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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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A Rough Draft, Chernovik, 2018
감독 - 세르게이 모크리츠키
출연 - 니키타 볼코브, 세베리야 야누사우스카이테, 율리야 페레실트, 올가 보로브스카야
새로운 게임 출시를 앞둔 ‘시릴’. 어느 날 회사 파티에 참석하고 집에 오니, 낯선 여자가 자기 집에 있었다. 심지어 가구 배치라든지 벽지까지 완전히 싹 바꿔놓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파티에서 찍은 사진을 봐도 그만 사라졌고, 부모님 역시 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거기 있던 여자와 싸우던 중 그만 시릴은 그녀를 죽여버리고 만다. 도망치던 그는 휴대 전화에 나온 한 탑을 찾아가고, 거기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시릴은 탑의 관리인이자 세관원으로 선택되었고, 그 탑은 다른 차원을 연결해주는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 ‘안야’를 만나게 되는데…….
이 영화는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책의 내용을 한 편에 담기 위해 긴 상영시간을 갖거나 많은 내용을 빼버리는 경우가 많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확신은 못 하겠지만, 이 영화는 두 가지를 다 채택한 것 같다.
그래서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큰 대바늘로 뜬 얼기설기 목도리처럼 구멍이 숭숭 나 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풀리지 않은 의문이 가득하다. 탑의 기능은 무엇인지, 탑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의 특수성은 무엇인지, 왜 탑과 관련된 사람들은 시릴과 안야를 떼어놓으려 하는지 등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또한, 시릴이 왜 그리도 안야에게 매달리는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 보면 둘은 이미 끝난 사이인데, 시릴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아니,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그의 안야에 대한 사랑은 엄청나서, 다른 차원을 돌아다니며 찾아 헤맬 정도였다. 그런데 과연 안야는 그걸 바랐을까? 시릴의 집착은 아니었을까? 그의 감정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릴이 안야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그녀가 그런 고초를 겪을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스토리적인 면에서는 구멍이 보였지만, 이 영화의 CG는 괜찮았다. 차원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하는 여러 장치는 ‘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발하고 좋았다. 하지만 설정 부분에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기에, 멋진 장면이 나와도 ‘와’하고는 그냥 끝이었다. 이야기의 흐름과 장면이 잘 어우러져야 영화를 본 다음에도 기억에 남을 텐데, 그런 거 하나도 없었다. 분위기로 보면 다음 편으로 이어질 거 같은데, 만약 나온다면 볼지 안 볼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그렇게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1편에서 회수되지 않은 떡밥이 풀린다면 생각해볼지도?
원작을 읽어보고 싶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