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둑
제니퍼 켄트 감독, 에시 데이비스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원제 - The Babadook, 2014

  감독 - 제니퍼 켄트

  출연 - 에시 데이비스, 노아 와이즈먼, 할리 맥엘히니, 다니엘 헨셜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가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멜리아'. 그 때 태어난 어린 '사무엘'을 혼자 키우면서 노인 병동에서 일을 한다. 사무엘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고뭉치다. 과잉 행동 장애가 있는 것처럼 위험한 행동, 예를 들면 괴물을 물리치겠다고 다트로 만든 총을 갖고 다닌다거나 폭죽을 던지는 등의 짓을 한다. 게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명을 질러댄다. 어느 날 사무엘은 엄마에게 읽어달라며 책을 하나 가져온다. '바바둑'이라는 괴물 이야기를 다룬 팝업 북인데, 내용이 이상했다. 그 날 이후, 사무엘은 바바둑이 돌아다닌다고 병적으로 무서워한다. 그래서 아멜리아는 그 책을 찢어버리지만, 며칠 후 누군가 종이를 제대로 붙여서 다시 집에 갖다놓는다. 그리고 아멜리아의 눈에도 바바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계속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처음에는 무척 짜증이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어린 사무엘의 멋진 연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봐달라고 엄마에게 비명을 지르거나 작은 입을 오물거리면서 말할 때 얼마나 얄밉고 짜증나던지……. 오죽하면 누가 쟤 입을 좀 막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 안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비명을 지르다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에서는 '아, 진짜 너무하네.'라는 중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안쓰럽고 오싹했다. 싱글맘의 고단함을 표정에서부터 느끼게 해주는 엄마 아멜리아의 연기는 너무 안쓰러웠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들을 돌보는 것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하다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불려가야 하고……. 이마에 '나 피곤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점차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은 오싹했다. 사무엘을 향한 싸늘한 눈빛은, 그 전까지 피곤하고 짜증나지만 아들을 사랑스럽게 보던 표정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처음에는 대책이 없는 것 같았던 사무엘이 후반으로 가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듬직한 모습을 보이고, 아들이 하던 일에 귀찮아하던 엄마는 나중에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관심을 끌고자 위험한 일을 할 이유가 더 이상 없었고, 엄마가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을 봐주기에 고함을 지를 필요가 없어졌다. 엄마도 아들이 하는 행동이 다 애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엄마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들이 엄마의 관심과 사랑받는 것을 갈구한다는 것을 느꼈기에, 아들이 엄마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더 이상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아들은 짐이 아니라, 남편이 남긴 자신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표현하는데 서툴고 대화하는 법을 몰랐던 아들과 너무도 지친 나머지 주위를 돌아보기 힘들었던 엄마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면, 공포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두 모자에게 공포심을 주고, 서로의 애정을 깨달을 수 있는 매개체로 바바둑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책에 나오는 단순한 캐릭터였지만, 누군가 그 이름을 읽어주고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하면 실체화가 되는 괴물이었다. 마음의 어둠을 먹고 사는, 한번 지배당하면 쫓아내기 어려운 그런 존재였다.

 


  어쩌면 바바둑이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평소와 다르게 화를 폭발하거나 자기 자신을 주체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제력을 발휘해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지만, 간혹 그 선을 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바둑은 바로 그 선 안쪽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웹서핑을 하다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 원주민 추장이 손자에게 인간의 내면에 살고 있는 두 마리 늑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하나는 분노, 시기, 원한 같은 이름을 가진 악한 늑대고 다른 하나는 사랑, 희망, 진실을 뜻하는 착한 늑대라는 것이다. 그 두 마리는 너의 마음에도 있고 끊임없이 싸운다고 할아버지가 얘기하자, 손자가 묻는다. 누가 이기냐고. 그러자 할아버지 추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

 


  바바둑은 어쩌면 우리 마음의 악한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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