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바디스
조나단 레빈 감독, 존 말코비치 외 출연 / 데이지 앤 시너지(D&C)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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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arm Bodies , 2012

  감독 - 조나단 레빈

  출연 - 니콜라스 홀트, 테레사 팔머, 존 말코비치, 애널리 팁턴





  이유는 모르지만 좀비가 나타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군대를 조직하고 벽을 만들어 좀비의 공격에서 자기들을 보호하고, 좀비들은 도시 전체를 누비면서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특이한 것은 좀비에도 급이 있어, 아직까지 사람의 외형을 갖고 있는 종류와 미라 화된 시체 같은 모습의 좀비가 있다.


  주인공 R은 특이하게 생각을 하는 좀비이다. 그는 누군가의 뇌를 먹으면 그 사람의 기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R이라고 지칭한다. 어느 날, 그는 도시로 의약품을 가지러 온 청년 하나를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소녀 줄리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의약품을 구하러왔던 줄리는 좀비들의 습격에서 남자친구 페리를 잃고, 혼자 외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R의 도움으로 좀비 무리에서 살아남는다. 사실 그의 도움인지 아니면 납치감금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줄리는 R이 다른 좀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옛날 팝송을 즐겨들으며 간단한 대화를 하는 좀비는 별로 많지 않을 테니까. 이후 그녀는 점점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R 역시 자신의 심장이 예전과 달리 뛰는 것을 알게 되는데…….


  R과 줄리라니,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두 집단의 소년과 소녀의 만남 그리고 사랑. 그러다가 R이 줄리를 찾아 인간들의 거주지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확신했다. 이층 발코니에서 자신을 찾아온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 소녀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담을 넘은 소년. 이건 완전히 로미오와 줄리엣 좀비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철딱서니 없는 애들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자기 남자친구를 죽이고 잡아먹은 좀비와 사랑에 빠지다니.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좀비를 인간 거주 지역에 들어놓았는지, 화장을 해서 좀비같이 보이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과 무지가 어떻게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생각하는 좀비와 뇌는 장식으로 달린 인간의 만남이라니, 나름 어울리긴 한다. 하긴 멍청하면 3대가 고생이라니까 다른 집안에 시집가서 그 멍청함을 물려주기보다는, 그냥 좀비와 사귀어서 당대에 그 멍청함을 끝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R이 못생겼거나 다른 좀비 영화에서처럼 흉측했으면 그녀가 사랑했을까? 오랜 납치감금생활이 아니었으면, 그녀가 그에게 관심이라도 가졌을까? 갑자기 스톡홀롬 증후군이 떠오른다. 역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납치감금사육인가보다. 물론 납치범의 외모가 준수해야함은 필수 조건이고 말이다. 젠장, 좀비까지 외모 지상주의라니!


  그리고 R 역시 줄리 남자친구의 뇌를 먹지 않았으면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물론 처음 만났을 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역시 뇌를 먹었기에 더욱 더 그런 감정이 고조된 것 같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뭐랄까, 너무 어설프고 이상했다. 납치감금과 남의 기억으로 느끼는 사랑이라니, 헐.


  거기다 좀비들이 갑자기 심장이 뛰는 계기도 음……. 두 남녀가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보자, 여러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심장도 뛰고, 말도 예전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할 수 있고. 그런데 과연 그게 온전한 그들의 기억일까? 혹시 지금까지 그들이 잡아먹은 사람들의 기억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변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 가짜 기억인데, 그걸 바탕으로 진짜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2004’ 오프닝을 보면, 무기력하게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마치 좀비들의 모습처럼 그려놓았다. 보면서 뜨끔했던 도입부인데, 그 부분을 이 영화에 대입해봤다. 문득 이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가 다른 영화에서 표현하는 그런 좀비가 아니라,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목적 없이 무의미하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는 것은 살아있는 시체, 좀비와 다름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살아야할 이유가 되는 뭔가를 찾았을 때,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제야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영화는 은근히 보여주고 있었다. 타인과의 직접적인 소통대신 기계 문명의 편리함에 의존하여 정 없이 삭막하게 살아가던 현대인들이 어떻게 인간애를 회복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지 영화는 극단적인 두 집단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의도는 좋게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은데,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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