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덫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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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ree Blind Mice and Other Stories, 1950

  작가 - 아가사 크리스티



  총 아홉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단편집이다. 그 중 표제작인 '쥐덫'은 원래 라디오 드라마 작품을 위해 써지고, 나중에 연극으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 드라마로 만들어진 계기가 영국 조지 5세의 왕비인 메리의 80세 생일 선물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녀가 생일 선물로 크리스티의 작품을 방송으로 듣고 싶다고 했다니, 이 추리작가의 인기가 어땠는지 짐작할 만하다.


  '쥐덫'은 전쟁 후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코크스가 부족해서 방송에서 연료를 아끼라고 방송을 하고, 외투 배급제라든지, 군대의 요구로 강제로 저택이 징발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한 사건의 배경인 전쟁고아를 입양시키는 정책도 등장한다. 한 농장에서 입양한 전쟁고아들을 학대하여 한 아이가 죽어버린다. 시간이 흘러, 거기서 살아남은 형제가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눈 때문에 고립된 하숙집, 끊어진 전기, 정체불명의 투숙객들 그리고 '세 마리의 눈 먼 쥐'라는 동요의 멜로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뒤이어 실린 '이상한 사건', '줄자 살인사건', '모범 하녀', '관리인 노파'에서는 미스 마플이 나온다. 여전히 동네 사람들과 연관시켜 얘기를 늘어놓지만, 사건의 핵심을 정확히 겨냥한 것들이라 주의 깊게 읽어야한다.


  '이상한 사건'은 사라진 유산을 찾는 내용이다. 음, 내가 이 사건을 제대로 추리하지 못한 이유는 영국의 관용어 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우겨본다. 그 단어가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안담?


  '줄자 살인사건'은 어딘지 모르게 포와로가 나왔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두 이야기의 트릭 그 자체는 비슷하지 않은데, 보석과 하녀가 등장해서 그런 걸까? 느낌이 그렇다.


  '모범 하녀'는 미스 마플의 마을 사랑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무고한 마을 처녀가 의심받는 것을 보다 못해 사건 해결에 앞장선 정의의 여신! 하여간 세인트 메리미드 노부인들의 수다는 막강하다.


  '관리인 노파'는 읽다보면 다른 장편이 떠오른다. 전에 읽은 '끝없는 밤'은 이 단편을 장편으로 옮긴 게 거의 확실하다. 기본 설정이나 트릭이 완전 흡사하니까. 서술자가 다를 뿐. 하긴 전에도 단편을 장편으로 바꾼 경우가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끝없는 밤'보다 이 단편이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4층 아파트', '조니 웨이벌리의 모험', '스물네 마리의 검은 티티새'는 포와로가 나오는 작품들이다.


  '4층 아파트'는 어랍쇼?하는 사이에 사건이 해결되어있다. 아니, 포와로! 이게 무슨 초고속 사건 해결이란 말이오? 난 아직 등장인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소이다!


  '조니 웨이벌리의 모험'은 하아, 진짜 화가 나는 이야기다. 뭐 저딴 놈이! 더 많은 욕을 하고 싶지만, 그러면 범인이 누군지 밝혀질 우려가 있어서 혼자 떠들기로 했다. 와, 진짜 막장이었다. 문득 셜록 홈즈가 나왔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물네 마리의 검은 티티새'는 흐음. 돈도 무섭고, 인간의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 지 깨달았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지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나도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


  마지막 '연애 탐정'은 할리퀸이 나온다. 아직 그가 나오는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어쩐지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가 나오는 작품을 읽어볼 생각을 하니 두근거린다. 책 표지를 들춰보니, '수수께끼의 할리퀸'은 55권이다. 아쉽게도 내년에 읽을 부분이다. 이 단편 역시 전에 읽은 '목사관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범인과 그 트릭 그리고 배경 설정이 흡사하다.


  이야기들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책의 편집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첨부한 사진에서 위아래 문단은 전혀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일어나는 대화이다. 그래서 읽다가 혼란스러웠다. 




  미스 마플이 세 명과 자리를 함께 한 것인가? 그런데 대화를 쭉 읽어보면 그게 아니다. 파크 순경을 마나보라고 조언해준 사람은 슬랙 경감이었고, 이후 시간과 장소가 바뀌면서 스펜로우 씨를 만난 것이다. 이런 부분이 '스물네 마리의 검은 티티새'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거기는 범인의 이름이 나와서 사진 첨부를 하지 않았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잘 읽다가 '어라?'하고 다시 돌아가서 읽게 되면 글의 흐름이 딱 끊기면서 화가 난다.


  크리스티가 멋진 작품을 썼는데, 마지막에 편집에서 초를 친 기분이 든다. 그녀의 팬으로 단편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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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브 아웃
그레고리 기라스 감독, 레리 케세이 외 출연 / 엔터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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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ENTIPEDE

  감독 - 그레고리 기라스

  주연 - 레리 케세이, 마가렛 캐쉬, 트래버 머피



  ‘낚이는 건 아니겠지?’ 영화를 보기 전에 든 생각은 이거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중간에 든 생각은 ‘나 낚였나?’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든 생각은 ‘낚였다.’


  처음에는 ‘케이브 2’라는 제목에 ‘오!’했었다. ‘케이브’를 그럭저럭 괜찮다는 느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검색을 해보니 ‘케이브 아웃’이라는 제목으로 재 출시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왜 제목이 바뀌었을까? 전혀 관련이 없는 영화인데, 수입회사에서 제목을 비슷하게 붙인 게 아닐까? 그런데 거의 모든 포털에 조디 포스터가 출연 배우 명단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헐! 대박!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이건 뭐지? 마지막까지 조디 포스터의 ‘ㅈ'도 볼 수 없었다. 아, 설마 조지 포스터라는 이름이 뜨는데 조지를 조디로 광고한 걸까?


  거기다 원제에서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다. Centipede, 그러니까 동굴 탐사를 갔는데 거기서 지네를 만나 죽을 고생을 하는 얘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추측은 맞아떨어졌다.


  결혼식 전에 예비 신랑신부는 친구들과 인도에 있는 동굴 탐사를 떠난다. 처음에는 모두 희희낙락 장난도 치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폭발과 함께 출구가 막혀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아주 큰 거대 지네가 나타나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일행은 우왕좌왕하고 서로 싸우고 도망 다니고 비명 지르고 그러다 죽고…….


  영화 내내 긴장감은 별로 찾아볼 수 없고, 거의 전형적인 코스대로 사건은 진행된다. 여기서 불이 꺼지겠지 하면 전등이 꺼지고, 뭔가 나타나겠네 하니까 나타나고……. 처음에는 미지의 공격자로 나오지만 이미 제목과 포스터에서 정체가 까발려진 거대 지네 특수 효과는 웃음만 나오고, 삐딱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다보니까 배우들 연기도 마음에 안 들고, 자기애인 살리자고 다른 사람 희생시키는 여자의 행동은 으아! 특히 결말 부분은, 그 허접함이란…….


  친구 다 죽이고 둘이 살았다고 키스만 하면 장땡이냐, 이것들아! 아, 욕 나온다. 


  왜 별 0개를 못 주는 거야, 짜증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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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향한 발자국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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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estination Unknown, 1954

  작가 - 아가사 크리스티




  이번 편은 크리스티가 배출한 탐정이 나오지 않는, 첩보물이다. 그렇다고 1,2차 대전의 독일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거대 자본과 대결하는 내용이다. 음, 크리스티는 이미 50년대에 거대 자본의 폐해를 예상했다. 역시 뛰어난 작가!


  세계 여러 나라의 유능한 과학자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중에는 사고로 죽는 사람도 있지만, 첩보부에서는 사고사를 위장한 실종으로 보고 있다. 한편 아들을 잃고 남편과 헤어진 힐러리는 죽겠다는 일념으로 카사블랑카로 향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첩보원 제솝이 제안을 하나 한다. 사라진 과학자의 아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는데, 그 행세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왕 죽을 거면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나 하고 죽으라는 그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 힐러리. 은밀히 접촉해오는 국제 조직을 따라 아무도 모르는 폐쇄공간으로 향한다.


  이번 편은 무척이나 진지한 느낌이 들었다.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 예를 들면 우연히 사건에 휘말린 남녀가 나오는 소설들을 보면 로맨스가 주를 이루고 가끔 장난기 가득한 상황이나 대사가 나오는데 이번은 그러지 않았다. 다른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될까 두근거리면서 적극적으로 사건에 몰입하지만, 힐러리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기대라든지 설레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비밀 조직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라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 누군가 다가와도 그것을 호의로 보기보다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고민한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열변을 토한다. 대개 천재적인 과학자들이라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우매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이성적인 자신들의 모든 권력을 잡아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병신 같지만, 뇌를 비우고 읽으면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정신을 차리면 '이건 또 무슨 바보인증이야.'라며 혀를 차게 된다.


  중간에 과학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데, 음. 요즘 시각으로 보면 여자를 너무 수동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어쩌면 2차 대전 후, 늘어난 여성들의 사회 참여에 대한 남자들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자들만의 세계에 뛰어들어 독하게 살아야하는 여자 과학자의 모습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950년대나 지금이나, 그 생각이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60년이면 강산은 몰라볼 정도로 6번이나 바뀌지만, 두 세대를 지나는 인간의 생각은 별로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뭐, 크리스티의 작품답게 결말에서는 로맨스가 완성되기도 한다. 왜 갑자기 둘이 사랑을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생면부지의 남녀를 사랑에 빠지게 하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나보다. 아, 그래서 애인님이 두 번째 데이트 때 대구에 있는 흔들다리를 밤에 건너자고 했나. 그 때 너무 무서워서 울면서 주저앉았었는데, 그런 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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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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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Der Augensammler (2010년)

  작가 - 제바스티안 피체크




  책 제목을 본 어머니가 질색을 하신다. 세상에 눈알수집가라니! 끔찍하다고 하신다. 음, 문득 언젠가 보았던 재미있는 글이 생각난다.


바로 이런 거....

만약에 내가 부재중에 택배를 받았으면,

'고객님의 집에 눈알수집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을지도.

  엄마를 죽이고 아이를 납치하는 자가 있다. 그리고 아빠에게 45시간 내에 아이를 구하라고 말한다. 그 시간이 넘으면 아이는 죽은 채로 발견되고, 눈알 하나가 없어져있다. 그래서 범인의 별명이 ‘눈알수집가’가 된 것이다.


  기자인 초르하프는 인질을 구하기 위해 유괴범을 죽였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전직 경찰이다. 그는 ‘눈알수집가’를 잡는 일에 열정을 보인다. 그런데 놈이 활동을 재개했는데, 현장에서 뜻밖에도 초르하프의 지갑이 발견된다. 설상가상으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경찰 무선을 듣고 현장으로 갔지만, 경찰은 그런 내용의 무선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졸지에 일급 용의자가 되어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맹인 안마사인 알리나가 초르하프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연락을 한 적도 없었다. 이건 그를 노리는 함정이고 음모였다. 초르하프는 수습기자 프랑크의 도움을 받아, 알리나와 함께 범인과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모든 정황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경찰은 포위망을 좁혀온다. 병원에 있는 아픈 아들은 자신의 생일에 아빠가 오길 바라지만, 그는 갈 수가 없다.


  책의 구성이 특이하다. 맺음말로 시작해 첫 장으로 끝이 난다. 그 이유를 아는 순간, 욕설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며 허탈해할지도 모르겠다. 범인은 중반 이후부터 짐작이 가지만, 이런 마무리일 줄은 몰랐다.


  범인이 누군지 안다고 해서 소설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레니 크래비츠의 노래 'It Ain't Over Till It's Over'처럼 말이다.


  주인공이 경찰에 쫓기는 누명을 쓴 용의자라서 그런지, 경찰이 상당히 난폭하게 나온다. 특히 수사관인 숄레는 프랑크의 귀에 연필을 꽂아 넣겠다고 협박을 한다거나, 초르하프를 지하실에 가두고 고문을 하려고 한다. 욕설은 기본에 근거 없는 단정과 확신은 옵션이었다. 거기다 남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얼마 전에 본 ‘영 블론드 데드’의 경찰들은 예의바르게 행동했는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같은 독일 작가의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행동이 다르게 설명되나보다.


  범인의 행위는 상당히 잔혹했다. 책에는 그냥 덤덤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따라 읽다보면 저절로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떠올린 장면들은 구체적이고 선명해서 상당히 수위가 높았다. 아, 난 왜 이리도 상상력이 좋단 말인가…….


  소설은 각각 인물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그러니까 1인칭 시점으로 대개는 초르하프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가끔 맹인 안마사 알리나, 경찰 스토야, 수습기자 프랑크 그리고 납치당한 아이인 토비아스의 시점인 장도 있다. 그래서 각자 어떤 상황에 어떤 심정인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몰입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매 장마다 토비아스를 구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더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시간은 자꾸 줄어드는데 다른 곳에서 삽질하는 경찰이나 갈수록 함정에만 빠지는 초르하프를 보면서 화도 나고 안타까웠다. 하긴 너무 쉽게 찾으면 읽는 재미가 없겠지.


작가의 재치를 느낄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특히 경찰에게 조언을 해주는 교수가 한니발 렉터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한니발 렉터는 잊어버리세요. 그건 어느 작가의 발명이고 현실과는 대충 나와 육상 선수 사이만큼의 공통점밖에 없죠.” 홀포르트는 휠체어 바퀴를 가볍게 찰싹 때리며 자기 농담에 혼자 빙긋이 웃었다.-P.142


  그리고 구글 어스를 사용하여 범죄 장소라 예상되는 지역을 찾는 프랑크의 재치에는 놀랐다. 역시 현대 추리 소설은 이런 최신 기술을 사용해야 제 맛이다. 너무 어려운 과학 기술을 사용하면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구글 어스 정도는 기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영화에 대한 알리나의 대사에 공감했다.


  “예전에는 수사반장 연속극을 꽤 잘 따라갈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처음 십 분간 항상 음악과 소음만 들려요. 영화가 점점 영상 위주가 되는 것 같아요.”-P.104


  난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을 무자비하게 극한으로 몰아붙이기도 하고, 희생자들의 상태도 그렇고, 인정이나 자비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살벌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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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나서영 지음 / 젊은작가들의모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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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나서영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서로의 첫사랑이자 계속해서 그리워했던 두 꼬마가 있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주인수에게 이아영은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 속에서 버틸 힘을 주는 한줄기 빛이었다. 아영이 입양되고 난 후, 그는 직업 학원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친구 하나를 만난다. 친구의 이름은 나서영. 유명한 화가의 아들로, 그 또한 전도유망한 화가였다.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 도중, 그는 인수를 알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가 바다에서 만나 사랑을 느낀 여인이 있는데, 바로 아영이었다. 그는 아영에게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는 인수를 대신해, 자신이 인수인 척 나선다.


  한편 아영은 똑똑하고 아름답게 자라난다. 언젠가는 인수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지만, 그를 찾지 못하자 그만 의식을 잃어버린다. 그러기를 몇 년. 결국 그녀의 친구인 김현숙이 주인수를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다리도 못쓰고 별 볼일 없는 주인수의 정체에 실망하지만, 잘생기고 재능 있는 나서영이 진짜 주인수라고 나서자 친구의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반긴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것처럼 나서영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추악한 음모를 꾸민다.


  아,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우울했다고 해야 할까? 모든 소설은 다 해피 엔드로 끝나야한다는 걸 신봉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은 너무 암울했다. 작중 화자는 너무도 부드럽고 나긋한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내용은 어두웠다. 책의 목소리와 내용의 부조화가 더 그렇게 느껴졌다.


  또한 인간이란 얼마나 사악한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참 독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나서영이 아영에게 몹쓸 짓을 하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서 책을 덮어버릴 정도였다. 그 부분에서는 문득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동화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임신했다는 괴담 하나가 떠올랐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데,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그러고 싶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나쁜 놈은 너무도 많다. 나서영이 이 소설에서 악역으로 그려진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 어쩌면 겉과 속이 다른 인간에 대해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보다 동화에서 악당은 못생기거나 흉측하게 생겼지만, 현실에서는 잘생기고 말 잘하는 인간이 너무도 많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에서는 긴 한숨이 나왔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마지막 문장을 보는 순간, 흡사 예전 고전 소설 내지는 신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잘 나가던 진행이 급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뒤에 뭔가 더 있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추리 소설에 길들여져 범인은 반드시 잡혀야 하고, 트릭은 꼭 밝혀지는 그런 구성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소설은 너무 열린 결말이었다. 아영이가 제일 불쌍하다.


  아쉬운 부분을 들자면, 사건이 일어나는 동기 부분이 너무 약하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아영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되는 과정은 좀 뜬금없고, 왜 그래야하는지 이유를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당장 준수를 못 만나는 것이지 평생 못 만날 것도 아닌데 단지 그런 이유로 그렇게 되다니. 음, 평생의 희망을 잃으면 사람이 기운이 빠지고 의욕 상실에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증상이 나오겠지만……. 인간의 나약한 면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려고 그런 걸까? 그래도 너무 뜬금포여서 당황했다. 지병이 있던 것도 아니고.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너무도 약했다, 그녀는.


  그리고 또 하나 더 들자면, 처음 준수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이가 다섯 살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어휘나 표현 면에서 도저히 다섯 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설마 나이가 들어서 과거를 회상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봐도 그건 아니었다. 다섯 살이 저런 말을? 이런 놀라움이 들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나이가 든 다음에야, 목소리와 표현이 어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음,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 하나. 소설에서 나서영이라는 인물이 악역에 해당하는데, 왜 작가는 굳이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였을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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