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손현주, 문정희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연기파 주연급 조연 배우들, 특히 소름끼치도록 리얼한 연기를 보인 문정희의 연기력과 신예 허정감독의 치밀한 연출력에 힘입어 런닝타임 내내 잠깐의 한 눈 파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하며, 설국열차, 감기와 같은 대작들의 틈바구니에서 선전을 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영화란 궁극적으로 내가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고 내가 어떤 의미를 찾게 된다면 그것으로 좋은 영화인 것.

 

헐리우드 못지 않은 대작이 난무하는 요즈음, 이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었음에도 많은 관객을 끌어 들이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조연 전문 연기파 배우들의 활약이다.

특히, 여자의 몸으로 잔혹하게 남자들을 살해하고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건장한 남자인 손현주를 몇 번이나 때려 눕힌 문정희의 활약은 다소 무리한 설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극적 재미를 더해주지 않았나 싶다.

 

숨바꼭질은 우리 사회 주거공간이 삶의 터전에서 재산증식의 도구로 변질되면서 얼마나 왜곡되었는가와 거기에 함몰되어 집에 극단적인 집착을 보이는 없는 사람들에 대한 소름끼치는 슬픈 이야기를 스릴러라는 껍데기로 적당히 포장한 영화인 것 같다.

 

70년대 강남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은 복부인과 떴다방, 청약을 위해 천막까지 치며 줄을 서던 풍경을 연출했고, 부동산 불패신화를 창조한 불노소득의 수많은 부동산부자들의 희생양은 돈이 없어 비싼 아파트를 사지 못하고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서민들, 철거민과 판자촌 주민들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재산으로 편하게 부자가 된 성수(손현주)네 가족과 다 허물어져 가는 철거 예정 아파트에서 사는 주희(문정희) 모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을 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 집이란 온가족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마음을 나누는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자 가족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역시 집이란 먹고 사느라 하루 종일 시달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지친 몸을 뉘일 유일한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마지막 휴식처마저도 빼앗긴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 중 한 사람인 주희는 길바닥에 앉는 대신 그녀가 가질 집을 빼앗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자기 집을 되찾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는 아무리 애를 써도 가질 수 없는 좋은 집에 대한 욕망을 집주인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고, 결국 살인마가 되어서라도 갖고자 했던 그녀의 집은 가족과의 행복한 삶이 빠진 겉만 화려한 고급아파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깨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기에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주희가 주차장에서 차량 안에 있던 두 아이들에게 소리치던 내 집이야....”는 집 없는 자가 집을 가진 자들에게 외치는 처절한 절규였다.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성수는 마지막으로 주희에게 말한다.

자신의 집을 줄테니 우리 가족만 무사히 이집에서 내보내달라고.....

결국,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하고 불을 지르는 성수와 불에 타는 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며 몸부림치다 불과 함께 스러져가는 주희의 처절한 모습은 극적으로 대비된다.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부동산으로 가치가 있는 집인가 아니면, 가족 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터전인가?

언제 길바닥에 나앉을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어 집만 있으면 행복한 삶을 살 것으로 착각한 주희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돈이 없으면 인간답게 쉴 최소한의 공간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잔혹한 이 사회의 구조가 문제일까?

 

다 쓰러져가는 복도식 아파트를 훑어가는 어두운 조명의 카메라를 따라가면서, 나를 포함한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얼마나 좋은가?“ 하며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어차피 나하고 상관없는 가상공간 속 이야기일 뿐, 그냥 공포영화인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밝고 깨끗한 현대식 아파트의 비밀번호로만 열리는 문과 감시카메라, 고급자동차가 즐비한 지하주차장은 행복한 공간일까? 밝고 어두움만 차이가 있지 어차피 낡은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는 소외된 공간인 점은 차이가 없다. 고급자동차와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이 낡은 아파트에서 이상하게 보이듯이, 여기에서는 조금만 허수룩한 옷차림의 사람이 있어도 금방 눈에 띄며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 되고, 곧 쫓겨난다.

돈이 없어서 소외되고, 돈이 있어도 소외되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인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왠지 누군가가 그토록 갈망하던 욕망의 대상이며 내가 그들에게서 뺏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지친 몸을 누이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할 나의 보금자리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며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생각할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액션과 탄탄한 구성이 아니다.

단순한 생활공간으로서 집이라는 평범한 공간이 상황에 따라서 얼마나 무섭도록 폐쇄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편의성과 부동산 가격만을 앞세워 타인으로부터 나를 가두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대사회 우리 모두에게 집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려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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