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
요시미 순야 지음, 박광현 옮김 / 동국대학교출판부 / 2008년 10월
절판


1990년대 초엽까지 일본에서는 문화연구가 총체적으로 거론된 바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문화연구는 일부의 매체 연(9)구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비판적 수용자 연구의 하나로 해석되고 수용되는 데 그쳤다. 그런 수용 과정에서 논자들은 주류의 사회심리학적인 효과연구를 비판하고 '해석'과정에서 수용자가 의미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나 텍스트의 기호론적인 다의성을 강조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연구의 요점을 수용자의 의미해석이라는 차원으로 환원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이용과 만족에 관한 연구와도 통합이 가능할 것처럼 이해하는 태도는 일상생활의 총체적 비판으로서 문화연구가 지니고 있는 비판적인 범주를 너무나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9,10쪽

1990년 후반 이후 일본에서 문화연구를 둘러싼 상황은 일변했다. 그것은 일종의 지적유행품이 되었던 것이다.더구나 그것은 수용자 이론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유행했다.오히려 1990년대 일본에서의 문화연구는 매체연구의 하나로서 주변화되고,포스트콜로니얼한 표상분석의 조류로(10)서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국민국가로 비판으로서의 성격이 문화연구에 부가되기 시작했고,또한 '피억압자'들의 저항운동과도 결부되기 시작했다.지금의 문화연구는 10여 년 전 매체연구 분야에서 수용되었던 때와는 달리 일종의 표상의 정치학으로서 젊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연구의 시야 확대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가령 마지막에 언급한 피억압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미 여러 차례 비판했듯이,문화연구가 피억압자의 주체성을 본질주의적으로 고정화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0,11쪽

문화를 이미 거기에 존재하며 고유한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영역이 근.현대에 존립하는 그 자체를 되묻는 것.문화를 경제나 정치로부터 분리된 고정적 영역으로 여기거나 또 그런 경제나 정치에 종속적인 표층의 질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이 작동하고 경제와 결합하여 담론의 중층적인(22)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으로 문제화해 나가는 것.문화연구가 단순한 문화의 실증주의적인 연구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문화연구는 역사 이해의 불가결한 차원으로서 문화에 주목한다는 것뿐만 아니라,그러한 문화는 차원 자체의 존립 기제,즉 그것이 일정한 담론과 권력의 소재적인 구성으로서 성립하며 재생산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것을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로 문화를 문제제기하는 연구인 것-22,23쪽

이와 같은 의미에서 문화가 인류학적,역사적 기술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중대한 문제로서 광범위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특히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일어났다. 더욱이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일정한 독자적 사회영역을 제시하는 말로서 확립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이기 때문에,문화가 문제시될 수 있는 전제 조건 그 자체가 19세기 전반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23쪽

스크루티니(scrunity)그룹: 1932년 리비스그룹에 의해 출범한 비평전문지 '스크루티니'를 통해 케임브리지 영문학을 주도한 그룹으로,영문학의 지도를 다시 작성했다고 평가된다. 엄격한 비평적 분석의 중요성과 '페이지 위의 단어들'에 대한 잘 훈련된 집중을 강조했으며,문학을 근대 상업사회 어디에서나 수세에 몰리고 있는 창조적 에너지들의 보호캡슐로 간주했다. 또한 단순히 문학적이기만 한 가치들을 거부했으며,문학작품의 평가방법은 역사 및 사회 전반의 성격에 관한 보다 통찰력있는 판단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27쪽

스크루티니 그룹은 훗날 문화연구가 마르크스주의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일상 속 문화적 실천의 정치성을 문제제기한 것과는 다르게 어디까지나 서구의 엘리트주의적인 가치에 근거해 대중문화의 침투를 비평하는 입장에 그쳤다.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몇 가지 점에서 문화연구의 문제를 구성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드워킨은 이 스크루티니 그룹으로부터의 연속성을 다음 세 가지 점으로서 정리하고 있다. 첫째,그것은 문학작품의 범주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실천,광고나 대중 잡지,대중음악,영화 등에 대해서도 비평적인 방법을 적용해 나갔다.-29쪽

둘째,그것은 기존의 문학연구와 같은 작품론이나 작가론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29)적 텍스트나 미디어,언어,역사를 포괄적으로 문제 삼는 지평을 개척했다.셋째, 그들은 이런 비평적인 실천을 실제 학교에서의 교육실천과 결부시키고 미디어연구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나로 통합해 발전시킬 방도를 제시했다(드워킨,1997).-29,30쪽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에서 미국의 중층적인 작용을 절묘하게 파악한 딥 헵디지는 이러한 오웰의 아메리카니즘 비판과 '읽고 쓰는 능력의 효용'(1958)에서 보여준 호가트의 관점이 지닌 연속성을 지적하고 있다.리비스나 엘리엇이 영국의 엘리트적인 문화전통을 옹호하면서(34)그런 토양에 야만적으로 침투해오는 미국류의 대중문화를 비난한 데 반해,오웰이나 호가트는 영국의 노동자 계급의 견고한 생활을 옹호하면서 그런 생활세계에 매스 미디어와 소비주의로 대표되는 아메리카니즘이 침투해오는 것을 위험시했던 것이다(헵디지,1988).이렇게 문화연구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문화'를 문제시하는 관점이 노동자 계급의 문화적 세계에 내재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때, 아카데미즘이나 전문영역의 주변,예를 들면 성인교육의 현장과 같은 교실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34쪽

호가트는 현대사회가 특별한 기능으로 "평범함에 만족하는 테크닉"을 발달시키고,이미 "거대하고 새로운 설득 기계를 가진 통속화의 사도들이 넓게 펼쳐진 무인의 평원을 점령"하고 있다고도 논하고 있다.거기에서는 진보의 관념이 "오늘날의 복잡하게 뒤엉킨 상업적 생활의 압력에 짓눌린 채 확대되어 거의 제약 없는 물질적인 '진보주의'에까지 미치고"있다.특히,이러한 진보주의의 수용에는 "대중적인 선전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영화가 커다란 역할"을 했다. 호가트를 놀라게 만든 것은 영국의 노동자 계급(36)사이에서 미국류의 진보주의를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 광범위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36,37쪽

호가트의 관점은 노스탤지어로 이상화된 계급문화에 의거하면서 현재진행중인 문화변용을 가치의 퇴락으로서 파악했다는 점에서,엘리트주의적인 입장에서 현재의 변화를 비판한 스크루티니 그룹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아니다. ->41 : 드워킨은 홀과 화넬의 공저 <대중예술(1964)>이 상업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관점과는 다르며 동시대 젊은이들의 가치관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서 문화현상을 평가하고자 했던 점에서,1970년대 이후 하위문화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논하고 있다.단지 그 한계는 그들이 재즈의 문화적 가치를 열심이 인정했던 것에 비해서 록큰롤은 부분적으로 평가하는 데 그쳤고,블루스와의 연속성이나 60년대 이후 록의 실험성에도 민감하지 못했다는 식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방법론적으로 홀과 화넬은 그 시점에서는 아직 음악이나 영상 텍스트를 분석하는 수법으로서 기호론이나 정신분석의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고,수용자가 그런 텍스트를 어떻게 수용하는지에 대해 민족지학적인 조사를 시도하지도 않았다.오히려 홀과(41)화넬은 절차적으로는 스크루티니 그룹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일정한 가치 척도-38,41쪽

를 끼워 맞춰서,예컨대 재즈의 문화적 가치를 록의 상위에 두고 있었다.(42) / 3.문화주의와 구조주의? - 유의해두고자 하는 것은 1960년대 중반까지 문화연구와 마르크스주의 사회이론의 관계는 아직 유동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분명 E.P톰슨과 같이 이른 단계부터 정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관여했던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윌리엄즈나 홀 등 버밍엄대학의 연구소 사람들이(43)마르크스주의 사회이론을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알튀세르나 그람시를 도입하기 시작하는 1960년대 말 이후의 일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1968년에 일어난 세계적인 문화 소요는 문화연구의 발전에 대단히 근본적인 계기가 되었다.그 소요로 인해 그때까지 문화나 사회에 관한 사고를 지탱해왔던 무엇인가가 붕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빈틈으로 한꺼번에 이입되기 시작한 것이 그람시나 알튀세르를 비롯한 대륙의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이었다.또한 프랑스의 구조주의는 기존의 영국 문화연구에 결여되어 있었던 텍스트에 관한 구조분석의 지평을 열고 1970년대 이후 문화연구의 지적 생산력의 기반을 만들어갔던 것이다.(44)-42,43,44쪽

문화주의적인 문화 이해에 대해서 구조주의적 입장에서의 문화나 경험은 이미 제1차적인,의미나 가치가 거기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기원일 수 없다. 왜냐하면,이러한 접근 방법에서 보자면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과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적 지평에서 제시했듯이 우리들은 정해진 기호론적인 코드에 따라서만 비로소 무엇인가 의미를 창출하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에서 사회를 구조화하는 코드의 작용은 사람들의 경험을 집합적인 무의식의 차원에서 관통하고 있다.사람들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생(46)생한 의미는 그 자체로 근원적인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이러한 코드화 작용의 효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분명,문화주의도 문화나 경험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이나 세대 등이 교차하는 집합적인 과정 안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에게는 경험의 주체로서 그러한 사회적 집합이 보다 본질적으로 전제되었던 것이다.-46,47쪽

구조주의는 오히려 그러한 주체 그 자체를 언어나 담론의 구성 효과로서 이야기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이러한 접근법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그것에 의해 에이전트로서 구성되는 과정 안에 편입되어 있는지를 일러줬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를 크게 진전시켰다고 홀은 말한다(홀,1980).-47쪽

넓은 의미에서 사회가 언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을 취하면서도,홀은 역사 안에서의 주체,즉 역사를 짊어지고 역사를 형성하는 주체적인 것에 계속 집착했다.그렇기 때문에 그는 푸코의 권력 분석이 구조주의적인 전제에서 출발하면서도 문화주의에서 강조해온 역사의 구체적인 장면에 대해 면밀히 기술한 점을 평가하는 동시에,푸코가 미시적인 담론의 장에 관심을 집중시켜 대문자의 권력과 국가에 대한 관점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 하고 비판하기도 했던 것이다.이런 푸코에 대한 비판이 타당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1970년대 문화연구의 전개에 관해 문화주의적인 계보로붙의 단절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일은 삼가고 싶다.폴 윌리스의 하위문화연구나 오디언스 민족지학을 비롯해,문화연구에는 문화주의를 계승한 결과물이 적지 않다.-49쪽

4. 대중문화와 경계의 정치학 - 존 피스크의 견해는 명백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대중적인 것'의 구성 계기를 각각의 복잡한 매개과정(55)으로부터 발췌하여 지배적인 것과 대항적인 것을 이항대립시키는 도식에 빠져 있다.모든 대중문화의 구성 계기를 균일성을 지향하는 헤게모니적인 권력과 이질성을 지향하는 대중적인 저항의 대립 도식에 끼워맞추는 그의 분석 틀은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어서 실제 현상의 역동성을 파악할 수 없다. -55,56쪽

특히 다음 두 가지가 문제적이다. 첫째,피스크의 견해에서 대중적인 것은 지배적인 것에 대해서 항상 대항적인 가능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중략)다음으로 피스크의 견해는 의미론적인 레벨에서의 대항성이 정치경제적인 시스템의 작용이나,젠더나 인종을 둘러싼 제도적인 구조 등 다른 문맥적인 힘으로부터 벗어나 논의되어 있다.-56쪽

1980년대 이후 진행된 대중문화연구로서의 문화연구는 이와 같은 이항대립적인 구도로부터 조금씩 해방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점차 대중적인 것을 단순하게 대항문화적 성격에 의해서 정의하거나 계급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담론적 실천을 매개로 하는 미세한 권력 작용에 집중하면서 계급과 인종,젠더 등의 여러 차원이 교차하는 다층적인 항쟁의 장으로서 파악하게 된다.-61쪽

문화를 다시 읽다 중 / 초기 시카고학파의 경우'하위문화'라는 용어 그 자체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고,무엇보다도 그들의 관점은 그것들을 사회병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일탈이라는 방향으로 회수되어 버렸던 것이다.(68) 현재의 관점에서라면 하위문화는 단순히 기능적인 의미에서 사회 시스템의 하위체계인 것도 소집단의 가치체계인 것도 아니고,오히려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를 상대화하는 계기가 포함된 일정 집단의 문화적 세계로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지금까지 전적으로 비행이나 일탈로 이야기되어 왔던 청년들의 문화를 하위문화로 재정의하는 관점을 뚜렷하게 보인 것은 역시 베커의 레이블링 이론으로부터일 것이다.-68,69쪽

청년들을 쾌락으로 파악한 관점은 1950년대에 풍족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힘을 지니게 되면서 광고나 대중잡지의 담론으로부터 부상했다.특히 이 시기에는 미국적인 상품이나 유행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틴에이지(십대')라는 용어가 수입되고 청년문화의 상업적인 측면을 초점화했었다. 헵디지는 두 가지의 이미지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말하는 데에 반대한다.오늘날 청년들의 반항은 소비의 스타일을 통해 표현한다.거기에서 상업적인 쾌락의 영역과 정치적인 반항의 영역을 분리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현대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가공하고 패션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신체적 영역을 정치화하며 그 아이덴티티의 정치학을 조직하고 있다(헵디지,1988)-97쪽

하지만 1970년대까지의 하위문화 연구는 1980년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비판을 받게 된다.예를 들어,그들의 연구에서는 지배적인 문화에 대한 하위문화의 대항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역으로 상품화되고 대중적으로 소비된 하위문화에 대해서는 충분한 통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확실히 헵디(98)지는 문화산업이 하위문화를 문화상품으로 대량생산해낸 과정이나 저널리즘이 하위문화에 레테르를 붙여나간 과정에 대해 논하면서 지배적인 문화가 하위문화를 순치하고 시스템 안으로 통합시킨 과정을 문제 삼았다.하지만 전체적으로 1970년대의 문화연구에서 하위문화는 우선 저항의 윤리를내포한 것으로서 본질주의적인 파악이 주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그 때문에 문화의 상업적인 소비형식으로서 하위문화가 발달한 과정이나 하위문화 내부의 모순과 어긋나는 점,그리고 그것들이 어떠한 매개작용 속에서 증식하고 변형되고 붕괴되었는가 하는 등의 물음에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통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98,99쪽

항쟁의 장으로서의 미디어 / 윌리엄즈는 효용연구로 대표되는 미국의 매스컴 연구의 한계를 명확하게 비판하게 된다.이러한 효용연구는 대중매체의 현상을 다양한 힘들이 서로 복잡하게 작용하는 사회적 문맥으로부터 분리하고 단순한 효과의 원인으로부터 추상해 버린다.문화를 다루는 많은 사회학적 연구들이 대상을 사회적,역사적 문맥 속에서 이해하거나 당사자의 의도나 관찰자의 상황에 관여하는 것을 중시해 왔던 것과 달리,매스컴 연구에 관해서는 이해학적 계기가 배제되고 사회적 기능이나 사회화라는 개념과 결합된 과학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이와 같이 탈문맥화된 지평에서 매스미디어가 폭력이나 비행과 같은 일탈행위,혹은 투표행위나 소비행위의 원인으로서 어떻게 기능하고(110)있는지가 측정되었던 것이다.-110,111쪽

윌리엄즈가 비판하는 것은 이와 같은 효용 연구의 시각이 기존의 미디어 체제를 이미 주어진 독립적인 변수로 간주해 버린다는 점에서,그러한 기존 미디어의 실상을 근저에서부터 의문시할 가능성을 처단해버린다는 것이다.따라서 그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효용연구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맥루언의 미디어론에도 매우 엄격한 평가를 내린다.윌리엄즈의 관점에 의하면 맥루언은 미디어를 처음부터 존재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특성이 우리들의 감각질서를 이방적으로 변용시킨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중략)이처럼 윌리엄즈는 역사사회적인 구성력이 결여되어 있는 맥루언의 미디어 파악에 대해 엄격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111쪽

윌리엄즈는 또한 '텔레비전이 있는 생활'을 공간적인 차(113)원으로부터 포착하여 '이동적 사생활화'와 결부시킨다.그는 현대사회의 기본적인 동향을(1)이동성의 확대와(2)사적 생활영역의 중심화에서 찾고,텔레비전은 그 두 가지 동향을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제도화되고 있다고 논한다.20세기 초에는 철도와 같은 공공교통과 영화와 같은 미디어,도시화된 생활양식이 결합되어 일상생활을 성립시켰다면 20세기 중반 이후 이 결합은 자동차교통과 교외주택지의 생활,텔레비전과 같이 미디어가 조직해내는 기술시스템으로 전환했다.우리는 오늘날 텔레비전 영화를 통해서 세계라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이러한 전자적인 창으로서의 텔레비전이라는 존재는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빈번하게 광범위한 이동을 필요로 하게 되고,다른 한편에서는 일상생활이 점점 교외의 사적영역으로 둘러싸이는 상보적 운동을 매개한다(윌리엄즈,1977) -113,114쪽

윌리엄즈의 접근법은 사회생활의 구체적인 컨텍스트로부터 추출된 추상적인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또는 테크놀로지의 자율적인 힘에 미디어연구의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컨텍스트,즉 일상생활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일상이 컨텍스트화되는 과정 속에서 미디어가 어떻게 구성되고 소비되는지(114)를 고찰하고 있다. 확실히 이러한 일상적 경험에 준거한 문화유물론적 접근이야말로 문화연구에서 미디어연구가 차지하고 있는 원점인 것이다.-114,115쪽

홀의 관점은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매스컴연구에 대해 두 가지의 근본적인 비판을 포함하고 있었다.첫째로 매스컴연구의 전달 모델은 상이한 입장이나 집단의 차이를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사회적인 대세를 통해 기본적인 가치에 관한 합의가 성립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친 효용연구가 문제 삼은 것은 미디어의 정보가 수신자의 선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이었다. 미디어의 효용이 측정 가능한 수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도 '선호'의 양적인 차로 환원될 수 있다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었다.-120쪽

효용 연구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지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가치의 대립을 선호의 차로 환원해 버리는 시장주의적 사회이해,예컨대 파슨의 사회시스템론으(120)로 대표되는 것과 같은 사회이해가 사회과학 전반에 지배적이었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이 모델에서는 권력의 문제가 영향력의 문제로 환원되고 개인적인 선호의 차이를 초월한 가치의 시스템 차원에서는 사회가 단일한 방향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종언을 맞고 있었으며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규범과 모순된 행동은 이질적인 가치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일탈의 문제로 취급되고 있었다.-120,121쪽

이데올로기란 사회적 현실을 구성해나가는 담론적 실천의 문제이지, 단순히 사회적 현실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언급하고 있는 메타담론의 문제는 아니다.미디어는 동시대의 현실을 분절화하고 정의하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 담론의구조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역사화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그러한 구조가 처음부터 사회에 공유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립과 갈등,항쟁속에서 헤게모니를 확립하고 또한 새롭게 조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대중매체의 담론실천은 이러한 종류의 헤게모니적인 현실 구성의 기간을 이루는 것이다.또한 이러한 미디어를 둘러싼 관점의 언어론적 전회를 통해 우리는 내용분석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언급대상과의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미디어가 현실의 틀을 구성하는 암시적인 구조의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124쪽

1970년대 초 윌리엄즈와 홀은 모두 주류의 매스 커뮤니케이션론이나 기술결정론에 대항적인 입장에서,커뮤니케이션이 사회적인 경쟁 속에서 구축된다는 점을 강조하며,대항적 미디어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윌리엄즈의 논의는 분명 텍스트의 다성적인 읽기보다도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구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역으로 홀의 논의는 후자보(124)다도 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24,125쪽

피스크는 '프로그램'과 '텍스트'의 개념을 구별하자고 제안한다. 우선 '명확하게 규정되고 의미가 부여되어 텔레비전에서 출력된 것이 프로그램'이다.프로그램은 유니트로서 판매되고 시간 단위로 분배된다.그에 비해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과 프로그램과의 상호작용이 프로그램에 숨겨진 여러 가지 의미작용과 즐거움을 창(128)출할 때,프로그램은 독해라는 요소를 통해 텍스트가 된다.즉,하나의 프로그램은 그것이 수용될 때의 사회적 제반 조건에 따라서 여러 가지 상이한 텍스트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128,129쪽

문화연구는 텍스트의 구조에 특권성을 부여하는 '텍스트중심주의'에는 반대하지만 텍스트 읽기가 오(135)디언스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35쪽

문화연구의 오디언스 민족지학은 실제로 실증적인 매스컴 연구 속에서 성과를 쌓은 수용자연구의(137)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제임스 커런에 의한 비판으로,그는 몰리의 오디언스 연구를 신수정주의라고 부르고 그것들은 효용연구의 추세에 의해 선취된 것이지 몰리가 주장하는 수준의 새로움은 어디에도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이다.커런은 효용연구가 이미 1940년대부터 수용자가 단지 미디어에 수동적으로 조작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율성을 갖춘 능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강조해왔다고 논했다.커런에 의하면 효용 연구에서는 상반된 입장의 사람들이 같은 텍스트에 극히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왔다. 잘 알려진 라자스펠드의 커뮤니케이션의 2단계 흐름 모델도 이러한 미디어에 대한 수용자의 상대적인 자율성에 주목해왔다고 말한다.몰리의 시점은 분명 텍스트 중심주의적인 구조주의와 대비시켜 보자면 새로운 것인지 몰라도,거기에 선행하는 실증적인 효용연구로의 격세유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136,137쪽

하지만 이와 같이 문화연구를 주류 매스컴 연구와 중첩시키는 것은 그 기저에 착오가 있다.예컨대 몰리는 이미 <네이션와이드 오디언스>에서 오디언스가 미디어를 다의적으로 독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해석에 똑같이 열려 있는 것은(137)아니며 우선적인 읽기가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화연구가 텍스트의 다성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결코 이용과 만족연구가 전제하는 다원주의를 승인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또한 몰리는 이용과 만족연구의 배경에 있는 개인의 사회심리적인 특성에서 추상화해야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위문화적인 질서로 문맥화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137,138쪽

커런의 비판에 대해서 몰리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선,최근의 역사학 논의가 보여주듯이 과거는 현재에 의해 소환되고 이야기된다.초기의 효용연구에는 분명 수용자의 자율성을 강조한 얼마간의 연구가 있으며 그러한 계보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커런이 그와 같은 흐름을 통해 매스컴 연구의 과거를 말할 때, 그 역사는 그가 말한 '신수정주의'적인 연구의 경향이 없었다면 논의될 수도 없었던 역사인 것이다. 요컨대 여기에는 우선적으로 논의 선점이 있고,커런은 문화연구가 확장한 전망에 입각하면서 그것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는 연구를 채택하여 전자가 후자의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논하고 있는 것이다.-138쪽

앙 역시 수용자의 능동성을 핵으로 하여 문화연구를 이용과 만족 연구에 접근시키는 것이 허위라고 말한다.그녀는 주류 연구와 비판적인 연구의 차이는 양자가 입각하고 있는 의견의 차이 이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문화연구나 이용과 만족연구는 텔레비전 시청자가 반드시 발신자의 의도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며 텍스트에 능동적인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의식을 공유하면서도,결정적으로 그러한 능동성을 성립시킨 사회적 문맥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이를테면 이용과 만족연구가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에 기반한 채 개인을 원리적으로는 다양한 해석으로 열려 있는 자유로운 주체로서 간주하는 것과 달리,문화연구는 후기구조주의를 배경으로 주체를 계급이나 젠더,에스니시티 등을 둘러싼 사회적 권력의 불균등한 배분 속에서 구조화된 것으로 간주한다.후자의 경우 텍스트의 외부에 있는 것은 자유로운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의 중층 배치인 것이다.이것은 주체가 처음부터 변경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결정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주체는 결정되지 않는(139)것도, 결정되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중층결정되는 것이다.(앙,2000)-139쪽

1980년대 이후,지금까지 지역이나 내셔널,민족 등에 의해 규정될 수 있었던 문화의 기반이 획기적으로 변용하고,다양한 경계가 교차하며 충돌해가는 가운데 문화연구는 이 끊임없는 탈영역화/재영역화된 글로벌/로컬한 변동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파악해왔다.이 때 한편에서는 다국적기업의 초국가적인 자본의 전략과 세계동시적인 미디어가 문제시되고,다른 한편에서는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두해 온 반세계화와 로컬리즘,신자유주의가 문제시되었다.게다가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이항대립 자체를 문제제기하는 차원에서 크레올,디아스포라,혼종,다문화주의 등을 둘러싼 포스트콜로니얼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149쪽

실제,월러스틴의 인종주의를 둘러싼 논의는 현실의 인종차별에 입각해 생각해 보면 역동성을 상실하고 만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문화가 단순히 집단 사이의 차이를 식별하는 표식이 아니라,그 담당자에게 고유한 의미를 지닌 실천이라는 점을 간과할 여지가 있다.발리바르도 인종주의에 대한 월러스틴의 설명이 '사회적 논쟁의 복합성'에 형식적인 적어도 획일성과 상대성을 강요하(155)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발리바르의 생각에는 인종주의나 성차별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시스템의 일원적인 작용이 아니라,각각의 로컬한 장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논쟁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다양한 형태인 것이다. -155,156쪽

몰리에 따르면,가정이라는 공간 안에 이미 전지구적인 것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문화연구가 민족지학적인 다양한 연구 안에서 탐구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텔레비전 소비를 거시적인 이데올로기나 권력 편제의 문제와 결부시키는 전략적인 틀이었던 것이다.그리고 오늘날 미디어 전체에 있어서 편제의 중심은 전지구적을 우리들의 경험을 단편화하는 미디어로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편화는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오히려 젠더나 네이션을 둘러싼 경계서이 새롭게,중층적인 방식을 통해 공간적으로 조직되고 있는 현상인 것이다.사적 공간이나 가정이라는 공간과 같은 미시적 공간이 전지구적인 공간에 우선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에 의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전지구적인 공간과 서로 작용하면서 재창출되어가는 것이다(몰리,1992)-179쪽

한편,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문화연구가 유행하는 속에서 피억압자에 의한 저항의 새로운 이론적 무기로서 그(188)것을 도입하자는 입장도 매우 강조되었다.이러한 입장은 흔히 문화연구의 가치를 피억압자의 급진적인 저항운동과 결부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분명 아카데믹한 제도화에 비판적인 거리를 견지하며,스스로의 지를 어디까지나 동시대의 사회 모순과 갈등,그리고 운동과 같은 문화정치적 투쟁 상황의 중심에 두려고 하는 문화연구의 입장을 정당하게 표현하고는 있다.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문화연구의 핵심이 피억압자의 주체성을 본질주의적으로 고정화하는 데 대한 비판에 있다는 점은 이미 다양한 논의를 통해 검토되어온 바 있다.일상의 평범하며 분산적이고 단편적인 문화실천 속에서의 정치와 다른 한편의 저항과 운동,그리고 억압과 배제와 같은 보다 직접적인 정치의 발현은 어디까지나 연속적인 것으로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현재화한 저항과 운동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일상적 실천 안에 다양한 차이와 아이덴티티가 구성되고 또 실정성을 띠는 정치의 장이 무수히 중복되어 있는 것인데,그러한 장의 내부로부터 문제 제기-188,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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