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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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Fast Genial, 2011

  작가 - 베네딕트 웰스



  '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1997'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그것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살아가던 윌의 이야기였다. 우연히 그의 천재성을 발견한 교수와의 만남과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으며, 그는 성장해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영화가 떠올랐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랬다.


  그리고 어릴 적에 나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원래 내 친부모는 아주 부자인데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부모 밑에서 살고 있는 거라고, 내 친부모는 딸을 혼내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개 엄마아빠에게 엄청 혼이 나고 방구석에 처박혀 훌쩍거릴 때 이런 상상을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 상상했던,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 까라고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할 흑역사가 떠올랐다.


  프랜시스는 친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들락거리는 엄마와 동네 변두리의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다. 어릴 적에는 똑똑하고 운동도 제법 했지만, 이제 그는 뼛속까지 루저라는 생각에 그냥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엄마가 놀라운 비밀을 알려준다. 바로 그가 어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어난 시험관 아이였고, 천재인 남자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만약에 진짜 천재적인 과학자가 자신의 생부라면, 그가 자신을 아들로 인정해준다면, 이 현실에서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프랜시스는 그로버, 엔메이와 함께 미국을 횡단하여 아버지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버지를 만난다는 기대와 불안, 엔메이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 친구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 찬 프랜시스.

  동생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며 자살을 꿈꾸는, 매력적이고 간혹 멋대로 행동하는 엔메이.

  부모의 기대대로 살아온,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친구들에게 매번 놀림을 받지만 반항하지 않고, 빨리 대학교로 진학해 마을을 떠나고 싶은, 이번 여행에서 일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한 그로버.


  소설의 대부분은 세 젊은이가 여행을 하면서 겪는 상실감, 두려움, 희망, 질투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은 비밀이라든지 그동안 말하지 못한 속마음, 술에 취해 내뱉은 실언과 무모한 행동들로 가득하다. 그랜드 캐넌에서 목숨을 걸고 절벽 사이를 뛰어넘는 그로버를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또 누가 프랜시스가 술김에 그로버와 엔메이에게 온갖 화를 터트릴 거라 생각했을까? 그들의 여정 속에는 젊기에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이 서술되어있다.


  그 과정을 통해 세 명은 서서히 변해간다.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히 생각해보고,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된다.


  프랜시스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의를 다졌고, 그로버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는 친구를 얻었으며 엔메이는 더 이상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


  여행의 끝에서 그들은 더 이상 작은 마을에서 살던 어린 꼬맹이가 아니었다. 외적으로는 변한 게 없지만, 내적인 부분에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관계 또한 미묘하게 변해버렸다. 그 부분이 다분히 현실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하긴 이 세상은 동화가 아니니까.


  소설의 결말은 열려있다. 프랜시스는 일확천금을 따간 사내 아니면 그 바로 앞에서 좌절한 사내로 라스베이거스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결과에 따라 그의 미래는 확실히 바뀔 것이다. 만약에 일확천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독자라면 그런 결말을 상상하면 될 것이고, 그래도 불쌍하니까 마지막은 동화 같은 결말이 좋겠다는 사람이면 그렇게 기억하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너의 좌절된 꿈과 희망에 매달려 그걸 절대 놓아주지 않는 거야. 비명을 질러도 좋고 애원해도 좋아. 하지만 너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할 때조차 그것들을 놓아버려서는 안 돼. 만약 놓아버리면 그땐 모든 것이 끝장이야, 꼬마야 그 시점 이후로 너의 인생은 허깨비야. -p.285


  책을 읽는 내내, Evanescence의 'Bring Me To Life'라는 노래가 계속 맴돌았다. 'call my name and save me from the dark (중략) bring me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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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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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구병모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 무척이나 기대가 되고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가슴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거렸다. 상반신 탈의를 한 소녀의 뒷모습과 '파과'라는 제목에 야한 것을 상상한 난 음란마귀에 백일동안 푹 절여진 모양이다.


  하지만 첫 장을 읽으면서, 난감해졌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문체였다. 워낙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라, 깔끔하고 간결한 문체로 된 글들을 많이 접해왔다. 그래서 이 책처럼 한 문장이 한 페이지에 육박하는 긴 호흡의 문체는 낯설었다.


  그렇지만 초반의 그런 당혹감을 극복하고 계속 읽다보면,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조금은 반영된 글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노부인 살인 청부업자라니, 꽤나 매혹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킬러가 나오는 다른 소설과는 차이가 나는데, 이 책은 주인공이 대상을 살인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부인 살인청부업자를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은퇴를 하느냐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나이도 지긋하여 과거 옛 일을 회상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추억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도 아픈 과거가 있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은 조바심까지 갖고 있는 그런 주인공의 심경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런 부분은 그녀가 기르는 늙은 개와 부품도 없어서 수리가 불가한 냉장고, 그리고 사놓고 까맣게 잊어버려 상한 과일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면 굳이 살인청부업자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다른 직종에서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선배들은 쪼고,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의 심경은 복잡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함으로 '아, 그래서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바로 그녀에게 보호해야할 대상이 생긴 것이다.


  아주 오래 전 그녀는 스승이자 첫사랑인 류와 약속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였기에 그 옆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다른 조직에게 위협을 받아야했고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그녀에게 지킬 건 만들지 말자고 말한다. 그녀는 그것을 굳게 지켜왔다. 우연히 한 사람을, 그의 가족을, 그의 어린 딸과 부모를 만나기 전까지.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갖지 못했던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대리 만족인지, 아니면 그의 친절한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이 이상한 화학적 반응을 만들어냈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녀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변덕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녀는 그와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격전을 벌이기로 한다. 그 대가로 다시는 살인청부업을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방역업(그녀는 살인청부업을 이렇게 부른다)을 나가기 전에 늙은 개에게도 이렇게 일러둔다.


  "그러니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너는 저리로 나가는 거다. 그리고 어디로든 가. 알겠니. 살아있는데, 처치곤란의 폐기물처럼 다는 쓰레기 안타는 쓰레기로 구분되기 전에." -p.137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보겠노라 생각한다. 빛나는 것뿐만 아니라 시들어가는 모든 시간까지 그녀는 받아들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p.333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문체였지만 읽으면서 그녀와 그에게 동화되기 쉬웠다. 하지만 싸우는 장면에서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명색이 두 킬러가 목숨 걸고 총과 칼을 들고 싸우는데, 긴장감이 반감되는 느낌이었다. 그 부분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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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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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 am Legend, 1954년

  작가 - 리처드 매드슨



  이 소설은 암울하다.


  오직 주인공의 독백과 회상으로 이루어진 글은 그의 불안과 절망, 외로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의 그런 감정들을 고스란히 공유하게 만든다. 그가 미쳐갈 때 독자도 불안해하고, 그가 희망을 품으면 같이 ‘어쩌면…….’하고 기대를 하게 되고, 그가 배신당해 절망감에 몸부림치면 ‘그럴 줄 알았어! 제길!’하고 화를 낸다.


  시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의 회상에서 추측해보건대 냉전이 한창 극에 치닫던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설이 처음 출판된 연도를 고려해보면, 그럴 것이다. 전쟁 발발과 핵의 사용.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쟁 시나리오는 그대로 일어나고 이것은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다. 지구 환경, 사회 구조, 자원 기후 그리고 인간까지! 바이러스는 인간들을 흡혈귀로 바꾸어놓는다. 단 한 사람, 주인공 네빌만 빼고 말이다.


  말 그대로 지구 최후의 인간이 되어버린 네빌은 흡혈귀가 된 다른 인간들과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동시에 고독과 싸워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낮에는 잠자고 있는 흡혈귀들을 죽이고, 밤에는 그들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대비한 요새화된 집에서 머무른다. 그러면서 그는 바이러스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 헤맨다. 그래서 그의 집에는 자가 발전기와 실험실까지 구비되어 있다.


  참고로 이 소설에서 나오는 흡혈귀의 특징은 참으로 독특하다. 브롬 스토커가 만들어낸 드라큘라의 특징을 가져온 듯 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꼭 심장을 말뚝으로 박지 않아도 된다거나, 과학적으로 흡혈귀들의 생태에 대해서 연구해놓은 부분이 그러했다. 무엇보다 그런 존재가 되려면 그냥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굳이 물리지 않아도 된다. 이런 점에서는 좀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다르다. 사실 조지 로메로의 좀비 시리즈 역시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이건 좀비도 아니고 흡혈귀도 아닌 셈이다.


  흡혈귀는 전설에서만 나오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존재였고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런 상황이 바뀐다. 흡혈귀들이 득실거리고 인간은 오직 한 사람만이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전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어쩌면 작가는 모든 상황을 역전시킴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해보라는 도전장을 내민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타당한 진실들이 근본부터 뒤집혔을 때, 이 세상에 내 편이라고는 아무도 없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고 넌지시 묻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주인공 네빌처럼 전설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 것인가.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 리뷰에서도 썼지만, 모두가 다 ‘네’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대답해서 다굴 당할 자신이 없기에, 다들 좀비가 되면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어쩌면 소설 속의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처음부터 반항 따위는 꿈도 안 꿀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네빌은 인간인 자신이 정상이고 흡혈귀가 된 다른 이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99.99%가 흡혈귀이고 0.01%만 인간일 경우에,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이란 말인가? 과연 99.99%가 인간이 아닌 시점에서 0.01%를 위한 인간의 보편적 도덕 판단 기준이나 가치 기준이 적용되느냐의 문제이다. 이미 99.99%가 인간이 아닌 존재인데, 그들에게 인간의 잣대를 들이밀 수 있냐는 것이다.


  개끼리의 싸움에서 상대 개를 죽이고 이긴 개에게 살견죄를 적용시켜서 무기 징역이나 사형을 시킬 수 있을까? 사자 무리의 우두머리를 결정하는 싸움에서 이긴 놈에게 다른 사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인구 60억 중에서 59억이 동성애자이고 1억이 이성애자라면, 누가 정상이 되냐는 것이다.


  어쩌면 정상이라는 말이나 보편타당하다는 말은 소수를 배려하지 않는 다수의 횡포일 수도 있다. 소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비록 그 소수가 옳은 주장을 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다수가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니 그것이 정상이고 타당하다는 구실을 붙이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는 다수 의결을 채택하는 제도이다.


  비록 소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수를 지배하고 있는 집단의 성향이 어떤 것이냐에 좌우되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잃는 순간,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순간, 민주주의는 다수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무리들, 그러니까 정치 협잡꾼들 내지는 이권 단체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수니까 옳다는 생각으로 아무 비판 없이 정부나 언론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따르는 국민들은 소설에서 나오는 흡혈귀 내지는 로메로 영화의 좀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그것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뽑아준 국민이 아닌, 그들을 공천해준 정당의 노예이니 말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켜본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변한다고 겉으로는 외치지만, 결국은 정당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전락하는 것은 그리스 시대부터 있어온 일이다.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되니까. 인간은 어쩌면 과거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선천적으로 망각의 동물인지라 알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를 하는 것이다.


  다수니까 옳다. 다수니까 정상이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맞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소설에서 말하려고 한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싫어한다. 거기에는 철학이나 생각은 하나도 없고, 액션과 특수효과만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그딴 식으로 만들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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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식물 대소동
릭 모라니스 외 출연 / 클레오엔터테인먼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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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ittle Shop Of Horrors, 1986

  감독 - 프랭크 오즈

  출연 - 릭 모라니스, 스티브 마틴, 엘렌 그린, 빈센트 가드니아



  이 영화를 고른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영제목만 얼핏 보고는 일본 만화인 ‘Pet Shop of Horrors’가 떠오르기도 하고, 제목에 호러가 들어있어서 보기로 했다. 호러. 음~

하지만 첫 장면부터 ‘어? 이건 아니잖아!’라는 외침이 나왔다. 흑인 여성 트리오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의상과 발랄한 노래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 가사가 끝나면, 어디선가 많이 본 남자가 나타난다. 설마 ‘애들이 줄었어요, Honey, I Shrunk The Kids, 1989’의 그 아빠던가? 이름을 확인해보니 그 사람이 맞았다. 아이를 크게 만드는 난리를 쳤을 때보다는 좀 젊은 모습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이 영화가 호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타나는 너무도 작고 앙증맞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식물.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이건 어린이 방송인 세사미 스트리트에서나 볼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차마 꽃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 앙증맞은 식물은 외모와 걸맞은 독특한 취향과 개성을 자랑한다. 바로 피를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식물들은 물, 공기, 햇빛만 주면 쑥쑥 크지만, 이놈은 ‘식물이 물만 갖곤 못산다능.’ 내지는 ‘피가 모자라’를 외친다. 식물이 식물다워야 식물이지만, 하여간 이 녀석은 겉으로 보기에만 식물이다.


  하여간 기이한 존재라 사람들의 주목을 끌긴 하지만, 점점 자라면 자랄수록 크기에 비례해 더 많은 피를 원한다. 처음에는 피 한 방울로 족했지만, 무럭무럭 자라서 성인 한 명 분량의 피도 부족할 지경이다. 결국 주인공은 이 꽃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살인까지 저질러 피를 충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이 음흉한 꽃은 인간의 목소리까지 흉내를 내서 사람을 유인까지 한다. 대단한 꽃이다.


  얼굴이 낯익은 배우들의 낯선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놀랍고 반갑기도 했다. 이름은 다 까먹었지만, 얼굴을 보면 '아!'하는 사람들. ‘신부의 아버지 Father Of The Bride, 1991’에 나왔던 코미디 배우도 나온다. 물론 지금은 머리가 하얗지만, 이 영화에선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검은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변태적인 성향의 치과 의사로 나온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식물은 식물원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맞아, 식물은 집에서는 키우는 것이 아니야. 괜히 관리 잘못해서 죽이지 말고,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분들에게 맡겨야 해. 그리고 두 번째 느낀 점은 길에서 아무거나 줍지 말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옛말이 있는데,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 식물도 아무거나 주워서 기르면 큰일 난다.


  근데 왜 이 영화가 호러 장르인 걸까? 내용은 코믹 뮤지컬인데……. 설마 제목에 호러가 들어있어서? 나 같은 사람을 낚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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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또는 M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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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N or M?, 1941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나오는 시리즈물이다. 두 사람이 처음 나왔던 작품은 ‘비밀 결사 The Secret Adversary, 1922’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의기투합해서 탐정 사무소를 차렸던 20대의 둘의 이야기는 결혼을 약속하면서 끝이 났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다 큰 쌍둥이 아들딸을 둔 40대의 중년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의 30대를 다룬 이야기가 한 권 더 있다는데, 해문 출판사에서는 크리스티의 책을 출판연도 순으로 내놓은 게 아니라서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보아하니 내년도에나 읽을 차례가 돌아올 것 같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한 작가의 전집이라면 출판연도별로 나왔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시대에 따른 작가의 이런저런 변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40대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뒷방 늙은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두 부부의 대화에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하긴 그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 당시의 40대가 은퇴를 코앞에 둔 시기라면, 요즘은 왕성하게 활동을 할 때이다. 그런 걸 감안하고 책을 읽어야겠다. 70년 전과 지금은 아주 많이 다르다.


  아이들도 다 커서 떠나고, 무료함과 무력감에 휩싸인 두 부부의 앞에 정보부에서 일하는 그랜트가 등장한다. 그는 처음에는 토미에게만 비밀 임무를 맡긴다. 중년 여자가 설마 첩보일을 잘 하겠냐고 터펜스를 은연중에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누군가? 엄청난 기지를 발휘해서 둘의 비밀 대화를 엿듣고는, 토미의 발령지에 시치미를 뚝 떼고 미리 내려가 있는 행동력을 보인다.


  둘의 임무는 영국에 암약해있는 독일 스파이 조직의 우두머리를 밝히는 것이다. 영국 시골 여관에 모인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과연 누가 영국을 배신한 스파이일까? 끝까지 읽어보면, 전혀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으로 나오는 크리스티 소설의 특징이 이번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한창 2차 대전 중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있는 만큼,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다. 망명한 독일인에게 가하는 의심과 차별,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된 영국인 처녀의 고뇌, 정부에 비판적인 무정부주의자, 폭격을 피해온 사람들 등등. 그 와중에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들은 꼭 있어서, 사람들은 예의바르게 상대를 대하지만 동시에 의심도 한다. 제 5열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남아야하는데, 의심하고 경계해야하다니! 인심 좋은 여관 주인도, 넉살좋은 은퇴 장교도, 성실해 보이는 공무원도 다 의심해야만 한다. 거기에 아이 납치사건까지 벌어진다. 이런 상황을 다루고 있어서 소설의 분위기가 우중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토미와 터펜스 부부의 개그가 중간에 양념처럼 들어있어도, 부모의 직업을 모르는 딸과 딸의 직업을 모르는 부모의 오해가 빚은 상황이 좀 우습기는 해도, 가짜 신분으로 푼수 짓을 하는 터펜스가 귀엽기는 해도,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터펜스는 귀여웠다. 토미가 실종된 이후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나 혼자서 적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용기 내라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지난 이야기에서 둘을 도왔던 꼬마 앨버트가 부쩍 큰 모습으로 나와 놀랍기도 하고 반가웠다. 십대 초반의 엘리베이터 벨 보이였던 그가 성공했다는 문장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그랬다. 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둘이 도와달라고 부르니 냉큼 달려와 큰 역할을 하는 걸 보니, 대견스럽기도 했다. 음, 조연이나 스쳐지나갈 것 같은 인물에도 꼼꼼하게 신경 쓰는 점에서 참 좋았다. 어쩐지 상냥하다는 느낌?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과연 독일에서도 크리스티의 소설이 잘 팔렸을까? 대놓고 독일 나쁜 놈이라고 욕하고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독일에도 크리스티의 팬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원래는 39권인 ‘프랑크푸르트 행 승객’을 읽어야하는데, 어쩌다가 40권을 잘못해서 먼저 읽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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