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탄생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 - 이재익

 


  사실 이 책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모 포털 사이트의 웹소설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처음 그 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 가보고는 혀를 찼다. 그리고 다시는 클릭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왜 소설인데, 대사 옆에 인물 사진이 보이는 거지? 조카들의 어릴 적 그림책이 떠올랐다. 디즈니 그림책인데, 신데렐라 얼굴 그림이 있고 대사가 적혀있고, 그 다음에는 새언니나 새엄마 그림이 나오고 옆에 대사 나오고.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삽화가 들어있는데 이건 뭐……. 그래서 기대를 반 정도 없애고 보았다.

 

  한석호는 잘 나가는 방송국의 간판 아나운서이다. 예쁜 부인과 귀여운 딸 그리고 갓난 아들까지 있는, 잘 생기고 말 잘하고 몸매 좋고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이다. 그런 그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부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침대로 끌어들인 여자만 해도 부지기수. 그가 DJ를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부터 처남댁까지, 그에게 넘어오지 않는 여자가 없었다.

 

  어느 날 조태웅이라는 남자가 그에게 접근하면서, 악몽이 시작된다. 어떻게 찍었는지 그는 한석호가 지금까지 정사를 나누었던 사진들과 동영상을 가지고 협박을 해왔다. 부인, 처남댁 그리고 프로그램 작가 중의 한 명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자료를 장인과 언론에 알리겠노라 으름장을 놓는다. 이대로 당할 수 없다 생각한 한석호는 흥신소 직원을 고용해서 그를 뒤쫓지만, 도리어 당하기만 한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급기야 장인에게 사진과 영상이 도착하는데…….

 

  나쁜 새끼, 미친 년. 책을 읽으면서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대학 시절 관계를 가졌던 연이. 하지만 지금 부인인 미선이 방송국 회장 딸이라는 사실을 알자, 한석호는 미련 없이 그녀를 차버렸다. 그리고 미선과 결혼하고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탄탄대로를 걷는다. 한편 연이는 미선의 사촌오빠인 재우와 결혼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재우 역시 석호와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잘 안 나가는 아나운서이다.

 

  처음에는 친척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연이가 오직 오빠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오면서 선을 넘게 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분노했다. 아니 이런 미친년이! 남편이 출장간 사이에 그를 집으로 불러들여, 남편이 나오는 방송을 틀어놓고 섹스를 해? 세상은 넓고, 미친년놈 역시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집안이 별로라고 자신을 무시하는 장인에게 반항이라도 하듯이 바람을 피운다는 주인공의 생각은 글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보지만 또 달리 보면 비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장인에게 책잡히지 않고 인정받기 위해 겉으로는 부인에게 지극정성 애정을 쏟고, 장인의 회사에서 유능한 인재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뒤로는 바람을 피면서 말이다.

 

  하긴 부인이 이혼이라도 하자고 하면 이미지에 금이 가고 배경이 사라질 테니, 잘 해줘야할 것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데는, 그가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난리를 친 부인의 자살 소동이 있었으니까. 비록 친구들 앞에서는 그냥 오랜 시간 살았으니까 사는 거라고 말은 하지만 말이다.

 

  나쁜 놈. 여자는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결혼했는데, 이 새끼는 그냥 살다보니까 사는 거란다. 뭐랄까, 이건 자존감이 약한 남자가 상대방 여자를 비하하고 허세를 부리며 자신을 높이려는 행동같이 보인다. 그래서 자신과 자기 부모를 낮춰보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장인에게 엿 먹이려고 다른 여자들과 계속해서 관계를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원인이 어디 있건, 가정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라고 본다. 평소에도 바람을 피우는 것들은 혼쭐을 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인공에게 협박이 들어오자 신이 났다. 책을 읽으면서, 제발 주인공이 더 구르길, 더 비참하게 되길, 더 나락으로 떨어지길 빈 건 처음인 것 같다.

 

  아싸! 더 괴로워해라, 더 슬퍼해, 더 엉망진창이 돼서 방송에서 잘려! 존나게 X휘둘렀으면 X망해야지! 빨리 망해!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니까, X으로 흥한 너 같은 새끼는 X으로 망해야지! 난 아주 열심히 조태웅을 응원했다. 그래서 흥신소 직원들을 그가 제압하는 장면에서 아주 통쾌했다.

(X 처리한 단어는 그대로 쓰면 경고 먹을지도 모른다고 애인님이 말해서 바꾸었다. 아쉽다, 그게 이 감상문의 포인트였는데……. 하지만 경고 받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조태웅을 고용한 배후 인물이 너무도 쉽게 주인공을 용서해주려는 뉘앙스를 풍기자, 화가 났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어! 그렇게 용서할 거면, 애초에 왜 그런 짓을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약한 것도 아니고, 의지박약인가? 아니면 주인공이 후회하는 것 같으니까 마음이 약해졌나? 겨우 그 정도로 용서할 거 같으면, 뭐 하러 2년 동안 뒷조사를 해? 그가 연이와 섹스하는 걸 보고서도 용서할 마음이 들어? 아주 보살 나셨네, 살아있는 산부처야. 환생한 성자신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게다가 그러면 그에게 버림을 받았다 생각하여 자살한 연이는 뭐가 되나? 물론 자살했다고 해서 그와 바람을 피운 행동이 용서받는 건 아니다. 단지 그의 곁에 있고 싶어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그녀의 행동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 미쳤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복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잣집 딸이라는 이유로 첫사랑을 빼앗아간 미선에게 되갚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봐라, 넌 그의 껍데기만 안고 사는 거야. 그는 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그랬다면 나와 섹스를 하지 않겠지.

 

  음, 그래도 역시 미친년이다. 몸과 마음 그리고 첫사랑과 순정을 바친 남자에게 버림받았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녀 역시 자존감도 없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약한 성격 같다.

 

  여자들의 성격이 너무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쓴 소설이라서 그럴까? 그냥 남자들의 입맛에 맞춘 여자들의 성격, 그러니까 예쁘고 주인공에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이미지를 투영시킨 느낌이었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 섹스 파트너 따로. 완전 판타지 아닌가?


  결말은 뭐, 마음에 들긴 했지만 너무 약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비참하게 만들어도 좋았을 텐데.


  만약 내가 작가였다면, 용서해준 줄 알았던 배후 인물이 ‘어서 와, 끝난 줄 알았지? 모든 것을 용서받고 새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보라고. 내가 널 용서했다고 말한 것은 훼이크고, 더 고통을 줄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식으로 했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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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라 베껴! 글쓰기 왕 - 글 잘 써야 공부도 잘한다! 베껴 쓰는 워크북 시리즈
명로진 지음, 이우일 그림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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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글 잘 써야 공부도 잘한다!

  저자 - 명로진

  그림 - 이우일




  글짓기라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도망가는 조카를 위해 고른 책이다. 이 책은 글짓기하는 것보다는, 글을 쓴 다음 퇴고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거기에 베껴 쓰기에 관해 다루고 있다.


  남의 글을 베껴 쓰는 것, 그러니까 필사라고 하나? 글짓기를 처음 시작할 때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뭘 어떻게 써야할지 아무 것도 모르니까, 잘 쓴 글을 옮겨 적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알게 된다고 한다. 글 쓰는 사이트에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유명 문인의 글을 베껴 써보라는 답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나름 근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차를 보니, 어린이용이고 그림이 많지만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들도 흔히 실수하기 쉬운 부분들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면 존댓말과 그렇지 않은 말은 섞어 쓰지 않고, 같은 뜻을 나타내는 단어는 반복해서 쓰지 않으며, 주어와 서술어는 서로 어울려야하고, 한 번에 한가지씩만 말을 하며, 접속어를 너무 많이 쓰지 않고 문장을 너무 길게 쓰지 않는다는 사항들을 다루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에 소제목에 해당하는, 잘못 쓴 예를 하나 보여준다. 그러면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셋이 어딘지 어색하다고 대화를 나눈다. 그에 따라 문장의 어색한 점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고쳐준다. 그리고 올바르게 고친 글을 보여준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유명 소설의 한 부분을 베껴 쓰는 연습까지 시키고 있다. 소설뿐만이 아니라, 동화나 우화, 설명문 같은 것을 쓰기도 한다. 소제목에 맞는 글을 발췌한 모양이다.


  글씨 쓰는 걸 싫어하는 아이는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한꺼번에 몇 장을 다 학습하는 게 아니라, 한 장씩 나눠서 연습을 시켜도 좋을 것 같다. 안 그러면 팔 아프다고, 글짓기 싫다고 징징댈지도 모른다. 내 조카도 이 부분에서 '헐'하고 놀라기에, 하루에 한 장만 쓰는 거라고 달랬다. 가뜩이나 글짓기와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 억지로 다 시켰다가는 역효과가 나기 쉬우니까.




  대충 그림과 글만 읽어보고 베껴 쓰기를 끝까지 해보지 않아서,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글을 쓸 때, 여기에 나온 실수들은 하지 않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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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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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ベットの思惑 (2011년)

  작가 - 다나베 세이코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공감을 시작으로 ‘헐 대박’이라는 놀라움에다가, 질투에 이어지는 가슴 한편으로는 훈훈함, 거기에다가 ‘나쁜 개새X!’하는 욕도 튀어나왔다. 책을 읽는 약 두 시간 동안, 내 기분과 함께 얼굴 표정도 다양하게 변했다.


  서른한 살의 와다 아카리, 드디어 자기만의 작은 원룸을 하나 얻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남자들을 만나봤지만 신통치 않았던 그녀, 이번에야말로 괜찮은 남자를 만나보겠노라 결심한다. ‘남자를 잘 이해하고 내조 잘하는 여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충동적으로 침대 하나를 산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침대에서 마음이 맞는 남자와 함께 있는 꿈을 꾼다. 책에 나온 표현을 빌면, ‘정성 들인 침대에서는 정성 들인 정사를’ 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 앞에 나타난 세 명의 남자.


  몇 년 전에 만났다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던 야마무라 후미오. 하지만 예전의 순진하고 풋풋한 모습이 아닌, 능글맞으면서 말 잘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와다는 어쩐지 섹스만 원하는 그에게 예전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한 살 어린 우메모토. 요리 잘하고 싹싹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에게서는 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이 잘 맞는 오랜 친구 같은 느낌.


  마지막으로 원룸 맞은편에 있는 학원의 강사인 요시자키 규타. 첫 만남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솔직하다 못해 돌직구를 날리는, 말주변이 없는 그가 밉지는 않다.


  책은 주인공과 그녀의 절친 요시코, 세 남자 그리고 다른 지인들과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빵 터질 정도로 솔직하고 재미난 표현도 있고, 우리와는 다른 문화라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다. 그런데 그걸 말하면 후반부의 스포를 해버릴 것 같아서 패스하겠다. 말하자면 안알랴줌이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들의 대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말 잘하고 분위기메이커면서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남자, 우직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남자, 말주변이 없다보니 사서 오해를 받는 남자, 그리고 틈만 나면 여자를 호텔로 데려가고 싶은 유부남.


  나쁜 개새X라는 말이 나온 부분은 유부남과 ‘결혼은 처녀랑, 연애는 말 통하는 여자랑’이라는 주의를 갖고 있는 남자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특히 유부남 새X는 ‘사랑이 있으니까 결혼을 안 하는 거지, 나처럼 부자도 아니고 젊지도 않은 남자랑 결혼 같은 걸 한다면 젊은 처자가 얼마나 가엽겠어, 그런 부분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일이 티끌만큼도 없을 때 끝내자는 거라고. 사랑이 없다면 그거야 당연히 결혼해야지-p.171’ 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와, 읽으면서 진짜 어디 가서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패주고 싶었다. 뭐, 이런 개 같은 논리가 있어?


  책의 표현들은 직설적이면서 상당히 감각적이고 참신했다. 작가가 1928년생이라는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감탄이 앞선다. 그러면 이 책을 82살 때 냈다는 말이잖아! 헐, 대박! 우리 엄마보다 훨씬 많아! 어쩌면 그렇기에 거리낌 없이 돌직구를 날릴 수 있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도 가끔 보면,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나이가 들면 그런 게 가능해지는 걸까?


  주인공은 꼭 남자를 잡아야한다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거나 남자나 섹스에 굶주린 사람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도하고 자존심만 세우는 것도 아니다. 적당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많은 생각과 느낌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내가 갖긴 아쉽고 남 주기는 아까운 마음을 절실히 느끼기도 하지만, 그걸 티내서 모든 걸 망가뜨리지도 않는다. 포기가 쉽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내 손을 떠난 것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 그런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결말은 해피엔드의 분위기로 흘러간다. 사실 남녀 사이는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른다고 하지만, 아마 그럴 거라 추측해본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적어본다.


  ‘중년의 주장이 있는데다가 세상의 단맛 쓴맛을 아는 여자가 어쩌다 가여워 보이잖아요? 그런 모습이 남자의 마음을 떨리게 해요…….’ -p.312

  ‘서로 웃을 수 있는 사이란 남녀 관계 중에서도 동그라미를 두 개 칠 만큼 좋은 사이가 아닐까. 최악의 사이는 물론 서로 우는 사이겠지. 그것보다 나은 것은 서로 화내는 사이다.’-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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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특별 한정판
허정 감독, 전미선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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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독 - 허정

  출연 - 손현주, 전미선, 문정희, 김원해



  손현주는 어릴 적에 고아원에서 어느 부잣집으로 입양된 비밀을 갖고 있다. 그러다 양부모의 친자식인 형이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는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현재 그는 부인과 어린 두 아이와 함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과거를 잊고 살던 어느 날, 형이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형이 살던 싸구려 아파트를 찾은 그는 어딘지 모르게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아파트 초인종 밑에 적혀있는 의문의 부호들, 그 날 이후 그의 집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괴한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그의 환각증세.


  어릴 적 그는 중학생이었던 형이 휘말린 사건에서 거짓 증언을 했다. 그 때문에 형이 성추행 범으로 몰려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형이 가져야했던 것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그는 악몽과 환각에 시달린다. 결국 그는 형이 왜 사라졌는지, 누가 자기 가족을 위협하는지 밝혀야겠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그가 범인에게 다가갈수록, 가족을 위협하는 괴한 역시 그 공격의 수위를 높여간다. 그가 형의 집을 빼앗은 것처럼, 누군가 그의 집을 가로채려고 하고 있다.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오-'하면서 보았다. 여기저기 늘어놓은 떡밥과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무슨 일이 꼭 생길 것 같은 분위기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화면을 보면서 어떻게 될지 추측하고 그것이 맞아떨어지면 '오-'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며, 빗나갈 때는 '헐!'하면서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중간 중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문들은 영화를 다 본 지금도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름 이럴 거라고 추측을 하고 결론을 내렸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구석도 있고.


  영화의 기본 설정은 인터넷을 돌아다녀봤으면 들어봤을, 누군가 주인 몰래 집에 숨어 살고 있다는 괴담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전달한다. 하지만 그걸 들은 어른들은 단순한 소문에 불과하다며 웃어넘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게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어른들의 그런 반응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조만간 뭔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예상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초조해하게 된다. 그냥 지나가는 화면도 예사롭지가 않다.


  영화는 그런 조절을 참 잘했다. 완전 사람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못하고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나게 만든다.


  하지만 몇몇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상황이 그런 좋은 흐름을 끊어버리곤 했다. 특히 아이들만 있는 집에 누군가 찾아오는 장면에서는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만 있는 집에 누군가 침입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엄마는 전화를 끊지 못할 것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면 휴대전화로 엄마와 통화를 하고, 집 전화나 인터폰으로 경비실 내지는 경찰에 연락하라고 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엄마가 잠깐 전화를 끊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되고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왜 경찰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되는 장면들이 그 외에도 종종 나왔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경찰이 그들의 신고를 무시한 적이 없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집을 차지하러 온 범인이 인터폰으로 반상회에 나가겠다고 아파트 부녀회장에게 대답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그 부녀회장은 사람이 바뀌었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새로 이사 왔다고 얼버무린다고 해도, 누가 이사 가고 들어오는 걸 모른다고? 아파트 부녀회장이? '그래, 화면이 작아서 얼굴을 잘 못 봤겠지'라고 나름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러면 또 이상하다. 범인은 무슨 생각으로 인터폰에 대답을 했을까? 미친 사람의 심리는 정상인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초반에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하던 것과 달리, 후반에는 너무 충동적이고 무질서하게 움직여서 다른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결말 부분도 좀 이상했다. 막판 반전이나 여운을 남기려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사건이 있던 곳이면, 경찰이 이 잡듯 샅샅이 뒤지지 않을까? 넓은 아파트긴 하지만, 철저히 수색을 못할 정도는 아닌데.


  아파트 초인종 밑에 있는 이상한 기호들은 초반에 뭔가 있을 것처럼 등장하지만, 누가 왜 했는지 밝혀지지 않고 그냥 흐지부지 사라진다. 아파트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주인공이 알아차릴 수 있는 힌트로만 나왔다 사라질 뿐이다. 아쉬웠다.


  그래도 올해 개봉했던 다른 한국 영화, '닥터'나 '꼭두각시'에 비하면 훨씬 나은 작품이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과 영화 속도나 호흡의 완급 조절, 배우들의 연기 등등으로 따져봤을 때 나름 괜찮았다.


  그나저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노래가 이렇게 음산하고 무섭게 편곡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그 노래가 싫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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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렘으로 집을 나서라 - 서울대 교수 서승우의 불꽃 청춘 프로젝트
서승우 지음 / 이지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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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서울대 교수 서승우의 불꽃 청춘 프로젝트

  저자 - 서승우



  띠지 앞부분에 ‘도전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지나간다. 움켜잡을 것인가, 흘려보낼 것인가’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그리고 책 뒤표지를 보면 ‘꿈을 이루기 위해 향동하는 젊은 그대들에게……’라는 글이 있다. 음, 이 책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자기 계발서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무인태양광자동차경주대회’를 개최하면서, 그리고 대학에서 여러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 위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과 관공서를 찾아다니면서 대회의 효용성을 설명하고 지원을 얻어내며 경험한 여러 시행착오들, 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고장 난 1호차를 대신해 2호차를 제작한 추억, 여러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니면서 느낀 것을 차분하면서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참 활기차고 자신감 있으며 의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긴 그러니까 무슨 일이 닥치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사람들을 만났겠지.


  저자는 그런 기억들을 자신이 만든 ‘제이피-드라마(JP-DRAMA)’라는 단어에 맞추어 풀어낸다. Justification 명분, Plan of goals 계획, Distinction 차별성, Role 역할, Accuracy 정확성, Making a team with professionals 전문가의 도움, Advertisement 알림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JP는 계획입안단계이고, DRAMA는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깨닫고, 공감할 수 있는 실행 계획을 세우며, 나만의 경쟁력과 차별성을 확보한 다음, 의미 있는 역할과 동기를 부여하여, 매사에 정확하게 모든 것을 파악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아가고, 나를 알리는데 겸손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무작정 뜬구름 잡듯이 내일은 다 잘 될 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잘되려면 오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위한 기본 능력을 갖추라고 충고한다. 우스갯소리로 로또가 당첨되길 원하면 기도만 하지 말고, 당장 나가서 로또 한 장이라도 사라는 말이다. 아프고 흔들려서 청춘이 아니라, 다음번에는 아프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 청춘이라는 뜻이리라. 음, 마음에 든다. 첫인상이 좋아서인지 책의 뒷부분 내용도 괜찮았다. 자기 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 성공은 자잘한 성공으로 성취감을 맛본 사람이 거머쥘 확률이 훨씬 높다. (중략) 성공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리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준비하는 것이다. -p.26


  공학도지만, 저자는 인문학에도 상당한 내공이 축척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인용하는 문장들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뿐이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는 시인 에머슨의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장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레프 톨스토이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라는 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잊지 말고 꼭 읽어봐야지.


  아침 설렘으로 집을 나서라는 제목은 그러니까 하루 계획을 잘 세우고 실천에 옮기라는 뜻이기도 하고, 초심을 잃지 말라는 뜻이기도 한 것 같다.


  이제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발을 내딛으려는 어린 친구들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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