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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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忌館, ホラ-作家の棲む家

  작가 - 미쓰다 신조

 

 

 



 

 

  어쩌다보니 매달 미쓰다 신조의 책을 한 권씩 읽게 되었다. 그 말은 즉, 매달 뒤를 돌아보게 하는 오싹한 느낌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여름도 오래 전에 지나갔는데 왜 이제야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차가운 바람과 함께 읽는 호러 소설도 꽤 좋다.

 

 

  이번 이야기는 작가가 어느 집에서 살면서 겪은 일에다가 다른 사람이 겪은 경험담을 버무려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실제 있었던 일에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되었다는 얘긴데……. 흐음. 100%는 아니더라도 진짜 저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어디선가 그런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니까.

 

 

  주인공인 ‘미쓰다 신조’는 우연히 발견한 서양식 저택에 흥미를 갖게 된다. 잡지에 연재할 호러 소설을 집필하는데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그 집에서 머무르기로 한다. 어쩐지 그 집에 대해 사람들이 뭔가 숨기고 있는 눈치지만, 그는 그게 더 소설 집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우연히 커다란 ‘인형의 집’을 발견한 미쓰다 신조는 그것이 공교롭게도 그가 살고 있는 저택 ‘인형장’과 똑같은 구조로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그 집에서 실제로 살았던 가족들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데…….

 

 

  이야기는 작가인 미쓰다 신조가 겪는 일과 그가 쓴 소설 속의 주인공 ‘코토히토’에게 벌어지는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된다. 코토히토가 어떻게 보면 작가의 분신이기에 둘이 겪는 사건은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코토히코에게도 일어날 것 같고, 코토히코가 무언가 보거나 느끼면 보면 작가에게도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둘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는데,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다.

 

 

  내 생각에 이 작가의 특징은 ‘서서히 조여오기’ 같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두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한 서술이 결합하면서 서서히 조여 오는 분위기는 극대화를 이루었다. 작가는 작가대로 저택에서 벌어진 참극에 대해 조사하고, 동시에 소설 속에서는 코토히코에게 위기가 닥치는 설정이 교묘하게 맞물렸다. 그러다보니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SF 소설이었다면, 차원의 틈이 생겨서 두 세계가 섞이고 있다고 했을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설정을 다룬 작품들은 꽤 있다. 우선 영화 아미비틸 시리즈의 여덟 번째 이야기인 ‘Amityville - Dollhouse. 1996’가 있고, 영화 ‘어웨이크닝 The Awakening, 2011’도 있었다. 하지만 두 작품 다 그렇게 오싹하다 거나 으스스한 분위기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 차라리 이 책이 인형의 집이라는 소재를 더 효과적으로 다루었다.

 

 

  책 말미에 해설이라고 해서 ‘사사카와 요시하루’라는 사람이 작품과 작가에 대해 얘기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우와, 이 사람마저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다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와, 진짜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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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octor Strange, 2016

   감독 - 스콧 데릭슨

   출연 - 베네딕 컴버배치, 레이첼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

 

 

 

 

 

 

 

 

 

 

 

  저번에 내 취향인 영화 ‘혼숨’을 보았기에, 이번에는 애인님 취향인 히어로물이다.

 

 

 

  ‘스트레인지’는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외과의사로, 누구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누구보다 정밀하고 빠르게 수술을 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하지만 교통사고 이후 손이 망가지면서,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실의에 빠졌던 그는 우연히 하반신 마비였다가 완벽히 나은 남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 남자가 갔던 길을 따라, 네팔로 간 스트레인지. 그곳에서 그는 ‘에인션트 원’이라는 신비한 존재가 이끄는 집단을 만난다. 처음에는 그들의 가르침에 반신반의했지만 수련을 해나가면서 스트레인지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그러던 중, 에인션트 원의 가르침에 반발하고 나갔던 ‘케실리우스’ 일당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했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이 지구의 운명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어쩐지 보면서 ‘스타워즈 Star Wars : Episode IV - A New Hope, 1977’가 떠올랐다. 평범하게 살던 한 남자가 신비로운 힘을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 각성하게 되는, 그 중간에 약간의 로맨스도 있고, 주인공이 확실히 각성하는 계기가 되는 충격적인 이별도 있는 진행까지 비슷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런 스토리의 단순함과 진부함을 무마하기 위해서였는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 효과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영화 ‘인셉션 Inception, 2010’에서 보았던 장면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킨 영상들은 ‘와-’하는 감탄사를 자아냈다. 진짜 멋지고 아름답고 대단했다. 이보다 더 멋진 영상이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좋았다.

 

 

 

  또한 중간 중간에 들어있는 개그 대사나 장면들도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적절하게 잘 들어갔다. 특히 자아를 가진 망토는 행동만으로도 너무 귀여웠다. 음, 판타지 소설에서 보면 ‘에고 소드 Ego Sword’라고 해서 소유자와 말을 하는 칼이 있는데, 그런 류의 망토인 모양이다. 다만 자기 판단으로 행동은 하지만, 말은 못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이번에는 아쉬운 점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왜 에인션트 원은 자신의 속내를 스트레인지에게만 털어놓았을까? 그 말고도 에인션트 원에게는 오랫동안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헌신적인 ‘모르도’도 있었고, 책임감 넘치는 ‘웡’도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스트레인지는 신입 막내였다. 그런데 에인션트 원은 오직 스트레인지에게만 속사정을 털어놓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왜 그랬을까? 오직 스트레인지만이 자신을 이해할 것 같아서? 아니면 그만이 자신과 같은 백인이라서? 리더에게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한 사람에게만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 문제를 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 얘기해서 중재를 하거나 오해를 풀 능력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스트레인지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다. 과연 모든 것을 아는, 엄청난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다는 에인션트 원이 그걸 몰랐을까?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배신감을 느낀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케실리우스 때 그렇게 당했는데, 또 비슷한 실수를 하다니……. 그건 에인션트 원의 판단 미스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케실리우스가 지구로 끌어들인 어둠의 지배자 ‘도르마무’가 생각보다 무능력해서 실망스러웠다. 겨우 그걸로 힘들어 하다니! 우주와 차원을 넘나들면서 뭘 배운 거야? 자기 배만 채운건가? 최종 악당 보스라고 보기엔 실망 그 자체였다.

 

 

 

  CG 덕분에 눈이 즐거웠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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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더더 사랑해 병아리 도서관 13
허아성 지음, 김가희 그림 / 파란정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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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허아성

  그림 - 김가희


 




 

 

 


  어릴 때, 동생과 나는 부모님이 오빠만 좋아하신다고 투덜거렸다. 지금도 가끔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기도 하는데, 그러면 오빠는 도리어 부모님이 너희를 더 귀여워하셨다고 반격한다. 어머님은 그 얘기를 들으시면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셋 다 똑같이 사랑했다고 하시지만, 글쎄? 그리고 이 다툼은 조카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는 손자들까지 이어진다. 서로 할머니가 누굴 더 사랑하는 것 같다고 자기들끼리 쑥덕대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의 남매는, 우리 집과는 반대로 자기들이 엄마를 더 사랑한다고 싸운다.

 

 


  어느 겨울날, 집에서 내복만 입고 있던 남매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남자아이가 자기는 엄마를 매일 아침 안아준다고 하자, 여자아이는 거기에 뽀뽀까지 한다고 으스댄다. 남자아이가 엄마에게 큰 집을 사준다고 하자, 여자아이는 겨우 그거냐고 자기는 성을 사줄 거라 장담한다. 결국 둘의 상상은 엄마에게 우주를 사주는 것에까지 확장된다. 하지만 정작 엄마가 심부름을 해달라고 하자, 둘은 서로 미루기만 하는데…….




  설명은 하나도 없이, 그림과 대사로만 이루어진 책이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인지, 아이들의 마음은 어떤지 잘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대사와 그림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안아주기’같이 일상적인 것에서 비교하더니, 나중에 ‘우주’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는 걸 보면서, ‘귀여워!’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조카들이 어렸을 적에 누가 더 할머니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애기했던 게 떠오른다. 물론 난 장난이었지만, 그 애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내 할머니야!’에 ‘내 엄마거든?’라는 사소한 대응에서 나중에 ‘내가 고모보다 백에 백에 천에 만에 억만배 더 사랑하거든?’까지 이어졌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난 거기에 ‘응, 난 그거 받고 거기에 무한’으로 답했지만. 절대로 조카들에게 져주지 않는다! 고모의 자존심을 걸고!

 


  그림을 보면, 두 남매가 싸우는 자리에 아빠도 있었다. 소파에 누워서 둘이 말다툼하는 걸 웃으면서 지켜보다가, 결정타를 날리는 역할을 한다. 서운한 표정으로 ‘아빠는 얼마큼 사랑해?’라는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안 해서 아쉬웠다. 앗! 설마 2권이 나온다면, 거기서 아빠를 얼마큼 사랑하는지 싸우는 걸까? 엄마에게 우주를 사준다던 아이들이 아빠에게는 뭘 사준다고 할 지 궁금하다. 블랙홀? 태양?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왜 엄마는 만날 집에서 긴 치마를 입고 있는 걸까? 앉아서 종아리까지 올 정도면 일어섰을 때, 꽤 길 텐데. 거기다 폭도 좁아 보이는데, 집에서 활동하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이제는 ‘엄마 = 홈드레스’라는 공식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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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이두환

  출연 - 류덕환, 조복래, 이수빈, 홍예은





  몇 년 전에 인터넷 게시판에, ‘혼자 하는 숨바꼭질’이라는 글이 유행을 했었다. 줄여서 혼숨이라고 불리는 이 놀이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는데, 사실은 저주를 내리거나 귀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이 영화는, 그러한 소문이 무성한 놀이를 소재로 하였다.


  아프리카 TV에서 공포 방송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BJ 야광’과 ‘박PD’. 두 사람 최대의 꿈은 전설적인 방송을 찍어 이름을 크게 날리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제보한 사건사고들을 보던 중, 두 사람은 어느 지방 도서실에서 있었다는 사건을 접한다. 그곳에서 ‘혼숨’을 하던 여학생이 실종되고, 기이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체모를 한 시청자가 그들에게 도서실 사건에서 사용된 인형을 찾아오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는 제의까지 한다. 이제 두 사람은 일생일대의 방송을 하겠다며 도서실로 향하는데…….


  영화는 중후반까지는 좋았다. 야광과 박PD의 관계라든지, 도서실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드러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어떻게 사건이 진행될까 상상하는 재미를 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 그게 뭐였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장면을 넣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올린 영화의 구조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시작 부분에 제작진은 이 영화가 야광과 박PD 두 사람이 방송한 방영분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잡담이나 방송계획을 회의하는 장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것은 미 방영분이라 생각했다. 그냥 둘이 찍은 영상을 찾아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런 유의 영화에서 흔히 하는 기법으로, 나중에 찾은 카메라에 녹화되어있는 영상을 다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화면 옆에 보이는 채팅방을 보면, 이미 다 방송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다 방영분이라는 의미였다. 헐? 그러면 마지막 장면 역시 방영분이라는 얘기인가? 둘이 도서실에 카메라를 설치하면서 한 짓도 다? 그러면 이건 ‘파운드 푸티지 (found footage)’ 장르가 아니란 말인가?


  아, 파운드 푸티지란 촬영자가 실종된 이후 영상만 발견되었다는 설정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블레어 윗치 The Blair Witch Project, 1999’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Paranormal Activity, 2007’ 시리즈가 있다.


  이것이 파운드 푸티지 장르라면 두 사람이 수다 떨고 현장 답사를 하는 모든 것이 다 밝혀진 이유는 미편집 영상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중간에 카메라 설치 장면과 마지막 장면 역시 방영되었냐는 의문이 든다. 방영한 것이라면 ‘왜?’라는 의문이 들고, 방영한 것이 아니라면 그 영상은 ‘누가? 왜’라는 의문이 든다.


  이런 유의 영화들은 찍힌 영상으로만 말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거나 인물들의 대화로 알려주는 편이다. 그래서 검색을 하거나 집안 곳곳에 CCTV를 설치해놓는다. 또는 숨겨진 비밀 때문에 다음 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작품 역시 그 때문에 도서실 곳곳에 카메라를 달고, 검색을 하고 현장 답사를 나가 관련자의 증언을 들었다. 심지어 드론까지 사용해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몇 장면들 때문에, 더 많은 힌트를 주려고 한 제작진의 열정 때문에 전반적인 흐름이 깨지고 말았다.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과한 것도 문제다.


  주연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예전에 드라마에서 본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둘이 다른 캐릭터인데, 자꾸만 겹쳐보였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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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겁쟁이 펭귄 아치
앤디 래쉬 글.그림, 최순희 옮김 / 현암주니어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원제 - Archie the Daredevil Penguin, 2015

  작가 - 앤디 래쉬

 





 

 

 

  제목이 너무 재미있다. ‘용감한 겁쟁이’라니. 그거 모순되는 말 아닌가?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제목이 참 절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용감하다는 평을 받는 펭귄이다. 커다란 새총을 만들어 직접 하늘로 날아본다거나 산꼭대기까지 혼자 올라가기도 하고 산비탈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고 심지어 로켓을 만들어 날아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에 친구들을 ‘오오!’하고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해한다. 왜 아치는 자신들과 같이 평범하게 헤엄을 치고 놀지 않는 걸까? 그건 바로 아치에게는 친구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못할 엄청난 비밀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치는 펭귄이지만, 물과 물속 생물들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헤엄치지 않고 친구들과 이동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발명품을 만들려고 애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치에게 일생일대 최대의 위기가 닥치는데…….

 


 

  왜 펭귄은 꼭 헤엄을 잘 쳐야만 하는 걸까? 물론 그러지 않으면 식량을 구하지 못해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헤엄을 쳐야 하지만, 그런 과학적인 얘기는 넘어가자. 수영 말고 다른 걸 잘하는 펭귄이 태어날 수도 있고, 물을 싫어하는 펭귄이 생길 수도 있다. 아치는 그런 유형으로 태어나,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물에도 못 들어가는 겁쟁이라고 놀릴까봐 두려워서였다.

 

  인간 세상도 비슷하다. 누구나 다 똑같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니다. A를 더 잘하는 사람도 있고, B는 잘하지만 C는 아주 못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사회는 그런 개인차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ABC를 다 잘 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친다. D를 잘할 수 있다는 건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시스템이 정한 ABC만 잘해야 한다. 그럼으로 아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개개인의 개성이나 특성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다행히 펭귄인 아치는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길을 찾았지만, 인간인 아이들은……잘 모르겠다. 어린이용 동화책답게 아치의 이야기는 모두가 행복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러하냐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네’라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 조카들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각자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아치처럼 자기가 잘하는 것을 활용하고, 동시에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발전하려는 욕심을 가지면 좋겠다. 또한 아치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 그러면 나중에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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