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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시대 -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 ㅣ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4년 4월
평점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근대화3부작 중 1편이다.
한국적인 것을 주제로 동․서양의 철학 체계를 자유롭게 관통하는 그의 이야기는 항상 즐겁고 상쾌하다.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핵심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글 솜씨 또한 일품이다. 그래서 늘 가까이 하는 작가 중 한 분이다.
고전평론가로서 실학자를 주로 다루었던 그가 이번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초까지의 기간 동안 사회의 흐름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대중매체인 신문에 나온 논설이나 기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대화를 고찰했다.
특히, 계몽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대한매일신보의 사설을 통해 여론주도층이 전 국민에게 전파하고자 했던 핵심사상이 무엇이었는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분석했다.
당대의 논객이었던 신채호, 주시경, 박은식 같은 독립운동가나 민족주의자가 직접 쓴 글을 활자로 보는 느낌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자세한 것은 책을 볼 일이며 간단히 몇 가지만 추려 본다.
첫 번째 배치, 기차 -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깨우는 기적소리.
그가 말한 첫 번째 근대화의 표상은 다름 아닌 기차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깨우는 우렁찬 기적소리의 기차는 전근대적인 교통수단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를 야기한다. 출발과 목적지를 일직선으로 그어버리는 단선적인 배치는 두 점 외의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소외시켜버린다. 이리 저리 둘러보고 자의반 타의반 옆길로 새곤 했던 과거의 여행은 기차와 함께 소멸한다. 오직 목적지만을 위해 달리는 목적 지향적 삶은 농경시대의 삶을 단숨에 밀어내버린다.
어리숙한 이 땅의 백성은 수탈을 위해 외세의 주도로 설치된 기차를 새로운 문명의 전령사로 받들고 숭앙했다(최남선의 경부철도가). 경인선을 필두로 우리의 손으로 만들었지만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었던 새까만 철 덩어리는 강제로 개화된 조선 백성들을 집어 삼킬 괴물이었지만 그 의미를 되새길 여유는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한 번에 접으며 과정을 생략한 채 오직 목적지만을 위해 달려가는 기차는 필연적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다. 주위를 둘러보며 여유 있는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는 띄엄띄엄 나눠지는 절기가 시간의 개념이었을 뿐, 초단위로 분절되는 시간의 개념은 없었다. 기차는 그런 면에서 시간이 곧 노동력인 자본주의의 표어인 ‘시간은 금이다’를 최초로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다.
두 번째 배치, 기독교 - 근대화의 전도사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계획한 곳에 제일 먼저 보냈던 것이 선교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종교는 18C에 이미 많은 조선백성들이 접했던 천주교가 아닌 자본주의의 첨병, 프로테스탄티즘의 개신교다.
개신교는 태생적으로 근대화와 자본주의와 함께 태어난 종교다. 중세봉건제의 몰락을 같이 한 구교와 달리 개신교는 세속적 욕망에 대한 도덕적 제약을 풀어주었고, 애초에 귀족이 아닌 신흥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일어났기에 자본주의와 쌍둥이 일 수밖에 없다.
망국의 원인으로 뭇매를 맞고 쓰러진 유학이 상실한 힘의 공백기를 채운 개신교의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전혀 양립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 개신교와 과학은 환상적인 궁합으로 조선 백성의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과 약육강식, 부국강병의 제국주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민족을 절대불변의 교리로 신격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세 번째 배치, 민족 - 무형의 국가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유구한 역사의 민족,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 한민족 등 마치 민족이 고조선 때부터 이미 존재한 개념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익힌 건 근대화 이후다. 을사조약과 함께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조선은 500년의 긴 역사를 자랑 하는 왕조가 무너짐에도 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지킬 국가도 받들 군주도 없어진 조선은 대신 민족이라는 실체 없는 담론에 목을 매기 시작한다.
제3공화국의 ‘민족중흥의 역사’의 기원은 여기서부터 인 것이다. 그림자에 불과한 민족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포장하기 위해 언론은 끊임없이 계몽의 선동을 이어갔다. 왕조 대신 민족을 택한 우리는 서양 근대화의 시작인 이성의 개인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제국주의, 파시즘의 논리로 이용당하는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고야 만다.
민주주의의 근본인 개인의 자유, 권리는 발도 못 붙이고 이후 단일민족이라는 하나의 틀에 박힌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를 대신해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 한다.
지켜야 할 국가가 사라진 시대에 남은 것이라곤 민족이라는 무형의, 정신적인 형이상학뿐이다. 국가가 없어도, 영토가 없어도, 백성이 없어도 오직 민족정신 만 살아 있으면 언제든지 나라는 성립할 수 있다는 논리는 민족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로 격상시키며 텅 빈 국가의 자리를 꿰찬다.
네 번째 배치, 역사와 언어
동양의 역사는 사건의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배열이 아니다. 그 시대의 신화, 설화와 버물려 우주만물과 인간이 함께 가는 모습의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삼국유사도 당시엔 분명 역사이건만 근대에 와서 이야기책이 돼버린다.
신채호, 박은식 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전 방위적인 선동과 지원으로 조선의 역사는 단군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삼국통일의 신라는 제 민족을 외세에 팔아먹은 반민족세력으로 폄하되었고, 만주벌판을 누비던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과 연개소문, 을지문덕, 이순신 같은 민족의 영웅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역사가 국사(國史)가 되는 기점이다.
역사가 국사가 된 순간, 국사는 모든 국민이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제나라의 역사로 재 배치된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수천 년을 써온 한문은 한순간 외국어로 전락하고 한글만이 의미 있는 유일한 우리의 언어, 국어(國語)가 된다.
이제 온 국민은 우리의 역사, 국사와 우리의 언어, 국어를 필수적으로 익히도록 강요당했으며 계몽에 이용할 수 있는 문학 같은 분야만 특화되어 발전한다.
실상 우리가 옛날부터 존재해 왔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대에 급조된 개념인 것이다. 똑같이 강제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달성한 일본에 정치권력을 강탈당하고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게 된 조선은, 몰락한 왕조와 함께 유교문화와 같은 우리의 것들을 철저히 부정하는 자기기만의 길을 걷게 된다.
나라를 되찾아야 하는 다급한 마음에 서양의 신문물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 우리 고유의 정신과 문화는 국권상실의 책임을 짊어지고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며, ‘부국강병’ 같은 절대주의, 제국주의 이념은 새롭게 떠오른다.
그러나 온고지신의 장점을 취하지 못한 계몽은 결과적으로 외세의 사상을 우리 식으로 다듬지도 못하고 급하게 내면화함으로써 이후 엄청난 후유증을 유발하며 근대에서 현대로의 과정에 두고두고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만다.
내가 갖고 있던 것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내팽개치면서 허둥지둥 남의 것을 갖다 쓰며 어는 순간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너무 깊숙이 받아들여버린 불행한 우리의 역사.
남의 것을 처음부터 내 것 인줄 알고 살아온 불행한 국민.
잘못된 근대화로 두고두고 발목 잡힌 대한민국.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도 쉬운 법.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감싸며 괴롭히고 있는 수많은 것들의 근원을 찾아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알기. 고미숙이 근대화 계보학을 펼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