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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 채소, 인류 최대의 스캔들
리베카 룹 지음, 박유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원제 - How Carrots Won The Trojan War: Curious (But True) Stories Of Vegetables
저자 - 리베카 룹
이 책을 읽으려고 한 계기는 순전히 나와 조카의 채소를 별로 안 먹는 식성 때문이었다. 나야 어른이고 다 컸으니 이제 와서 채식을 먹건 안 먹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창 자라는 조카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고모 닮아서 채소를 안 먹는다는 말을 들을 수는 없다. 음, 이건 어쩌면 겉으로는 조카의 건강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책임을 면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저런 이유로 혹시나 이 책에 실려 있는 일화나 얘기를 통해서 조카에게 채소의 장점을 적극 알려주고, 더 나아가 먹을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다. 작가가 아동용 책을 썼다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삽화라든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어른을 위한 책이었다. 내 예상처럼 조카에게 간단하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당근이 그리스 병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줘서 목마 안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가 다였다.
그 어린애에게 샐러리가 예전에는 최음제로 사용되었다든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간통에 대한 형벌로 래디시를 항문에 밀어 넣었다는 얘기를 해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아마 어머니에게 등짝을 두드려 맞고 쫓겨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평생 조카를 못 보거나.
조카에게 채소를 먹는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이 책은 나에게 채소를 안 먹을 수도 있는 힌트를 주었다.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콩장을 만드시는 어머님에게 ‘엄마, 콩에는 L도파라는 물질이 있는데, 그게 정신 불안정을 초래한대. 그래서 내가 콩을 안 먹는 거야.’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그럼 매일 콩장 먹는 엄마는?’라는 한 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이 책은 20가지의 채소를 다루고 있다. 책의 저자가 동양인이 아니기에, 서양에서 주로 많이 요리하는 채소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채소의 영어식 이름이라든지 학명이 길게 적혀있다. 각 장마다 채소에 관한 인상적인 문구로 된 제목과 그림이 있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그리고 이후, 그 채소의 역사적인 기록을 더듬어가면서 어떻게 처음 나타나서 어떤 형식으로 재배되고,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이어진다. 중간에 역사적인 사실이나 기록 내지는 일화가 짧게 들어있다.
그런데 사실 읽으면서 ‘아! 이거구나!’하면서 와 닿지는 않는다. 내가 채소를 별로 안 좋아해서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서양에서 자라는 품종을 보질 못해서 일수도 있다. 후자라고 우겨본다. ‘락투카 비로사’나 ‘락투카 세리올라’나 ‘락투카 사티바’나 ‘로메인 상추’나 이름이 무슨 상관인가? 쌈장에 싸먹었을 때 맛있으면 되는 거지.
하지만 채소들의 모든 품종에 대해 연구하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찾고, 역사서를 조사한 저자의 노력에는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