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다독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되는데 쉽지 않다. 아무래도 당분간 신간 코너를 무시해야겠다. 날마다 쏟아지는 신간을 보다 보면 욕심이 나서 자꾸 사게 되고, 읽지도 못할 책을 쌓아 놓기만 하다가 정작 차분히 읽어야 할 책들을 자꾸 미루게 된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독서 이외에는 특별한 취미가 없어 돈 쓸 일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와이프는 모른 척 한다. 그러다 너무 자주 지른다 싶으면 가끔 제동을 건다. 사논 책이나 다 본 후 사라고 말이다. 물론, 못들은 척 한다.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책도 어차피 돈 주고 사는 물건이기에 책 쇼핑도 심각한 중독이 될 수 있다. 책 구매가 일반 쇼핑중독 보다 낫다고 주장할 하등의 근거도 없다. 옷이나 책이나 다를 것은 없다. 어차피 둘 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생산된 상품인 점은 똑 같다.

 

지식이 담겨서, 지혜를 논한다고 책이 더 고상하거나 상위의 어떤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책 구매를 자제하지 못하는 것도 분명 쇼핑중독에 포함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읽을 수 있을 정도만 구입해서 읽고 난 후 다시 구입해야 합리적인 소비행위인 것이다.

 

반론도 있다. 옷은 유행이 지나면 못 입고, 전자제품도 시간이 지나면 구형이 되 버리지만 책은 먼지가 좀 쌓이거나 종이가 약간 바랠 뿐 품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한 달 뒤에 봐도, 일 년 뒤에 뒤적거려도, 십 년 후에 읽어도 상관없다.

 

일단 사놓으면 언젠가는 보게 된다는 주장이다. 눈에 띄었을 때 사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 책을 다시 만 날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잊히고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조바심은 십분 공감이 된다. 좋은 책이었는데 일찍 절판되어 버린 책들의 목록을 나중에 확인하면 속이 쓰리다.

 

일단 지르고 책장에 보관만 하다가 한 참 후에 우연히 읽고 사놓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렇지만 결국 손이 안가 장식품으로 전락한 책이 더 많다.

경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절대 앞지를 수 없다. 한 권 읽는 동안 사게 되는 두 권, 네 권의 책은 순식간에 책장에서 번식 하고 만다.

 

“책은 책장에 꽂힌 순간부터 이미 읽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읽지 못할 책을 책장에 모시고만 있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읽어야만 그 것은 책이다. 보관만 하고 있는 것은 책이 아니다. 그냥 의미 없는 종이 묶음이다. 아울러, 쇼핑중독 폐해의 결과이자 증거 일 뿐이다.

 

이제 필요한 책만, 그것도 당장 읽을 수 있는 것만 사련다. 쓸데없이 쌓아두고 미루며 스트레스 받지 않겠다. 지금 바로 읽는 책으로 충분하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버리자. 책에 대한 집착도 버리자. 내가 갖고 있는 저 책들은 충족될 수 없는 욕심의 징표일 뿐이다. 가볍게 살고 털어버리자.

 

새삼스럽게 이 말이 생각난다. 비워야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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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노라면 문득 독서에도 단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책이라는 것을 읽어 보자 라는 결심을 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첫 번째 단계-불규칙적이고 느슨한 독서

막 읽는다. 서점에서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것, 그럴싸해 보이는 것, 요새 유행인 주제를 다룬 것, 서점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등등.

이 단계에선 아무 생각이 없다. 막연히 독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읽다 보니 부담감이나 의무감도 없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니 기준도 없다. 그냥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몇 권 읽다가 싫증나면 안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다시 들춘다. 이 단계가 어느 정도 지속되다 보면 곧 슬럼프에 빠진다. 주먹구구식으로 읽다 보니 책에 대한 의욕이 수그러들기 쉽고 바쁜 일상사 때문에 잠시 책을 놓다 보면 다시 잡기 힘든 경우가 많다. 여기서 포기하면 책하고 다시 멀어진다. 그렇지만 운이 좋아 이 게으름을 이기고 나가다 보면 곧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든다.

 

두 번째 단계-미명에서 광명으로

첫 번째 단계를 무사히 넘어 독서가 하나의 생활패턴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책을 선별하는 안목도 나름 생기기에 교양도서목록, ○○대 100선 목록, 오늘의 추천도서나 베스트셀러 목록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양서를 보고자 마음을 먹기 시작하나, 아직 내공이 부족한 관계로 간혹 엉터리를 만나 실망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좋은 책을 만나 좋아하기도 한다. 방향만 잘 잡으면 생각보다 푹 빠진다. 독서를 밥보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화창한 봄날 꽃구경이나 가을 단풍 구경, 주말 야구경기 대신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 좋은 글귀 한 줄 읽다가 인생의 의미를 한 번 곱씹는 것이 생각 보다 지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막연히 느끼기 시작 한다.

 

세 번째 단계-또 다른 세상

선별독서다. 이젠 아무거나 읽진 않는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산처럼 쌓여 있는 책들을 보노라면 아무렇게나 읽어선 답이 나오질 않는 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시간과 금전은 유한하고 읽어야 될 책(읽고 싶은 책과 애매하다)을 다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독서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세워야 됨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주제 별로 읽기 시작한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만을 골라 읽는다든지, 특정 작가의 책만을 읽는다든지 한다. 상식 수준에서 전문가 수준의 독서로의 초입(初入)단계다. 닥치는 대로 읽는 것에 비해 속도는 많이 줄어든다.

 

네 번째 단계-진리의 길은 가시밭길

어느덧 중급 수준에 접어들었다. 어느 정도 독서량이 쌓이다 보니 가끔 오만한 생각을 한다. 소위 글줄께나 읽었다는 식자(識者)층으로 본인을 여기고 우쭐한 마음에 자신의 지적 소양을 과시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단순히 지적 수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주 위험한 경우다. 그러다 일격을 당한다. 나보다 훨씬 상위의 고수를 접할 기회가 생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행운을 잡은 것이다. 다시 한 번 힘찬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니까.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눈은 높아져 어지간한 책은 잘 보지 않는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선택한다. 단순한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한 책은 내 수준에 너무 어렵다. 한글이 다 똑 같은 한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좌절과 함께 겸손을 배운다. 주로 고전(古典)에 터진다. 다소 쉬운 책도 있지만 한 페이지 내내 무슨 말인지 모르고 글자를 그림으로 보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이나 위편삼절(韋編三絶), 책만 보는 바보, 간서치(看書痴) 같은 독서광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귀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나도 이해가 될 때까지 읽어 보자.” 이를 악물고 눈을 까뒤집고 읽어 보지만 독서 자체가 재미가 아닌 고행이 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글을 계속 읽어 보라. 세상에 그런 고문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음독을 해보기도 하고, 한 페이지만 수십 번 읽어 보기도 한다. 하루에 한 권씩 읽어 제치던 호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수십 권을 읽을 시간에 단 한권에 잡혀 있을 때의 초조감이라니.....

 

다섯 번째 단계-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는다. 독서에 재미가 빠지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내 수준에 맞게 다시 읽는다. 독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본다. 책을 통한 지식 못지않게 독서의 의미나 방법 등에 관심을 갖는다. 독서 자체로 하나의 공부가 될 수 있다. 혼자만의 독서도 좋지만 친구나 동지가 있으면 더욱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 교류하고 토론하고 공유하며 격려와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독서 방법에 연연하기 보단 한 줄의 글이 갖는 무게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함을 안다.

많이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아는 만큼 행동해야 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무겁게 생각한다. 결국, 배운 만큼 실천해야 되며 독서는 그에 따른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렇게 읽고, 생각하고, 또 읽고, 살며 시간의 마법을 배운다. 굴곡 없는 꾸준한 독서가 결국 최선임을 알게 되고 시간과 비례하여 쌓이는 내공을 어느 순간 느끼지만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 길은 끝이 없으며 언젠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순간에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최종 목적지라는 걸 그냥 담담히 받아들인다..............

 

※ 그냥 내 맘대로 어쭙잖게 늘어놓았다. 얼마나 읽었다고 단계니 수준이니 하는 게 멋쩍지만 그래도 쓰다 보니 독서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정리되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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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단계에 있는 일인에게 미지의 앞날을 보여 주셨습니다. 알고는 당해야죠 ㅎㅎ 끝없는 독서의 길에 그때그때 최선과 만족하자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6-18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쭙잖은 제 단계보단 훨씬 높으신것 같은데 겸손이 지나치시네요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6-18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계 어쩌고 하니까 좀 웃기죠 얼마나 대단하게 책을 본다고.....

북다이제스터 2015-06-18 21:18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요. 제 아버지께서는 모든 책 읽기의 끝은 동양 종교학이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이 막연하지만 나름 그 뜻이 깊이 공감됩니다. 님의 말씀에도 어렴풋 알수 있습니다.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6-18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아버님을 모시고 계시네요 저도 동감하기에 불교철학에 관한 책을 책장에 모셔두고 읽을 날만 기다리고 있네요 아직은 능력이 안되거든요 퇴직할때나 되야 차분히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정수복 지음 / 로도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책에 대한 꼼꼼한 이야기를 읽었다.

독서라는 것이 좀 여유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바쁘다 보니 호흡이 긴 책을 볼 수가 없다. 틈틈이 읽는 것은 다소 가벼운 책이 좋다. 무거운 주제는 맥을 이어가야 하는데 잠깐씩 읽다 보면 갈피도 안 잡히고 망각의 곡선을 따르기에 지지부진 읽다가 지쳐서 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정신없을 때는 나도 모르게 가벼운 책을 찾게 된다. 최소한 번트라도 대겠다는 마음가짐의 표현이리라. 그냥 독서라는 흐름 정도만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읽게 된 정수복님의 책은 ‘책을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부터 시작해 처음엔 다소 의외였다.

결국, 책을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쭉 나열하고 그래도 읽겠다면 ‘이렇게 읽어라’ 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느낌으로도 상당한 독서량을 채운 분 같았기에 독서 선배로서 충고하는 내용을 즐거운 마음으로 경청하였다.

결론은? “독서하겠다면 열심히 하되 독서방법에 대한 정답은 없으니 자신한테 맞는 방법을 택해라” 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글을 쓴 사람도 자기 맘대로 썼듯이 읽는 사람도 자기 맘대로 읽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이 더 다양할 수 있다. 독자의 삶의 가지 수 만큼 글의 해석 방법도 여러 가지 일 것이며 당연히 내게 맞는 활용이 따로 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의중만 파악하다 나를 잊게 되고, 텍스트 독해에만 몰두하다 읽는 목적을 간과한다면 책이 주인이고 나는 주변인, 구경꾼이 되는 어리석은 상황에 놓인다.

 

책은 책일 뿐, 저자의 생각은 그럴 뿐, 내가 항상 책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나는 얼마나 주도적으로 독서를 했던가? 저자의 생각을 마치 내 생각인양 착각하지 않았던가? 책의 내용을 마치 불변하는 절대 진리인양 맹신하지 않았던가?

한 권의 책을 백 권으로 읽을 것인지, 백 권의 책을 한 권만도 못하게 읽을 것인지는 순전히 내게 달린 것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본다. 그래서 7가지 질문은 꼭 내게 던질 일이다.

하여튼 한 번 읽어 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시간 낭비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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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1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책 선택도 내맘대로, 독서 방식도 내맘대로... ^^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6-1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인생사가 내맘대로 되는게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좋아하는 책이라도 누구 눈치볼 일 없이 내맘대로 하자는 거죠
 

“지금 어디냐? 시골에서 죽순 좀 꺾어 왔는데 싱싱허니 좋다. 아직 집에 도착 안했으면 좀 들렀다 가거라”

“에이 저 죽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애들도 안 먹고. 그냥 아버지나 많이 드시지”

그다지 내키지 않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건만 귀가 어두운 아버지는 당신 용건만 깔끔하게 전달하시고는 휑~ 하니 전화를 끊어 버리신다.

얼마 전 이사하신 부모님 댁 방향의 교차로를 지났건만 할 수 없이 차를 돌렸다.

 

이사한 부모님 집은 20여년이 다 되는 24평 아파트다. 값이 그리 많이 나가는 집은 아니지만 삼남매가 시끄러운 과정을 거친 후 마련한 집이다. 물론, 집을 사드렸다고 하기 보다는 약간 보탰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볼 때마다 늘 마음이 걸렸던 낡은 아파트였다. 물도 새고 벽도 금이 가고 보일러관도 오래 되어 따뜻하지 않았다. 고치자니 아깝고 살자니 불편한 계륵 같은 집을 볼 때 마다 늘 새 아파트를 사드리고 싶었지만 그건 로또나 당첨이 되야 가능한 일이니 그냥 하나마나한 소리로 이사 가야 된다는 공염불만 외우곤 했다.

 

그렇게 굴뚝같은 마음만 먹고 있기를 수년. 그런데 정작 일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부모님을 이사시키자”

이 말의 진원지는 여동생 네였다. 매제가 최초로 말을 꺼내 들었다.

“자식도 가만있는데 사위가 웬 참견?”

처음엔 떨떠름했는데 말이라는 것이 일단 공식적으로 떠오르자 제멋대로 살을 붙이고 다녔다. 겁이 덜컥 났다.

“어떻게 하지? 큰아들로서 뭔가를 해야 되는데...아무런 계획도 없이”

부모님까지 덩달아 가네 마네 하시면서 장단을 맞추시는 바람에 결국 집안 공식안건이 되버렸다.

 

결국, 이사는 기정사실화 되고 몇 주간의 힘든 탐색 끝에 적당한 아파트를 찾았다.

준공 된지 30년이 다 되는 낡고 좁은 아파트를 부동산경기에 힘입어 겨우 겨우 팔고 주택담보대출 받고 나머지 부족한 액수는 3남매가 나누어 부담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일치 하지 않아 수많은 통화를 해댔다. 불과 몇 천 되지 않은 돈이었지만 서로 경제력이 다르고 의견도 달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해서 리모델링까지 무사히 마치고 이사 한지가 몇 주 전이다.

 

보살핌을 받다가 어느 순간 보살펴 드려야 하는 존재가 돼버린 부모님.

죽순을 받아 들고 몇 마디 안부 인사를 드리고 문을 나설 때, 소꿉장난 하듯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사실 것 같은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 연상이 되며 뭔가 묵직한 느낌이 올라온다.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느꼈던 부성애와 느낌이 다른 뿌듯함, 책임감, 불안감 등 정체모를 감정에 사로잡힌 채 운전 내내 상념에 사로잡힌 퇴근길이었다.

 

“그래. 한시름 놨다. 이렇게라도 해놓으니 얼마나 좋아” 밥 때문인지 죽순 때문인지 이상하게 배가 부른 저녁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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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연대기 살림지식총서 147
한혜원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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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의 기원은 영화 ‘드라큘라’에서 나왔듯이 루마니아 트랜실바니아 지방의 블라드체페슈 공(公)이다. 그는 오스만투르크(터키)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같은 주변 제국의 외침에 맞서 나라를 지킨 영웅과 어릴 적 볼모로 잡힌 기억 때문에 포로들을 꼬챙이에 꽂아 피를 흘리며 천천히 죽게 만든 잔인한 폭군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이중적이고 기묘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다.

 

당시 문명의 중심지였던 서유럽에서 봤을 때 루마니아가 위치한 동유럽은 낯선 오지였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은 기묘한 풍속과 함께 온갖 루머의 온상이 되었고 무료한 일상의 좋은 이야깃거리였으며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상상의 보고였다.

 

이러한 동유럽의 이질적인 토양은 독특한 문화적 역사적 예술적 작품을 탄생시킬 충분한 자양분을 함유하고 있었던 것이니, 브람 스토커는 전부터 흘러 다니던 흡혈귀에 대한 괴담을 원료로 드라큘라를 창조하였고, 이후 각종 소재가 곁들여져 오늘날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괴물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나 인간사는 으레 신비화, 주술화, 종교화 되는 경향이 있다. 그 시대 가장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었을 것이다. 13~4C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1/4을 절멸시켰다. 전염병의 원인이 밝혀진 지금 세균은 별것 아니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당시엔 멀쩡한 생명이 몇 일만에 시체로 변해버리는 광경이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이름 모를 병으로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견딜 방법은 오직 인간을 시기한 악마의 행위로 결론 내리는 것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름 모를 무서운 역병, 시체, 붉은 피, 죽음, 어둠, 사후세계 등 인간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적절한 총합이 뱀파이어라는 기묘하고도 매력적인 피조물로 세상에 나타났고, 종교권력은 매정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무서운 벌을 원망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뱀파이어를 악마의 대표자로 결정하고 희생양으로 삼기로 한다.

 

결국, 뱀파이어는 인간이 느끼는 공포, 구체적으로 죽음의 공포와 불사에 대한 환상, 인간의 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대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매혹적인 저주 등이 이야기꾼들의 과장된 만담과 합쳐져 탄생하였고, 교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진화시켰으며, 예술가들은 예술적 감수성과 영감으로 확대 재생산하였다.

 

이런 과거의 신화가 드라큘라라는 대표에 의해 집약되었고 그 화려한 부활을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오락의 대명사 헐리웃이다. 뱀파이어의 신비가 미명의 산물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명확한 현대에 그 존재 의미는 이미 더 이상 색 바랜 공포가 아닌 오락과 즐길 거리인 것이다.

 

깔끔한 영국신사지만 밤이 되면 박쥐로 변신하고 피를 탐하는 드라큘라에서 시작하여 인간적인 고뇌에 찬 뱀파이어에서 거의 좀비 수준의 삼류 뱀파이어까지 이어 지는 피의 계보는 은으로 만든 총알을 탑재한 권총을 난사하는 뱀파이어 사냥꾼에, 심지어 뱀파이어 검사, 의사까지 합세한 우리나라 드라마까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뱀파이어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요소가 오락화하기 좋기 때문이다. 굳이 무리하게 설정하지 않아도 되는 화면 가득 휘몰아치는 초인적인 힘, 낮과 밤을 나누는 공간의 제약과 불멸의 생명이 가지는 환상, 인간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고독한 존재로서 의 왠지 모를 페이소스. 불사신처럼 보이지만 때론 허무하게 무너지는 인간적인 약점. 그들은 인간의 불가능한 욕망을 집약한 육체를 가진 또 하나의 인간상이며 문화적 감수성과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나 실체 없는 괴담속의 악마보다 더 무서운 건 살아 있는 인간들, 나와 내 가족의 고혈을 빨아 먹는 흡혈귀-지배층의 수탈이 아니었을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권력층에 대한 분노, 두려움, 공포가 빚어낸 왜곡된 지배자의 모습이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는 어둠속의 무언가에 투사된 존재, 온갖 죄를 뒤집어 쓴 희생양, 그것이 뱀파이어의 숨겨진 실체가 아닐까?

 

보이지 않아 사람들에 두렵게 했던 수많은 것들이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낸 첨단과학시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화려한 부활을 하며 그 외연을 끝없이 확장하고 있는 뱀파이어는 공포 대신 화려한 컨셉으로 볼거리만을 제공하는 자본주의 상품으로 전락했는가? 아니면 아직도 존재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과거의 문화적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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