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만 - 한국어 더빙 수록
샘 펠 외 감독, 안나 켄드릭 외 목소리 / 유니버설픽쳐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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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aranorman , 2012

  감독 - 샘 펠, 크리스 버틀러



  막내 조카와 같이 본다는 명목이지만 순전히 내 취향으로 고른 어린이용 만화영화. 애한테 무서운 거 보여준다고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좀 들었다. 아니, 어머니 이거 어린이용이라니까요? 단지 귀신이 나오고 좀비가 나오고 마녀가 나올 뿐이지요. 그런데 조카도 무섭다고 했다. 헐……. 얘야, 네 누나는 네 나이만할 때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 1993'을 좋아라하면서 봤단다. 하긴 그 때문인지 그 녀석은 스무 살이 넘은 지금도 밤에 무섭다고 혼자 잘 안 나가려고 하지……. 고모가 미안해.


  노만은 귀신을 볼 뿐 아니라 대화까지 가능한 소년이다. 그리고 가끔 이상한 환상을 보기도 한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 심지어 그의 가족까지 다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를 괴상하고 소름끼친다고 꺼리거나 괴롭히기 일쑤이다.


  한편 그 마을에는 몇 백 년 전에 죽은 마녀가 있었다. 지금은 다들 잊고 있지만, 그녀가 죽기 전에 내린 저주가 하나 있었다. 마녀가 깨어나는 날, 죽은 자들이 돌아와 마을을 점령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노만은 그 날이 바로 오늘이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생각할 것을 던져준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게 당연한가? 단지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영화에서 노만을 유일하게 인정한 인물은 닐밖에 없었다. 그 소년은 순수하게 노만의 능력에 감탄하며 다가왔다. 도와달라고, 죽은 자신의 애견과 놀 수 있게 해달라며 다가왔다. 닐에게 노만은 자신과 달라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달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였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노만을 두려워하다가, 급기야 해가 되는 존재라며 죽이자고 난리를 피웠다. 고작 열한 살밖에 안 되는 꼬마아이를 말이다.


  그런 부분은 좀비가 나타나는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모든 매체에서 좀비는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존재로 사람들을 세뇌시켰기에, 이 영화에서도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사람들은 자신과 남들이 다르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남들과 다른 것도 어딘지 어색하고, 누군가 내가 속한 무리와 다른 것도 어쩐지 보기에 꺼림칙하다. 자신이 못하는 것을 하는 이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런 꺼림칙이 발전하여 불안함이 되고, 두려움으로 바뀌며 공포가 되어버린다. 영화에서는 그런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광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군중 심리라고 해야 할까? 그 장면이 꽤나 무서웠다. 좀비나 마녀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인간들이었다.


  어른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교훈적이고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디즈니의 예쁜 그림체와 일본 만화의 빠른 전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별로 끌리지 않을 구성이었다. 사실 영화 중간의 도서관 장면이 어색하면서 늘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다.


  문득 노만이 그 마을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을 죽이자고 하던 사람들인데? 닐과 노만은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과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닐이 놀자며 노만에게 오는데, 하키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아, 할로윈의 마이크 마이어스! 게다가 혼자서 책을 찾으러 갔던 노만이 휴대전화를 켜서 랜턴대신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하긴 21세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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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생각법
하노 벡 지음, 배명자 옮김 / 갤리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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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모르면 당하는 그들만의 경제학

  원제 - Geld Denkt Nicht

  저자 - 하노 벡




  처음에 제목만 접했을 때는 ‘아, 이건 뭘까? 설마 돈 벌고 싶은 어른들의 욕망을 이용한 주식투자 비법서일까? 아니면 돈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힐링 도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제까지 읽자 호기심이 들었다. 모르면 당한다는 말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명언도 있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옛말이 있지만, 요즘은 잘 모르면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책을 다 읽은 소감은 ‘헐! 와~!’였다. 어려운 경제 용어를 설명해놓거나 각국의 경제 정책을 도표와 함께 죽 서술한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 책은 심리적인 요인이 인간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양한 사례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하긴 그렇다. 경제활동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해 알아야만 왜 이런 경제현상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파악하며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각국에서 일어난 여러 경제적 사건사고와 심리학적 퀴즈를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경험담도 적잖이 들어있을 것이다. 사실 각국이라고 했지만, 한국의 예는 없었다.


  책에 있는 여러 퀴즈를 풀어보면서, 얼마나 내가 이용당하기 쉬운 성격인지 알게 되었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호갱님’인 것이다. 찬거리를 사러가서 쓸데없는 것까지 잔뜩 사게 된다거나, 물건을 살 때 옆에서 누가 부추기면 혹해서 넘어갈 뻔 한다거나, 지금까지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새로운 도전을 못한다거나 등등, 저자가 언급한 심리적으로 빠지기 쉬운 함정에 여러 번 푸욱 몸을 담갔던 기억이 난다. 몸만 담근 게 아니라, 뒹굴기도 했다.


  꼼꼼하게 뒤져보고 찾아봐야하지만, 게으르기도 하고 잘 모르는 것은 대충 넘어가려는 성격 탓이기도 할 것이다. 뭐든지 따지고 세심하게 살펴보는 동생과는 천양지차이다. 아, 그래서 동생은 어릴 적에 똑같은 용돈을 받아도 언제나 풍족했던 건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동생은 알뜰하게 살면서 통장을 불리고 난 언제나 적……. 갑자기 눈물이 난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이 다시금 와 닿는 내용들이었다. 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갈 수 있는지 이렇게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는구나!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보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먹는구나!


  똑같은 뜻이지만 문장의 배치를 바꾼다거나 단어의 사용을 달리 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나 문자를 나눌 때 또는 댓글을 달 때 제일 고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난 기업들이 그걸 써먹으리라는 걸 다 알면서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온 홈쇼핑 광고에 혹하는 걸까? 보험회사의 수익률 광고의 함정을 읽을 때는 한숨만 나왔다. 이런 거였어!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는데,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알면서 당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저자가 알려준 규칙만 제대로 지킨다면, 나중에 후회할 일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류저 Luser'라는 단어를 새로 배웠다. 전자제품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등의 사용법을 몰라 당황해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라는데, 나도 어떻게 보면 류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에 나온 사례만큼 바보는 아니다.



  맞다, 부록으로 달력을 줬는데 동생이 자기네 탁상 달력이 없다고 가져갔다. 알뜰한 놈. 역시,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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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8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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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urder on the Links, 1923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포와로와 헤이스팅즈가 나오는 두 번째 소설이기도 하고, 크리스티가 세 번째로 내놓은 작품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헤이스팅즈가 바라본 포와로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오고 있다. 토스트용 빵이 사각형도 아니고 삼각형도 원형도 아니라며 툴툴대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물론 내가 그 투덜거림을 들어주는 입장이라면 화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포와로는 스타일즈 사건 이후 유명해져 여러 의뢰가 들어오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흥미 있는 사건이 없다고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온 편지 한 통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다 알면서도 속아준다는 태도로 포와로는 헤이스팅즈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간다. 하지만 이럴 수가! 그가 도착했을 때 도움을 요청했던 남자는 이미 살해된 뒤였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포와로는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는데…….


  사건은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고, 20년 전에 있었던 범죄와 현재가 얽히면서 복잡하게 흘러간다. 게다가 앙숙인 두 나라, 영국과 프랑스의 미묘한 자존심 대결까지! 물론 포와로는 영국인이 아니라 벨기에 사람이지만, 프랑스 형사의 태도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한방 먹여줄 생각을 한다.


  불쌍한 지로. 그는 여기서 촉망받는 프랑스의 명 형사로 나온다. 하지만 초면에 영국인이라며 헤이스팅즈를 대놓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고, 포와로를 늙은 퇴물 취급한다. 읽으면서 화가 다 날 지경이었다. 아니, 듣보잡인 네놈이 감히 나의 포와로를? 나중에 포와로에게 밀려 기가 팍 죽은 모습을 보니 1나노그램 정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흥이다. 어딜 감히 포와로를 무시해?


  이번 이야기에서 헤이스팅즈는 너무도 큰 활약을 보여준다. 좋은 의미이기도 하고 나쁜 의미기이도 하다. 그는 여자의 애교에 넘어가서 사건 현장을 멋대로 보여준다거나,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도 한다. 거기다 오며가며 만난 여자들, 특히 예쁜 여자에게는 다 관심과 호의를 품는다. 그래서 포와로에게 혼도 나고 되레 화를 내기도 하는, 심한 감정의 기복을 보여준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까먹었지만, 포와로가 그에게 여자를 조심하라는 뉘앙스로 충고를 했던 게 기억났다. 음, 이때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구나.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헤이스팅즈가 글의 내레이션을 맡은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남을 잘 의심하지 않는 그가 사건을 서술하니까, 독자를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포와로가 서술을 했다면, 이것도 이상하고 저것도 이상하고 모든 것을 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 독자들이 범인을 찾기가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후반의 반전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순진한 헤이스팅즈니까 포와로의 속임수에도 잘 넘어가서 막판에 나오는 반전의 묘미를 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음, 읽으면서 여자에게 약하다고 화내서 미안해요 헤이스팅즈.


  그나저나 여기서도 포와로는 듀오 매니저 역할을 제대로 한다. 헤이스팅즈를 결혼시킨 것이다! 아니 잠깐만! 이 책이 포와로가 나오는 두 번째 이야기니까, 그는 오래 전부터 투 잡을 뛴 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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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네 박물관 - 예술사의 가장 눈부신 인상주의 그림 상상의집 지식마당 9
조현진 글, 김유진 그림 / 상상의집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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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예술사의 가장 눈부신 인상주의 그림

  작가 - 조현진

  그림 - 김유진




  표지를 보면 창이 활짝 열려있고, 그 안에서 고양이를 안은 소녀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마 미소가 맞을 것이다. 우는 건 아니니까. 소녀의 옷이나 꽃 그리고 배경이 서양풍이다. 두꺼운 표지를 넘기면, 아까의 소녀 그림이 액자에 넣어져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뜨개질하는 소녀와 실을 갖고 노는 고양이가 그려져 있다.




  앞서 소개한 '고양이네 미술관'과 같은 시리즈이지만, 그린 이와 저자가 다르다. 어쩐지 고양이가 좀 달라졌더니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줄리라는 어린 소녀와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 미미가 등장한다. 줄리는 인상주의 화가와 관련이 깊은 아이다. 마네를 큰아버지로, 역시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를 엄마로, 그리고 르느와르를 후견인으로 둔 소녀이다. 그래서 부제가 '예술사의 가장 눈부신 인상주의 그림'인가 보다. 소녀가 살았던 시대가 그 당시니까.


  미미는 빛나는 노란새를 잡고 싶었다. 그래서 줄리 품에서 빠져나온 미미는 새를 따라 다니면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닌다. 세잔이 그리던 정물화 배경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거리를 쏘다니고, 발레 학원에 가서 소녀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배와 기차를 타고 시골로 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길을 잃지만, 개 라에르트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돌아온다. 책은 그 과정에서 미미가 만난 여러 사람과 본 풍경이 화가들의 그림과 연결이 되어있다.


  고양이가 너무도 푹신푹신 부드럽게 그려져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귀여워'를 연발하면서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미술관의 고양이는 아가였다면, 여기의 고양이는 다 큰 녀석이다. 설마 조선에서 프랑스로 오면서 큰 건가? 하지만 종류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린 사람이 달라졌으니 같은 고양이지만 다르게 그렸을 수도 있고…….




  미미가 쫓던 새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줄리의 금발위에서 빛나고 있던 노란 새라니……. 혹시 빛의 반짝임이 아닐까?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의 반짝임을 순간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어쩐지 그럴 것 같기도 하다.


  후반부는 화가의 생애와 화풍과 인상주의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흐, 드가, 르느아르, 피사로까지. 물론 줄리의 엄마인 베르트 모리조나 큰아버지인 모네가 들어있는 것은 기본이다.


  갑자기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졌다. 미미처럼 발레 동작을 시켜보고 싶다. 얼마나 귀여울까? 어머니,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고양이가 싫다고 하셨지…….

  

  아, 까먹을 뻔 했다. 왜 제목이 박물관인지 모르겠다. 그림밖에 없었는데. 미술관이라고 하면 앞서 소개한 미술관과 겹칠까봐 그런 걸까? 그렇다고 '고양이네 서양 미술관'이라고 하면 운율이 안 맞아서일까? 박물관을 기대했는데, 그림만 있어서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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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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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조선희



  그는 마술사다. 그의 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역시 뛰어난 마술사이다.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는 그렇게 쉽게 만나주지 않는다.

  그는 낙엽을 돈으로 보이게도 하고, 부탁을 받고 남녀를 맺어주기도 한다.

  그의 손에는 이상한 문양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다시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에게는 포장마차를 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포장마차는 아무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직 허락받은 자만이 볼 수 있고, 갈 수 있다.

  그는 아무에게나 다 '김서방'이라고 부른다.

  그는 하늘을 날 수 있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은 공윤후, 도깨비다.


  21세기,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이 시대에 도깨비라니 낯설면서 한편으로는 근사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하다.


  개발과 과학 그리고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많은 도깨비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을지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예전 우리 조상님들은 같이 살다시피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였는데 말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본 자료에 의하면, 우리가 요즘 알고 있는 도깨비의 이미지가 사실은 일본의 오니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 한다. 원래 우리 조상님들의 도깨비는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한다. 책에서도 공윤후의 외모에 대한 설명이 조금 나온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얼굴과 진짜 얼굴이 다르다고 한다. 얼굴마저 일본에게 빼앗긴 불쌍한 존재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책은 공윤후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또한 그가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룸룸덕분에 우리는 그의 조부와 아버지 그리고 그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다. 물론 룸룸의 자료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꾸 룸룸하니까, 예전에 보았던 만화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주문 '카피카피룸룸'이 떠오른다.) 거기에 공윤후와 그의 친구인 활의 대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두 사람의 과거가 어땠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모든 이야기들은 느슨하지만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도, 나중에 다 연결이 된다. '아,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 어, 설마 얘가 그 아이?'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밑바닥에 흐르는 내용은 공윤후와 룸룸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은 밀접한 것 같으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일방적인 스토커 행위의 피해자와 당사자인 것 같다. 혹시 이 소설의 숨겨진 부제가 '룸룸의 도깨비 스토커 기록'이 아닐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살지만 진짜 허깨비인 너와 허깨비로 살지만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는 그놈. 둘 다 세상과 소통하는 자기만의 매개체가 있어. 너에겐 도개교가 있고 그놈에게는 네모난 컴퓨터의 모니터가 있지. -p.375


  왜 룸룸이 그렇게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인정받고 싶은 걸까? 어린 시절 가정의 불행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다. 집착을 버려야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는데, 룸룸은 집착과 욕망의 덩어리를 자꾸만 키우고 있다. 나중에 그가 그 덩어리에게 잡아먹히면 어떤 존재가 될 지 상상하니, 싫어진다.


  만약에 룸룸이 여자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도 해본다. 진부한 사랑 얘기가 되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공윤후는 누군가의 품에서 쉴 수 있을 테고, 룸룸 역시 자신이 원하는 상대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 가족의 과거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진부한 사랑놀이 얘기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뀌는 건 싫으니까…….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이기에, 이 책은 선택에 대한 대사가 자주 나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고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인 거야. 혼자가 무서우면 둘을, 둘이 무서우면 혼자를 택하는 거야. 하나는 불행, 둘은 다행이라지만, 어느 쪽이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지. -p.158

  무엇을 선택하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야.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을 위해 계속 선택을 하지. 어떤 것을 갖고 어떤 것을 내놓느냐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모두가 그 선택을 어려워하지만 잘해나가고 있지. 그게 사람의 삶이니까. -p.227


  그런데 원하는 여자와 맺어달라는 남자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여자도 마음에 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소원을 비는 남자를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단지 남자가 바란다는 이유로 맺어주다니, 여자의 마음은 상관이 없다는 걸까? 물론 책에서는 그 때문에 상대 여자에 대해 다른 설정을 만들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상대 여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만 밀어붙이는 남자의 무신경함에 아주 열불이 났다. 뭐, 이런 재수 없는 XX가! 그러니까 네놈이 그 나이 처먹도록 솔로인 것이다! 이런 분노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만약에 여자에 대한 부가적인 설정이 없었다면, 서평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작가가 세심하게 마음을 쓴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기며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무서울수록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라. 본 것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두 머릿속에 넣어둬. 당장은 그 눈이 본 것을 잊고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훗날 그 기억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날이 온단다. 그때를 위해 잘 봐둬라.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보지 않은 건 기억나지 않으니까.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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