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메리카노 자유주의 - 철학자 이병창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비판
이병창 지음 / 도서출판 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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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철학자가 쓴 정치비평서를 발견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자칭 진보연하는 자들의 속내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범주로 분류하고 분석하고 그들의 나아갈 바를 나름대로 피력하였다.

소위 ‘친노’라 불리우는 현 진보주의자들의 정치성향을 ‘포스트모던자유주의’ 또는 ‘아메리카노 자유주의’라 칭하며 ‘자유와 협상’을 절대적인 가치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민족과 민중을 배격하고 탈중심주의와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중요시하는 그들의 자유주의가 ‘협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타자’를 만났을 때 오히려 파시즘의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이석기의원내란음모사건 때 그들이 보여 준 반동적인 태도가 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교수의 분석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친노”세력이 그 같은 행동을 보인 것이 사실인 만큼 개인의 권력욕인지, 현실 정치에 대한 오판이었는지 불문하고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 합의가 현실에서 권력욕과 만났을 때 보수 우익과 별 차이가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여 현 보수우익정권을 견제할 세력으로서 힘을 읽어 버린 그들의 미래가 불안해 보이며 더불어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미래까지 불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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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보지 않고 쌓아두기만 했던 책 30여권을 정리했다.

한번에 가져가긴 무리라 네묶음으로 나눠 포장끈으로 묶고 온 가족이 들고 서점으로 향했다.

와이프랑 아이들이 책묶음을 달랑 달랑 들고 가는 모습이라니...

시내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내놨더니 권 당 평균 3천원씩을 쳐줘 거금 10만원을 준다.

10만원을 쥐고 무한리필 초밥집에가 온가족이 배터지게 먹고, 영화관에가 영화를 즐기며 신나는 가족나들이를 했다.

 

보지도 않을 책을 왜 비싸게 사서 헐값에 파느냐고 와이프가 면박을 준다.

나는 웃고 말았다. 책을 사다 보면 살 땐 괜찮은 책 인줄 알았는데 막상 책장을 펼치면 내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거나, 수준이 맞지 않거나, 재미가 너무 없거나 등등 해서 바로 던져버리는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중 수준이 너무 높은 책은 나중에 다시 볼 가능성이 있어 보관하지만 나머지는 그냥 그것으로 끝이다.

 

집이 도서관도 아닌 다음에야 보지도 않을 책을 보관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렇게 팔아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단지 걱정이 되는 것은 아들이 책을 팔아 밥 사먹는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아빠가 보지 않을 책을 저렴하게 팔면 또 누군가는 싸게 사서 볼 것이니 집에 놔두는 것보다 훨씬 보람있는 일이다는 내 그럴듯한 설명에 그럭저럭 수긍하는 눈치다

변명같지만  내겐 가치가 없는 책이지만 궁합이 맞은 누군가에겐 일생을 바꿀 귀중한 책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다닐 때 참고서 팔아 영화 보러 간 이후 책을 팔아 무언가를 한 것은 처음이다. 보든 안보든 단 한권도 버리지 못하고 책 권수 자체에 집착했던 내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자 도전이랄까?

책을 독서 이외의 용도로 사용한 오늘, “비워야 담는다는 말로 왠지 불편한 마음을 자위하며 집에 와 거실의 책장에 있는 책들을 봤다.

이런 이 책이 왜 빠졌지? 이것도 안보는 건데... 이책도 팔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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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가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구청안으로 들어간다. 말하는 걸로 봐서 여권을 만들러 가는 길인 것 같았다.

아마도 딸이 어머니 효도관광을 보내드리기 위함인 것 같다.

저 할머니가 가는 것은 여행일까 관광일까?

젊은이가 가는 것은 여행이고, 노인이 가는 것은 관광이다.

내 힘으로 가는 것은 여행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가는 것은 관광이다.

배낭 메고 가는 것은 여행이고, 깃발 따라 가는 것은 관광이다.

홀로 가는 것은 여행이고 패키지로 가는 것은 관광이다.

 

웅장하게 서있는 수많은 역사유적들을 주만간산(走馬看山)격으로 둘러보고, 유적과 경치 좋은 배경을 주인공으로 단지 그곳에 내가 잠깐 있었다는 증명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찍어대는 사진 몇 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호텔에서 그 나라의 특성을 삭제해버린 식사를 하고 집에서처럼 편하게잠을 잔다면 굳이 비싼 돈을 들이고 해외로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는 철학자가 말하기를 여행은 혼자 배낭 메고 현지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집에 머물고, 그들이 자주 먹는 음식을 먹고, 그들과 일상을 같이 공유해보는 것이라 했다.

그들과 같는 눈으로 그들의 나라를 볼 수 있을 때 여행의 진정한 목적 낯설게 보기를 얻게 된다고 했다.

내가 미국에서 미국인의 시각으로 우리나라를 봤을 때에야 우리나라에 살면서 너무 익숙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그때서야 진정한 자기성찰의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깃발 따라 다닌 해외여행은 여행이 아닌 관광이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잘 짜여진 관광코스는 원주민의 생활과 철저하게 유리된 해외속의 국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낯선 마을 누군가의 집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보고, 길거리에서 빵 한조각으로 허기를 때우며 따뜻한 원두 커피 한잔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낯선 이국의 도시 구석에서 이방인의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말이 안 통하는 누군가와 손짓 발짓으로 우정을 나누어 보기도 하고, 그네들에겐 너무 익숙하지만 내겐 낯선 어떤 것들을 발견하고 생각해보는 여정들이야 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여행은 젊었을 때 가야 한다.

아직 배울 것이 많고 생각이 여물지 않았을 때 가야 여행에서 얻는 많은 것들이 내 것이 된다. 늙어서 가는 여행엔 아쉬움이 남는다. 진작 여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든다.

관광이 아닌 여행을 가고 싶다. 보는 것이 다가 아닌 느끼는 여행을 하고 싶다. 여행은 사람을 깊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만사를 제쳐놓고 떠나 볼 일이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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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넷으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징수원을 도로공사가 20개 항목에 걸쳐 암행감찰을 한다는 기사를 봤다.

황당한 내용은 립스틱은 무조건 빨간색(분명 남자가 지정했을 듯), 목소리는 솔 톤 이상(자연스러운게 더 낫지 않나). 영수증은 무조건 두 손으로(앉아 있는 위치상 업청난 허리부담), 고객의 차의 뒤꽁무니를 끝까지 배웅해줘야 하고(우리는 그런지도 모르는데), 머리는 올려 묶어야 하고 등등 평가항목이다.

도로공사는 고객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감점이 많은 직원은 집에서 먼 직장으로 발령을 내버리고 8시간 동안 서서 고객에게 인사를 하는 징계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언제 톨게이트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했나빨리빨리 지나가는게 서비스 아닌가?

내가 많이 사용하지 않는게 주 이유이긴 하지만 굳이 하이패스를 사용하지 않는 작은 이유중 하나는 이 기계의 사용이 그나마 이들의 존재 이유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각종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콜센터 상담원들은 또 어떤가? 이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비정규직들은 이보다 더하든 덜하든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이 중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내세운다.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공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힘들지만 평온한 일상의 직장갑작스런 부당해고통지노동조합결성파업사측의 회유와 압력공권력투입회의와 절망의 시간들동료의 배신그러나 굴하지 않고 다시 시작되는 투쟁....

줄거리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가는 뻔한 줄거리와 뻔한 결말의 영화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뻔하지 않다.

주말이면 늘 다니는 마트 계산대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계산원, 청소원들이 새삼스럽게 가까이 다가와지지 않는가?

영화에 나왔던 진상손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그들을 무시하는 말을 한 적은 없었던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줄거리지만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폄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무관심, 공권력의 편애 등 실제 이 나라에서 일련의 시나리오처럼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며 현실은 영화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생략한 채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할지도 모른다.

 

감독은 우리가 늘 접하지만 매번 잊어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고 한다

영화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양자가 분열되는 것은 자본가의 논리에 말려드는 것이며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단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포장을 해도 노동자고 나의 아이들도 결국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자본가다. 자본가가 항상 노동자의 적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는 결국 이익이 대립될 수 밖에 없고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양보해야 대립은 해소된다. 문제는 노동자가 양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자본가는 무기가 많다. 돈이 있기에 권력이 있고 권력이 있기에 법도 그들 편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는 오로지 그들만의 연대와 고통, 인내만이 내세울 수 있는 무기 아닌 무기다.

이 영화는 연대를 말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순간 동감과 공감을 느꼈다면 우리는 노동자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한편이 될 수 있다. 물론 영화관을 나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느슨한 연대지만 말이다.

저번 주 아이들과 인터스텔라를 보고 오늘 또 아이들과 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머리는 우주를 향하되 우리가 발로 서 있는 이 땅위에서는 여전히 카트를 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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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우주국이 쏘아 올린 우주선 로제타는 지난 2004년 지구를 떠나 장장 105개월간 지구-태양 거리의 42배가 넘는 64를 비행해 지난 8월 목성을 도는 67P 혜성의 궤도에 진입했다. 그러나 원래 착륙지점보다 1를 벗어난 지점에 착륙하는 바람에 태양열 에너지를 얻지 못해 작동이 중지됐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기술 수준에는 한 참 못 미치지만 지구로부터 64떨어진 거리에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혜성에 탐사선을 원격조종해 착륙시키는 장면은 실제 인터스텔라이며 경이로운 우주의 환타지로 영화 상영 시기와 맞물리며 영화 흥행에 자극제가 되고 있다.

 

SF영화 마니아라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구의 종말과 지구 구하기 프로젝트, 기술부족에 따른 외계인의 도움, 광활한 우주를 넘나들기 위해 필수적인 워프 같은 공간이동,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비로운 고차원의 세계, 미지와의 조우.....

실제 대학에서 상대성이론을 공부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는 극작가의 이야기는 사족이다. 관객은 상대성이론 같은 물리학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지만 영화를 감상하는데에는 하등의 지장도 없다. 우리는 우주개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감독은 ‘2001스페이스오딧세이같은 명작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그의 전작인 '인셉션', '메멘토'에 비해 아쉬움이 있어 보이며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에 1% 부족한 좋은영화이다.

지구 구하기에 동참한 주인공이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인류의 대를 잇는데 성공한다는 이야기에 가족 간의 사랑과 그에 반하여 상투적이긴 하지만 꼭 필요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나쁜 사람 등장, 스펙터클한 우주의 장관, 이해가 안가 오히려 더 신비롭게 느껴지는 우주의 법칙들이 적당히 버물려져 3시간이 다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영화에 빠질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다.

명작이란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그런 성찰의 시간이 빠져 있다. 지구종말의 원인은 마치 천재지변인것처럼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경작지에 심어진 농작물이 바람과 먼지로 뒤덮이는 광경은 음울한 지구의 미래를 예고하는데 효과적인 장면이었지만 아름다운 지구가 왜 이렇게 종말을 맞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실제 인류가 지구의 환경에 영향을 미칠만큼 기술력을 구사한 기간은 불과 일백년 남짓하다. 45억년 동안 멀쩡한 지구를 불과 1세기만에 깨끗이 말아먹은 인간이 소모품 버리듯이 이 땅을 버리고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이 새로운 지구를 찾아가는 장면은 언뜻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건설을 위해 신대륙을 찾아 헤매면서 경험했던 온갖 고난들을 인류의 역사 발전으로 포장했던 과거와 오버랩 된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치열한 자기반성 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미래의 새로운 터전에서도 되풀이 할 가능성이 농후한 이 어리석은 지구인을 도와주는 외계생명체는 마치 지구인의 사랑’(이 세상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항상 사랑이다)을 보고 감동한 듯하다. 나도 잠시 감동했다. 사랑은 이 거대한 우주 끝에서도 약발이 먹히는 영원한 주제다.

 

우리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신비로운 우주를 종횡무진 누비며 별 사이를 누비는 인간들의 장대한 모험을 보노라면 이 복잡한 지구에서 하루하루 힘든 일상에 찌들어 사는 우리 지구의 군상들에겐 일시적이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별 사이(inter stellar)를 헤매는 일이 생기기 전에 인간의 사이(inter human)에 대한 성찰과 숙고를 거듭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감독이 원하는 명작 수준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영화관에 온 목적에 부합한, 컴퓨터 모니터나 TV가 아닌 영화 스크린에서 꼭 봐야만 하는 몇 안되는 오랜만의 우주환타지, SF 대작임에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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