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에프 오
콜린 미니핸 감독, 브리트니 앨런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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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xtraterrestrial, 2014

  감독 - 콜린 미니한

  출연 - 브리테니 알렌, 프레디 스트로마, 멜라니 파파리아, 제시 모스

 

 


 

 

 

  폭풍우 치는 밤, 한 여인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다 갑자기 번쩍하는 빛이 나더니, 공중전화박스와 함께 사라지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뭔가 이상한 일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한편 부모님의 오래된 오두막에서 남자친구와 둘이서만 주말을 보내기로 한 주인공. 남자친구가 몰래 부른 친구 세 명이 갑작스레 동행하면서 기분이 언짢아진다. 게다가 남자친구의 청혼마저 거절하자, 일행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진다. 그날 밤, 그들은 뭔가 숲에 추락하는 것을 목격하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그건 아무리 봐도 비행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그들의 앞에 놀라운 불청객이 등장하는데…….

 


  이런 음모론이 있다. 이미 미국은 외계정부와 접촉을 했고, 그들과 비밀 협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UFO에 납치되어 실험을 당하거나, 가축들이 현대 지구의 과학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 등을 정부는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바로 외계정부에 실험 대상을 제공하는 대신 엄청나게 발달한 과학 기술을 전수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정부가 자체 개발한 기술로 실험을 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 얘기를 읽으면서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동물은 물론 같은 인간끼리도 납치 고문 생체실험을 하는데, 외계인이라고 그런 짓을 못 할 리가 없었다. 또한 권력가들은 자기가 당하는 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도 그런 음모론을 읽어봤고, 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영화는 주인공과 친구들이 외계인들에게 쫓기다가 UFO에 피랍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외계인들의 뛰어난 능력, 예를 들면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등등도 보여준다. 주인공이 남자친구를 납치해가는 UFO를 향해 돌아오라고 소리치자,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던 비행접시가 다시 돌아온다. 그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외계인 진짜 착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외계인의 높은 덕을 칭송할 부분이 또 한 장면 나오는데, 그건 패스하겠다. 어떻게 보면 과학과 의술의 발전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체 실험을 하는 차갑고 냉정한 외계인이었지만, 그만큼 감수성도 풍부하고 예상외로 정도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인간을 잡아다가 실험하는 곳이 더럽고 축축하고 질퍽질퍽하고 어두운지 모르겠다. 마치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길게 뻗은 지하 통로나 영화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2001' 시리즈에서 프로도가 거미 여왕을 만났던 곳 같기도 하고, 영화 '에일리언 Alien, 1979'에서 퀸 에일리언이 알을 낳는 곳 같기도 했다. 실험체는 깨끗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보관해야하는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실험도 환한 곳에서 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어두컴컴한 곳에서 했을까? 혹시 인간과 외계인의 신체 구조 차이 때문일까? 하긴 그들의 눈 크기를 보면 인간의 눈보다 훨씬 크니까, 너무 환하면 더 안 좋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부분에서 음모론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드라마 '엑스 파일The X-Files, 1993'의 담배 피는 남자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주 발랄하고 신나는 배경음악이 깔리는데, 그만 마시던 차를 뿜을 뻔 했다. 아니, 감독님! 도대체 무슨 약을 빨았기에 이 노래를 영화 엔딩에 넣을 생각을 한 거죠? 노래 가사와 영화를 생각하면, 외계 문명 전파설 내지는 외계 지성체의 인류 창조설을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잖아요! 영화를 살린 건 바로 마지막에 흐르던 이 노래라고 생각한다. 침울하던 분위기를 급전환시키는 역할을 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신의 한수였다. 아! Norman Greenbaum이 1969년에 발표한 ‘Spirit in the Sky’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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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이씨4: 아포칼립스
하우메 발라게로 감독, 파코 만자네도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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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EC 4 Apocalypse, 2014

  감독 - 하우메 발라게로

  출연 - 자비에르 보테트, 마누엘라 벨라스코, 파코 만사네도, 이스마엘 프리치

 

 

 




 

 

  처음 이 시리즈의 1편을 보았을 때, ‘와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결말부분을 보고 ‘응?’하는 의문이 남기는 했지만, 흐름이나 인물의 갈등 구조, 좀비의 외모 등등 다 좋았다. 마지막에 의문을 남겨 2편, 3편을 보게 만드는 전략도 훌륭했다. 그런데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급기야 4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굳이 봐야하는가라는 생각마저 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쏘우 시리즈’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영향인 것 같다. 그 말은 즉, 정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편은 그런 기분으로 보았다.

 


  1편과 2편은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같은 시간대에 다른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3편 역시 1편의 사건이 벌어지는 비슷한 시간대에 다른 장소, 그러니까 결혼식장과 근처 교회가 중심이다. 그렇다면 4편은 어떨까? 4편은 다른 세 편과 달리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 바다에 떠있는 배가 이야기의 배경이다.

 


  1편의 생존자인 리포터 안젤라를 비롯해, 기억도 안 나는 3편의 생존자인 할머니 등 몇 명의 사람들이 배에서 눈을 뜬다. 그곳에서는 '무엇'이 아파트와 결혼식장의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어떻게 전염이 되며,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었다. 특히 연구진들은 숙주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실험용 원숭이 한마리가 우리를 탈출하면서 배에 있는 사람들마저 감염될 위기에 처하는데…….

 


  그러니까 누군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확신을 갖지 못했거나,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실험체와 비교 대상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때문에 배 안의 사람들 모두가 다 죽을 위기에 처했다. 과연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연구인지 아니면 자기들의 지적욕망과 미지의 세계를 정복한다는 만족감을 위한 연구인지 모르겠다.

 


  1편은 갑작스런 사태에 대응하는 인간, 2편이 인간과 영적 존재에 대한 내용 그리고 3편에서는 좀비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다면, 4편은 질병과 감염 위기에 처한 인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종교에 의지하던 믿음도,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던 낙관주의도 모두 잃어버린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말만 거창할 뿐이지, 그냥 살아남기 위해 서로 의심하고 죽고 도망치는 게 다였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탄산이 빠진 사이다처럼 맥이 없었다.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좀비 영화가 되어버렸다. 결말 부분에서 드라마 ‘엑스 파일 The X-Files’ 1시즌의 8편 ‘빙하의 비밀 Ice’이 떠올랐다.


 

  그래도 악마와 기생충 그리고 좀비를 결합시킨 발상이 신선했다. 아마 5편이 나오면 또 볼 것이다. 쏘우나 레지던트 이블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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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둑
제니퍼 켄트 감독, 에시 데이비스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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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Babadook, 2014

  감독 - 제니퍼 켄트

  출연 - 에시 데이비스, 노아 와이즈먼, 할리 맥엘히니, 다니엘 헨셜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가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멜리아'. 그 때 태어난 어린 '사무엘'을 혼자 키우면서 노인 병동에서 일을 한다. 사무엘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고뭉치다. 과잉 행동 장애가 있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 예를 들면 괴물을 물리치겠다고 다트로 만든 총을 갖고 다닌다거나 폭죽을 던지는 등의 짓을 한다. 게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명을 질러댄다. 어느 날 사무엘은 엄마에게 읽어달라며 책을 하나 가져온다. '바바둑'이라는 괴물 이야기를 다룬 팝업 북인데, 내용이 이상했다. 그 날 이후, 사무엘은 바바둑이 돌아다닌다고 병적으로 무서워한다. 그래서 아멜리아는 그 책을 찢어버리지만, 며칠 후 누군가 종이를 제대로 붙여서 다시 집에 갖다놓는다. 그리고 아멜리아의 눈에도 바바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계속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처음에는 무척 짜증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어린 사무엘의 멋진 연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봐달라고 엄마에게 비명을 지르거나 작은 입을 오물거리면서 말할 때 얼마나 얄밉고 짜증나던지……. 오죽하면 누가 쟤 입을 좀 막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 안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비명을 지르다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에서는 '아, 진짜 너무하네.'라는 중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안쓰럽고 오싹했다. 싱글맘의 고단함을 표정에서부터 느끼게 해주는 엄마 아멜리아의 연기는 너무 안쓰러웠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들을 돌보는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하다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불려가야 하고……. 이마에 '나 피곤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점차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은 오싹했다. 사무엘을 향한 싸늘한 눈빛은, 그 전까지 피곤하고 짜증나지만 아들을 사랑스럽게 보던 표정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처음에는 대책이 없는 것 같았던 사무엘이 후반으로 가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듬직한 모습을 보이고, 아들이 하던 일에 귀찮아하던 엄마는 나중에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관심을 끌고자 위험한 일을 할 이유가 더 이상 없었고, 엄마가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을 봐주기에 고함을 지를 필요가 없어졌다. 엄마도 아들이 하는 행동이 다 애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엄마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들이 엄마의 관심과 사랑받는 것을 갈구한다는 것을 느꼈기에, 아들이 엄마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더 이상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아들은 짐이 아니라, 남편이 남긴 자신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표현하는데 서툴고 대화하는 법을 몰랐던 아들과 너무도 지친 나머지 주위를 돌아보기 힘들었던 엄마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면, 공포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두 모자에게 공포심을 주고, 서로의 애정을 깨달을 수 있는 매개체로 바바둑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책에 나오는 단순한 캐릭터였지만, 누군가 그 이름을 읽어주고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하면 실체화가 되는 괴물이었다. 마음의 어둠을 먹고 사는, 한번 지배당하면 쫓아내기 어려운 그런 존재였다.

 


  어쩌면 바바둑이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평소와 다르게 화를 폭발하거나 자기 자신을 주체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제력을 발휘해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지만, 간혹 그 선을 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바둑은 바로 그 선 안쪽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웹서핑을 하다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 원주민 추장이 손자에게 인간의 내면에 살고 있는 두 마리 늑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하나는 분노, 시기, 원한 같은 이름을 가진 악한 늑대고 다른 하나는 사랑, 희망, 진실을 뜻하는 착한 늑대라는 것이다. 그 두 마리는 너의 마음에도 있고 끊임없이 싸운다고 할아버지가 얘기하자, 손자가 묻는다. 누가 이기냐고. 그러자 할아버지 추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

 


  바바둑은 어쩌면 우리 마음의 악한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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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가브리아제 감독, 셸리 헤닉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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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Unfriended, 2014

  감독 - 레반 가브라이제

  출연 - 셸리 헤닉, 모세 제이콥 스톰, 윌 펠츠, 헤더 소사먼

 

 

 



 

 

  '로라 반스'라는 소녀가 자살했다. 그녀는 친구들이 올린 동영상 때문에 온갖 악플과 모욕을 받자,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1년 후. 죽은 로라의 친구들이 영상 통화를 하게 되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용자가 그들의 대화방에 끼어든다. 아무리 대화방에서 쫓아내려고 해도 되지 않자 모두들 신경이 곤두섰고, 그 사용자가 뜻밖에도 죽은 로라의 아이디로 접속한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친구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 펼쳐지는데…….

 


  영화는 '스카이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영상 통화를 하는 모습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대화' 없이, 브라우저를 통해 검색을 하거나 뮤직 플레이어 등의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장면만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부분들이 다 무의미한 것은 아니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요즘은 실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모니터나 휴대전화의 영상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이다. 그리고 직접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더 많은 사회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이 있다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착하고 올바르게 생활하는 건 아니다. 편리한 기술은 때로는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도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서 인연을 맺고 끊는 게 무척이나 쉬워졌다. 또한 그만큼 개인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될 확률도 높아졌다. 그 말은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가 높다는 뜻이다. 누구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온라인에 업로드 하는 것이 쉬워졌고, 익명이나 다른 사람을 사칭하기 간편해졌다. 게다가 업로드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공유가 이루어지고, 100%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공유했는지 모르고, 모든 자료는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나온다. 엿 먹으라는 속셈으로 동영상을 올렸지만 그건 친구의 자살을 초래했다. 죽으라고 등 떠민 게 아니기 때문에, 장난으로 영상을 올렸기 때문에 아이들은 로라의 죽음에 자기들 책임은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들끼리만 돌려볼 계획이었지, 널리 널리 퍼트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공유한 불특정 다수가 잘못한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냥 자기들 편하게,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안다.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그들은 자기들이 한 짓을 고스란히 당한다. 숨기고 싶었던 사진이나 분명히 지웠다고 생각한 비밀스런 게시 글이나 메시지들이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그제야 아이들은 로라가 어떤 심정으로 자살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아이들은 영상 채팅방에서 나갈 수도 없고, 컴퓨터를 끌 수도 없다. 자기들의 치부가 담긴 자료를 받아봐야 하고, 친구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면서 절규한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해킹을 하고 실시간 채팅도 하면서 동시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죽이는 범인의 정체는 누굴까? 심지어 그 인물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화면에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 신출귀몰한 사람은 누굴까? 왜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처음에는 로라를 죽게 한 아이들의 행동에 화가 났는데, 나중에는 범인의 정체에 더 의문이 갔다. 이때부터 인과응보식의 내용에서 잔혹한 살인극으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이러면 핀트가 어긋난다. 로라 반스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범인의 살인극이 되어버린다. 감독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결말 부분에 다른 장치를 해놓았지만 음……. 사실 너무 빨리 지나가서 제대로 확인을 할 수가 없다.


 

  영화는 바람피울 때는 몰카가 있는지 꼭 확인하고, 나중에 이불을 뻥뻥 찰 흑역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진이나 글을 아예 온라인에 올리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건 아예 찍지도 쓰지고 말아야 한다. 또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 그른 게 하나 없다는 확인도 해주고 있다.

 


  문자로 전개되는 부분이 좀 지루하고, 비밀이 드러난 아이들이 울고불고하는 장면이 좀 짜증이 난다. 그런 부분만 잘 넘기면, 꽤나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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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우즈
트래비스 클러프 외 감독, 캐시디 기포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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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원제 - The Gallows, 2015

  감독 - 트래비스 클러프, 크리스 로핑

  출연 - 캐시디 지포드, 파이퍼 브라운, 리스 미슬러, 라이언 슈스

 

 

 

 

 

 

 

  갤로우즈 the gallows는 교수대를 뜻한다. 고등학교 연극부에서 공연을 하던 중,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다. 극 중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는 아이가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안전장치에 오작동이 생기면서 진짜로 죽어버린 것이다. 십여 년 후, 학교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부에서는 문제의 그 연극을 다시 공연하기로 한다. ‘리스’는 마음에 둔 ‘파이퍼’와 같이 하기 위해 폿볼 팀을 그만두고 연극부에 들어간다. 어찌하다 주인공을 맡았지만, 리스는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곤란해 한다. 공연 전날, 리스는 친구 ‘라이언’, 라이언의 여자 친구인 ‘캐시디’와 함께 강당으로 숨어들어간다. 대사를 못 외워 공연을 망칠 것 같으니, 미리 공연을 하지 못하게 무대장치를 부수자는 생각이었다. 한참 무대를 망치던 셋은 우연히 파이퍼를 만나는데, 그만 강당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데…….

 


  학교마다 괴담이 있다. 특히 재래식 화장실이라면 당연히 한두 개쯤은 있기 마련이고, 동상이나 조각상,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들 중에 사연 없는 건 거의 없다. 아! 미술실과 과학실도 빼먹으면 안 된다! 이 영화 역시 공연 중에 죽어버린 소년 찰리의 원혼이 강당을 떠돈다는, 일종의 학교 괴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의 한은 너무도 깊어서 단순히 공연장을 떠도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홀연히 나타나서 아이들을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설정이다. ‘블러드 메리’ 괴담이라든지 영화 ‘캔디맨 Candyman, 1992’이 떠오른다.

 

 

  영화는 라이언이 매일 갖고 다니는 카메라를 통해 진행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아이들은 손전등하나 갖고 오지 않았다. 그들이 의지할 건 오직 라이언의 카메라 불빛밖에 없다. 그 때문에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하고 빛이 비치지 않는 곳의 상황은 볼 수가 없었다. 이런 핸드헬드 기법의 영화를 볼 때마다 왜 그리도 카메라를 놓지 못하냐고 투덜거렸는데, 여기서는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불이라곤 카메라 플래시밖에 없으니까. 와, 이런 간단한 해결이!


 

  게다가 휴대전화는 통화권 이탈이라 뜨고, 강당 사무실의 전화 역시 불통이다. 열려있는 문을 따라 갈수록 어딘지 모르는 낯선 장소가 자꾸만 나온다. 강당에 이런 곳이 있었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비명을 질러도 바깥엔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오고 말았다. 말 그대로 아이들은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몰랐던 비밀까지 알게 되면 두려움은 배가 된다. 원래 찰리의 배역이 목을 매는 죄수가 아닌 사형집행인이었고, 죄수 역할을 맡을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러면 찰리는 억울해서라도 학교를 떠나지 못한다는 타당성을 제공한다. 특히 죄수 역을 맡기로 한 배우가 리스의 아버지라면……. 이제 영화는 저주라는 소재까지 가미하였다. 이 세상에 못 말리는 게 여러 개 있다. 짱구도 못 말리는 존재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복수 역시 만만찮다. 나름의 정당성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아이들이 희생자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현명하게 행동한다면, 그 복수극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도 있다. 불행히도 이 영화의 아이들은 탈출구를 찾기보다는 자책하고 포기하고 상대방 탓을 하기 바쁘다. 공포심이 갈등을 빚고 그것은 죽음을 불러왔다.

 

 

  영화는 좀 산만하고 아이들이 답답했다. 하지만 카메라 불빛에만 의존해서 진행되는 방식은 화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다른 부분은 다 어두컴컴하고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곳에만 조명이 비추기 때문인가 보다. 카메라가 움직일 때마다 살짝살짝 보이는 뭔가는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 영화를 보면서 ‘오!’하고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뭔가 나오겠군.’하는 부분에서 어김없이 뭔가 튀어나오는 흐름이어서, 식상했다.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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