고 해야 하지, 음. 빈약하다. 그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넣었다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 부분이 이 책의 옥에 티였다고 본다.

 

  서양인이 썼기에 그리스 시대 중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서양의 모든 역사와 신화를 아우르는 사람이 썼다면, 균형이 맞춰졌겠지만 그런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하는 의구심도 들고. 나중에 동양인이 쓴 과학사에 대한 책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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