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스럽지만 빈 깡통인 블록버스터 어벤저스2의 그림자에 잠시 가렸으나 금방 눈에 띄는 영화 차이나타운.
지하철 역사 내 10번 사물함에 버려진 아이라 해서 일영이란 이름으로 노숙자들이 키운 아이와 중국동포들의 밀입국과 장기밀매로 돈을 버는 더러운 ‘엄마’는 피비린내 나는 인생 게임을 벌인다.
영화는 일영의 눈을 통해 이 들이 가족임을 강조한다. 엄격한 엄마,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있는 큰딸과 엄마의 말이라면 피를 뒤집어쓰는 뒤처리를 군말 없이 수행하는 믿음직스런 큰 아들, 몸과 마음이 부족한 아들과 철없는 막내딸까지 겉보기에 엄연히 구색을 갖춘 가족이다. 세상에 버려진 아이들을 ‘쓸모 있음’이란 비인간적이지만 실용적인 기준으로 키운 엄마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폭탄 같은 자식들을 훈육한다.
자식들은 엄마가 부여한 임무대로 피비린내 나는 밥값을 하며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비록 한 배에 태어난 형제자매는 아니지만 일영은 그들과 가족의 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엄마는 아버지를 대신한다. 어설픈 아버지 보다 훨씬 능률적인 교육을 하는 엄마는 늘 쓸모 있음을 되 뇌이며 강조한다. 아버지가 필요 없는 엄마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식은 이 가족이 불구임을 말한다. 엄마가 아버지의 경제력을 갖고 있을 때 아버지의 존재는 애매하다. 어쩌면 엄마에게 남편은 이 세상인지 모른다.
세상은 쓸모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녀에게 이 쓸모 있음은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했을 그녀가 겪었던 외로움은 치열한 생존을 통한 사랑의 쟁취로 보상되며 이는 대를 잇는 가훈이자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운다.
그녀에게 쓸모없다는 것은 곧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기에 자식이라 하더라도 버린다. 여러 자식 중 본인과 가장 닮은 일영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그녀는 사자처럼 일영을 다그친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의 승자가 되기를 바라는 그녀에 반해 일영의 심리는 복잡하다. 잠시 평범한 사랑에 빠지는 사춘기 소녀의 얼굴이 되기도 하지만, 매몰찬 엄마의 잔인한 구출은 그녀로 하여금 삶과 엄마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계기가 된다.
엄마처럼 단호하게 살지 못하는 일영을 위한 엄마의 결의는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는 처절한 모성애로 구현된다. 엄마가 엄마를 죽이며 얻은 무서운 업보를 일영은 결국 거부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엄마의 권위와 일영의 따스함으로 유지되던 가족 같지 않은 ‘무서운’ 가족은 늘 상 들어 온 쓸모 있음으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엄마의 ‘가훈’을 어긴 일영의 배신으로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한순간 서로 죽고 죽이는 난장판 끝에 시체로 나뒹구는 가족의 모습은 비록 가족이라 하더라도 해체될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비극적인 끝판을 보여준다.
거대한 산과 같았지만 언젠가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희생을 딛고 가족의 붕괴라는 잔혹하고 고난에 찬 통과의례를 거치고서야 일영은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일영 역시 새로운 엄마로서 또 다른 가족을 꾸릴 것이며, 그녀 역시 언젠가는 다시 다른 엄마에게 자신의 운명을 넘겨줘야 할 것을 예감 하며 엄마의 인생을 시작한다.
어두운 세계 뒷골목에서 외모의 섹시함을 버리고 포커페이스의 차가운 카리스마를 품어 대는 엄마 김혜수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연기 내공을 선보이며 결코 김혜수에 밀리지 않는 김고은의 보이시한 매력 또한 도드라진다. 무표정한 듯 감정이 배어 있는 얼굴과 씩씩하지만 외로워 보이는 몸짓의 감정표현은 영화의 맥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원동력이다.
이에 질세라 조연으로 나오는 박보검, 엄태구 등 모든 연기자들이 일영과 엄마와의 사이에서 배역에 상관없이 각자 몫을 훌륭하게 소화하기에 영화에 대한 몰입 도는 한 층 더 높아진다.
차이나타운은 소외된 공간을 상징한다. 세계의 수많은 영화에서 차이나타운은 폭력과 마약의 유통경로로서 단골로 사용된 어둠의 세계다. 밝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인간들이 시궁창같이 냄새나고 컴컴한 곳에서 장기매매 같은 차마 인간이라면 할 수 없을 가장 비열하고 추잡스런 일로 먹고 살아야만 하는 곳이다..
고리대부로 파괴한 가족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은 그들이 만들고자 한 가족은 애초에 이루어 질 수 없는 가상의 박제된 가족관계에 불과하기에 또 소외되고 마는 숙명을 반복하는 소외된 공간으로서 차이나타운.
하지만 화면 내내 가득한 어둡고 습한 차이나타운의 음울함과 유일하게 진짜 가족 냄새를 풍기는 온가족 식사장면, 일영이 설치한 카메라 자동셔터의 포커스에 잡힌 식사장면, 마지막 지하철 사물함에서 10번이 선명하게 찍힌 열쇠와 엄마가 자신에게 선물로 준 입양증명서를 보는 일영의 외롭고 무거운 뒷모습은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