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의 추억
터미네이터1이 1984년 12월에 개봉되었으니, 2000년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들은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심지어 ‘스카이넷’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인공지능 네트워크 망이 인간을 말살하려고 핵전쟁을 일으키는 미래가 지금보다 18년 전인 1997년으로 설정된 것을 보면 SF 고전에 넣어도 될 정도로 상당히 오래된 영화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재상영관(개봉관에서 이미 상영한 영화 두 편을 동시에 다시 볼 수 있는 서민을 위한 경제적인 2류 영화관)에서 처음 접했던 터미네이터의 위용은 지금도 생생하다.
떡 벌어진 어깨와 온 몸 구석구석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채워진 근육이 살아 빛나는 젊은 날의 아놀드 스왈츠제네거가 미래에서 섬광 사이로 나타나 오토바이를 타고 썬글라스 너머 붉고 칙칙한 저해상도 화면의 눈으로 LA시가지를 누비며 라이플을 난사하는 모습은 글자 그대로 ‘끝내주는 놈’ 이었다.
세계적인 대회에 여러 번 우승한 오스트리아 출신 한 보디빌더는 이 영화로 전 세계에 액션배우로서 이름을 떨치고, 변방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출신성분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하고, 38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정계까지 진출하며, 영화 외적으로도 인생을 터미네이트했으니, 아마 그로서도 이 영화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그래서 액션을 소화할 나이를 훌쩍 넘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할 70이 낼 모레인 노구를 이끌고 기어코 늙은 터미네이터로 출연했을까? 그의 전성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반갑기도 했지만 화려한 액션 영화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진짜 로봇이었다면 변하지 않았을 늙어 빠진 노인네의 얼굴로 다시 나타난 노인 터미네이터의 모습은 다소 정겹기까지 했다. 다른 젊고 튼튼한 배우가 많았음에도 고령의 아놀드가 다시 등장한 배경은 아놀드=터미네이터라는 오랜 공식을 깨트리기가 힘들기도 했겠지만, 옛날의 그를 기억하며 같이 늙어가는 팬들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놀드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터미네이터는 역시 그에게 가장 맞는 옷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아직 개인용 PC가 보급되기 전이었다. 연구원들이나 알았을 법한 특수한 기술 장비인 컴퓨터라는 물건은 고사하고 단어 자체도 모르던 때였다. 하물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스카이넷’이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말살하고자 한다는 줄거리는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집밖의 유일한 연락 방법이 공중전화였던 시절, 전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배치하여 통제를 한다는 이야기는 SF소설에서도 보지 못한 생소한 것이었다. 다만 어린이 만화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로봇은 어느 정도 익숙했던 것이기에 당연히 컴퓨터의 인류 지배보다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터미네이터란 사이보그의 엄청난 성능과 위력을 확인하는 액션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터미네이터의 진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그런 과거의 내 추억을 확실하게 날려 버렸다.
영화 속 전사들은 몸이 아닌 입으로 싸우는 게 더 능했다. 실상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과거와 미래를 어지럽게 왔다 갔다 하며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더니 결국 액션 사이로 늘어터진 긴 대화로 홈드라마를 만들어 버린다. 시원한 액션과 빠른 템포라는 블록버스터 흥행공식을 자꾸 비껴나 관객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이 영화의 주제는 액션인가? 메시지인가?
1탄의 무지막지한 터미네이터는 2탄에서 존 코너와, 제니시스에서는 사라 코너와 연기(緣起)의 관계를 이룸으로써 스카이넷의 기계들과 차별 된다. 더 이상 금속이 아닌 인간의 길을 걸음으로서 인간과 화해의 새 관계를 모색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무리와 살리려는 무리사이엔 자연을 살리려는 인간과 파괴하는 인간 사이의 간극이 오버랩 된다.
잔인한 살인기계에서 인간과 공생하고 교감을 나누는 존재로의 변이. 자연과 대척점에 있는 기계(문명)가 인간을 구하는 역설. 1.2탄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보이는 밝은 화면은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의 전향이며 인류의 미래를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감독의 의지이기도 하다.
인간과 기계사이의 경계 해체
2탄에서 어린 시절의 존 코너에게 한 것처럼 사라 코너와 단순한 보호자를 넘어서는 관계를 보여 주는 이 인정 많은 터미네이터는 쇳가루 날리는 무표정에서 어색하게 인간을 흉내 내며 웃는 휴머노이드로 변신한다. 점점 인간의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적자생존의 논리를 벗어던진 인간과 과학문명의 화해와 공존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하다.
1편이 단순명료한 선악과 화끈한 싸움 이였다면 2편부터는 기계가 인간과 교감을 시도하고 드디어 완전하게 동화를 이룬다.
적으로 등장했던 터미네이터 T-800은 인간을 보호하고, 인류의 메시아였던 존 코너는 반대로 나노 터미네이터로 T-3000으로 나타난다. 적그리스도로 변한 존 코너로부터 인류를 구하고자 뛰어 다니는 구형 터미네이터는 이제 더 이상 기계와 인간의 구별이 모호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메시아로 재배치된다.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는 이제 더 이상 유기체와 금속의 외피로는 구별 지을 수 없는 현대 과학 문명의 미래를 예견한다.
자신이 만든 과학문명에 소외되고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인간과 소통하고자 애쓰며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이보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인류는 질주하는 기술문명에서 빠져나올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지배하던 인간이 종으로 부리기 위해 만든 기계에 의해 반대로 멸종의 길을 걸을 위기를 맞은 건 자업자득이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 기계와 손을 잡고 인간에게서 기계의 지배권을 빼앗아 가려는 보이지 않은 적을 섬멸시킨다.
그것을 굳이 설명하기 위함일까?
액션으로만 보면 다소 기대에 못 미친 영화.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괜찮을 수도 있는 영화,
이제 더 이상 속편이 나올 수 없도록 기계와 인간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완결판.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사이의 견고한 장벽을 깨트리고자 한 영화
이영화의 기대보다 1%부족한 액션을 보완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이제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터미네이터에 대한 모든 추억을 딜리트(delete) 해야겠다.
타임머신이라는 아주 간단한 장치(과학이 아닌 영화 배치로)를 이용해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을 없던 일로 원위치 시켰으니 거기에 따라 내 기억도 터미네이터를 처음 만났던 그 날로 돌려야겠다.