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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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이 그랬던가. 세계관은 언어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언어의 정확한 정의는 명확한 세계관을 만들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그러하다. 짦은 글들이지만 생각할 공간을 여백으로 많이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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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손현주, 문정희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연기파 주연급 조연 배우들, 특히 소름끼치도록 리얼한 연기를 보인 문정희의 연기력과 신예 허정감독의 치밀한 연출력에 힘입어 런닝타임 내내 잠깐의 한 눈 파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하며, 설국열차, 감기와 같은 대작들의 틈바구니에서 선전을 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영화란 궁극적으로 내가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고 내가 어떤 의미를 찾게 된다면 그것으로 좋은 영화인 것.

 

헐리우드 못지 않은 대작이 난무하는 요즈음, 이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었음에도 많은 관객을 끌어 들이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조연 전문 연기파 배우들의 활약이다.

특히, 여자의 몸으로 잔혹하게 남자들을 살해하고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건장한 남자인 손현주를 몇 번이나 때려 눕힌 문정희의 활약은 다소 무리한 설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극적 재미를 더해주지 않았나 싶다.

 

숨바꼭질은 우리 사회 주거공간이 삶의 터전에서 재산증식의 도구로 변질되면서 얼마나 왜곡되었는가와 거기에 함몰되어 집에 극단적인 집착을 보이는 없는 사람들에 대한 소름끼치는 슬픈 이야기를 스릴러라는 껍데기로 적당히 포장한 영화인 것 같다.

 

70년대 강남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은 복부인과 떴다방, 청약을 위해 천막까지 치며 줄을 서던 풍경을 연출했고, 부동산 불패신화를 창조한 불노소득의 수많은 부동산부자들의 희생양은 돈이 없어 비싼 아파트를 사지 못하고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서민들, 철거민과 판자촌 주민들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재산으로 편하게 부자가 된 성수(손현주)네 가족과 다 허물어져 가는 철거 예정 아파트에서 사는 주희(문정희) 모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을 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 집이란 온가족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마음을 나누는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자 가족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역시 집이란 먹고 사느라 하루 종일 시달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지친 몸을 뉘일 유일한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마지막 휴식처마저도 빼앗긴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 중 한 사람인 주희는 길바닥에 앉는 대신 그녀가 가질 집을 빼앗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자기 집을 되찾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는 아무리 애를 써도 가질 수 없는 좋은 집에 대한 욕망을 집주인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고, 결국 살인마가 되어서라도 갖고자 했던 그녀의 집은 가족과의 행복한 삶이 빠진 겉만 화려한 고급아파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깨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기에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주희가 주차장에서 차량 안에 있던 두 아이들에게 소리치던 내 집이야....”는 집 없는 자가 집을 가진 자들에게 외치는 처절한 절규였다.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성수는 마지막으로 주희에게 말한다.

자신의 집을 줄테니 우리 가족만 무사히 이집에서 내보내달라고.....

결국,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하고 불을 지르는 성수와 불에 타는 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며 몸부림치다 불과 함께 스러져가는 주희의 처절한 모습은 극적으로 대비된다.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부동산으로 가치가 있는 집인가 아니면, 가족 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터전인가?

언제 길바닥에 나앉을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어 집만 있으면 행복한 삶을 살 것으로 착각한 주희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돈이 없으면 인간답게 쉴 최소한의 공간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잔혹한 이 사회의 구조가 문제일까?

 

다 쓰러져가는 복도식 아파트를 훑어가는 어두운 조명의 카메라를 따라가면서, 나를 포함한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얼마나 좋은가?“ 하며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어차피 나하고 상관없는 가상공간 속 이야기일 뿐, 그냥 공포영화인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밝고 깨끗한 현대식 아파트의 비밀번호로만 열리는 문과 감시카메라, 고급자동차가 즐비한 지하주차장은 행복한 공간일까? 밝고 어두움만 차이가 있지 어차피 낡은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는 소외된 공간인 점은 차이가 없다. 고급자동차와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이 낡은 아파트에서 이상하게 보이듯이, 여기에서는 조금만 허수룩한 옷차림의 사람이 있어도 금방 눈에 띄며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곧 쫓겨난다.

돈이 없어서 소외되고, 돈이 있어도 소외되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인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왠지 누군가가 그토록 갈망하던 욕망의 대상이며 내가 그들에게서 뺏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지친 몸을 누이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할 나의 보금자리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며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생각할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액션과 탄탄한 구성이 아니다.

단순한 생활공간으로서 집이라는 평범한 공간이 상황에 따라서 얼마나 무섭도록 폐쇄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편의성과 부동산 가격만을 앞세워 타인으로부터 나를 가두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대사회 우리 모두에게 집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려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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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13년간 나와 함께한 친구와 헤어질 때가 된 것이다.

그동안 조마조마 했었는데 결국 이별의  순간은 오고야 말았다.

 

나의 애마 누비라2의 숨이 멎을려고 한다.

요새 힘들어 하더니 결국 변속기가 맛이 갔다.

매매가 100만원이 될까 말까한 고물차에 수십만원의 비용을 들여 수리를 한다는 것은 고령의 말기암환자를 수술하다 인생을 정리할 시간마저 날려 버리는 것과 같지.

 

내 인생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각별한 이 친구의 연혁을 훑어 보자.

이 차는 아버지 차다.  퇴직하신 후 어영구영 내 차가 되어 버렸다.

당시만 해도 때깔이 자르르한 새차였고, 노고단을 힘차게 올라가는 박력있는 광고를 전성기의 백지연이 했기에 시작은 나름 괜찮았지만 광고와는 반대로 무겁고 힘도 없고 연비도 안좋은데다 대우를 말아먹은 김우중 때문에 순식간에 시들어 버린 비운의 차다.

 

없는 살림에 새차는 꿈도 못꾸고 적당한 중고차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문득, 이 차와 함께한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 차는 여러가지로 내 인생과 겹친다.

 

2000년 1월에 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이 차 역시 2000년 1월 등록차량이다.

반짝거리는 이놈을 타고 소개팅도 나가고 선도 보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러도 다녔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할때다.

첫 만남의 자리에 시간이 늦어 허둥대는 나를 신속하게 모시고 간 놈도 이놈이고

첫 야외 데이트에 놀이동산의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놈도 이놈이고

추운 날 자동차극장에 처음 갔을 때 시동을 켜면 다른 사람들의 영화감상을 방해할까봐 덜덜 떨며 재미없는 영화를 봤을 때도 이놈과 있었고, 

추운 겨울 차창밖으로 이쁘게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조그만 케익에 촛불을 꽂고 생일파티를 했을때도 이놈과 있었고,

아내를 바래다 주며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첫 키스를 할때도 이놈이 보고 있었고.

만삭인 아내와 같이 간 첫 여름휴가지에서 미처 숙소를 잡지 못하고 차안에서 하룻밤을 보냈을때도 이놈과 함께였다.

 

한밤중에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 뛰어갈때도 같이 뛴 놈이 이놈이고,

첫 장거리 가족여행지인 거제도 1박2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일등공신도 이놈이요

부모님과 함께 리조트에서 보낸 효도관광도 이놈과 함께였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지금 난 내 나이만 생각했는데 이 놈도 나와 똑같이 나이를 먹고 있었다.  이놈이 그동안 내 발로 살아온 역정은 잊은채 남들이 똥차라고 놀리면 같이 놀려먹었다.

"에이 이놈의 똥차! 빨리 버리고 새차를 사야지..."

새차를 살 수 없는 무능력에 한탄하며 원망했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하 주차장에 말없이 무겁게 서있는 너의 상처뿐인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짠한 마음이 든다.

 

고생했다. 나의 애마야.....비록 기계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니가 내게 보여준 충성심을 절대 잊지 않으마

깨끗하게 폐차를 하자꾸나

돈 몇푼 더 받자고 너를 욕보이지 않으마

 

내 사회생활의 첫발을 너와 함께 시작했고

행복할 때도 힘들때도 항상 같이 있었고

더운날도 추운날도 비오는 날도 말 없이 뛰어 다닌 너.

 

너는 내 인생의 좋은 친구였다.

잘가거라. 그동안 고생많았다.

이제 편하게 푹 쉬려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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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0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이렇게 묵묵히 곁을 지켜온 물건들이 사람보다 정이 더 갈때가 있더군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외로이 동분서주하는 수퍼맨은 지구의 친구들을 위해 드디어 제 동족도 버리는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자신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껍질을 깨며 스스로 영웅이라는 자각을 얻고 땅바닥에 주먹을 대는 순간, 흔들리는 지면... 로켓처럼 하늘로 솟구치는 수퍼맨의 빛나는 궤적을 따라가던 지구인들은 수퍼맨의 진심을 알아 차리며 말한다. "그는 적이 아니다. 우리편이다."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오대양을 종횡무진하던 엔터프라이즈호는 이제 더이상 섬멸해야 할 적이 이 땅위에 존재하지 않자 새로운 적을 찾기 위해 워프를 탑재한 후 저 광활한 우주로 진출한다저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공간엔 기다리던 적들이 여러가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스페이스패션 제복으로 갈아 입은 커크와 무리들은 아련한 과거의 조상들이 세찬 파도를 헤치고 미지의 신대륙을 정복하며 미개인을 쓸어버릴때 휘날렸던 프런티어 정신을 다시금 되새긴다.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는 빛나는 프런티어 정신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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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미래에 저당 잡히고, 과거에 발목 잡힌 채 살고 있다.

 인생의 절반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나머지 절반은 과거의 후회로 산다.

 

 아이는 미래의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힌 채 공부를 한다.

 오늘의 절제와 극기는 꿈을 위한 노력으로 미화되며, 즐기는 삶은 젊음을 낭비하는 나태한 삶으로 매도당한다.

 아버지는 승진과 아파트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열심히 일한다. 모든 개인적인 일은 미래를 위해 보류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물쭈물 지금에 머물렀다간 도태되기 십상이다. 먼 훗날 성공하면 그때 가족과 여행을 하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그토록 원하던 미래가 당도하면 그 앞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빠와 놀이동산과 캠핑가기를 고대하던 아이는 오늘을 잃어버린 내일의 아빠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그토록 원하던 미래의 그날이 오늘이 되면, 오늘은 또 언젠가 다다를 미래를 위한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후회하고 산다. 어제 게으르게 산 대가로 현재는 불행하다. “그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지금 이렇게 살지 않을텐데하고 말이다. 과거는 후회뿐이다. 현재의 불행은 오로지 과거의 잘못이다. 미래의 불행은 미래의 과거인 현재의 결과물이다. 현재는 무조건 더 이상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래의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일 뿐이다.

 

 과거와 미래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현재는 단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에 불과한 것인가?

 과거가 행복하지 않았는데 오늘 행복할까? 오늘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은 행복할까?

 왜 우리는 현재를 잊고, 버린 채 사는 것일까?

 

 오늘 나는 어제의 미래로서의 오늘이 아닌, 미래의 어제로서의 오늘이 아닌, 오늘로서의 오늘을 오롯이 보낼련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오늘만을 위해 살련다.

 어제의 후회도 하지 않고, 내일의 걱정도 접어 둔 채 지금 이순간만을 위해 살련다.

 단 하루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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