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 1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아진 지음 / 청어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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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아진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죽인 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정주신. 그의 행위는 저지른 죄에 비해 형량이 낮다고 불만이 가득했던 사람들에게는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정의 살인마, 죄인 살해자는 이름으로 그는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친구에 의해 경찰에 잡혔고, 수감 중이던 병원에서 도망치다 사고로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7년 후, 수영은 친구였던 주신을 신고해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옳은 일을 했다는 생각으로 여전히 괴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친구인 기준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는 선배를 피하려다 죽게 한 그는 수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원래 그였다면 당연히 자수를 권하겠지만, 수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모든 증거를 말끔히 처리한 수영에게 한 조직이 다가온다. 예전에 주신이 몸담았던, 여왕개미라는 자를 필두로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단체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여왕개미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거나 뉘우칠 줄 모르는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있었다. 여왕개미는 수영에게 주신이 했던 일을 이어받길 요구한다. 갈등하던 수영은 그 일을 받아들이기로 하는데…….

 

  개미 조직도를 보면 한 마리의 여왕개미가 있고, 대다수는 일개미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병정개미가 있다. 주신이나 수영은 병정 개미였다. 일개미들이 열심히 장소를 만들어놓으면, 병정개미가 적을 퇴치하는 것이다.

 

  개미들이 하는 일을 읽자니 예전에 어디선가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각각의 사람들은 살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각자 맡은 일, 예를 들면 A는 길을 막고, B는 길에 구덩이를 파고, C는 차를 모는 식이다. 살인은 다른 사람이 하는데, 서로의 얼굴을 모른다. 모든 것을 계획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언제 어디서 뭘 하라고 지령을 내리는 식이다. 이 책에서 개미들도 그런 식으로 자기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가해자를 처리한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상당히 효율적인 일이고,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결국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 남에게 떠맡기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일개미로밖에 살 수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소시한 소시민들이 억울함을 풀 길은 저런 식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긴 한다.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해당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에서는 빠지는 대목에서는 교환 살인을 다룬 영화가 떠올랐다. 관련이 없는 사람들끼리 작당을 해서 상대방이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죽여주는 내용이다. 또한 범죄자를 처벌한다는 설정에서는 살인자만 죽이는 연쇄 살인마를 다룬 미국 드라마 ‘덱스터’가 연상되었다. 물론 드라마에서 덱스터는 혼자 행동하기도 하고 가끔 보조를 두곤 했지만, 여기서는 팀으로 움직이는 게 다르긴 하다.

 

  1권에서는 수영이 어떻게 기준의 살인을 은폐하고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어떻게 화연과 여왕개미를 만나게 되었는지 다루고 있다. 물론 자기들의 일을 도우라는 여왕개미의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일어나는 심경의 변화 그리고 본격적으로 살인을 하고 다니는 대목까지 나온다.

 

  수영이 처음부터 살인자로 태어난 건 아니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곧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세상 풍파를 겪으면서 모든 것이 제대로 정의롭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착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입고 아파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수영뿐만이 아닐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당연히 처벌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무죄로 방면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고, 유죄라고 해도 저지른 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형량을 받는다. 그리고 형을 살고 나와서도 반성하기는커녕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판사나 국회의원 가족이 당해봐야 형량을 강화하고 엄하게 처벌을 할 건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도대체 누굴 의지해야하는지.

 

  수영이 갈등하는 부분에서 공감이 가기도 하고, 여왕개미나 화연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 건, 아마 그런 사회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주신 같은 살인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속으로 ‘나이스!’를 외칠지 모르겠다.

 

  아직 2권이 남아있어서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지만, 몇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수영이 기준의 살인을 은폐할 때, 너무도 능숙하게 계획을 짰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번 해본 사람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가 이성을 잃으면, 평소의 온순한 모습은 사라지고 아주 무섭게 변한다. 그리고 꿈에서 죽은 주신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게 좀 의미심장하다. 섣부른 짐작이니 적지는 않겠지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고 있다. 2권에서는 어떤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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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문학 여행 1 - 신화.미술.천문학.철학 편 어린이 인문학 여행 1
노경실 지음 / 생각하는책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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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신화.미술.천문학.철학 편

  저자 - 노경실

 

 

 

 

  아이들에게 인문학의 여러 분야들, 여기서는 그 중에서도 신화, 미술, 천문학 그리고 철학에 대해 기본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다루어서 사전 지식이 없는 아이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알면 아는 만큼 재미있고, 모르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까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알고 싶으면 다른 책을 찾아보면 되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초적인 것만 다룬 것은 아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 있는 만큼은 들어있다. 또한 동서양뿐만 아니라, 미술과 천문학 같은 경우에는 현대까지 다루고 있다. 골고루 먹어야 몸이 건강해지듯이, 다양하게 알아야 상식이 풍부해진다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1장 신화 편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로 다루고 있다. 신들의 탄생과 올림포스 12신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까지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북유럽 신화를 비롯한 다른 신화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언급만 하고 지나간다. 그와 동시에 저자는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얘기하면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2장은 미술로, 원시 시대를 거쳐 기독교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 그리고 여러 예술 사조에 이어 현대 미술까지 간략하게 보여준다. 사진이 꽤 많이 곁들여있어서, 글과 함께 보면서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다. 또한 각 예술사조들이 주로 그린 대상을 다루면서 신과 인간 그리고 어린이를 주제로 그리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3장은 천문학이다. 어째서 이게 인문학에 들어가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과학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저자는 천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할 수 있으며, 자연 과학 중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었기에 다룬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별자리를 이용한 점성술이라든지 별자리 관찰에 대해 얘기한다. 또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우주 탐사라든지 한국의 우주 과학 수준과 역사 속의 천문학자에 대해 훑어보고 지나간다.

 

  마지막 4장은 철학이다.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양 철학까지 다룬다. 저자는 어린이에게 철학이 왜 필요한지 이유를 설명하면서, 민주주의라든지 정치 등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면서 환경 철학에 대해 언급하며 지구의 자원 보호라든지 자연에 대한 의무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한다.

 




  모든 장마다 저자는 '인간'을 강조한다. 신화에서도 신들의 모습이 사실은 인간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하고, 미술 역시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것은 천문학이나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인문학이라는 분야가 동떨어져있거나 어려운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너무 교훈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아 거슬리기도 했다. 가령 갈릴레오가 우주를 관측한 망원경에 대해 얘기하면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초라한 망원경으로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이길, 환경이나 도구 탓을 하는 사람은 평생 그렇게 불평만 늘어놓다가 인생을 낭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다이아몬드별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런 별도 갖지 못했으면서 부자라고 거만하게 굴면 안 된다고 교훈조로 말한다. 뭐랄까, 잘 나가다가 뜬금없이 눈물을 자아내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막 이런 교훈을 느끼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기분이다.

 

  저런 부분만 빼면, 책은 참 좋았다. 설명도 그리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하는 투로 부드럽게 이어지고, 그림과 사진도 많았고.

 

  막내조카도 처음에는 어려운 학문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고 겁을 먹었다가, 조금 읽어보더니 재미있단다. 그리고 미술 시간에 본 그림과 교과서에서 본 이름이 나오니까 아는 척을 한다. 인문학의 재미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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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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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저자 - 이택광

 

 

 

  제목과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았던 책이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이고,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본문과 제목의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우선 첫 번째는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라는 제목으로, 20세기이후의 철학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요즘 한창 유행하는 주류 내지는 비주류에 관한 얘기이다. 음, 옛날 것도 헤매는데, 현재까지 보려니 뇌에서 과부하가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것을 중시하는구나.’정도로만 간단하게 짚고 넘어갔다.

 

  두 번째 부분은 ‘철학자들을 만나다’로, 저자가 세계 석학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적었다. 총 열 명의 외국 인사들이 소개되었는데, 우리가 죽은 다음 후손들이 철학 시간에 배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인물과 그들과 나눈 대화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슬라보예 지젝: 사유를 시작하라! - 제일 마음에 들었고, 웃어버린 문장이 있는 부분이었다.

  자크 랑시에르: 몫 없는 자들의 몫으로 - 행동을 중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2012년 현상’을 기억하라! -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가야트리 스피박: 정치적 행위자를 길러내는 교육 -교육과 욕망의 관계가 흥미로웠다.

  피터 싱어: 다윈주의와 윤리적 삶 - 인간외의 존재에 대한 관심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먼 크리츨리: 실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음, 좀 혼란스러운 느낌.

  그렉 렘버트: 누가 ‘영구평화’를 두려워하랴? - 남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알베르토 토스카노: ‘평범한’ 마르크스주의 - 잘 모르겠다.

  제이슨 바커: 진리는 훨씬 더 도전적이다 - 청년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그림과 유머를 중시하는 그의 말에 조금 놀라웠다.

 

  어떤 대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장을 술술 넘길 정도로 이해가 갔고, 또 다른 대화는 잠시 생각하기 위해 책장이 멈춰있기도 했다. 역시 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음,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부분을 깨닫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놀라기도 하고, 그러면서 생각을 확장시킬 수가 있다. 그게 오래 지속되지 못해서 문제지만.

 

  아무래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대화라서 그런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라든지 요즘 유행하는 과학기기에 대한 논의가 자주 나왔다. 한창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트위터같은 SNS의 무분별한 확산이나 ‘월 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시민들의 행동이 그 예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신기술을 이용하는 자들이 관건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치적 행위자와 주체가 그것을 조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SNS는 해악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인상적인 속도를 발휘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한 슬라보예 지젝의 ‘강력한 정보기관이 배후에서 민심을 조종한다거나 국가권력이 주도면밀하게 모든 것을 계획한다는 것은 강박적 상상’이라는 부분에서는 미안하지만, 크게 웃어버렸다.

 

  올해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국정원 댓글 알바 사건이나 선거 개입 같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알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인간이란 재미있다고 일본 만화 ‘데스 노트’에 나오는 대사를 읊조릴까? 아니면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예가 발견되었다고 신나서 연구를 할까?

 

  지젝이 한국 독자들에게 하는 말을 적으며, 리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자동적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종교만 해도 복잡하다. 내가 믿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신일 수 없다.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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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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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작가 - 소재원

 

 

 

  처음엔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냥 가을이라 눈물을 자아내는 로맨스 영화가 하나 개봉하나보다 싶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면서, 넘기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긴 한숨을 나오게 했다. 아이를 가진 가정이라면, 아니 아이가 없어도, 부모가 아니더라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그러다가 그 영화와 똑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을 몇 개 봐왔다. 그런 극들의 진행 방식은 대개 비슷했다. 피해자가 사건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한 다음, 부모가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길을 따르고 있었다. 부모의 복수 장면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보는 이들은 통쾌함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에, 그런 류의 작품일 것이라 추측하며 굳이 그 사건을 다루어야했을까 화도 났다. 만약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어린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쓸데없이 자세히 나오면, 그래서 아이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 벌어진다면 장문의 반박문을 쓰겠다고 혼자 다짐도 해보았다.

 

  그런데 책은 그런 내 예상을 가볍게 뒤집어버렸다. 다른 작품들처럼 아이가 당하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았고, 부모가 복수극을 벌이지도 않았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이었다.

 

  가족의 힘이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보여주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정이라는 존재가 최후의 보루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기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지윤의 부모가 자기 자신을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 아무도 주위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고 느꼈을 때, 두 사람을 엮어준 것은 과거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사랑을 시작하고 연애를 하면서 같이 보았던 영화와 그 당시 나누었던 대화. 그 때를 기억하면서, 두 사람은 잃어버렸던 느낌과 감정 그리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갈 힘, 아이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는 힘, 주위 시선에 굴하지 않을 힘,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용기를 얻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다양한지 예를 들어주고 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많은 입장이 있다. 책 속에서는 지윤의 상처를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보탬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녀를 무슨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듯이 배척하는 사람도 나왔다.

 

  지윤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도대체 지윤이 무슨 잘못을 했냐는 질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한 엄마의 대답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처음에는 진짜로 저런 말을 한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생기면,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되니까 말이다. 당할만하니까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회니까, 남자가 욕정을 참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회니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이성이 있기 때문인데, 그걸 제어하지 못한다는 건 자체 짐승 인증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런 발언을 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하고 짐승이 되겠다는 건데, 그게 뭐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짐승 주제에.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언젠가 말한 것 같지만, 내 아이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나쁜 길로 들어간 게 아니라, 내 아이가 나쁜 친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한 것이다. 내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으면 남도 그렇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 하나가 그런 걸 알려주지는 않는다. 지금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커서도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또 자기의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세상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소설은 지윤의 가족이 웃으면서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되면서 끝이 난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윤과 부모는 수없이 많이 울었고, 그 과정을 따라가는 나 역시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도 가슴은 먹먹하기만 했다. 지윤이는 부모의 사랑과 인내로 겨우 일어섰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 애와 달리 아직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언제부터 이 모양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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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시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4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설영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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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Body in the Library, 1942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고싱톤 홀은 바로 얼마 전에 읽은 ‘깨어진 거울 The Mirror Crack'd from Side to Side, 1962’ 에서 마리나 그레그가 산 그곳이다. 이 사건을 영화화하기 위해 그녀가 저택을 샀었다. 그랬다가 살인 사건이 또 벌어지게 되지만 말이다.

 

  흐음, 또다시 말하지만 역시 책은 처음에 출판된 순서대로 읽어야……. 나중에 전집을 다 읽으면, 출판된 순서대로 책 배열을 다시 해봐야겠다.

 

  이 저택의 주인인 밴트리 부부는 ‘화요일 클럽의 살인 The Thirteen Problems, 1932’에서 등장했었다. 헨리경의 추천으로 미스 마플을 초대해서 살인 사건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었는데, 이후 밴트리 부인과 미스 마플은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번에도 고싱톤 홀의 서재에서 낯선 금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자, 즉시 미스 마플을 불러 사건을 풀어보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죽은 여인이 근처 호텔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역시 미스 마플과 함께 그곳에 숙박하며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자기 집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하면 아무래도 없는 말도 지어내는 것이 사람인지라, 남편과 관련되어 이상한 추문이 돌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밴트리 부인은 발이 넓고 활동적이며 생각이 깊은 여성이었다.

 

  두 개의 사건, 서재에서 발견된 여인과 자동차에서 불탄 채로 발견된 소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오리무중인 가운데, 노년의 부자 노인이 등장하면서 사건의 양상은 달라진다. 그녀가 죽음으로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유력한 용의자가 있지만 동기가 약하고, 동기가 강한 사람은 알리바이가 있었다. 미스 마플이 아니었으면, 그녀를 굳게 믿어주는 헨리경이 아니었으면 마지막 시도는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대놓고 ‘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내 귀에 들어오니까’라고 말하는 미스 마플. 자기가 남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말인가 보다.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열심히 마을의 온갖 소문을 모으고,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음, 그래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오래 산만큼 연륜과 생각이 깊어지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거구나.

 

  이야기에서 피터 카모디라는 꼬마가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그가 읊는 유명 추리 작가 중에 애거서 크리스티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목에서 너무 웃겨서 낄낄거렸다.

 

  그러고 보니 고싱톤 홀은 단편집까지 포함해서 세 번이나 배경으로 등장했다. 스타일즈 저택과 침니스 저택은 각각 두 번씩 나왔었고. 다른 장소도 그런 곳이 있는지 눈여겨 읽어봐야겠다. 후훗.

 

  아, 책을 읽고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미스 마플 드라마를 보았다. 그런데 거기서는 범인을 책과 다르게 설정해놓았다. 그런데 기존의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인간상에 대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드라마 버전도 꽤 괜찮았다. 더 치열한 사랑 같은 느낌도 들었고 말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소설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p.116 네 번째 문단에서 ‘모든지 알고 있는’은 ‘뭐든지 알고 있는’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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