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냐? 시골에서 죽순 좀 꺾어 왔는데 싱싱허니 좋다. 아직 집에 도착 안했으면 좀 들렀다 가거라”

“에이 저 죽순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애들도 안 먹고. 그냥 아버지나 많이 드시지”

그다지 내키지 않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건만 귀가 어두운 아버지는 당신 용건만 깔끔하게 전달하시고는 휑~ 하니 전화를 끊어 버리신다.

얼마 전 이사하신 부모님 댁 방향의 교차로를 지났건만 할 수 없이 차를 돌렸다.

 

이사한 부모님 집은 20여년이 다 되는 24평 아파트다. 값이 그리 많이 나가는 집은 아니지만 삼남매가 시끄러운 과정을 거친 후 마련한 집이다. 물론, 집을 사드렸다고 하기 보다는 약간 보탰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볼 때마다 늘 마음이 걸렸던 낡은 아파트였다. 물도 새고 벽도 금이 가고 보일러관도 오래 되어 따뜻하지 않았다. 고치자니 아깝고 살자니 불편한 계륵 같은 집을 볼 때 마다 늘 새 아파트를 사드리고 싶었지만 그건 로또나 당첨이 되야 가능한 일이니 그냥 하나마나한 소리로 이사 가야 된다는 공염불만 외우곤 했다.

 

그렇게 굴뚝같은 마음만 먹고 있기를 수년. 그런데 정작 일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부모님을 이사시키자”

이 말의 진원지는 여동생 네였다. 매제가 최초로 말을 꺼내 들었다.

“자식도 가만있는데 사위가 웬 참견?”

처음엔 떨떠름했는데 말이라는 것이 일단 공식적으로 떠오르자 제멋대로 살을 붙이고 다녔다. 겁이 덜컥 났다.

“어떻게 하지? 큰아들로서 뭔가를 해야 되는데...아무런 계획도 없이”

부모님까지 덩달아 가네 마네 하시면서 장단을 맞추시는 바람에 결국 집안 공식안건이 되버렸다.

 

결국, 이사는 기정사실화 되고 몇 주간의 힘든 탐색 끝에 적당한 아파트를 찾았다.

준공 된지 30년이 다 되는 낡고 좁은 아파트를 부동산경기에 힘입어 겨우 겨우 팔고 주택담보대출 받고 나머지 부족한 액수는 3남매가 나누어 부담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일치 하지 않아 수많은 통화를 해댔다. 불과 몇 천 되지 않은 돈이었지만 서로 경제력이 다르고 의견도 달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해서 리모델링까지 무사히 마치고 이사 한지가 몇 주 전이다.

 

보살핌을 받다가 어느 순간 보살펴 드려야 하는 존재가 돼버린 부모님.

죽순을 받아 들고 몇 마디 안부 인사를 드리고 문을 나설 때, 소꿉장난 하듯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사실 것 같은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 연상이 되며 뭔가 묵직한 느낌이 올라온다.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느꼈던 부성애와 느낌이 다른 뿌듯함, 책임감, 불안감 등 정체모를 감정에 사로잡힌 채 운전 내내 상념에 사로잡힌 퇴근길이었다.

 

“그래. 한시름 놨다. 이렇게라도 해놓으니 얼마나 좋아” 밥 때문인지 죽순 때문인지 이상하게 배가 부른 저녁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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