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상태 What's Up 6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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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는 법률 차원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법률적 조치라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되며, 어떤 법률적 형식도 가질 수 없는 것의 법률적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다른 한편에서 법이 생명에 가 닿고 스스로를 효력 정지시켜 생명을 포섭하기 위한 근원적 장치가 예외상태라면 예외상태에 관한 이론은 살아 있는 자를 법에 묶는 동시에 법으로부터 내버리는 관계를 정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14쪽

현대의 전체주의는 예외상태를 통해 정치적 반대자뿐 아니라 어떠한 이유에서건 정치 체제에 통합시킬 수 없는 모든 범주의 시민들을 육체적으로 말살시킬 수 있는 (합)법적 내전을 수립한 체제로 정의될 수 있다.이때부터 항구적인 비상 상태의 자발적 창출이 (반드시 그렇(15)게 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 국가의 본질적 실천이 되었다)-15~16쪽

예외상태란 상이한 권력 형태들(입법,행정 등)이 아직 구분되지 않은 원초적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예외상태는 오히려 텅 빈 상태, 즉 법의 공백 상태에 근거하고 있으며, 아무런 구분 없이 충만한 원초적 권력이라는 생각은 자연 상태라는 개념과 유사한 법적 신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21쪽

권력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오늘날 의미를 잃어버렸으며 행정 [집행] 권력이 사실상 부분적으로는 입법권을 흡수해버렸다는 것이다. 의회는 더이상 법률을 통해 시민들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독점적 권한을 가진 주권 기관이 아니다. 행정 권력이 선포하는 여러 법령을 인가하는 존재로 축소되어버린 것이다. -42쪽

예외상태의 고유성이 법질서의 (부 (51)분적 혹은 전면적 )효력 정지라면 그러한 효력 정지가 어떻게 여전히 법질서 속에 포함될 수 있을까? 아노미가 법질서 안에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 만약 예외상태가 단순한 실제 상황이라면 , 즉 법률 바깥에 존재하거나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법질서가 결정적 상황에 고유한 하나의 공백을 포함하는 일이 가능할까? 과연 이 공백의 의미는 무엇일까?-51~52쪽

긴급 사태는 적법하지 않은 것이 적법한 것이 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특수한 개별 사례마다 예외를 통해 [법률] 위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되고 있다. / 긴급사태라는 형태를 띠는 한 예외상태는 - 혁명이나 헌정 질서의 사실상의 수립과 더불어 - '비합법적'이지만 절대적으로 '법률적이고 헌법적인' 하나의 조치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는 새로운 규범(혹은 새로운 법질서)의 생산으로 구체화된다.-54 / 59쪽

예외상태는 규범의 공백에 대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규범의 존립과 정상 상황에 대한 규범의 적용을 보증하기 위해 질서 안에 하나의 픽션적 공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공백은 법률 내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법률이 현실과 맺는 관계, 법률의 적용 가능성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65쪽

법질서 바깥에 있으면서도 그러한 법질서에 속해 있다는 것이야말로 예외상태의 위상학적 구조이며, 논리적으로 볼 때 예외에 관해 결정하는 주권자의 존재가 사실상 이러한 구조에 의해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주권자 또한 벗어남-속함이라는 모순 어법에 의해 특징지어질 수 있다. -72쪽

예외상태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대한 효과적인 규범화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아노미의 지대를 법 속에 도입하는 셈이다. -75쪽

현대의 공법 이론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이 겪은 위기에서 비롯된 전체주의 국가들을 독재 체제로 정의하는 일이 관습으로 정착되어 있다. 그리하여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프랑코도 스탈린도 모두 똑같이 독재자로 제시되어왔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무솔리니도 히틀러도 독재자로 정의될 수 없다. 무솔리니는 국왕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명된 수상이었으며, 히틀러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적법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제국 총통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와 독일 나치즘 체제의 특징은 현행 헌법 (알베르티노 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존속시킨 채, '이중 국가'라고 예리하게 정의된 패러다임에 기초해 법률적으로 정식화되지는 않았지만, 합법적인 헌법 옆에 예외상태에 힘입어 제2의 법적구조물을 둘 수 있었던 데 있다. 법률적 관점에서 이런 체제를 '독재'라는 용어로 묘사하는 것은 전혀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의 지배적인 통치 패러다임을 분석하기 위해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말라비틀어진 대립 도식을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95쪽

동란은 주권자의 죽음과 일치하며, 법의 효력 정지는 장례 의식 속에 통합되어 있다. 이는 마치 주권자가 본인의 '존엄한'인격에 모든 예외적 권력, 즉 호민관의 영원한 권한에서부터 보다 크고 무제한적인 전 집정관의 최고 명령권까지를 흡수해 이른바 살아 있 131 / 는 유스티티움이 됨으로써 죽음의 순간에 자신 속에 있던 가장 내적인 아노미적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동란과 아노미가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 도시전체를 뒤덮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131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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