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연대기 살림지식총서 147
한혜원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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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의 기원은 영화 ‘드라큘라’에서 나왔듯이 루마니아 트랜실바니아 지방의 블라드체페슈 공(公)이다. 그는 오스만투르크(터키)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같은 주변 제국의 외침에 맞서 나라를 지킨 영웅과 어릴 적 볼모로 잡힌 기억 때문에 포로들을 꼬챙이에 꽂아 피를 흘리며 천천히 죽게 만든 잔인한 폭군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이중적이고 기묘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다.

 

당시 문명의 중심지였던 서유럽에서 봤을 때 루마니아가 위치한 동유럽은 낯선 오지였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은 기묘한 풍속과 함께 온갖 루머의 온상이 되었고 무료한 일상의 좋은 이야깃거리였으며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상상의 보고였다.

 

이러한 동유럽의 이질적인 토양은 독특한 문화적 역사적 예술적 작품을 탄생시킬 충분한 자양분을 함유하고 있었던 것이니, 브람 스토커는 전부터 흘러 다니던 흡혈귀에 대한 괴담을 원료로 드라큘라를 창조하였고, 이후 각종 소재가 곁들여져 오늘날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괴물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나 인간사는 으레 신비화, 주술화, 종교화 되는 경향이 있다. 그 시대 가장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었을 것이다. 13~4C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1/4을 절멸시켰다. 전염병의 원인이 밝혀진 지금 세균은 별것 아니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당시엔 멀쩡한 생명이 몇 일만에 시체로 변해버리는 광경이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이름 모를 병으로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견딜 방법은 오직 인간을 시기한 악마의 행위로 결론 내리는 것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름 모를 무서운 역병, 시체, 붉은 피, 죽음, 어둠, 사후세계 등 인간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적절한 총합이 뱀파이어라는 기묘하고도 매력적인 피조물로 세상에 나타났고, 종교권력은 매정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무서운 벌을 원망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뱀파이어를 악마의 대표자로 결정하고 희생양으로 삼기로 한다.

 

결국, 뱀파이어는 인간이 느끼는 공포, 구체적으로 죽음의 공포와 불사에 대한 환상, 인간의 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대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매혹적인 저주 등이 이야기꾼들의 과장된 만담과 합쳐져 탄생하였고, 교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진화시켰으며, 예술가들은 예술적 감수성과 영감으로 확대 재생산하였다.

 

이런 과거의 신화가 드라큘라라는 대표에 의해 집약되었고 그 화려한 부활을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오락의 대명사 헐리웃이다. 뱀파이어의 신비가 미명의 산물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명확한 현대에 그 존재 의미는 이미 더 이상 색 바랜 공포가 아닌 오락과 즐길 거리인 것이다.

 

깔끔한 영국신사지만 밤이 되면 박쥐로 변신하고 피를 탐하는 드라큘라에서 시작하여 인간적인 고뇌에 찬 뱀파이어에서 거의 좀비 수준의 삼류 뱀파이어까지 이어 지는 피의 계보는 은으로 만든 총알을 탑재한 권총을 난사하는 뱀파이어 사냥꾼에, 심지어 뱀파이어 검사, 의사까지 합세한 우리나라 드라마까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뱀파이어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요소가 오락화하기 좋기 때문이다. 굳이 무리하게 설정하지 않아도 되는 화면 가득 휘몰아치는 초인적인 힘, 낮과 밤을 나누는 공간의 제약과 불멸의 생명이 가지는 환상, 인간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고독한 존재로서 의 왠지 모를 페이소스. 불사신처럼 보이지만 때론 허무하게 무너지는 인간적인 약점. 그들은 인간의 불가능한 욕망을 집약한 육체를 가진 또 하나의 인간상이며 문화적 감수성과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나 실체 없는 괴담속의 악마보다 더 무서운 건 살아 있는 인간들, 나와 내 가족의 고혈을 빨아 먹는 흡혈귀-지배층의 수탈이 아니었을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권력층에 대한 분노, 두려움, 공포가 빚어낸 왜곡된 지배자의 모습이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는 어둠속의 무언가에 투사된 존재, 온갖 죄를 뒤집어 쓴 희생양, 그것이 뱀파이어의 숨겨진 실체가 아닐까?

 

보이지 않아 사람들에 두렵게 했던 수많은 것들이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낸 첨단과학시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화려한 부활을 하며 그 외연을 끝없이 확장하고 있는 뱀파이어는 공포 대신 화려한 컨셉으로 볼거리만을 제공하는 자본주의 상품으로 전락했는가? 아니면 아직도 존재가치가 있는 매력적인 과거의 문화적 산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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