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탄생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 - 이재익

 


  사실 이 책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모 포털 사이트의 웹소설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처음 그 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 가보고는 혀를 찼다. 그리고 다시는 클릭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왜 소설인데, 대사 옆에 인물 사진이 보이는 거지? 조카들의 어릴 적 그림책이 떠올랐다. 디즈니 그림책인데, 신데렐라 얼굴 그림이 있고 대사가 적혀있고, 그 다음에는 새언니나 새엄마 그림이 나오고 옆에 대사 나오고.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삽화가 들어있는데 이건 뭐……. 그래서 기대를 반 정도 없애고 보았다.

 

  한석호는 잘 나가는 방송국의 간판 아나운서이다. 예쁜 부인과 귀여운 딸 그리고 갓난 아들까지 있는, 잘 생기고 말 잘하고 몸매 좋고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이다. 그런 그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부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침대로 끌어들인 여자만 해도 부지기수. 그가 DJ를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부터 처남댁까지, 그에게 넘어오지 않는 여자가 없었다.

 

  어느 날 조태웅이라는 남자가 그에게 접근하면서, 악몽이 시작된다. 어떻게 찍었는지 그는 한석호가 지금까지 정사를 나누었던 사진들과 동영상을 가지고 협박을 해왔다. 부인, 처남댁 그리고 프로그램 작가 중의 한 명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자료를 장인과 언론에 알리겠노라 으름장을 놓는다. 이대로 당할 수 없다 생각한 한석호는 흥신소 직원을 고용해서 그를 뒤쫓지만, 도리어 당하기만 한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급기야 장인에게 사진과 영상이 도착하는데…….

 

  나쁜 새끼, 미친 년. 책을 읽으면서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대학 시절 관계를 가졌던 연이. 하지만 지금 부인인 미선이 방송국 회장 딸이라는 사실을 알자, 한석호는 미련 없이 그녀를 차버렸다. 그리고 미선과 결혼하고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탄탄대로를 걷는다. 한편 연이는 미선의 사촌오빠인 재우와 결혼해 그의 앞에 나타난다. 재우 역시 석호와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잘 안 나가는 아나운서이다.

 

  처음에는 친척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연이가 오직 오빠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오면서 선을 넘게 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분노했다. 아니 이런 미친년이! 남편이 출장간 사이에 그를 집으로 불러들여, 남편이 나오는 방송을 틀어놓고 섹스를 해? 세상은 넓고, 미친년놈 역시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집안이 별로라고 자신을 무시하는 장인에게 반항이라도 하듯이 바람을 피운다는 주인공의 생각은 글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보지만 또 달리 보면 비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장인에게 책잡히지 않고 인정받기 위해 겉으로는 부인에게 지극정성 애정을 쏟고, 장인의 회사에서 유능한 인재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뒤로는 바람을 피면서 말이다.

 

  하긴 부인이 이혼이라도 하자고 하면 이미지에 금이 가고 배경이 사라질 테니, 잘 해줘야할 것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데는, 그가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난리를 친 부인의 자살 소동이 있었으니까. 비록 친구들 앞에서는 그냥 오랜 시간 살았으니까 사는 거라고 말은 하지만 말이다.

 

  나쁜 놈. 여자는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결혼했는데, 이 새끼는 그냥 살다보니까 사는 거란다. 뭐랄까, 이건 자존감이 약한 남자가 상대방 여자를 비하하고 허세를 부리며 자신을 높이려는 행동같이 보인다. 그래서 자신과 자기 부모를 낮춰보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장인에게 엿 먹이려고 다른 여자들과 계속해서 관계를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원인이 어디 있건, 가정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라고 본다. 평소에도 바람을 피우는 것들은 혼쭐을 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인공에게 협박이 들어오자 신이 났다. 책을 읽으면서, 제발 주인공이 더 구르길, 더 비참하게 되길, 더 나락으로 떨어지길 빈 건 처음인 것 같다.

 

  아싸! 더 괴로워해라, 더 슬퍼해, 더 엉망진창이 돼서 방송에서 잘려! 존나게 X휘둘렀으면 X망해야지! 빨리 망해!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니까, X으로 흥한 너 같은 새끼는 X으로 망해야지! 난 아주 열심히 조태웅을 응원했다. 그래서 흥신소 직원들을 그가 제압하는 장면에서 아주 통쾌했다.

(X 처리한 단어는 그대로 쓰면 경고 먹을지도 모른다고 애인님이 말해서 바꾸었다. 아쉽다, 그게 이 감상문의 포인트였는데……. 하지만 경고 받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조태웅을 고용한 배후 인물이 너무도 쉽게 주인공을 용서해주려는 뉘앙스를 풍기자, 화가 났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어! 그렇게 용서할 거면, 애초에 왜 그런 짓을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약한 것도 아니고, 의지박약인가? 아니면 주인공이 후회하는 것 같으니까 마음이 약해졌나? 겨우 그 정도로 용서할 거 같으면, 뭐 하러 2년 동안 뒷조사를 해? 그가 연이와 섹스하는 걸 보고서도 용서할 마음이 들어? 아주 보살 나셨네, 살아있는 산부처야. 환생한 성자신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게다가 그러면 그에게 버림을 받았다 생각하여 자살한 연이는 뭐가 되나? 물론 자살했다고 해서 그와 바람을 피운 행동이 용서받는 건 아니다. 단지 그의 곁에 있고 싶어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그녀의 행동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 미쳤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복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잣집 딸이라는 이유로 첫사랑을 빼앗아간 미선에게 되갚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봐라, 넌 그의 껍데기만 안고 사는 거야. 그는 너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그랬다면 나와 섹스를 하지 않겠지.

 

  음, 그래도 역시 미친년이다. 몸과 마음 그리고 첫사랑과 순정을 바친 남자에게 버림받았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녀 역시 자존감도 없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약한 성격 같다.

 

  여자들의 성격이 너무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쓴 소설이라서 그럴까? 그냥 남자들의 입맛에 맞춘 여자들의 성격, 그러니까 예쁘고 주인공에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이미지를 투영시킨 느낌이었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 섹스 파트너 따로. 완전 판타지 아닌가?


  결말은 뭐, 마음에 들긴 했지만 너무 약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비참하게 만들어도 좋았을 텐데.


  만약 내가 작가였다면, 용서해준 줄 알았던 배후 인물이 ‘어서 와, 끝난 줄 알았지? 모든 것을 용서받고 새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보라고. 내가 널 용서했다고 말한 것은 훼이크고, 더 고통을 줄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라는 식으로 했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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