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넷으로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징수원을 도로공사가 20개 항목에 걸쳐 암행감찰을 한다는 기사를 봤다.

황당한 내용은 립스틱은 무조건 빨간색(분명 남자가 지정했을 듯), 목소리는 솔 톤 이상(자연스러운게 더 낫지 않나). 영수증은 무조건 두 손으로(앉아 있는 위치상 업청난 허리부담), 고객의 차의 뒤꽁무니를 끝까지 배웅해줘야 하고(우리는 그런지도 모르는데), 머리는 올려 묶어야 하고 등등 평가항목이다.

도로공사는 고객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감점이 많은 직원은 집에서 먼 직장으로 발령을 내버리고 8시간 동안 서서 고객에게 인사를 하는 징계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언제 톨게이트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했나빨리빨리 지나가는게 서비스 아닌가?

내가 많이 사용하지 않는게 주 이유이긴 하지만 굳이 하이패스를 사용하지 않는 작은 이유중 하나는 이 기계의 사용이 그나마 이들의 존재 이유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각종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콜센터 상담원들은 또 어떤가? 이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비정규직들은 이보다 더하든 덜하든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이 중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내세운다.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공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힘들지만 평온한 일상의 직장갑작스런 부당해고통지노동조합결성파업사측의 회유와 압력공권력투입회의와 절망의 시간들동료의 배신그러나 굴하지 않고 다시 시작되는 투쟁....

줄거리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가는 뻔한 줄거리와 뻔한 결말의 영화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뻔하지 않다.

주말이면 늘 다니는 마트 계산대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계산원, 청소원들이 새삼스럽게 가까이 다가와지지 않는가?

영화에 나왔던 진상손님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도 모르게 그들을 무시하는 말을 한 적은 없었던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줄거리지만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폄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무관심, 공권력의 편애 등 실제 이 나라에서 일련의 시나리오처럼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며 현실은 영화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생략한 채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할지도 모른다.

 

감독은 우리가 늘 접하지만 매번 잊어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고 한다

영화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양자가 분열되는 것은 자본가의 논리에 말려드는 것이며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단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포장을 해도 노동자고 나의 아이들도 결국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자본가다. 자본가가 항상 노동자의 적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는 결국 이익이 대립될 수 밖에 없고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양보해야 대립은 해소된다. 문제는 노동자가 양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자본가는 무기가 많다. 돈이 있기에 권력이 있고 권력이 있기에 법도 그들 편이다. 이에 반해 노동자는 오로지 그들만의 연대와 고통, 인내만이 내세울 수 있는 무기 아닌 무기다.

이 영화는 연대를 말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순간 동감과 공감을 느꼈다면 우리는 노동자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한편이 될 수 있다. 물론 영화관을 나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느슨한 연대지만 말이다.

저번 주 아이들과 인터스텔라를 보고 오늘 또 아이들과 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머리는 우주를 향하되 우리가 발로 서 있는 이 땅위에서는 여전히 카트를 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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