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수단 -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상운.양창렬 옮김 / 난장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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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에게는 우리가 [오늘날] 생명vita이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단일한 용어가 없었다. 그들은 의미론적으로나 형태적으로 구분되는 두 용어를 사용했다. 즉, 모든 생명체 (동물, 인간 혹은 신)에 공통되는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표현하는 조에, 한 개인이나 집단에 고유한 살아가는 방식이나 형태를 의미하는 비오스bios. 근대의 언어들에서는 이 대립이 어휘에서 차츰 사라져갔다. -13쪽

인간(역량을 지닌 존재로서의, 다시 말해서 제작할 수도 있고 제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자신을 잃을 수도 발견할 수도 있는 존재)은 삶이 행복에 부여되어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14쪽

권력체계에서의 의학적-과학적 이데올로기가 결정적인 기능을 차지한다는 사실, 그리고 정치적 통제를 목적으로 과학을 빙자하는 사이비 개념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따라 나온다. 즉, 주권자가 각각의 상황에서 삶의 형태에 대해 조작해왔던 벌거벗은 생명의 추출과 똑같은 추출이 오늘날에는 신체, 질병, 건강에 관한 사이비-과학적 표상에 의해, 또한 삶과 개인의 상상력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을 '의료화'함으로써 대대적이고 일상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19쪽

따라서 권리선언은 신적인 기원을 가진 왕의 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의 이행이 실현되는 장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선언은 구체제의 붕괴에 뒤이어 나타난 새로운 국가질서에 삶이 편입되도록 보장해줬다. 선언을 통해 신민suddito이 시민cittadino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은 출생, 즉 자연적인 벌거벗은 생명 자체가 여기에서 처음으로(이런 전환의 생명정치적 귀결을 우리는 이제야 가늠하기 시작할 수 있다)주권의 직접적인 담지자가 됐음을 의미한다.-31쪽

인민popolo이라는 용어의 정치적 의미에 관한 모든 해석은 이 말이 근대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언제나 가난한 자,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 배제된 자를 가리켜왔다는 특이한 사실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즉, 동일한 하나의 용어가 구성적인 주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권리상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정치로부터 배제된 계급도 가리키는 것이다. -38쪽

보호검속에서 문제가 된 자유의 '보호'는 아이러니하게도 긴급사태의 특징인 법의 중지로부터의 보호였다. 여기에서 새로운 것은 이제 이 제도가 자신이 근거하는 예외상태에서 이탈해 정상상태에서도 효력을 지닐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수용소란 예외상태가 규칙이 되기 시작할 때 열리는 공간이다. 이 점에서 본질적으로 법질서의 일시적 중지였던 예외상태는 이제 영속적인 공간적 배치를, 즉 그 자체로 정상적인 법질서의 바깥에 항구적으로 머무는 배치를 얻게 된다. -49쪽

그렇기 때문에 수용소에서 저질러진 잔학행위에 관한 올바른 물음은, 다른 인간 존재에게 도대체 어떻게 그처럼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가라는 위선적인 물음이 아니다. 훨씬 더 정직하고 유용한 물음은, 인간 존재가 어떤 법적 절차와 정치적 장치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완전히 빼앗겨버리기에, 더 이상 범죄처럼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이들에 대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지점(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진정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에 이르게 됐는가를 주의 깊게 탐구하는 것이다. -51쪽

아감벤은 여기서 수단 없는 합목적성, 목적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 매개성, 목적 없는 수단을 각각 구분하고 있다. 첫째, 춤은 본디 춤 자체가 목적인 미학적 차원에 속하지만, 신체 운동의 매개적 성격을 전시하는 수단의 차원에서만 몸짓일 수 있다. 둘째, 포르노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몸짓은 본디 관객에게 쾌락을 주는 목적에 종속된 수단의 차원에 속하지만, 그 몸짓의 매개성 자체가 수단으로-존재함 속에서 포착되고 중단되는 한에서만 몸짓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와 달리 무언극(마임)은 목적 없는 순수 수단이 전시하는 몸짓의 차원의 매개성을 가장 분명히 보여준다. -70쪽

노출은 정치의 장소이다. 동물의 정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동물들이 항상 이미 열림 속에 있고, 스스로의 노출을 전유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것에 개의치 않고 열림 속에 머물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동물들은 거울에, 이미지로서의 이미지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인간은 스스로를 재인하고 싶어 하기에, 즉 자신의 겉모습 자체를 전유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미지를 사물과 분리해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인간은 열림을 하나의 세계로, 그러니까 어떤 병영도 없는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형시킨다. 진리를 대상으로 삼는 이 투쟁은 역사storia라고 불린다. -104쪽

진리, 얼굴, 노출은 오늘날 지구적 내전의 대상이다. 그 전쟁터는 사회적 삶 전체이고, 그 돌격대원은 미디어들이며, 그 희생자는 지구상의 모든 인민이다. 정치인들, 미디어 통치가들, 광고업자들은 얼굴, 그리고 이 얼굴이 여는 공동체의 비실체적 성격을 이해했다. 그들은 얼굴을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확고하게 통제해야 할 비참한 비밀로 변형시킨다. 오늘날 국가권력은 더 이상 정당한 폭력 사용의 독점(각 국가가 국제연합이나 테러리스트 조직과 같은 여타 비주권적 조직과 점점 더 가까이 공유하고 있는 독점)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의견 doxa)의 겉모습에 대한 통제에 기반하고 있다. 정치가 자율적 영역으로 구성되는 것은 스펙터클의 세계에서 얼굴이 분리되는 것과 한 짝을 이룬다. 스펙터클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소통이 그 자체에서 분리된다. 이렇게 노출은 그 스스로를 이미지들과 미디어들을 통해 축적된 하나의 가치로 변형한다. 새로운 관료계급은 이런 [노출의] 지배를 경계의 눈빛으로 지켜본다. -106쪽

사실 주권자가 예외상태를 공포하고 법의 효력을 중단시킴으로써 폭력과 법의 비구분 지점을 표시하는 자라고 한다면, 경찰은 항상 그런 '예외상태'에서 움직인다 경찰이 매 사례마다 결정을 내릴 때 제시하는 '공공질서'와 '안전'이라는 이유는 폭력과 법 사이의 비구분 지대를 이룬다. 이 지대는 주권에서의 비구분 지대와 완전히 대칭을 이룬다. -116쪽

오늘날 지구상에서는 잠재적으로 범죄자가 아닌 국가의 수장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오늘날 주권이라는 슬픈 법의를 입고 있는 자라는 누구든, 동료들로부터 언젠가는 범죄자로 취급되는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애석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찰관과 사형집행인의 복장을 하기로 기꺼이 동의한 주권자는 마침내 오늘날 범죄자와의 원초적인 인접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19쪽

정치철학의 기초가 되는 '행복한 삶'이란 더 이상 주권이 자신의 고유한 주체를 만들기 위해서 전제하는 벌거벗은 생명일 수 없으며, 우리가 오늘날 신성화하려고 헛되이 시도하는 근대 과학과 생명 정치에서 말하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불가입적 외부성일 수도 없다. 반대로 '행복한 삶'이란 '충족한 삶', 절대적으로 세속적인 삶이며, 삶 자체의 고유한 역량을 완성하고, 그것의 고유한 소통가능성을 완성하는 데 도달한 삶이다. 이 삶에는 주권도 법도 그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다. -125쪽

혁명은 자본, 권력과 타협해야 하곤 했다. 마치 교회가 근대 세계와 협정을 맺어야 했듯이 말이다.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주의의 전략을 이끌던 좌우명이 그런 식으로 조금씩 형태를 갖춰갔다. 모든 것에 양보해야 한다. 반대파와 모든 것을 화해해야 한다. 지성은 텔레비전, 광고와 화해하고, 노동계급은 자본과 화해하며, 언론의 자유는 스펙터클한 국가와 화해하고, 환경은 산업발전과 화해하며, 과학은 의견과 화해하고, 민주주의는 투표기계와 화해하며, 죄의식, 개종은 기억, 충실성과 화해해야 한다.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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