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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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조선희



  그는 마술사다. 그의 조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역시 뛰어난 마술사이다.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는 그렇게 쉽게 만나주지 않는다.

  그는 낙엽을 돈으로 보이게도 하고, 부탁을 받고 남녀를 맺어주기도 한다.

  그의 손에는 이상한 문양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을 다시 기억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에게는 포장마차를 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포장마차는 아무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직 허락받은 자만이 볼 수 있고, 갈 수 있다.

  그는 아무에게나 다 '김서방'이라고 부른다.

  그는 하늘을 날 수 있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은 공윤후, 도깨비다.


  21세기,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이 시대에 도깨비라니 낯설면서 한편으로는 근사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하다.


  개발과 과학 그리고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많은 도깨비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을지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예전 우리 조상님들은 같이 살다시피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였는데 말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본 자료에 의하면, 우리가 요즘 알고 있는 도깨비의 이미지가 사실은 일본의 오니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라 한다. 원래 우리 조상님들의 도깨비는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한다. 책에서도 공윤후의 외모에 대한 설명이 조금 나온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얼굴과 진짜 얼굴이 다르다고 한다. 얼굴마저 일본에게 빼앗긴 불쌍한 존재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책은 공윤후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또한 그가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룸룸덕분에 우리는 그의 조부와 아버지 그리고 그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있다. 물론 룸룸의 자료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꾸 룸룸하니까, 예전에 보았던 만화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주문 '카피카피룸룸'이 떠오른다.) 거기에 공윤후와 그의 친구인 활의 대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두 사람의 과거가 어땠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모든 이야기들은 느슨하지만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도, 나중에 다 연결이 된다. '아,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 어, 설마 얘가 그 아이?'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밑바닥에 흐르는 내용은 공윤후와 룸룸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은 밀접한 것 같으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일방적인 스토커 행위의 피해자와 당사자인 것 같다. 혹시 이 소설의 숨겨진 부제가 '룸룸의 도깨비 스토커 기록'이 아닐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살지만 진짜 허깨비인 너와 허깨비로 살지만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는 그놈. 둘 다 세상과 소통하는 자기만의 매개체가 있어. 너에겐 도개교가 있고 그놈에게는 네모난 컴퓨터의 모니터가 있지. -p.375


  왜 룸룸이 그렇게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인정받고 싶은 걸까? 어린 시절 가정의 불행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다. 집착을 버려야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는데, 룸룸은 집착과 욕망의 덩어리를 자꾸만 키우고 있다. 나중에 그가 그 덩어리에게 잡아먹히면 어떤 존재가 될 지 상상하니, 싫어진다.


  만약에 룸룸이 여자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도 해본다. 진부한 사랑 얘기가 되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공윤후는 누군가의 품에서 쉴 수 있을 테고, 룸룸 역시 자신이 원하는 상대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 가족의 과거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진부한 사랑놀이 얘기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뀌는 건 싫으니까…….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이기에, 이 책은 선택에 대한 대사가 자주 나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고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인 거야. 혼자가 무서우면 둘을, 둘이 무서우면 혼자를 택하는 거야. 하나는 불행, 둘은 다행이라지만, 어느 쪽이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지. -p.158

  무엇을 선택하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야.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을 위해 계속 선택을 하지. 어떤 것을 갖고 어떤 것을 내놓느냐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모두가 그 선택을 어려워하지만 잘해나가고 있지. 그게 사람의 삶이니까. -p.227


  그런데 원하는 여자와 맺어달라는 남자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여자도 마음에 둔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소원을 비는 남자를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단지 남자가 바란다는 이유로 맺어주다니, 여자의 마음은 상관이 없다는 걸까? 물론 책에서는 그 때문에 상대 여자에 대해 다른 설정을 만들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상대 여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만 밀어붙이는 남자의 무신경함에 아주 열불이 났다. 뭐, 이런 재수 없는 XX가! 그러니까 네놈이 그 나이 처먹도록 솔로인 것이다! 이런 분노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만약에 여자에 대한 부가적인 설정이 없었다면, 서평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작가가 세심하게 마음을 쓴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기며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무서울수록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라. 본 것은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두 머릿속에 넣어둬. 당장은 그 눈이 본 것을 잊고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훗날 그 기억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날이 온단다. 그때를 위해 잘 봐둬라.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보지 않은 건 기억나지 않으니까.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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