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바디스
조나단 레빈 감독, 존 말코비치 외 출연 / 데이지 앤 시너지(D&C)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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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arm Bodies , 2012

  감독 - 조나단 레빈

  출연 - 니콜라스 홀트, 테레사 팔머, 존 말코비치, 애널리 팁턴





  이유는 모르지만 좀비가 나타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군대를 조직하고 벽을 만들어 좀비의 공격에서 자기들을 보호하고, 좀비들은 도시 전체를 누비면서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특이한 것은 좀비에도 급이 있어, 아직까지 사람의 외형을 갖고 있는 종류와 미라 화된 시체 같은 모습의 좀비가 있다.


  주인공 R은 특이하게 생각을 하는 좀비이다. 그는 누군가의 뇌를 먹으면 그 사람의 기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R이라고 지칭한다. 어느 날, 그는 도시로 의약품을 가지러 온 청년 하나를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소녀 줄리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의약품을 구하러왔던 줄리는 좀비들의 습격에서 남자친구 페리를 잃고, 혼자 외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R의 도움으로 좀비 무리에서 살아남는다. 사실 그의 도움인지 아니면 납치감금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줄리는 R이 다른 좀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옛날 팝송을 즐겨들으며 간단한 대화를 하는 좀비는 별로 많지 않을 테니까. 이후 그녀는 점점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R 역시 자신의 심장이 예전과 달리 뛰는 것을 알게 되는데…….


  R과 줄리라니,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두 집단의 소년과 소녀의 만남 그리고 사랑. 그러다가 R이 줄리를 찾아 인간들의 거주지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확신했다. 이층 발코니에서 자신을 찾아온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 소녀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담을 넘은 소년. 이건 완전히 로미오와 줄리엣 좀비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철딱서니 없는 애들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자기 남자친구를 죽이고 잡아먹은 좀비와 사랑에 빠지다니.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좀비를 인간 거주 지역에 들어놓았는지, 화장을 해서 좀비같이 보이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과 무지가 어떻게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생각하는 좀비와 뇌는 장식으로 달린 인간의 만남이라니, 나름 어울리긴 한다. 하긴 멍청하면 3대가 고생이라니까 다른 집안에 시집가서 그 멍청함을 물려주기보다는, 그냥 좀비와 사귀어서 당대에 그 멍청함을 끝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R이 못생겼거나 다른 좀비 영화에서처럼 흉측했으면 그녀가 사랑했을까? 오랜 납치감금생활이 아니었으면, 그녀가 그에게 관심이라도 가졌을까? 갑자기 스톡홀롬 증후군이 떠오른다. 역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납치감금사육인가보다. 물론 납치범의 외모가 준수해야함은 필수 조건이고 말이다. 젠장, 좀비까지 외모 지상주의라니!


  그리고 R 역시 줄리 남자친구의 뇌를 먹지 않았으면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물론 처음 만났을 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역시 뇌를 먹었기에 더욱 더 그런 감정이 고조된 것 같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뭐랄까, 너무 어설프고 이상했다. 납치감금과 남의 기억으로 느끼는 사랑이라니, 헐.


  거기다 좀비들이 갑자기 심장이 뛰는 계기도 음……. 두 남녀가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보자, 여러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심장도 뛰고, 말도 예전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할 수 있고. 그런데 과연 그게 온전한 그들의 기억일까? 혹시 지금까지 그들이 잡아먹은 사람들의 기억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변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 가짜 기억인데, 그걸 바탕으로 진짜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2004’ 오프닝을 보면, 무기력하게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마치 좀비들의 모습처럼 그려놓았다. 보면서 뜨끔했던 도입부인데, 그 부분을 이 영화에 대입해봤다. 문득 이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가 다른 영화에서 표현하는 그런 좀비가 아니라,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목적 없이 무의미하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는 것은 살아있는 시체, 좀비와 다름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살아야할 이유가 되는 뭔가를 찾았을 때,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제야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영화는 은근히 보여주고 있었다. 타인과의 직접적인 소통대신 기계 문명의 편리함에 의존하여 정 없이 삭막하게 살아가던 현대인들이 어떻게 인간애를 회복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지 영화는 극단적인 두 집단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의도는 좋게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은데,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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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발 4시 50분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심윤옥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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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4:50 from Paddington, 1957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 마플의 친구인 맥길리커디 부인은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기차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목 졸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지만, 기차역이나 기찻길 그 어디에서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추리 소설을 읽다가 꿈을 꿨을 거라 생각하지만, 미스 마플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녀는 절대로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도와 기차에 대해 잘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미스 마플은 시체가 숨겨졌을 가장 그럴듯한 장소를 찾아낸다. 자신이 직접 뛰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프로 가정부인 루시를 그곳으로 보낸다. 저택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주변을 뒤지던 루시는 마침내 시체를 발견하고…….

 

  역시 집안의 재산을 틀어쥔 노인과 그를 간병하며 살고 있는 딸, 범죄와 연이 닿아있는 아들, 괜찮은 집 여성과 결혼하여 겉으로는 건실하게 살아가는 아들 그리고 제멋대로 살아온 또 다른 아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중심으로 사위와 손자, 딸과 연인관계인 의사, 그리고 시체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여인이 얽히고설키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과연 죽은 그녀는 누구이며 왜 그 집안에 숨겨져 있었을까?

 

  미스 마플은 크래독 경감과 루시의 조사를 토대로 사건을 추리해간다. 확실히 그녀는 안락의자형 탐정이다. 하긴 나이가 있으니 젊은 사람들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힘들 것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미스 마플의 수족이 되어 움직인 사람은 루시 아일리스배로라는 아가씨이다. 외모나 머리 회전이 남들에 뒤지지 않고, 청소면 청소, 요리면 요리,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여성이다. 미스 마플의 황당한 부탁, 대저택과 그 인근 부지를 뒤져서 시체를 찾아달라는 제의에 호기심을 느끼고 사건에 뛰어든다. 물론 사건 해결보다는 가정부라는 직책에 더 책임감을 느낀 것 같지만 말이다. 그녀는 저택에서 일하며 무려 세 남자에게서 프러포즈를 받는다. 특히 한 소년은 그녀에게 자신의 새어머니가 되어달라고 간청을 하기까지 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미스 마플과 크래독 경감은 그녀가 과연 누구를 선택했을지 얘기를 나눈다.

 

  나 같으면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자기만의 생활을 계속 즐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세 남자 다 그리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애인이 아니라 보모 내지는 엄마 같은 존재니까. 엄마 같은 존재를 원하면 그냥 엄마랑 계속 살 것이지, 왜 애꿎은 젊은 여자를 엄마의 대체물로 만들려는 건지 모르겠다. 제발 그녀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기를 빌 뿐이다.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은 미스 마플의 친구에 대한 믿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평소 부풀리기 좋아하는 그 사람의 성격 때문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맥길리커디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진짜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루시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하며 시체 찾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미스 마플은 맹목적으로 친구라고 두둔하는 사람이 아니다. 알고 지내온 기간 동안 상대가 해온 말이나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니 미스 마플이 전적으로 말을 믿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동안 실없는 소리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주고 아니고는 평소에 내가 내뱉는 말과 보여주는 행동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야겠다. 그렇다고 평상시에도 진지진지열매를 먹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하고, 하지 않아야할 때는 말을 삼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런데 191쪽에서 끝에서 네 번째 줄, ‘위장장해’가 아닌 ‘위장장애’가 맞는 표기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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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 밀라노의 뱀파이어 - [초특가판]
앤 고어사드 감독, 마틴 캠프 외 출연 / 기타 (DVD)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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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mbrace of the Vampire , 1994

  감독 - 앤 거소드

  출연 - 마틴 켐프, 알리사 밀라노, 라드 반스, 존 라이들링거

 

 

 

 

  아놀드 주지사님의 어린 딸로 납치 감금되었던 영화 ‘코만도 Commando, 1885’ 이후 10년. 알리사 밀라노가 이번에는 뱀파이어의 표적이 되었다. 인간이었을 당시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 헤매는 뱀파이어. 3일안에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영원한 잠에 빠져들고 만다. 겨우 찾아낸 그녀는 대학생 샬롯으로 남자친구 크리스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그녀를 갖기 위해 꿈에 나타나 유혹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만드는데…….

 

  이 영화는 기존의 소설 설정을 현대식으로 변형하면서 에로틱한 장면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삶을 갈망하는 뱀파이어의 욕망과 서서히 성에 눈뜨는 여대생의 복잡 미묘한 심리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청년의 갈등이 잘 표현되어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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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는 개뿔.

 

  뱀파이어라면서 할 줄 아는 거라곤 꿈에서 야한 짓하는 거 보여주는 게 다인 변태 무능력한 놈 하나랑, 여자 친구의 첫 경험 상대가 되고 싶어서 안달 난 놈 하나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순진하고 순결한 걸 내세우지만 사실 은근히 밝히는 여자애 하나가 나오는, 에로 영화도 아니고 호러 영화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이다. 마치 한창 작업을 하다가 급똥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다 와서는 자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영화 설명을 보면 공포, 에로틱 스릴러라고 적혀있는데, 여자들이 가슴을 내보인다고, 옷을 훌렁훌렁 벗고 나온다고 다 에로틱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에로틱 스릴러하면 떠오르는 건 당연히 영화 '원초적 본능 Basic Instinct, 1992'일 것이다. 그 영화에서는 여자들이 벗고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벗고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배우들이 풍기는 분위기라든지 화면이 충분히 에로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스릴러적인 면도 꽤 멋졌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자들이 벗고 나와도 별로였고, 공포나 스릴러적인 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뱀파이어라면서 할 줄 아는 게 꿈에서 붕가붕가하는 장면 보여주는 게 다인데, 뭐가 무서운지 모르겠다. 뱀파이어 영화의 백미는 뱀파이어에게 목을 내맡기면서 앞으로 펼쳐질 성적 희열을 상상하는 동시에 공포에 바들바들 떠는 여인의 모습일 것이다. 여인의 불안과 쾌락이 절정에 달했을 때 뱀파이어가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물어뜯는 것이다. 그건 사랑하는 여인에게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항조차 포기할 정도로 위압감을 풍기며 공격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여주인공과 자고 싶어서 안달이 난 뱀파이어 내지는 길가다 취객의 지갑을 뺏는 아리랑치기범 느낌의 뱀파이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진정으로 원해서 오랜 시간동안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기 싫어서 찾아다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진심이라기보다는 '나 3일의 시한부 인생인데, 한 번 자자!' 이런 분위기. 그러니 여자가 호감을 느낄 리가 없다.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도 없었고, 오랜 시간동안 기다린 애틋함도 없었다. 또한 뱀파이어의 카리스마나 공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영화에 별점을 준다면 그건 순전히 영화 초반에 아리따운 몸매를 아낌없이 보여준 이름 모를 세 여배우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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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백
마이클 A. 니클스 감독, 크리스찬 슬레이터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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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layback , 2012

  감독 - 마이클 A. 니클스

  출연 - 조니 파카, 엠버 칠더스, 크리스찬 슬레이터, 조나단 켈츠

 

 

 

 

 

  할런 딜이 부모님과 누이를 잔혹하게 살인하고 20년 후. 줄리안은 친구들과 학교 과제로 낼 비디오 영화 소재로 할런 딜의 사건을 선택한다. 그는 영상 관련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 퀸의 도움으로 각종 영상 기기들을 빌린다. 그런데 퀸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불법 몰래 카메라를 학교 곳곳에 설치해서 여학생들을 엿보고, 그것을 테이프로 녹화해서 관음증이 있는 경찰에게 파는 것이었다. 줄리안의 부탁으로 할런 딜이 죽기 직전까지 녹화한 테이프를 찾은 퀸. 그런데 그것을 보던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영상 속의 할런 딘이 서서히 그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줄리안과 같이 영화를 찍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기이한 방법으로 죽어나가는데…….

 

  예전에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미신이 있었다고 한다. 사진에 악령을 봉인한다는 소재가 아마 거기서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2D의 시대는 가고 3D의 시대가 되었다. 영화 ‘피어 닷 컴 FearDotCom, 2002’에서 다루었다시피, 이제는 인터넷 전선을 통해서 악령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소재까지 나왔다.

 

  이 영화에서는 비디오테이프에 봉인된 악령이 영상을 재생하면서 되살아나고, 카메라를 통해서 사람들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한 번 찍히면 영상이 지워질 때까지 살아남는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링 リング The Ring, 1998’에서도 힌트를 얻은 모양이다.

 

  거기에 자유분방한 십대 청소년들의 생활과 출생의 비밀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나름 상큼한 분위기와 함께 정석대로 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출생의 비밀이라니……. 하긴 그거라도 있어야 과거와 현재를 이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왜 그걸 다루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여기서는 별로 통하지 않았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진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어쩌면 할런 딜이 왜 가족들을 몰살시키려고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히려다가 말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서 왜 그가 퀸을 이용하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되살아나는 것이 목표였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죽게 한 세상에 복수하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으려는 것인지. 어느 하나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그냥 미친놈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 속편할지도 모르겠다. 하긴 ‘할로윈 시리즈’의 마이클 마이어스도 무슨 뾰족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지. 리메이크 작에서는 나름 이유를 주려고 감독이 애썼지만, 원작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냥 다 죽여버리겠다!! 이런 분위기였다. 이 영화도 역시 그냥 애가 미쳐서 날뛰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이유따위 필요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있다. 이유가 없으면 차라리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위압감이라도 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공포감도 별로 없었고,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극의 진행이 너무 밋밋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죽음의 마수가 다가온다는 건, 완급만 잘 조절하면 긴장감을 서서히 배가시키면서 숨을 죽이게 만들 수 있는 전개인데 영화는 아쉽기만 했다.

 

  출생의 비밀, 비디오테이프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혼령,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을 죽이고 조종할 수 있는,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힘이 강해지는 악령 등등. 왜 이런 괜찮은 설정을 손에 쥐어줘도 써먹지 못하니…….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나왔는데, 안쓰러웠다. 퀸이 찍은 여학생 탈의실 테이프 보기가 유일한 낙인 경찰로 나왔는데, 참……. 여자애가 상의 벗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하다니,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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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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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夢幻花, 2013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감상문에는 줄거리를 요약해서 적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은 등장인물과 그 관계가 약간 복잡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마다 각각 갖고 있는 사연도 한두 개는 되고, 어떤 것은 연결되는 것도 있고 겹치기까지 한다. 그 이야기들이 퍼즐 조각처럼 자리를 찾아가면서, 책은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자살한다. 얼마 후, 그의 할아버지가 살해당한다. 한 집안에 연이어 일어난 불행한 사고로 볼 수 있지만, 노인이 기르던 노란색 나팔꽃 화분이 사라지면서 사건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신분을 숨기며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청 공무원 요스케. 죽은 노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형사 하야세. 할아버지의 화분에 담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행동하는 손녀 리노. 그리고 아버지와 형이 숨기는 비밀이 뭔지 밝히려는 청년 소타. 이들이 따로 또 같이 행동하고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자연 상태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노란색 나팔꽃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와 동시에 3대에 걸친 두 집안의 원죄와 같은 가업과 50년 전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의 진상도 파헤쳐진다.

 

  이 작가의 다른 추리소설을 여러 권 읽어봤지만, 이번 책은 좀 당황스러웠다.

 

  유가와 교수가 등장하는 단편들이야 최신 과학 기술을 광고하는 느낌으로 읽었고, 가가 형사가 나오는 소설들은 사건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라든지 숨겨진 사연들이 더 부각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들 자연스레 사건에 그것들이 녹아들면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 책은 중반까지는 그런 흐름을 잘 이어가다가, 갑자기 결말로 뛰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노인을 죽였냐가 아니라, '노란 나팔꽃의 정체가 뭔가?'여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을 죽인 사람을 찾아 헤맨 것은 엄밀히 따지면 형사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꽃의 행방을 알고자 하거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형사는 메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머리를 땋을 때 세 가닥으로 나눈 머리카락의 양이 비슷하지 않으면, 완성된 머리는 상당히 이상하다. 한 가닥이 너무 많으면 당연히 다른 가닥이 적기 마련이라, 땋은 머리가 가지런하지가 않고 울퉁불퉁하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은 이야기도 그렇다. 당연히 메인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겠지만, 이 책에서 각각의 인물들에게 분배한 분량은 꽤나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많은 가닥들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튀어나오는 부분 없이 매끄러운 땋은 머리가 완성되었다. 그 복잡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어떻게 그것들을 흔들림 없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모을 수 있는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범인을 밝히는 부분이 지금까지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가,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오른 느낌이라, 아쉽기만 했다. 꽃의 정체에만 너무 집중해서 범인을 제대로 찾을 힌트를 놓쳐버린 걸까? 설마 이게 작가의 의도? 그런 거라면 작가의 트릭은 아주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이 꽃에만 집착을 하다 보니, 범인을 찾는 형사에게는 당연히 시선이 덜 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형사도 나중에는 꽃에 관심을 가졌으니……. 음, 작가가 나쁜 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등장하는 사람들마다 아픈 사연이 한두 개씩은 다 있었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가면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고발도 같이 하고 있다. 하야세와 그 아들을 통해서는 이혼 가정이 겪는 갈등과 그 극복에 대해서, 리노와 소타의 경우에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그리고 요스케의 입을 통해서는 책임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요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지만,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받아들여야 한다. 속된 말로 하면,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요스케에게는 가업처럼 된 노란 나팔꽃이었고, 소타에게는 전공인 원자력이었다. 일본과 원자력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이 있다. 후쿠시마. 소타는 다들 기피하는 원자력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어쩌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황하는 일본인들에게 작가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욕망과 책임감이 정비례하지 못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책이었다. 욕망에 사로잡힌 누군가는 금단의 꽃을 피워냈고, 그것에 책임을 진 다른 누군가는 뒤처리를 해야 했다. 어쩌면 작가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 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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