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 - 용감한 가족, 우여곡절 끝에 25개 국, 163개 도시를 달리다!
빼빼가족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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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끼고 총 6일간의 여름휴가 중 사흘간의 가족과의 휴가를 의무적으로 치른 후 나머지 사흘 동안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주문한 책 중 한 권을 빼들었다. 미니버스를 이용한 세계일주 가족 여행기라는 내용과 제목과 보고 장바구니에 휙 넣어둔 책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는 많은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나만큼이나 빼빼한 한 가장이 생업까지 중단한 채 자동차 세계 여행계획을 세운 목적을 여러 번 곰씹었다.

 

자식들이 특별히 문제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남달리 여행욕심이 많은 것도 아닌 평범한 50대 아저씨가 그런 무모한 여행을 시작한 이유 말이다. 여행이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은 분명 맞지만 그렇다고 살고 있는 아파트마저 처분하고 아이들의 학업마저 중단시키면서까지 강행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지 따져 보고 싶은 것이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생각일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 때문에 고민이 많다. 학업성적도 별로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과 게임에만 빠져 있는 중학생 큰 놈과, 소심하고 짜증이 많으며 몸이 약한 초등학생 둘째를 보노라면 아버지로써 내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가족끼리 어디 어디 여행을 가서 성숙한 아이가 됐다는 등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뭔가 나도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어떤 이벤트를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물론, 며칠 동안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중요한 건 이 가족은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버스를 직접 몰고 육로로 25개국 163개 도시를 말이다. !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여행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낯선 곳과의 조우,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생각, 난관을 함께 극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가족애 등 생각만 해도 뿌듯한 여행의 선물이 그것이다.

 

이런 여행의 소중한 경험들을 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못했다. 피곤하다고, 시간이 없다고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집에서 뒹굴뒹굴 게으른 모습만 보여 주다 마지못해 승용차로 편하게 휙 갖다 온 후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큰 소리쳤다.

동네 뒷산 한 번 먼저 가자고 해 본적이 없고, 동네 수영장엔 아이들만 가게 했다. 남들이 야영을 가네, 야구장을 가네, 떠들어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다.

 

귀찮다고, 재미없다고, 내 취미가 아니라고, 난 그냥 조용한 집에서 책이나 보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핑계를 대며 이리 저리 피하는 사이 아이들은 커버렸다.

아빠의 게으름과 무기력함을 간파한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알아서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잘 논다. 스마트폰과 게임이 그네들의 천국이다. 그곳엔 내가 낄 자리도,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던 대로 됐건만 이제 난 슬퍼지고 말았다.

 

캠핑카를 사자. 캠핑 장비를 사자. 여행 관련 책들을 보고 생각만 하는 사이 아까운 시간들은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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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 & 카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지식인마을 7
조지형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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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록의 나열로 생각했는데 따져봤더니 너무 어렵다. 생각은 나중에 정리하련다. 흥미위주의 단순한 역사책만 봐왔다면 한 번쯤 읽어 보고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될듯. 과연 역사는 과학일까? 왜곡된 기록일까? 아님 정치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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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0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사실의 편집이라 정치고 왜곡이란 생각 듭니다. 신문이 그렇듯 우리의 일상 글이 의도적 그렇듯. 근데 여름 휴가 안 가세요? 올 여름 좋은 계획 없으세요? 아드님과 즐건 여름 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8-03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사흘 여름휴가랍시고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 여행기 한 권 보고 몇 자 적다가 님의 글을 봤네요. 휴가를 적당히 때운 후 뜨거운 부성애를 느낄 수 있는 여행기를 보고 나니 뜨끔했답니다.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8-03 0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프는 출근하지만 아직 이틀이 남아서 애들과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지 생각중이네요. 일단 시원한 영화관를 갈까 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08-03 06:36   좋아요 0 | URL
미션 임파서블, 인사이드 아웃. 추천 드립니다. ^^
 

1. 늘 갖고 있는 책 보다 신간코너의 책들이 더 재미있어 보인다.(남의 떡이 커 보인다)

  - 내가 갖고 있지만 아직 못 읽은 책들도 불과 얼마 전에는 신간 코너에 있었던 책들이다.

 

2. 한 번 보다가 중단한 책은 다시 읽기 힘들다(깨진 그릇은 되돌리기 힘들다)

  -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전에 한 번 읽은 부분이라 집중이 안 되고 대충 보게 되어 내용 파악도 안 되고 재미가 없다. 이미 읽은 부분 다음부터 보자니 앞의 내용이 생각이  안 나서 또 내용 연결이 안 돼 짜증이 나고 결국 던져 버리고 만다.

 

3. 살 때는 100대 고전이나 양서 위주로 고급스럽게 구입하나, 막상 읽어보려고 책을 빼들 땐 쉽고 재미있는 책부터 뽑아 든다.(어려운 공부는 싫다는 인간의 본성)

   - 좋지만 어려운 책은 글쎄.......시작하기가 참 힘들다.

 

4.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주문하고 택배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막상 도착해 책장에 꽂고  나면 잊어버린다.(연애와 결혼의 차이?)

  - 기다릴 때가 즐겁다.

 

5. 10권을 사서 5권을 보다 3권은 중도 포기하고 2권만 완독하며 1권에 감동받는다.

   그 1권 때문에 다시 10권을 사서 반복한다.(진흙속의 진주 찾기)

  - 책장만 늘어 간다.

 

6. 읽다가 만 책은 절대 읽은 것으로 치지 않는다. 마지막 몇 페이지라도 남기면 왠지  찝찝 하다. 집중도 안 되고 재미가 없어도 끝까지 읽으려고 애쓴다.

  (화장실에서 뭣을 안 한 느낌^^)

 - 그래서 마지막엔 설렁 설렁 읽는 경우가 많다.

 

7. 정말 감동을 받은 책과 열심히 줄 그어놓고 다음에 꼭 다시 봐야겠다고 결심한 책 치고 다시 본 경우는 거의 없다.  볼 책은 얼마든지 있거든( 헤어질 땐 말없이......)

 

8.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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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시대 -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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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의 근대화3부작 중 1편이다.

한국적인 것을 주제로 동․서양의 철학 체계를 자유롭게 관통하는 그의 이야기는 항상 즐겁고 상쾌하다.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핵심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글 솜씨 또한 일품이다. 그래서 늘 가까이 하는 작가 중 한 분이다.

 

고전평론가로서 실학자를 주로 다루었던 그가 이번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초까지의 기간 동안 사회의 흐름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대중매체인 신문에 나온 논설이나 기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대화를 고찰했다.

 

특히, 계몽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대한매일신보의 사설을 통해 여론주도층이 전 국민에게 전파하고자 했던 핵심사상이 무엇이었는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분석했다.

당대의 논객이었던 신채호, 주시경, 박은식 같은 독립운동가나 민족주의자가 직접 쓴 글을 활자로 보는 느낌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자세한 것은 책을 볼 일이며 간단히 몇 가지만 추려 본다.

 

첫 번째 배치, 기차 -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깨우는 기적소리.

그가 말한 첫 번째 근대화의 표상은 다름 아닌 기차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깨우는 우렁찬 기적소리의 기차는 전근대적인 교통수단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를 야기한다. 출발과 목적지를 일직선으로 그어버리는 단선적인 배치는 두 점 외의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소외시켜버린다. 이리 저리 둘러보고 자의반 타의반 옆길로 새곤 했던 과거의 여행은 기차와 함께 소멸한다. 오직 목적지만을 위해 달리는 목적 지향적 삶은 농경시대의 삶을 단숨에 밀어내버린다.

 

어리숙한 이 땅의 백성은 수탈을 위해 외세의 주도로 설치된 기차를 새로운 문명의 전령사로 받들고 숭앙했다(최남선의 경부철도가). 경인선을 필두로 우리의 손으로 만들었지만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었던 새까만 철 덩어리는 강제로 개화된 조선 백성들을 집어 삼킬 괴물이었지만 그 의미를 되새길 여유는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한 번에 접으며 과정을 생략한 채 오직 목적지만을 위해 달려가는 기차는 필연적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다. 주위를 둘러보며 여유 있는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는 띄엄띄엄 나눠지는 절기가 시간의 개념이었을 뿐, 초단위로 분절되는 시간의 개념은 없었다. 기차는 그런 면에서 시간이 곧 노동력인 자본주의의 표어인 ‘시간은 금이다’를 최초로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다.

 

두 번째 배치, 기독교 - 근대화의 전도사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계획한 곳에 제일 먼저 보냈던 것이 선교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종교는 18C에 이미 많은 조선백성들이 접했던 천주교가 아닌 자본주의의 첨병, 프로테스탄티즘의 개신교다.

개신교는 태생적으로 근대화와 자본주의와 함께 태어난 종교다. 중세봉건제의 몰락을 같이 한 구교와 달리 개신교는 세속적 욕망에 대한 도덕적 제약을 풀어주었고, 애초에 귀족이 아닌 신흥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일어났기에 자본주의와 쌍둥이 일 수밖에 없다.

 

망국의 원인으로 뭇매를 맞고 쓰러진 유학이 상실한 힘의 공백기를 채운 개신교의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전혀 양립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 개신교와 과학은 환상적인 궁합으로 조선 백성의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과 약육강식, 부국강병의 제국주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민족을 절대불변의 교리로 신격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세 번째 배치, 민족 - 무형의 국가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유구한 역사의 민족,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 한민족 등 마치 민족이 고조선 때부터 이미 존재한 개념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익힌 건 근대화 이후다. 을사조약과 함께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조선은 500년의 긴 역사를 자랑 하는 왕조가 무너짐에도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지킬 국가도 받들 군주도 없어진 조선은 대신 민족이라는 실체 없는 담론에 목을 매기 시작한다.

 

제3공화국의 ‘민족중흥의 역사’의 기원은 여기서부터 인 것이다. 그림자에 불과한 민족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포장하기 위해 언론은 끊임없이 계몽의 선동을 이어갔다. 왕조 대신 민족을 택한 우리는 서양 근대화의 시작인 이성의 개인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제국주의, 파시즘의 논리로 이용당하는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고야 만다.

민주주의의 근본인 개인의 자유, 권리는 발도 못 붙이고 이후 단일민족이라는 하나의 틀에 박힌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를 대신해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 한다.

 

지켜야 할 국가가 사라진 시대에 남은 것이라곤 민족이라는 무형의, 정신적인 형이상학뿐이다. 국가가 없어도, 영토가 없어도, 백성이 없어도 오직 민족정신 만 살아 있으면 언제든지 나라는 성립할 수 있다는 논리는 민족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로 격상시키며 텅 빈 국가의 자리를 꿰찬다.

 

네 번째 배치, 역사와 언어

동양의 역사는 사건의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배열이 아니다. 그 시대의 신화, 설화와 버물려 우주만물과 인간이 함께 가는 모습의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삼국유사도 당시엔 분명 역사이건만 근대에 와서 이야기책이 돼버린다.

 

신채호, 박은식 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전 방위적인 선동과 지원으로 조선의 역사는 단군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삼국통일의 신라는 제 민족을 외세에 팔아먹은 반민족세력으로 폄하되었고, 만주벌판을 누비던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과 연개소문, 을지문덕, 이순신 같은 민족의 영웅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역사가 국사(國史)가 되는 기점이다.

 

역사가 국사가 된 순간, 국사는 모든 국민이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제나라의 역사로 재 배치된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수천 년을 써온 한문은 한순간 외국어로 전락하고 한글만이 의미 있는 유일한 우리의 언어, 국어(國語)가 된다.

이제 온 국민은 우리의 역사, 국사와 우리의 언어, 국어를 필수적으로 익히도록 강요당했으며 계몽에 이용할 수 있는 문학 같은 분야만 특화되어 발전한다.

 

실상 우리가 옛날부터 존재해 왔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대에 급조된 개념인 것이다. 똑같이 강제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한 일본에 정치권력을 강탈당하고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게 된 조선은, 몰락한 왕조와 함께 유교문화와 같은 우리의 것들을 철저히 부정하는 자기기만의 길을 걷게 된다.

 

나라를 되찾아야 하는 다급한 마음에 서양의 신문물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 우리 고유의 정신과 문화는 국권상실의 책임을 짊어지고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며, ‘부국강병’ 같은 절대주의, 제국주의 이념은 새롭게 떠오른다.

 

그러나 온고지신의 장점을 취하지 못한 계몽은 결과적으로 외세의 사상을 우리 식으로 다듬지도 못하고 급하게 내면화함으로써 이후 엄청난 후유증을 유발하며 근대에서 현대로의 과정에 두고두고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만다.

 

내가 갖고 있던 것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내팽개치면서 허둥지둥 남의 것을 갖다 쓰며 어는 순간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너무 깊숙이 받아들여버린 불행한 우리의 역사.

남의 것을 처음부터 내 것 인줄 알고 살아온 불행한 국민.

잘못된 근대화로 두고두고 발목 잡힌 대한민국.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도 쉬운 법.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감싸며 괴롭히고 있는 수많은 것들의 근원을 찾아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알기. 고미숙이 근대화 계보학을 펼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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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7-20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과 내용이 서로 예상치 못한 결과인 듯 싶습니다. 계몽과 후유증.. 근데 서구 사회의 계몽주의 시기도 이런식 근대화였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구와 우리나라 간 계몽과 근대화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계몽이 곧 근대화 후유증으로 이어졌는지 어떤지. 어떤 국가에는 아닌 것도 같아서요. 덴마크라든지...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7-21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권이 상실된 채 혼란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계몽이니 당연히 건강하지 못한 사유가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우리와 비슷했지만 근대화에 성공하고 제국주의 국가로까지 성장한 일본의 메이지유신에 대해 시간이 나면 살펴볼까 합니다.
물론, 그쪽 역시 부국강병엔 성공했지만 정말 중요한 근대 이성의 개념은 허울뿐이긴 했지만요.
똑 같은 근대화요 계몽기였지만 힘들더라도 단계를 밟은 국가는 성공했고
급하게 베낀 나라들은 반 쪽의 근대화만 성공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베끼기 바빴을 뿐 한 번도 제대로 따져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포스트모던이 한창 유행했었는데 우린 아직도 근대화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탈근대를 논하기 앞서 근대를 먼저 논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과 100년 전에 일어 났던 일들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찌 탈근대를 논하겠습니까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7-21 0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문제든지 그 기원을 더듬어 보면 해결책은 저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원인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겉만 보고, 현재만 보고 문제를 찾습니다.
모든 문제들의 첫 단추를 찾으면 이미 그 문제의 절반은 해결이 된다고 봅니다.
선진국이 잘 되었다고 해서 시작과 중간을 생략하고 현재 결과만 가지고 보면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지요.
 

터미네이터의 추억

터미네이터1이 1984년 12월에 개봉되었으니, 2000년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들은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심지어 ‘스카이넷’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인공지능 네트워크 망이 인간을 말살하려고 핵전쟁을 일으키는 미래가 지금보다 18년 전인 1997년으로 설정된 것을 보면 SF 고전에 넣어도 될 정도로 상당히 오래된 영화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재상영관(개봉관에서 이미 상영한 영화 두 편을 동시에 다시 볼 수 있는 서민을 위한 경제적인 2류 영화관)에서 처음 접했던 터미네이터의 위용은 지금도 생생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온 몸 구석구석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채워진 근육이 살아 빛나는 젊은 날의 아놀드 스왈츠제네거가 미래에서 섬광 사이로 나타나 오토바이를 타고 썬글라스 너머 붉고 칙칙한 저해상도 화면의 눈으로 LA시가지를 누비며 라이플을 난사하는 모습은 글자 그대로 ‘끝내주는 놈’ 이었다.

 

세계적인 대회에 여러 번 우승한 오스트리아 출신 한 보디빌더는 이 영화로 전 세계에 액션배우로서 이름을 떨치고, 변방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출신성분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하고, 38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정계까지 진출하며, 영화 외적으로도 인생을 터미네이트했으니, 아마 그로서도 이 영화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그래서 액션을 소화할 나이를 훌쩍 넘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할 70이 낼 모레인 노구를 이끌고 기어코 늙은 터미네이터로 출연했을까? 그의 전성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반갑기도 했지만 화려한 액션 영화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진짜 로봇이었다면 변하지 않았을 늙어 빠진 노인네의 얼굴로 다시 나타난 노인 터미네이터의 모습은 다소 정겹기까지 했다. 다른 젊고 튼튼한 배우가 많았음에도 고령의 아놀드가 다시 등장한 배경은 아놀드=터미네이터라는 오랜 공식을 깨트리기가 힘들기도 했겠지만, 옛날의 그를 기억하며 같이 늙어가는 팬들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놀드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터미네이터는 역시 그에게 가장 맞는 옷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아직 개인용 PC가 보급되기 전이었다. 연구원들이나 알았을 법한 특수한 기술 장비인 컴퓨터라는 물건은 고사하고 단어 자체도 모르던 때였다. 하물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스카이넷’이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말살하고자 한다는 줄거리는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집밖의 유일한 연락 방법이 공중전화였던 시절,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배치하여 통제를 한다는 이야기는 SF소설에서도 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었다. 다만 어린이 만화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로봇은 어느 정도 익숙했던 것이기에 당연히 컴퓨터의 인류 지배보다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터미네이터란 사이보그의 엄청난 성능과 위력을 확인하는 액션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터미네이터의 진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그런 과거의 내 추억을 확실하게 날려 버렸다.

영화 속 전사들은 몸이 아닌 입으로 싸우는 게 더 능했다. 실상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과거와 미래를 어지럽게 왔다 갔다 하며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더니 결국 액션 사이로 늘어터진 긴 대화로 홈드라마를 만들어 버린다. 시원한 액션과 빠른 템포라는 블록버스터 흥행공식을 자꾸 비껴나 관객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이 영화의 주제는 액션인가? 메시지인가?

 

1탄의 무지막지한 터미네이터는 2탄에서 존 코너와, 제니시스에서는 사라 코너와 연기(緣起)의 관계를 이룸으로써 스카이넷의 기계들과 차별 된다. 더 이상 금속이 아닌 인간의 길을 걸음으로서 인간과 화해의 새 관계를 모색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무리와 살리려는 무리사이엔 자연을 살리려는 인간과 파괴하는 인간 사이의 간극이 오버랩 된다.

 

잔인한 살인기계에서 인간과 공생하고 교감을 나누는 존재로의 변이. 자연과 대척점에 있는 기계(문명)가 인간을 구하는 역설. 1.2탄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보이는 밝은 화면은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의 전향이며 인류의 미래를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감독의 의지이기도 하다.

 

인간과 기계사이의 경계 해체

2탄에서 어린 시절의 존 코너에게 한 것처럼 사라 코너와 단순한 보호자를 넘어서는 관계를 보여 주는 이 인정 많은 터미네이터는 쇳가루 날리는 무표정에서 어색하게 인간을 흉내 내며 웃는 휴머노이드로 변신한다. 점점 인간의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적자생존의 논리를 벗어던진 인간과 과학문명의 화해와 공존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하다.

 

1편이 단순명료한 선악과 화끈한 싸움 이였다면 2편부터는 기계가 인간과 교감을 시도하고 드디어 완전하게 동화를 이룬다.

 

적으로 등장했던 터미네이터 T-800은 인간을 보호하고, 인류의 메시아였던 존 코너는 반대로 나노 터미네이터로 T-3000으로 나타난다. 적그리스도로 변한 존 코너로부터 인류를 구하고자 뛰어 다니는 구형 터미네이터는 이제 더 이상 기계와 인간의 구별이 모호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메시아로 재배치된다.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는 이제 더 이상 유기체와 금속의 외피로는 구별 지을 수 없는 현대 과학 문명의 미래를 예견한다.

 

자신이 만든 과학문명에 소외되고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인간과 소통하고자 애쓰며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이보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인류는 질주하는 기술문명에서 빠져나올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지배하던 인간이 종으로 부리기 위해 만든 기계에 의해 반대로 멸종의 길을 걸을 위기를 맞은 건 자업자득이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 기계와 손을 잡고 인간에게서 기계의 지배권을 빼앗아 가려는 보이지 않은 적을 섬멸시킨다.

그것을 굳이 설명하기 위함일까?

액션으로만 보면 다소 기대에 못 미친 영화.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괜찮을 수도 있는 영화,

이제 더 이상 속편이 나올 수 없도록 기계와 인간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완결판.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사이의 견고한 장벽을 깨트리고자 한 영화

이영화의 기대보다 1%부족한 액션을 보완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이제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터미네이터에 대한 모든 추억을 딜리트(delete) 해야겠다.

타임머신이라는 아주 간단한 장치(과학이 아닌 영화 배치로)를 이용해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을 없던 일로 원위치 시켰으니 거기에 따라 내 기억도 터미네이터를 처음 만났던 그 날로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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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7-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놀드의 국적은 호주가 아니고 오스트리아 입니다^^

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7-17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삼십년동안이나 잘 못 알고 있었네요. 글을 쓸때는 항상 확인해야 되는데

게을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