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블랙 2 (2disc) - 할인행사
베리 소넨필드 감독, 윌 스미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원제 - Men in Black II, 2002

  감독 - 배리 소넨필드

  출연 - 토미 리 존스, 윌 스미스, 라라 플린 보일, 조니 녹스빌  




  까만 옷을 입은 남자들이 5년 만에 돌아왔다. 그 동안 과학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이제 영화의 CG는 진짜와 구별하기 힘들어졌다. 우주의 악녀 셀리나가 가는 곳마다 행성을 폭파시키고, 지구에 도착해서 인간 여자로 변신하는 모습은 와ㅡ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나도 저런 기술 갖고 싶어! 이런 욕구가 가득 담긴 외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물론 셀리나의 본체까지 가지라고 한다면 보류.


  지난번에서 바퀴벌레 외계인이 등장했다면, 이번에는 식물인지 동물인지 불분명한 외계인이 등장한다. 촉수 괴물 외계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처음 보기에는 작은 씨앗 같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서 변신능력까지 갖춘다. 외국 잡지의 섹시한 속옷 모델로…….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지르다의 빛'을 찾기 위해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살인을 저지르고 심지어 MIB 본부까지 점령하는 재빠르고 뛰어난 행동력을 보여준다.


  그녀를 잡기 위해서는 1편에서 은퇴한 토미 리 존스, 케이가 필요했다. 윌 스미스, 제이는 그를 찾아내서 기억을 되살려 다시 한 번 한 팀으로 뭉친다.


  기억을 잃은 케이에게 외계인을 보여주는 장면은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MIB가 은퇴한 요원들의 복지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을 써준다는 사실에, 저기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죽을 때까지 보살펴주는 거잖아. 거기다 외계인 취업문제도 동시에 해결하고! 상냥해! 그가 본부에 와서 어리바리하게 구는 모습이 꼭 1편에서 제이가 했던 것과 비슷해, 키득거리며 웃었다. 돌고 도는 구나. 어제의 선배가 오늘의 신참.


  1편에서 나왔던 다양한 외계인들이 다시 출연한다. 강아지 외계인 프랭크가 자동차를 타고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쩐지 상황과 맞아떨어져서 웃음이 나왔다.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 였는데, 'And so you're back, from outta space' 이 대목을 부르고 있었다. 하긴 셀리나가 외계에서 왔지. 거기가 바하 맨의 'who let the dogs out'을 틀어놓고 박자 맞춰서 짖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자기를 개라고 무시하는 인간 요원들에게는 으르렁대지만.


  마이클 잭슨도 깜짝 등장했다. 지구 MIB요원이 되고 싶은 외계인으로. 반갑고 슬프고 그랬다. 탐정 몽크의 배우도 다시 등장했다. 무기 밀매도 하고 기억 재생업도 하고, 투 잡을 뛰고 있었다. 본부 휴게실에서 커피 타던 외계인들이 또 등장해서 유유자적하게 놀고먹는 생활이 뭔지 잘 보여줬다. 인간들이 하는 짓과 어찌나 비슷하던지.


  제일 놀랐던 외계인은 그랜드 센트럴역 사물함에 거주하는 부족이었다. 어쩐지 종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종족들이었다. 사물함이 그렇게 클 리가 없으니 닥터 후의 타디스처럼 겉은 작지만 속은 넓은 게 아닐까? 열쇠는 케이가 갖고 장기 임대를 했다면, 아무도 열어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케이가 기억을 되찾고 난 다음이었다. 몰랐던 때에는 평범하게 그냥 넘어갔을 거리 풍경이, MIB요원의 기억을 되찾고 나자 전과 같이 보이지 않았다. 지구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의 변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케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우체국장으로 나름 재미있으면서 평범한, 그렇지만 마음 한 곳은 아쉬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복귀하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는, 하지만 긴장감 넘치고 지구를 구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했다.


  생각해봤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것이 더 나을까?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괜히 알아서 신경 쓰는 것보다 모르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아!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도 있다. 알 필요가 없는 것을 괜히 밝혀 긁어 부스럼을 낸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금 돌아가는 사정만 봐도 그렇다. 과연 아무 것도 모르고 원래 그런 세상이라고 살 것인지, 아니면 이것저것 알아가면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파악하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 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단지 나 혼자만 편하게 살 것인지, 아니면 후손까지 고려해야할 지. 케이가 어떤 심정으로 거리 풍경을 바라봤는지 생각해보니, 문득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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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위로 한 그릇 - KBS 아나운서 위서현, 그녀의 음식 치유법
위서현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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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 - KBS 아나운서 위서현, 그녀의 음식 치유법

  저자 - 위서현



  처음에 몇 장 읽다가 배가 고파져서, 책을 덮었다. 그리고 허기를 달랜 다음에 다시 읽었다. 식욕을 자극하는 문장이 왜 이리도 많은지……. 사진은 정적인데 문장이 동적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음식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은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가령 미역국을 먹으면서 다시금 깨우친 엄마의 사랑, 단팥죽을 먹으면서 느꼈던 사람 사이의 든든함과 따뜻함, 완탕면에서 알아차린 유쾌한 인생의 맛 등등.


  얼마 전에 읽었던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영화나 소설에서 깨달은 인생에 대한 얘기였고,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가 미술 작품에서 떠올린 사람과 삶에 대한 생각이었다면, 이 책은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짧은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다.





  음식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살려면 먹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사람이니까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을 따로 구비해놓고 수저로 천천히 떠서 식사를 한다. 한 그릇에 몰아넣고 입으로 먹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리고 음식에는 각 사람마다 나름의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는 라면만 먹는 게 지겨워서 자장면을 사 달라 졸라 먹으면서,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대답하셨다는 GOD의 노래 가사와 비슷한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큰올케처럼 생오이를 썰어서 고추장에 찍어먹을 때마다, 그걸 좋아하셨던 시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 아니면 남동생처럼 생일 케이크만 보면, 좋다고 까불다가 케이크 상자를 엎어서 생일날 펑펑 울었던 추억이 생각날 수도 있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서 단순히 영양소만 섭취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을 같이 먹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단순히 추억을 회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의미 없는 몸짓이지만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두에게 다를 것 없는 비슷하고 평범한 음식이었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곁들어진 순간, 그 음식은 특별한 성찬이 되었다.


  그렇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먹을거리였지만, 그날따라 더 맛있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날이후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 음식을 찾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날의 맛과 100%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쩐지 그 날의 기분이 되살아나면서 허기를 달랜다.


  여기서 허기를 달랜다는 건, 그냥 단순히 고팠던 배를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도 계속해서 심적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아쉽고 덜 채워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허기가 가득 채워진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반드시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이제 무슨 일이 닥쳐도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꼭 따라온다.


  그 때가 바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부제에서처럼 치유가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위만 채우는 게 아니라, 그 날의 추억으로 감정도 채워지는 그런 상황. 아마 그런 음식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자기 전에 나의 치유 음식은 뭔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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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미스터리
J.M. 에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단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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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e Mystere Sherlock, 2012

  작가 - J.M. 에르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 왜 스위스에 있는 호텔 이름이 영국 런던 거리명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임의 정체가 중요하다. 셜록 홈즈가 모리아티와 싸웠던 폭포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호텔에서 홈즈 학회가 개최된다. 문제는 거기 모인 사람들이 그냥 단순한 팬이 아니라, 소르본 대학에 신설된 셜록 홈즈 학과의 첫 교수직을 걸고 모인 자들이라는 점이다. 자리를 노린 사람들의 치열하면서 보는 이들에게는 웃음을 주는 총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폭설로 인한 눈사태로 호텔은 사흘 동안 외부와 연락이 끊겨버린다. 지배인이 포세이돈 소방위와 겨우 눈을 뚫고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열 명의 대학교수와 한 명의 웨이트리스로 변장한 기자까지, 총 열 한구의 시체였다. 구조 전화를 받고 왔다는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함께 지배인과 소방위는 도대체 호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리하기 시작한다. 그 기초가 되는 것은 교수들이 남긴 기록과 기자가 남긴 녹음기록과 일지였다.


  이야기는 주로 기자인 오드리가 남긴 기록 위주로 진행된다. 홈즈 학회 교수들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은 듯, 그녀가 서술하는 그들의 인상이나 태도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비아냥으로 가득하다. 또한 정교수 자리를 놓고 다투는 교수들의 대화 역시 상대를 깎아내리고 비꼬기 일색이다.


  와, 서로 헐뜯고 욕하는데 참 대단했다. 저렇게 고상하게 남을 욕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상대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셜록 홈즈의 광팬들답게 등장인물들은 그가 소설에서 읊은 대사를 인용해서 말하는데,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저렇게 멋진 말을 했단 말이야? 만날 왓슨 무식하다고, 다른 사람들은 이해못한다고 투덜거린 줄로만 알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진짜 홈즈 광팬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인용구가 홈즈의 대사라는 것에서부터 작가는 홈즈의 열혈팬이다. 게다가 진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홈즈 연구 서적이 줄줄 나올 때는 ‘헐, 대박’이라며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진짜 저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니면 작가가 만든 걸까? 진짜 있다면 조사를 한 작가의 노력에 고생하셨다고 말해주고, 작가의 창작이라면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싶다.


  문장이 상당히 독특하고 재기발랄한 것이 많아 읽으면서 킬킬거렸다. 특히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자아비판대회같은 분위기’나 ‘XXL 사이즈의 바나나 같은 미소’, 그리고 ‘모택동 시절의 인민회의에서처럼 열광적인 박수’라는 표현에서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길게 묘사를 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100% 실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렇게 상황이 정확하게 와 닿는 표현력이라니!


  사람들이 한명씩 죽어나가자 살아남은 자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심해진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각자 누가 범인일까 추리를 하는데, 그 해답이라는 게 참 생각할수록 웃긴다.


  우선 홈즈의 철천지 원수 모리아티가 숨어들어와 일행을 죽인다는 설이 있다. 음, 모리아티가 실존인물이라면, 홈즈도 역시? 하긴 이 학회 사람들은 홈즈가 실제 살아있는 인물로 믿고 있으니까. 개중에는 자신이 그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 다음 황당한 건, 푸와로 학회 사람들이 범인이라는 설이다. 표기법이 좀 이상하지만, 포와로를 말하는 것이리라.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료 교수를 변절자라고 욕하더니, 홈즈 학회가 설립된 것을 시기하는 푸와로 팬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아니, 우리 포와로 팬들을 뭐로 보고! 우린 고결하고 고상하거든? 그래서 손에 피 같은 건 안 묻히거든? 읽는 포와로 팬, 화날 뻔 했다.


  가만히 있는 포와로 팬을 걸고넘어진 것만 빼면, 책은 꽤 재미있었다. 전개는 적절한 속도로 진행되고, 신랄한 표현은 마음에 들었다. 맨 마지막에 여지를 남긴 것도 괜찮았다. 그게 없었으면, 반박이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처음에 했으니까. 그런 부분까지 꼼꼼하게 마무리를 한 작가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덕분에 홈즈가 아주 조금 그리워지기도 했다.


  셜록 홈즈를 다시 읽어볼까? 물론 내 사랑 포와로를 다 읽은 다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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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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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방현희




  요즘 들어 어머님이나 오라버님이 내 방에 들어오시면 꼭 하는 말씀이 있다. “예전처럼 추리 소설만 있는 게 아니니 보기 좋잖아.” 어찌어찌하다가 추리 소설이외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이 소설 역시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로 손에 잡지 않을 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처음 읽는 책인데, 꽤 재미있었다. 지루함이 아닌, 흥미를 가지고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일곱 개의 단편들이 각각의 말하고자 하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른하게, 또 다른 부분에서는 안타깝게. 글은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뭔가에 집착한다. 사랑을, 자유를, 꿈을, 그리고 완벽한 삶을 갖고자 노력하지만 손에 넣지 못한다.


  ‘로스트 인 서울’의 여주인공은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국인 우즈벡으로 돌아가 필요한 인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금발의 백인 미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농간에 휘말려, 재력가의 첩이 되었다가 결국은 홈쇼핑 모델로 살아가게 된다.


  돈으로 한 사람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했던 재력가의 행태에 분노했고, 그녀와의 은밀한 만남에만 집착하고 책임을 회피한 또 다른 남자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묵직한 것이 무척이나 씁쓸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세컨드 라이프’는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고민을 했던 이야기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와보는 곳에서, 마치 진짜로 살았던 것처럼 과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부인이 있는 현재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형의 죽음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그가, 마음 한구석에서 만들어낸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결국 그는 환상과 현실을 구별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탈옥’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목표인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SF 소설이 생각났다.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는 박사의 이야기였다. 나중에 그는 머리만 살아있지만,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아마도 이 글의 주인공이 다음에는 무엇을 빼낼까 생각하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 소설이 연상된 모양이다.


  ‘그 남자의 손목시계’는 가정 폭력을 겪는, 아버지를 절대로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다. 홍길동은 타의에 의해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지만, 이 소년은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어머니를 구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힘도 없던 소년. 결국 그는 나름의 복수를 계획한다.


  ‘후쿠오카 스토리-위급 상황에서의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결국 그들의 예쁜 추억은 거짓으로 가득한 가식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평소에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랬다면, 오래 전에 헤어졌겠지.


  ‘로라, 네 이름은 미조’는 마음이 아팠다.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고, 사랑을 꿈꾸던 여인. 하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어렵고 힘들었다. 왜 그녀가 그런 습관을 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로 자신을 벌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상대의 일부를 취함으로 상대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원시시대의 풍습을 선택한 것일까? 하지만 원시인들은 사람을 먹었지, 물건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장애를 갖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먹는 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녀의 그런 심리는 남에게 자신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녀는 행복했을까?


  ‘퍼펙트 블루-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는 음, 마이클 잭슨 생각이 나서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책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허무하기도 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기분도 들고, 묵직한 것이 가슴의 일부분을 누르는 느낌에, 먹은 것이 얹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의미모를 한숨도 새나왔다. 유쾌상쾌통쾌한 기분은 들지 않고, 그냥 뒷맛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찜찜해서 다시는 안 볼 책 목록에 들어가진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중간 중간에 생소한 어휘들을 보게 되어 놀라웠다. ‘이런 단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난 얼마나 무지한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예를 들면 ‘톺다’, ‘착종’ 그리고 ‘짯짯하다’가 있었다. 사전을 뒤져보면서, 신기하고 부끄럽고 그랬다. 음, 난 어휘를 잃어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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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웹툰: 예고살인
김용균 감독, 엄기준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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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제 - Killer Toon, 2013

  감독 - 김용균

  출연 - 이시영, 엄기준, 현우, 문가영




  예전에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을 만든 감독이라고 한다. 오! 그 영화 섬뜩하게 잘 봤는데! 그럼 이번 영화도? 하면서 기대를 하려고 했지만, 문득 얼마 전에 리뷰를 올린 ‘닥터’가 생각났다. 그 영화의 감독도 전작이 아주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그래서 기대를 반 정도 버리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공포 웹툰을 그리는 작가 지윤. 사실적이면서 오싹한 그림체와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뛰어난 미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기 만화가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가 그린 웹툰대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경찰은 그 점에 주목하여 그녀를 추궁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 지윤은 지윤대로 자신의 그림대로 일어나는 사건에 두려움을 가지며 사건을 막아보려고 애쓰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녀의 눈앞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


  결국 그녀는 경찰인 기철에게 웹툰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고야 만다. 그림의 원작 스토리는 자신이 돌봐주던 귀신 보는 소녀에게서 힌트를 얻었고, 매일 밤마다 팩스로 만화 콘티가 보내져온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 말을 100% 믿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누가 팩스를 보내는지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고된 죽음의 만화는 경찰에게도 손을 내민다.


  영화는 섣불리 추측하지 못하게 상황을 이리저리 꼬다가 비틀어놓고, 배경을 은근슬쩍 뒤로 숨기면서 복잡하게 이끈다.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이 하나의 비밀이 풀리면, 또 다른 질문이 뒤를 이어 나온다.


  하나둘 밝혀지는 비밀이 과거와 얽히면서, 현재는 아수라장이 된다. 미래는 어떨지 짐작도 못할 정도이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모든 상황이 꼼꼼하게 연결되면서, 감독은 보는 이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범인이 누구일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이 사람 같고, 달리 보면 저 사람 같기도 하다. 감독은 교묘하게 여러 군데에 장치를 분산시켜놓았다. 과거가 드러날수록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거리낌 없이 후려친다. 음, 그래서 복잡한 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반전이 있는 호러 스릴러 영화는 감독이 자신이 생각하고 짜놓은 모든 복선과 암시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데, 어떻게 관객과 교감하면서 제대로 보여주느냐가 제일 관건일 테니까. 그래도 이 영화는 너무 복잡하지도 않았다. 차분히 생각하면 퍼즐 조각을 다 맞출 수 있었다.


  구성과 더불어 좋았던 것은 표현이었다. 만화 장면과 연결되는 현실의 상황, 그리고 만화로 보여주는 어둠에 대한 표현은 기발하면서 어둡고 불길한 느낌을 더욱 더 강조했다. 아마 만화의 그림체가 사실적이면서 기괴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다. 혼자 튀거나 책을 읽는 사람도 없었다.


  올해 본 2013년 산 호러 영화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좋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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