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중 내 담당은 크게 3가지다. 청소, 쓰레기 버리기, 그리고 가끔씩 하는 설거지다.
청소는 주말에 한 번 씩 하고 설거지는 가끔 씩 한다. 청소가 귀찮기는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별 불만은 없고 설거지는 나름 베테랑이라 역시 괜찮다.
문제는 쓰레기 버리기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 말이다. 정말 싫다. 잠깐 담배 피고 들어 올 때, 기다렸다는 듯 마누라가 대문 앞에 재활용, 음식물 쓰레기를 한 보따리 내다 놓은 걸 보면 짜증이 확 난다.
“왜, 맨날 나한테만 버리라는 거야, 저기 빈둥거리며 게임이나 하고 있는 놈들이 두 명이나 되는데. 웬 놈의 쓰레기는 이렇게 많은 거야.”
혼자, 구시렁거리며 양 손에 가득 들고 버리러 간다. 승강기 바닥에 페트병 하나가 나뒹굴어 그걸 줍는다고 허리를 숙이다 봉지에 담긴 것들이 와르르 몽땅 쏟아져 버릴라치면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한 봉지에 재활용 쓰레기를 한꺼번에 담아놨기에 일일이 분류하면서 또 한 번 불만을 털어놓는다.
스치로폼과 플라스틱 일회용 접시는 까딱하면 같이 들어갈 수 있고, 내용물이 남아 있어 기름이 줄줄 흐르는 참치 캔, 끈적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음료수병은 정말 싫다. 거기다 재활용이 되지 않은 잡동사니는 모른 척 하고 집어넣기엔 양심이 걸리고 다시 가지고 올라가기엔 귀찮고.....에라 모르겠다. 눈 감고 넣어 버린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가장 처리 하기 싫은 음식물쓰레기.
손을 안 대려고 조심했는데 비닐봉지의 끝에 걸려 잘 나오지 않는다. 탈탈 털다가 얼굴에 몇 방울 튀긴다. 봉지 채 넣었는데 음식물 통이 아직 차지 않아 깊숙이 손을 넣다가 또 팔에 몇 방울 묻었다. 특히, 치킨 같은 배달음식은 부록이다. 별도로 배출해야 한다. 내용물이 한 가득이다. 마지막으로 통을 씻다가 마지막으로 몇 방울 튀긴 후에야 마무리.
돌아오는 길은 큰 건을 해결한 듯 발걸음도 가볍게^^
그러나 쓰레기는 왜 그리 자주 쌓이는지. 금방 또 버리란다. 옛날이 그립다. 나 어렸을 적엔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버렸다. 아파트도 부엌에 설치된 환기구 같은 곳에 문을 열고 휙 던져 버리면 되는 쓰레기 배출구가 있었다. 물론, 저층에 사는 사람들은 올라오는 냄새 때문에 많이 싫어했겠지만.
“인간 있는 곳에 쓰레기 있다.“
이 세상을 온통 쓰레기 더미로 만들고 있는 인간의 존재는 자연의 입장에서 재앙이라 할 만 하다. 이 많은 쓰레기들이 아직도 묻힐 곳이 있다는 것이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먹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다시 주워서 한 번 더 쓰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쓰레기를 기반으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는 생산은 미래의 소비를 담보로 질주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생산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낭비로 귀결된다. 이 세상의 모든 공간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라고 유혹하거나 협박하거나 둘 중 하나인 비주얼과 문자로 빈틈없이 도배가 되어 있다. 눈길 닿는 모든 빈 공간은 호시탐탐 우리의 지갑을 노리는 무리가 살찐 어린양을 바라보는 늑대처럼 침 흘리며 짜놓은 덫이 꽉꽉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다.
공급과잉이 숙명인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자는 죽기 살기로 팔아야 하고 우리는 그에 호응하여 죽을 둥 살 둥 산다. 누군가가 왜 사야 되는지, 왜 필요한지 알기도 전에, 묻지도 말라며 카트에 가득 물건을 담아 준다.
온종일 쉬지 않고 뼈 빠지게 일하고 나서야 겨우 받는 귀중한 돈을 곧 쓰레기가 될 것을 위해 너무나 쉽고 허망하게 내어주고 만다.
그만 사자. 쓰레기가 될 것들을. 꼭 필요한 것들만 얍삽하게 사서 교활하게 쓰고 감쪽같이 처리해서 깔끔하게 버리자. 조금 사면 조금 버린다. 배보다 큰 배꼽처럼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빈 박스들을 보자. 풍요의 시절이 지나고 텅텅 비어버린 우리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넘쳐흐르는 음식물에서 풍기는 악취가 언젠가 굶어 죽어 갈 우리 후손들의 몸에서 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나는 또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버려야 할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내 마음 속 끝없는 탐욕이다. 욕망은 버리고 나눔과 절약을 재활용하자. 리사이클링 인간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