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반양장) -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작 「현실 편」에 이어 「현실너머 편」을 거푸 내질렀다. 아무래도 「현실 편」이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더 쏙쏙 들어오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현실너머 편」은 제목 그대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분야를 담다보니 독자의 취향이나 수준에 따라 다소 지루할 수도,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흔히, 정치나 경제는 누구나 자기의견이 있을 것이나 철학이나 예술은 쉽게 입을 열기 힘든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이 책의 효용이나 가치는 전작에 다 담겨있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실너머 편」은 덤이며 보너스고 선택이다.

 

「현실 편」에 비해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수준까지 그런 건 아니다. 모든 사상을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로 환원시키는 저자의 탁월하고도 단순한 분류방식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다만 「현실 편」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에 비해 이론의 복잡성을 고려하면 철학이나 과학, 예술, 종교 분야는 다소 버겁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와 정치에서 보여 졌던 핵심파악과 줄기세우기의 강점이 요약정리와 총정리 수준으로 힘이 떨어진 것 같아 아쉽기는 하나 이는 저자의 능력부족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지식분야의 질과 양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보기에 큰 불만은 없다. 그러나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종교와 인간의 사후세계 및 의식을 이야기한 신비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기에 내심 기대했던 철학이나 예술분야에 대한 아쉬움은 더 짙을 수밖에 없다.

 

사실 수천 년 인류의 방대한 지적자산을 달랑 책 두 권으로 아우르고자 한 저자의 무모한 용기에 찬사를 보내야 할지, 비난을 퍼부어야할 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일단 무지한 우리 대중을 위해 이정도 라도 교양에 대한 지식을 건네주고자 한 그의 노력에 대가를 지불한 것은 별 불만이 없다.

 

이런 백과사전 류의 책을 접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처음은 쉽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엄청 어렵다. 겉만 핥다가 맛없다고 버린 수박이 얼마나 많았는가!

무리한 욕심에 잔뜩 사다 꽂아둔 거실 책장의 수많은 책들을 보노라면 포장이 잘 된 아스팔트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만나는 험한 비포장도로가 떠오른다. 어찌 할까? 들어갈까 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세계 편 (반양장) -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흔히 최종학력이 대졸 정도의 사람이면 지식인으로 인정하며, 당사자도 그 정도면 자신이 무식하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알만한 건 다 안다는 식이다.

그러나 컴퓨터공학, 전기공학, 경영학, 경제학 같은 지식에 정통했다고 해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100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설계하고, 세계에서 제일 빠른 자동차를 만들고, 심지어 우주선을 연구한다고 해서 그 수준에 맞추어 세계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건 전문지식일 뿐이다. 전문지식은 이 사회의 구조물을 구동시키고 운행하는 방법과 그 방법을 구사하는 사람을 관리하는 매뉴얼일 뿐이다. 세상에 이런 지식인들은 넘치고 흘러내린다.

이 책에서 말한 지식은 이러한 전문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교양지식에 대한 것이며 공유할 수 있는 담론을 말하는 것이다.

엔지니어와 의사가 서로의 지식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안 통할 것이다. 회사원과 자영업자 또한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이며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삶터로 바꾸려고 나누기에는 어쩐지 어색하고 부적절하다.

 

그래서 교양이 필요하다. 교양은 그가 어떤 지식과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다. 다만,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조하든지 논쟁을 하든지 할 것이다. 자동차와 의학지식은 일방적인 설명이지 공감이나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사와 대등하게 질환에 대해 논쟁할 것이며 엔지니어와 어떻게 자동차엔진에 대해 공감을 나누겠는가?

 

하지만 교양은 가능하다. 자가기 아는 선에서 대화와 논의와 논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교양이 설 자리가 없다. 교양을 알지만 이야기 하진 않는다. 교양이 전문지식으로 대우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양은 그냥 장식이며 선택이며 사교에 불과하다. 정치, 경제, 사회의 문제로 사람들은 늘 이야기 한다. 술을 마실 때도 단골 메뉴다. 그러나 과연 이야기나 잡담을 넘어선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다들 생각은 많고 다양하지만 감정적이며 일회성에 머물고 한탄과 화풀이 수준을 넘지 못한다. 깊고 진지한 대화는 어색해진다. 아는 척하는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교양강좌는 지루하고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며 오히려 배척되기까지 한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내용에 대한 공통분모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되나 지적 수준이 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다 보면 개별 지식들은 쌓이는데 전체로 조망해보기는 힘들다. 이 책은 이점에서 그 효용이 탁월하다. 내가 알고 있던 수많은 지식을 큰 틀로 환원시켜준다. 저자는 널어져 있는 구슬들을 잘 꿰어 내 목에 걸어준다.

이 책은 세상을 보는 생각 틀의 목차다. 역사는 이렇게 보고 경제는 저렇게 보라는 타이틀 만을 별도로 만들어 제시해주지만 결코 따로 놀게 하지는 않는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모든 지식을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거칠게 나눴다. 자질구레하게 나누면 헷갈리니 단순하게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의 모토가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 제목에서부터 분명히 밝혔으니 이걸로 물고 늘어질 일은 아닌 것 같다.

단순화된 틀에 모든 걸 끼워 넣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모두 사고의 옷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옷장을 만들고 각각의 서랍 안에 스스로 자신만의 지식과 사고를 채워 넣으라는 것이다.

 

이 책은 교양지식의 요약본이다. 이정도 요약을 하려면 엄청난 양의 독서와 생각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동안 쌓아온 저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저자와 같은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많다. 하지만 지식의 수준에 상관없이 아무나 들고 술술 읽기만 하면 개념이 잡히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그런 용도의 책을 많이 접했지만 이처럼 쉽고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책을 본 적이 없다.

 

좋은 책이고 훌륭한 저자다. 그동안 억지로 구겨 넣어 머릿속에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각종 지식조각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랄까?

이런 종류의 지식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수월하게 세계의 구조와 생각 틀을 얻었을 것이고, 꾸준히 독서를 한 사람이라면 나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휴식의 기회를 얻었을 것이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괜찮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안일 중 내 담당은 크게 3가지다. 청소, 쓰레기 버리기, 그리고 가끔씩 하는 설거지다.

청소는 주말에 한 번 씩 하고 설거지는 가끔 씩 한다. 청소가 귀찮기는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별 불만은 없고 설거지는 나름 베테랑이라 역시 괜찮다.

문제는 쓰레기 버리기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 말이다. 정말 싫다. 잠깐 담배 피고 들어 올 때, 기다렸다는 듯 마누라가 대문 앞에 재활용, 음식물 쓰레기를 한 보따리 내다 놓은 걸 보면 짜증이 확 난다.

 

, 맨날 나한테만 버리라는 거야, 저기 빈둥거리며 게임이나 하고 있는 놈들이 두 명이나 되는데. 웬 놈의 쓰레기는 이렇게 많은 거야.”

 

혼자, 구시렁거리며 양 손에 가득 들고 버리러 간다. 승강기 바닥에 페트병 하나가 나뒹굴어 그걸 줍는다고 허리를 숙이다 봉지에 담긴 것들이 와르르 몽땅 쏟아져 버릴라치면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한 봉지에 재활용 쓰레기를 한꺼번에 담아놨기에 일일이 분류하면서 또 한 번 불만을 털어놓는다.

스치로폼과 플라스틱 일회용 접시는 까딱하면 같이 들어갈 수 있고, 내용물이 남아 있어 기름이 줄줄 흐르는 참치 캔, 끈적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음료수병은 정말 싫다. 거기다 재활용이 되지 않은 잡동사니는 모른 척 하고 집어넣기엔 양심이 걸리고 다시 가지고 올라가기엔 귀찮고.....에라 모르겠다. 눈 감고 넣어 버린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가장 처리 하기 싫은 음식물쓰레기.

손을 안 대려고 조심했는데 비닐봉지의 끝에 걸려 잘 나오지 않는다. 탈탈 털다가 얼굴에 몇 방울 튀긴다. 봉지 채 넣었는데 음식물 통이 아직 차지 않아 깊숙이 손을 넣다가 또 팔에 몇 방울 묻었다. 특히, 치킨 같은 배달음식은 부록이다. 별도로 배출해야 한다. 내용물이 한 가득이다. 마지막으로 통을 씻다가 마지막으로 몇 방울 튀긴 후에야 마무리.

돌아오는 길은 큰 건을 해결한 듯 발걸음도 가볍게^^

 

그러나 쓰레기는 왜 그리 자주 쌓이는지. 금방 또 버리란다. 옛날이 그립다. 나 어렸을 적엔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버렸다. 아파트도 부엌에 설치된 환기구 같은 곳에 문을 열고 휙 던져 버리면 되는 쓰레기 배출구가 있었다. 물론, 저층에 사는 사람들은 올라오는 냄새 때문에 많이 싫어했겠지만.

  

인간 있는 곳에 쓰레기 있다.“

 

이 세상을 온통 쓰레기 더미로 만들고 있는 인간의 존재는 자연의 입장에서 재앙이라 할 만 하다. 이 많은 쓰레기들이 아직도 묻힐 곳이 있다는 것이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먹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다시 주워서 한 번 더 쓰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쓰레기를 기반으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는 생산은 미래의 소비를 담보로 질주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생산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낭비로 귀결된다. 이 세상의 모든 공간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라고 유혹하거나 협박하거나 둘 중 하나인 비주얼과 문자로 빈틈없이 도배가 되어 있다. 눈길 닿는 모든 빈 공간은 호시탐탐 우리의 지갑을 노리는 무리가 살찐 어린양을 바라보는 늑대처럼 침 흘리며 짜놓은 덫이 꽉꽉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다.

 

공급과잉이 숙명인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자는 죽기 살기로 팔아야 하고 우리는 그에 호응하여 죽을 둥 살 둥 산다. 누군가가 왜 사야 되는지, 왜 필요한지 알기도 전에, 묻지도 말라며 카트에 가득 물건을 담아 준다.

온종일 쉬지 않고 뼈 빠지게 일하고 나서야 겨우 받는 귀중한 돈을 곧 쓰레기가 될 것을 위해 너무나 쉽고 허망하게 내어주고 만다.

 

그만 사자. 쓰레기가 될 것들을. 꼭 필요한 것들만 얍삽하게 사서 교활하게 쓰고 감쪽같이 처리해서 깔끔하게 버리자. 조금 사면 조금 버린다. 배보다 큰 배꼽처럼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빈 박스들을 보자. 풍요의 시절이 지나고 텅텅 비어버린 우리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넘쳐흐르는 음식물에서 풍기는 악취가 언젠가 굶어 죽어 갈 우리 후손들의 몸에서 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나는 또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버려야 할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내 마음 속 끝없는 탐욕이다. 욕망은 버리고 나눔과 절약을 재활용하자. 리사이클링 인간이 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집엔 금붕어가 3마리 있다. 와이프가 마트에선가 선물로 받아온 놈들이다. 물고기를 키울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다 마리수도 어중간해 어항이랄 것도 없이 대충 식료품을 담았던 조그만 플라스틱 빈 통에 넣어 침실 입구 바닥에 놔두었다.

 

그럴싸하게 키우는 게 아니다 보니 처음엔 잡동사니 취급했다. 그런데 옴서 감서 보다보니 정이 들었는지 가끔씩 눈에 밟혀 잠깐씩 쪼그리고 않아 들여다보곤 한다. 금붕어 3마리가 좁은 통 안 이지만 저희들끼리 분주하게 이리 저리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비록 생각이 없는 미물들에 불과하지만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나 같이 무덤덤한 사람 집에 와서 살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어항(?)이 워낙 작은 통이라 일주일만 되도 물이 금방 혼탁해져, 그걸 발견할 때마다 와이프한테 물을 갈아야 되겠다고 알려주곤 했다. 아이들이 먹이를 줬는지 한번 씩 점검도 했다. 가만히 손가락을 통 위로 흔들면 밥 주는 줄 알고 물위로 올라온다. “장난이지롱. 약 오르지 이놈들아” 혼자 피식 웃다가 간식이랍시고 몇 알 던져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웠으나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어디가선 물장구치는 소리를 들었다. “방안에 웬 물소리? 내가 잘 못 들었나?” 비몽사몽이라 잘못 들었으려니 하고 자려는데 계속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한밤중 이다 보니 소리가 꽤 크게 들렸고 계속 귀에 거슬려 결국 일어나 불을 켜고 소리의 원인을 찾아보았다.

 

원인이 금붕어가 뻐끔거리는 소리라는 걸 알고 어이가 없었다. 살다가 물고기 소리가 신경 쓰일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생각하다 잠을 자야 되겠기에 거실로 옮겼다. 그 후 잠잘 때 신경 쓰일 일은 없어졌는데 대신 거실에서 조용히 책을 볼 때 또 소리가 거슬리곤 했다. 넒은 공간임에도 여전히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이 참 이놈들을 또 어디로 옮긴다?” 하지만 좁은 집에서 더 이상 이사 보낼 곳이 마땅치는 않아 그냥 놔두기는 했지만 그놈의 뻐끔거리는 소리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래, 너희들도 우리 집 식구들인데 어쩌겠냐. 이제 우리 집 가족 수는 여섯이다. 물론,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금붕어 수명이 몇 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은 가족으로 대우를 해줘야겠다.   

”이놈들아 오래 오래 살거라. 사는 동안엔 밥 안 굶기마. 좁은 집이지만 그 것이 너희들 팔자니 너무 불평하지는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새 인문학분야에서 '대중지성‘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한때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반대중에게까지 그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이 현재 추세다. 공식적인 학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만이 학문을 논 할 자격이 주어지던 시대를 벗어나는 것은 적극 환영할 만 한 일이나, 막상 대중지성에 합류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일단, 학자는 고사하고 초짜 딱지를 떼는 것도 힘들다. 혼자 공부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에 비해 몇 배 더 힘들다. 방법이 오직 독서 한가지라면 금방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그렇다고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몇 개 뜨는 온라인수강도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금전적인 부담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과목이 없으면 별 도움이 안 된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 동아리모임을 만들면 좋겠지만, 집에서 한 발짝만 움직여도 ‘고독한 군중’의 사회에서 평소 인맥관리에 무관심한 나 같이 고독한 늑대는 테니스나 축구동아리 만들 듯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독서를 통한 자습이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가장 쉬운 선택이면서 가장 어려운 방법을 선택한 결과는 항상 뻔했다. 포기다. 머리가 명석한 것도 아니고 끈기가 있는 편도 아니다 보니, 쉽게 포기하고 만다. 실패의 반복은 도전의식을 사라지게 한다. 그냥 쉬운 책 몇 권으로 변두리만 헤매다 만다. 그냥 맛만 보고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상상했다. 예를 들면 헤겔의「정신현상학」을 백권짜리 시리즈로 해도 되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준 해설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아니면 해설서 한권에 백만원인데 나한테만 판다고 하니 살거냐? 이렇게 말이다. 마치 무협소설에 나오는 최고수가 되는 비급(秘笈)처럼 말이다.

 

결론-

비법을 아무리 찾아다녀도 지름길은 없더라.

지름길인줄 알았는데 샛길이었다.

샛길을 가다가 까딱하면 삼천포로 빠진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